영화처럼 이어지는 인연
샤넬×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올해의 교장으로 취임한 김지운 감독이 전하는 협업의 의미와 아시아 영화의 미래.

샤넬×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을 맡은 김지운 감독.
단순한 패션 브랜드를 넘어 예술과 사회적 가치의 접점을 넓혀온 샤넬. 특히 영화가 20세기 예술에 가져온 혁명을 일찍이 인지한 샤넬은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의 바람이었던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일부가 되어라”를 오늘날 젊은 영화인과 창작자에게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거듭해왔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샤넬×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다. 올해까지 35개국 454명의 영화인을 배출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샤넬과 협업해 아시아 신진 영화인의 예술적 시야를 넓혀줄 국제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샤넬×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에는 역대 최다인 40개국 625명의 지원자가 몰렸으며, 특히 여성 영화인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는 졸업생 다수가 칸, 베를린, 토론토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활약하며 아시아 영화의 잠재력과 향후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기에 가능한 긍정적 변화다. 이처럼 샤넬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력은 브랜드가 지닌 문화적 영향력이 어떻게 교육과 창작의 현장에서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읽힌다.
특히 올해는 김지운 감독이 아카데미 교장으로 합류한다는 소식으로 더욱 기대를 모았다. 데뷔작 <조용한 가족>을 시작으로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독창적 미장센과 장르를 넘나드는 연출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온 그는 현장 중심 시선으로 젊은 창작자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협업의 가치를 일깨워줄 인물이기 때문. 김지운 감독에게 샤넬×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교장으로서 다짐에 대해 들었다.

위쪽 샤넬×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수료식 현장.
아래쪽 수료 축하 연설 중인 김지운 감독.
올해 샤넬×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으로 위촉되셨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만큼 다시 부산을 찾은 감회와 이번 역할을 맡게 된 개인적 의미, 교장으로서 책임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고 있지만, 올해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으로 참여하게 되어 이전과 다른 설렘이 있었습니다. 저는 영화 전공자가 아닌 데다 유학 경험도, 정식 교육을 받은 적도 없지만 그래서 더 학생들에게 현실적이고 생생한 조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젠 제 경험을 후배들에게 돌려줄 시점이라는 생각에 교장직을 수락했습니다. 현장에 참여하며, 이 역할이 단순히 상징적인 자리가 아님을 깨닫기도 했죠.
그간 감독님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독창적 미장센을 구축해온 작품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독보적 위상을 다져왔습니다. 이러한 창작 여정을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육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했나요? 교장의 역할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장을 직접 방문해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 현실적으로 조언하는 것으로, 촬영장에서 오케이 사인이 최선인지, 대안 컷은 없는지 점검하며 감독의 리더십과 현장 분위기가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살폈습니다. 두 번째는 마스터클래스로, 제 영화 <달콤한 인생> 상영 후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실제로 마주한 고민에 대해 구체적인 해법을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가편집본 코멘트 과정입니다. 편집과 사운드, 음악이 완성되지 않은 러프 컷을 보며 잠재적 가능성을 진단하고, 작품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도록 격려했습니다. 각 단계에서 학생들이 비판적 시각과 창작 의지를 기르기를 바란 셈이죠.
후배 영화인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영화적 태도나 창작 철학이 있다면요? 영화 제작은 긴 시간과 반복적 노동을 견뎌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런 만큼 인내와 체력은 필수죠. 하루에도 수십 차례 컨펌과 오케이 사인을 내려야 하고, 작은 실수 하나도 결과물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보다 매 순간 집중하고 생생하게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영화는 협업과 소통이 필수입니다. 타인의 기준의 아닌,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를 지키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영화적 감성과 심미안을 높이기 위한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과정에서도 잘 견디며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다 보면 창작자로서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출범 이후 많은 졸업생이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교장으로서 이 같은 성취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이번 교장직 수락은 개인적 명분이나 거창한 이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깨달은 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팀을 이뤄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감동적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아시아영화아카데미가 그간 이뤄낸 성취는 아시아에서 영화 산업적 성취와 국제적 성과 측면에서 한국이 선도적 위치에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와 협업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강생과 함께한 현장 멘토링.
올해 아시아영화아카데미에 역대 최다 지원자가 몰렸습니다. 앞으로 아카데미가 어떤 방식으로 더 성장하고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보시나요? 보다 안정적이고 유연한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의 지원 확대가 필요합니다. 현재 촬영 일정은 다소 타이트한 편이라, 학생들이 충분히 휴식하고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촬영 기간을 조금 늘려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면 보다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샤넬은 패션을 넘어 현대미술,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영역의 창작자를 꾸준히 지원해왔습니다. 감독님은 이러한 문화적 후원이 아시아 영화의 성장과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시나요? 샤넬은 단순한 브랜드가 아닌, 예술과 창작을 지원하는 글로벌 문화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역시 샤넬의 협업 아래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 마스터클래스, 멘토링 등 실질적 프로그램으로 구성했죠.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차원이 아니라 학생들이 창작 세계를 확장하고 협업 가치를 체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특히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학생들이 관점을 교류하며 완성한 결과물은 그 자체로 실무적 역량과 예술적 시야를 동시에 넓히는 훈련이 됩니다. 샤넬의 후원은 단순히 제작비를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학생들에게 ‘글로벌 스탠더드’의 창작 기준을 체감하게 하고, 자신의 작품을 국제 무대에 내놓을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브랜드가 쌓아온 문화적 신뢰와 예술적 후원 덕분에 학생들은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자신만의 철학과 비전을 정립할 수 있는 환경을 얻는 셈이죠.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샤넬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지속적으로 아시아 영화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어떤 창작적 자극과 장기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줄까요? 샤넬과 아시아영화아카데미의 협업은 단발적 후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매년 24명의 신진 영화인을 선발해 멘토링과 제작 지원을 이어가며,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속에서 젊은 감독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죠. 이러한 구조적 지원은 곧 아시아 영화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제 영화계에서 협업 모델을 정립하는 데도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샤넬이 제공하는 제작비 지원, 워크숍, 마스터클래스, 그리고 우수 펠로에 대한 후속 지원은 학생들이 단기적 성과에 머물지 않고 장기적 커리어를 설계할 수 있게 만듭니다. 단편영화 제작을 넘어 국제영화제 진출, 공동 제작 프로젝트, 멀티미디어 예술 등으로 확장되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파트너십은 아시아 영화 교육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디터 이호준(hojun@noblesse.com)
사진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