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도시, 건축의 결정체,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파리에 새로이 선보이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공간과 그곳의 주요 컬렉션으로 실험적 예술의 장을 여는 개관전 〈상설 전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새 건물, 파리 팔레 루아얄 광장 2번지. © Jean Nouvel / 파리, ADA P, 2025. © Cyril Marcilhacy.
파리의 중심부, 팔레 루아얄 광장 2번지에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의 새로운 전시 공간이 문을 열었다. 한때 루브르 백화점이 자리한 이곳은 산업의 전시장으로 출발, 이제는 예술의 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1984년 알랭-도미니크 페랭 Alain-Dominique Perrin)이 설립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동시대 예술의 자유와 상상력을 위한 플랫폼으로, 40여 년간 전 세계 예술가들과 함께 ‘경계 없는 예술’의 개념을 실험해왔다. 회화, 조각, 영상, 음악, 건축, 공예, 과학,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재단의 활동은 언제나 분야와 장르를 가로질러 그 영역을 확장해왔다.
오랜 역사가 깃든 이 오스만 양식 건물을 새롭게 숨 쉬게 한 이는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다. 이 건물은 파리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 구조물로, 낮에는 하늘과 도시의 소음을 반사하고 밤에는 내부의 조명과 작품의 빛을 드러내며 도시의 일부로 살아 숨 쉰다. 거리와 맞닿은 1층의 전면 파사드는 리볼리 가와 생토노레 가를 관통하며 시선을 건물 깊숙이 끌어들이고, 높이 7m에 달하는 유리면은 내 · 외부와 상하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안팎의 경계를 흐린다. 1994년 라스파이 대로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을 설계했을 때도 ‘투명성’을 통해 벽의 경계를 흐린 그는 이번 팔레 루아얄 프로젝트에서 그 개념을 더욱 확장했다. 벽과 천장, 필수 구조물을 제외하고 내부 공간을 최대한 비워내 150m에 이르는 탁 트인 시야를 만들어냈으며, 건축의 중심을 ‘비움’ 그 자체로 삼았다. 특히 이번 건축의 핵심 구조는 장 누벨이 ‘기계(Machine)’라 부른 5개의 이동식 강철 플랫폼이다. 무대처럼 오르내리는 이 거대한 플레이트는 전시의 성격에 따라 높이와 배열을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빈 공간을 형성한다. 천장의 유리창 아래에는 기계식 커튼처럼 움직이는 셔터를 설치해 자연광의 양을 조절하거나 완전히 차단할 수 있고, 그 위로는 팔레 루아얄 정원을 연상시키는 공중정원이 펼쳐져 계절의 변화를 공간으로 들인다.
이동식 플랫폼을 기존 건물에 설치하는 것은 전례 없는 도전이었다. 여러 차례 개조된 19세기 건물의 구조물과 배관, 칸막이를 완전히 비워내야 했는데, 기존 건축법규나 화재 안전기준, 유럽 건축 코드 어디에도 이처럼 큰 규모의 이동식 플랫폼을 기존 건물 안에 설치한 사례는 없었다. 장 누벨과 까르띠에 건축팀은 세계적 엔지니어들과 협업해 평균 250㎡, 무게 250톤에 달하는 플랫폼 하나하나를 완벽히 수평 상태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케이블과 도르래를 이용한 승강 장치, 평형추 역할의 유압 구조, 동기화된 전동 모터 등 정교한 메커니즘이 플랫폼 내부에 완전히 통합되어 기술적 장치 자체가 하나의 미학적 오브제로 작동했다. 고전적 돌기둥과 산업적 강철 구조가 교차하는 내부는 과거와 현재, 기술과 예술의 조우를 이뤄낸다. 장 누벨은 이를 통해 건축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살아 있는 전시 공간, 즉 변화와 감응을 내재한 유기체로 만들었다. 층마다 다른 높이와 방향으로 움직이는 플랫폼은 공간을 끊임없이 재조립하며, 마치 도시의 리듬에 맞춰 호흡하듯 빛과 그림자, 시간과 관람객의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 〈상설 전시〉
새로운 공간에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선보이는 첫 전시는 〈상설 전시(Exposition énérale)〉다. 지난 40년간 재단이 수집한 4,500점 중 엄선한 600여 점의 주요 컬렉션을 중심으로, 1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4개 섹션과 함께 주요 작가의 개인전과 그룹전으로 구성한 전시는 각기 다른 주제와 감각을 통해 현대미술의 거대한 지형을 그려낸다. 19세기 루브르 백화점에서 열린 전시와 동일한 제목으로 역사를 잇고 장 누벨의 건축, 그리고 포르마판타즈마(FormaFantasma)의 전시 디자인을 새롭게 얹으며 전시 속에 현재를 품어냈다.
전시 디자인을 맡은 포르마판타즈마는 작품과 건축, 관람객이 예상치 못한 관계를 이룰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정형화된 ‘화이트 큐브’ 모델과 극장 무대의 원리, 그리고 선형적 동선이 지워진 이동식 플랫폼의 공간 속 빛과 소리, 시야의 흐름이 관람객의 길을 대신하게 했다. 플랫폼마다 배치한 발광성 ‘랜턴’ 조명은 마치 이어지는 시간의 실처럼 공간을 엮고, 관람객은 그 빛을 따라 걸으며 전시의 리듬 속으로 들어간다. 높은 층에서는 파리의 도심이 내려다보이고, 아래층에서는 사운드가 공간을 진동시키며 작품을 더욱 입체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장 누벨이 설계한 첫 번째 플랫폼 위에 펼쳐지는 ‘임시 건축 연구소’ 섹션은 건축을 사유의 매개로 바라보게 한다. 반(反)기념비적 설치 작품, 유토피아적 도시 모형, 미완 또는 상상의 프로젝트를 통해 재구성한 도시를 선보인다. 규모에 대한 감각을 전복한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의 소규모 교회 작품 ‘쁘띠 캐서드럴’처럼 여기서 건축은 단순히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문화적 의미, 그리고 미래적 가능성을 실험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도면과 프로토타입, 설치 작품과 실물 스케일의 구조물이 함께 놓이며, 공간을 상상하고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오스만 시대의 유산을 새롭게 읽는다. 이를 통해 건축은 변혁의 가능성을 품은 하나의 언어이자 대안적 비전으로 확장된다.
두 번째 섹션 ‘생태계 보존에 대한 고찰’은 예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공존의 윤리를 다룬다. 전시 공간은 마치 숲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 듯 구성,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지우는 동시에 풍부하고 복잡한 하나의 생태 시스템을 구현한다. 자연의 소리를 시간과 기억의 파형으로 재구성한 버니 크라우스(Bernie Krause)의 사운드 설치 작품 ‘귀뚜라미 없는 밤은 밤이 아니다’ 등 풍경과 사운드, 살아 있는 언어가 공존하며, 보는 대신 ‘듣는 전시’를 경험할 수 있다. 작품들은 방데, 아마존, 오세아니아섬 등 여러 지역의 생태와 문화적 지식을 연결하고, 이를 향한 예술의 시선과 미술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질문한다.
세 번째 섹션 ‘물질과 기술을 위한 실험 공간’은 현대미술의 광범위한 비전을 아우르며 물질과 기술, 제작 행위를 중심에 둔 섹션이다. 건물의 다섯 번째 플랫폼 아래 자리한 안드레아 브란치(Andrea Branzi)의 ‘가제보’와 같이 순수 미술과 공예, 디자인을 비롯해 분야 간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재료와 기법의 교차점을 탐구한다. 이곳에서 1988년에 열린 이세이 미야케(Miyake Issey)의 동명 전시의 정신이 이번 전시에서 숨 쉬듯, 고대 기법과 전통적 수공예가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되고, 물질과 제작 과정, 노하우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로서 새롭게 재탄생한다.
마지막 섹션 ‘미래지향적 이야기의 탐구’는 작가와 연구자들이 모여 과학, 기술, 공상을 결합한 확장된 차원을 다룬다. 현대 우주론에 매료된 차이 구어 치앙(Cai Guo-Qiang)과 같이 데이터, 기후, 우주, 꿈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소재로 탐색한 기술 문명의 비전과 진화적 세계관을 몰입형 설치와 시청각 작품 등을 통해 선보인다. 작품들은 다양한 형태의 지식과 해석 방식을 시각화하며, 감각의 재구성과 상상의 가능성을 고찰한다. 전시는 현실과 미래,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재정의하는 실험적 무대로 기능한다. 〈상설 전시〉는 단순한 개관 기념전이 아니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지난 40년간 축적해온 예술적 시간의 기록이다. 론 뮤익, 빌 비올라, 제임스 터렐, 패티 스미스, 데이미언 허스트 등 재단과 수십 년간 긴밀히 협업해온 작가들의 작품 역시 함께 조명하는 이 전시는 일종의 회고이자 예고이기도 하다. 건축과 전시, 사람과 도시가 하나의 호흡을 이루며, 재단의 신념이 깃든 예술의 숨결이 다시 흐르는 현장을 확인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