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가득 채운 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의 비전을 집약한 까사 로에베 서울.

지난 2013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로에베를 이끌어 온 조나단 앤더슨. ©David Sims
사(casa)는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의미다. 까사 로에베 서울(CASA LOEWE Seoul)은 패션과 예술, 공예, 디자인 가구가 어우러진 ‘수집가의 집’이라는 공간 콘셉트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이 직접 큐레이팅한 로에베의 국내 첫 단독 스토어다.
빛이 잘 드는 3개 층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간에서 여성복과 남성복, 핸드백, 슈즈, 액세서리, 아이웨어, 가죽 소품, 스카프와 숄, 홈 향수 등 로에베의 모든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 핸드메이드 세라믹 타일로 장식한 외벽과 거대한 설치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 까사 로에베 서울은 열정적인 아트 컬렉터로 알려진 조나단 앤더슨의 예술적 시각언어로 구현했다. 대담한 색감과 질감이 주변의 도시 풍경, 초록빛 나무와 어우러지며, 안으로 들어가면 블루, 브라운, 그린 색상 타일이 시원한 콘크리트, 따뜻한 오크, 황동, 대리석과 조화를 이룬다. 널찍한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풍부한 햇빛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안과 밖이 연결되는 흐름으로 구성했다.
실내 가구로는 맞춤형 펠트를 입힌 베린 클럽 의자, 헤릿 토마스 릿펠트(Gerrit Thomas Rietveld)가 디자인한 각진 위트레흐트와 스텔트먼 의자, 조지 나카시마(George Nakashima)의 아메리칸 블랙 월넛과 캔버스 소재로 제작한 코노이드 쿠션 의자 등을 엄선했다. 로에베의 시그너처 퍼퍼(Puffer) 벤치 시리즈에서는 브랜드의 정교한 가죽공예 기술을 볼 수 있다. 공중에 띄운 듯한 인상을 주는 블랙 테라조 테이블, 번트우드 소재 단상과 독특한 질감의 앤티크 도자기도 인상적이다. 발밑으로 영국의 섬유 예술가 존 앨런(John Allen)의 추상적 풍경화 ‘언덕 위의 페버릴(Peveril of the Peak)’, ‘백마와 강(White Horse with River)’, ‘바다에 닿은 강(The River Reaches the Sea)’, 태피스트리를 재현한 스페인산 핸드메이드 울 카펫이 깔려 있다.
다양한 패션 아이템과 더불어 로에베가 엄선한 세계 각국의 예술 및 공예 작품이 매장 디자인에 녹아 있다. 일본 작가 치쿤사이 타나베 4세(Tanabe Chikuunsai IV)의 ‘창조의 원천(Source of Creation)’(2024)은 여러 층에 걸쳐 이어지는 대나무 조형물로 패션과 예술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상징한다. 1층 중앙 아트리움에 자리한 나무줄기 형태의 원기둥 2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패션과 예술을 상징한다. 이 나무줄기는 2층까지 뻗어 올라가면서 조화로운 형태로 얽히고설켜 융합된다.

까사 로에베 서울의 외벽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타일은 스페인에서 공수한 것. 그밖에도 까사 로에베 서울 안팎의 모든 요소가 조나단 앤더슨의 취향과 감각을 반영한 것이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작도 2점 전시했다. 산호와 광물을 활용하는 일본 도예가 이나자키 에리코(Eriko Inazaki)의 2023년 수상작 ‘메타노이아(Metanoia)’(2019), 말총을 꼬아 만든 정다혜 작가의 2022년 수상작 ‘성실의 시간(A Time for Sincerity)’(2021)이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형태를 띠지만 전통 기술을 따르면서 복잡성과 혁신을 탐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9년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된 지승공예가 이영순 작가의 ‘코쿤탑 시리즈–1(Cocoon Top Series–1)’(2019)은 한지로 만든 화분을 쌓아 올린 작품으로 까사 로에베 서울에 영구 전시된다.
이 밖에도 영국 도예가 존 워드(John Ward)의 아름다운 흑백 패턴 도자기 컬렉션, 남아프리카공화국 도예가이자 작가인 지지포 포스와(Zizipho Poswa)의 유약 도기 ‘난디 브헤브헤 여왕(Queen Nandi Bhebhe)’, ‘줄루(Zulu)’(2022), 영국 작가 로 로버트슨(Ro Robertson)의 미디어 아트 ‘토르소 II(Torso II)’(2023), 독일 작가 라파엘라 지몬(Raphaela Simon)의 회화 ‘자네(크림)(Sahne(Cream))’(2021), 영국 작가 포피 존스(Poppy Jones)가 스웨이드에 오일과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감성적 작품 ‘최초의 빛(First Light)’(2023)도 함께 전시한다.
이러한 아트 컬렉션은 어느 특정 카테고리의 작품에 한정되지 않으며 다양한 예술과 공예 전반에 걸친 수준 높은 작품의 헤리티지를 전달하는 데 의미를 둔다. 까사 로에베 서울은 패션과 액세서리는 물론 예술과 디자인, 공예 작품을 아울러 주류와 비주류 미술의 차별 없이 창작의 동등함 속에서 로에베 고유의 문화적 표현 세계로 대중을 끌어들인다.
까사 로에베 서울의 반복되는 장인정신 강조, 자연 세계와의 통합 등은 모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의 창작에 관한 철학과 접근 방식, 그리고 연출에 대한 큐레이팅을 반영한 것이다. 까사 로에베 서울 오프닝 현장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을 만났다. 그는 그곳의 공간 콘셉트 ‘수집가의 집’에서 ‘수집가’는 바로 자신이라고 밝혔다.
한국 첫 단독 스토어 까사 로에베 서울 오픈을 축하합니다. 새롭게 문을 연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존 워드의 흑백 패턴 도자기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2층 입구입니다. 까사 로에베 서울 구상 단계부터 이 컬렉션을 한국에 꼭 가져오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공간을 완성했어요. 로에베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예술로 가득 채운 집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까사 로에베 서울의 공간 콘셉트는 ‘수집가의 집’입니다. 그 수집가는 어떤 사람인가요? 매장에 있는 모든 것은 제가 직접 선택한 겁니다. 제가 사랑하고, 제가 사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공예가의 작품입니다. 매우 개인적인 공간이죠. 저에게 영감을 주는 이들의 작품도 볼 수 있고, 전통 공예와 현대미술이 만나는 곳입니다. 네, 수집가는 저 자신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로에베를 통해 표현된 조나단 앤더슨’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앞서 언급한 존 워드의 세라믹 작품은 컬렉터로서 당신이 처음 수집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존 워드는 형태와 양식 면에서 매우 독특한 도예가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존 워드의 작품을 컬렉팅했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후 로에베 재단과 함께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6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컬렉션을 완성했지요. 그 절반은 이곳 까사 로에베 서울에 전시했고, 나머지 절반은 파리 매장에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까사 로에베 서울의 작품은 그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컬렉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예부터 디자인,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과 시대, 장르의 작품을 조화롭게 배치했습니다. 항상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살펴봅니다. 다양한 관점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도전을 즐기죠. 공예는 특히 제가 가장 열정을 쏟아붓는 분야 중 하나예요. 도자기와 바구니 짜기, 옻칠 등 특정한 재료를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작업 각각의 매력이 공간에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보는 건 큰 기쁨입니다. 마치 매장 벽을 장식한, 스페인에서 온 아름다운 타일처럼 말이죠. 존 워드의 도자기와 정다혜 작가의 말총 작품, 이영순 작가의 지승공예가 어떻게 현대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라파엘라 지몬의 동시대 회화 작품이 어떻게 흑백의 아름다움을 위층으로 연결시키는지 등을 말이죠.
까사 로에베 서울 공간을 통해 어떤 무드 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이질적 요소가 만나 이뤄낸 현대성입니다. 존 워드의 도자기와 라파엘라 지몬의 회화 작품에서 빛의 개념과 그림자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 또는 빛의 부재를 통해 어떻게 색을 바라볼 수 있는지 알 수 있죠.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한 정다혜 작가의 말총 바구니에서는 빛이 어떻게 투과되는지 알 수 있고, 3층에 있는 포피 존스의 작품은 빛이 사물 안에서 어떻게 대조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물리적 공간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길 원합니다. 브랜드 매장에서 단순히 제품을 보는 것을 넘어 그것을 만든 이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알고 싶어 하죠. 신뢰할 수 있는 구체적 대상을 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까사 로에베 서울이 매우 개인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생각하고, 이곳에서 사람들이 제 비전을 보고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롭게 오픈한 까사 로에베 서울에서 예술 애호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제품을 소개해주세요. 팝 문화를 탐구하는 미국 아티스트 리처드 호킨스(Richard Hawkins)와 협업한 컬렉션을 추천합니다. 그와 함께 그래픽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멋진 플리스 옷을 만들었죠. 리처드 호킨스는 셀러브리티 문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해왔습니다. 그렇게 의류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예술 작품인 결과물이 탄생했습니다. 로에베는 다양한 공예와 프린트 기법을 통해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이뤄냅니다.
2013년부터 10년 넘게 로에베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당신이 정의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의상에 집중하는 디자이너와 달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전체적 그림을 봐야 합니다. 멋진 패션쇼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매장의 문손잡이, 옷걸이, 공간이 사람들을 어떻게 맞이하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물론 양쪽 사고방식이 모두 필요하지만요. 현재 패션 산업은 매우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진정성이 중요한 단어가 되었죠. 너무 많은 물건이 생산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의미 있는 소비를 하고 싶어 합니다. 제가 패션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패션쇼만큼이나 매장 큐레이션에 신경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브랜드가 소비자와 가장 가깝게 만나는 장소에서 패션은 물론 건축과 예술, 사람들이 경험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닐면서 브랜드에 대해 탐구하고 판단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로에베의 다음 10년은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수익을 브랜드에 재투자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2026년 문을 여는 첨단 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장에서 새로운 소재와 제품 개발에 투자할 겁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예술과 공예 문화센터도 열 계획입니다. 그렇게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려 합니다. 제가 합류했을 때 로에베는 작은 브랜드였지만,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로에베의 핵심은 항상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입니다. 로에베의 제품이 아름다운 동시에 어떤 의미와 목적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할 겁니다.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로에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