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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이어진다

LIFESTYLE

20세기의 아이콘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예술가의 삶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로 애도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여야겠다. 그가 남긴 예술은 또 다른 예술을 낳는다고.

데이비드 보위의 고향인 영국 브릭스턴에 등장한 추모 벽화

그는 우리에게 별 하나를 남기고 떠났다. 69번째 생일날 내놓은 25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제목은 ‘Blackstar’다. 데이비드 보위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슬픔을 감추지 못한 팬들은 새 앨범을 내고 이틀 후 떠나버리는 게 어디 있느냐고, 안타까움 섞인 말을 토해냈다. 세상에 남은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첫 번째 방법은 그가 남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리라. 그는 가 유작이 되리란 걸 예감했을까. 다양한 장르를 혼합해 경이로운 사운드의 절정으로 안내하는 곡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이 앨범은 발매 직후 평단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았고, 바이닐은 영국에서도 물량이 부족해 런던의 가장 큰 음반 매장에서조차 한동안 품절 상태였다.
찬사가 곧바로 추모 열기로 이어진 건 당연하다. 허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건 팬들과 평단만이 아닐 것이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만큼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떠난 바로 다음 날, 그의 고향인 영국 브릭스턴의 중심가에는 거대한 벽화 작품이 등장했다. 1973년 발표한 앨범 의 커버를 재현한 것으로, 벽 아래에는 자연스레 추모의 꽃과 초, 메시지를 담은 카드 등이 놓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그린 이는 호주 작가 제임스 코크런(James Cochran). 벽화를 그린 후 한 달의 시간이 지난 2월 11일, 그는 이 작품을 한정판으로 인쇄해 공식적으로 판매하며 수익금 일부를 영국의 암 연구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라피티가 등장한 곳은 영국만이 아니다. 마이애미, 토론토, 더블린, 브뤼셀 등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거리 예술가들이 보위의 모습이나 이름을 남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래픽 디자이너도 그의 대담한 스타일을 묘사한 작품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등 ‘데이비드 보위’라는 주제가 현대미술계 전체로 빠르게 확산됐다. 한편 음악계의 추모 열기는 새로운 공연과 신곡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엘턴 존은 1월 13일 예정돼 있던 공연을 추모 공연으로 꾸몄고, 신곡 중 한 곡을 보위에게 헌정했다. 그리고 현재 보위를 위한 노래를 작곡 중이다. 또 평소 데이비드 보위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며 존경심을 드러낸 레이디 가가는 2월 15일 열린 제58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특별한 추모 무대를 선사했다. 보위의 창의성을 표현하기 위해 인텔 기술팀과 컬래버레이션해서 하이테크 기술을 더한 공연이었다.

오마주 투 마이클 잭슨 작가회의 추모 6주기 전시 작품 중 김찬주 작가의 ‘잭슨’ 전시해 놓았다.

<스탠리 큐브릭>전 ‘네버엔딩 스토리’ 섹션 중, 스탠리 큐브릭이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영화 <나폴레옹>의 사전 리서치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문화 예술계의 이런 움직임은 단순히 추모의 마음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에게 영감을 얻은 새로운 창작물을 탄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애도의 의미로 싹튼 문화 예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다양하고 풍성한 콘텐츠로 발전한다.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3월 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스탠리 큐브릭>전은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2004년 프로듀서와 세계적 영화사가 협업해 프랑크푸르트의 독일영화박물관에서 처음 개최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이렇게 기획한 대규모 전시는 그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별도의 음악 감상 공간까지 마련해 큐브릭을 색다른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했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전시한 뒤 이번에 서울에 안착한 것.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 세계를 새롭고 방대한 콘텐츠로 재생산한 이 전시는 서울을 떠난 뒤에도 다른 도시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예술가를 기리는 작품이 명작으로 남은 경우를 적잖이 볼 수 있다. 메릴린 먼로가 사망하고 2년 뒤인 1964년, 앤디 워홀은 그녀의 얼굴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작품을 발표했다.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예술로 승화시켜온 앤디 워홀에게 당대 최고 스타의 죽음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메릴린 먼로에게 헌정한 유명한 노래도 있다. 엘턴 존이 1973년 작곡한 ‘Candle in the Wind’는 메릴린 먼로를 그리며 만든 곡. 어린 시절 심약한 그에게 메릴린 먼로는 음악적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고 한다. 노래의 첫 소절 ‘Goodbye Norma Jean’에서 Norma Jean은 바로 메릴린 먼로의 본명이다. 그는 이 노래를 1997년 다이애나 비 장례식장에서도 불렀는데, 이후 음반 사상 최단기간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14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깊은 상실의 마음이 낳은 음악이 대중적 사랑을 받은 경우는 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힙합 가수로 꼽히는 퍼프 대디의 대표곡 ‘I’ll be Missing You’는 1997년 총격으로 사망한 미국의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이 곡은 퍼프 대디에게 빌보드 뮤직 어워드 수상의 영예까지 안겼다.
세상을 떠난 지 수년이 흘렀지만 대중문화계에 뚜렷한 존재감을 남긴 아티스트로 마이클 잭슨을 빼놓을 수 없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추모 작품이 나왔고, 현재도 많은 예술가가 그와 관련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중에는 한국 작가도 있다. ‘오마주 투 마이클 잭슨(Hommage to Michael Jackson) 작가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 단체는 마이클 잭슨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인간적인 면을 알리기 위해 모인 20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됐다. 지난해에 서울, 대구, 제주 등에서 6주기 추모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작품 경매와 아트 상품 판매 등을 통한 수익금을 생전에 마이클 잭슨이 힘쓴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관련 단체에 기부하며 추모 전시에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추모 10주기가 되는 2019년까지 피프티피프티 갤러리에서 매년 전시할 계획이다.
아무런 동기 없이, 혹은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고 그냥 탄생하는 창작물은 없다. 아티스트들의 예술 작품은 세상의 많은 현상에서, 그리고 타인에게서 받은 영감을 자기 방식으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의 숨결은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직접적 헌정 작품부터 영감을 얻어 창작한 작품까지 추모곡과 추모 공연, 추모 작품이 감동적인 이유는 작고한 예술가에게 받은 영감과 존경의 마음이 감상자의 마음에 와 닿은 까닭일 거다. 어쩌면 예술의 아름다운 면 중 하나가 이것일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유산은 그가 떠난 뒤에도 유유히 이어지며 새롭게 재생산된다는 것. 예술 정신은 생명력을 다하는 법이 없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