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나눈다는 것
호주의 대표적 ‘아트 페이트런’으로 떠오른 주디스 닐슨. 호주 전체에서 손꼽히는 자산가인 그녀가 현재 가장 주력하는 일은 자신의 아트 컬렉션을 대중과 함께 감상하는 것이다. 예술을 공유하는 데 앞장서는 그녀를 시드니의 화이트래빗 갤러리에서 만났다.
Liu Wei, Density 1-6, Books, steel, wood, 2013 / ⓒ White Rabbit Gallery
2009년 주디스 닐슨이 시드니에 오픈한 화이트래빗 갤러리. 닐슨 파운데이션에서 모든 운영비를 지원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후원의 방식은 다양하다.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후원하는 것부터 작가를 알리는 일까지. 그중 화이트래빗 갤러리의 설립자 주디스 닐슨(Judith Neilson)이 택한 방법은 넓고 근사한 공간을 지어 그곳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대중과 함께 감상하는 것이다. 호주의 여성 자산가 순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그녀가 특히 심취한 것은 중국 미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중국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녀는 2009년 시드니에 화이트래빗 갤러리를 설립했고, 닐슨가(家)에서 운영하는 닐슨 파운데이션에서 모든 지원을 하는 자선단체로 등록했다. 갤러리에서는 1년에 두 차례씩 특별전을 열어 그녀의 컬렉션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새로운 전시가 열릴 때마다 끊임없이 신작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에디터가 화이트래빗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는 마침 새로운 전시 오픈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전시 준비를 위해 갤러리는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준비 상황을 둘러보던 주디스 닐슨은 <아트나우>에 작품 설치 현장을 공개하기로 했다. 화이트래빗 갤러리에 들어가 만난 것은 쉬전(Xu Zhen)의 거대한 조각 작품을 세우고 개념미술가 허샹위(He Xiangyu)의 가죽 탱크 작품을 설치하는 장면. 모두 8월 7일까지 열리는 < Heavy Artillery >전에서 선보일 압도적인 스케일의 대작이다. 주디스 닐슨은 매 전시마다 자신이 선택한 작가와 작품으로 호주 미술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 자료를 모아 갤러리 3층에는 중국 현대미술 라이브러리도 마련했다.
주디스 닐슨의 예술 기부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그녀가 약 4000만 달러(약 460억 원)를 투자해 시드니에 새로운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을 짓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여러 호주 언론을 장식했다. 그녀는 ‘Phoenix’라 명명한 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완성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라며 자세한 이야기를 꺼렸지만 화이트래빗 갤러리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공간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한 개인의 예술 사랑이 도시에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고 시민에게 폭넓은 문화생활을 선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아트 페이트런으로서 행보를 시작했으며, ‘나누는 예술’을 통해 어떤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까?
화이트래빗 갤러리 작품 설치 현장에 선 주디스 닐슨. 호주 최고의 아트 페이트런이다.
Geng Xue, The Poetry of Michelangelo, Video, sound, 19분 9초, 2015 / ⓒ White Rabbit Gallery
He Xiangyu, Tank Project, Leather, 150×890×600cm, 2011-2013 / ⓒ White Rabbit Gallery
Huang Haihsin, Indoor Practice 2, Oil on canvas, 152×127cm, 2012
화이트래빗 컬렉션은 500명이 넘는 중국 작가 리스트와 그들의 작품 2000여 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 가장 큰 규모고, 이 정도면 중국 현지에서도 비교할 만한 갤러리가 드물 것 같아요. 어떻게 중국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미술엔 늘 관심이 있었지만 1999년까지는 중국 현대미술 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시드니의 한 갤러리에서 새로운 전시를 보다 우연히 뒤편 사무실을 들여다봤는데 벽에 걸린 한 세트의 금속 조각품이 눈에 띄었습니다. 너무나 신선하고 독창적이면서 지금까지 본 어떤 작품과도 달랐죠. 현재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호주 작가 왕즈위안(Wang Zhiyuan)의 작품이었어요. 그렇게 처음 만난 뒤 왕즈위안은 닐슨가의 친구가 됐습니다. 그가 중국으로 돌아간 후 그를 만나기 위해 딸과 함께 중국을 찾았어요. 그곳에서 그의 작가 친구들을 만나고 여러 갤러리를 둘러보며 수많은 중국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그때 본 작품들의 에너지와 독창성, 기술적 탁월함에 감탄했죠. 그때부터 중국 작가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009년 시드니에 문을 연 화이트래빗 갤러리는 본래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수리하던 곳이었죠. 어떻게 이 공간을 갤러리로 바꿀 생각을 했나요?
갤러리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한 후 규모가 크고 열린 공간을 갖춘 건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 컬렉션에 사이즈가 큰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곧 이 오래된 건물이 매물로 나온 걸 알게 됐어요. 1940년대까지 롤스로이스의 수리소로 사용했고, 이후엔 각 층을 다른 회사의 사무실이나 창고로 쓰고 있었죠. 바로 이 건물을 매입한 후 2년간 레노베이션을 거쳐 오픈했습니다.
자선 재단인 닐슨 파운데이션에서 화이트래빗 갤러리를 통해 방대한 컬렉션을 무료로 전시하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는지 궁금합니다.
화이트래빗 컬렉션은 제 소유고, 작품 선택도 모두 직접 합니다. 이 컬렉션의 작품을 화이트래빗 갤러리에 임대하죠. 화이트래빗 갤러리는 닐슨가에서 설립한 닐슨 파운데이션에서 비용을 지원하는 자선단체로 등록돼 있습니다. 호주 남동부의 태즈메이니아에 자리한 MONA(Museum of Old and New Art)를 제외하고는 호주의 대규모 미술기관 대다수가 정부에서 운영 자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작품 확보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화이트래빗 갤러리는 그런 제약에서 자유롭죠.
화이트래빗 갤러리가 문을 연 지 7년이 됐습니다. 설립 이후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명의 신생 갤러리로 시작해 시드니의 중요한 문화 랜드마크로 성장했어요. 2009년 말 오픈한 이후 평균 관람객이 6배나 증가했고, 전 세계에서 방문객이 찾아옵니다. 성공적인 행보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Xu Zhen, European Thousand-Armed Classical Sculpture, GFRC, marble, marble grains, metal, 472×394×1400cm, 2014 / ⓒ White Rabbit Gallery
<Heavy Artillery> 전시 작품 중, 도예 작가 류젠화(Liu Jianhua)의 ‘Fallen Leaves’. 도자기로 5000여 개의 나뭇잎을 만들었다. / ⓒ White Rabbit Gallery
Hsu Yunghsu, 2011-27, Porcelain triptych, 220×512×30cm, 2011 / ⓒ White Rabbit Gallery
Chou Chuwang, Four Bliss Stones, Oil on canvas, 41×27×2.3cm, 2014 / ⓒ White Rabbit Gallery
화이트래빗 갤러리에서 8월 7일까지 개최하는 < Heavy Artillery > 전시 설치 장면.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모습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 < Heavy Artillery >는 매우 스케일이 큰 작품을 모았습니다. 어떤 의도로 기획한 건가요?
인조대리석 1톤, 가죽 2톤, 압축한 종이 3톤, 도자기로 만든 나뭇잎 5000개, 똑같은 책 8000권 등 많은 수와 큰 규모가 중요한 전시예요. 작가들은 관람객의 시선을 끌고 시장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큰 작품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삶과 죽음, 기술과 자연, 변화와 영원 같은 장대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많은 중국 작가가 유럽과 미국의 거장들을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로 꼽아요. 이제 그들은 서양 미술에서 받은 영향을 중국의 고전 문화와 현대의 상업적 시대정신과 결합하면서 현대미술을 과감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어요.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작업하든, 자신의 인내심에 의존하든 자신의 나라만큼이나 장대하고 무시하기 어려운 작품을 만들고 있죠.
진정한 ‘아트 페이트런’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시대에 예술을 후원하는 방식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아트 컬렉터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면, 그다음 페이트런으로서의 역할은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을 대중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를 후원하고, 동시에 그들의 작품과 현대미술 전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누구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작가의 어떤 면에 매료되었는지 궁금해요.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작가 쉬전의 작품을 여러 점 보유하고 있어요. 작품이 대담하고 흥미로워요. 그는 스스로를 자신이 설립한 회사 ‘메이드인 컴퍼니(MadeIn Company)’의 산물이라고 지칭합니다.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이 회사를 설립했죠. 쉬전은 자신의 역할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고 항상 다른 사람을, 때로는 수십 명까지 고용해 작품을 만든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밝혀요. 소재와 개념이 새롭고 중국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거의 짐작할 수 없는 작품세계를 보여줍니다. 자국에서 활동하지만 아주 글로벌하게 생각하는 작가죠.
주로 어떤 작가를 후원하고 싶나요? 작가와 작품을 보는 당신만의 관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아트 페이트런이 그랬던 것처럼 작가에게 월급을 주는 식의 후원은 하지 않아요. 작가가 아니라 작품에 중점을 두죠. 중국이나 대만을 방문할 때마다 최대한 다양한 작품을 보고 마음에 남은 작품을 구매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예요. 그 작품이 뭔가 말을 건네서일 수도 있고, 특정한 분위기를 이끌어내거나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일 수도 있죠. 또 기술적으로 뛰어나거나 매우 독창적인 작품일 수도 있고,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당신의 삶에서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예술은 언제나 내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해왔어요. 나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 작품을 수집했고, 오랫동안 그래픽 아티스트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평생 예술을 가까이 두고 살아온 건 예술이 곧 나의 열정이기 때문이죠.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김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