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맛보는 3가지 시선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 자신이 된다. -히포크라테스

한정된 공간, 도구, 예절, 의상 등 식문화에 대한 편견을 깨는 허니 앤 버니의 도전적이며 실험적인 퍼포먼스

허니 앤 버니가 아르침볼도의 고전적 인물화를 현대의 일상적 푸드로 재배열해 표현한 작품
“오늘 뭐 먹지?” 음식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필수 요소일 뿐 아니라 이처럼 일상에서 스스로 혹은 타인과 흔히 주고받는 대화의 도구가 된다. 매일 현실적이며 직접적인 선택에 마주하는 ‘먹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즐거움과 만족감을 좌우하는 일상적 과제다. 대중과의 친근한 교감을 꿈꾸는 아티스트들은 일찍부터 이 식(食)의 영역을 예술의 도구와 주제로 삼아 삶의 본질을 담아냈다. 회화에서는 구도와 드로잉을 학습할 수 있는 간편한 소품이자 풍요로움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인물화를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기도 했다. 대중문화가 발달하고 팝아트가 등장하면서 화려한 색상의 음식 이미지는 쉽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코드로 인식되었다. 더불어 음식을 먹는 행위는 현대사회의 이면을 꼬집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기 시작했다.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은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앨범 커버에서 도발적인 섹시함이 묻어나는 뮤지션의 색채를 속살이 핑크빛인 바나나로 표현했다. 퍼포먼스 영상 <66 Scenes from America>에서는 묵묵히 패스트푸드를 먹는 모습을 노출하면서 규격화된 소비사회의 명암 속에 고립된 시대적 자화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음식을 다루는 예술 활동은 아직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 더욱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차별화된 독특한 시선으로 현시대의 음식과 식문화를 주제로 작업하는 3팀의 작가를 만났다. 이를 통해 오늘날 음식, 그 이면에 담긴 우리 삶의 모습을 돌아본다.
한정된 공간, 도구, 예절, 의상 등 식문화에 대한 편견을 깨는 허니 앤 버니의 도전적이며 실험적인 퍼포먼스

허니 앤 버니의 지속 가능한 푸드 디자인 프로젝트. 살아 있는 생선 안에 생선을 가공해 만든 식품을 넣어 식품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래의 식탁을 위한 자세를 고찰해보라고 말한다.
식문화의 금기를 깨다
허니 앤 버니(Honey & Bunny)
오스트리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 아티스트 그룹은 40대 초반의 무대 디자이너 소니아 슈투머러(Sonia Stummerer)와 건축가 마르틴 하블레스라이터(Martin Hablesreiter) 2명의 남녀로 구성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오랫동안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아 고풍스러운 귀족 문화가 식습관에 굳게 뿌리박혀 있다. 상황에 따른 드레스 코드부터 음식을 먹는 순서와 방법까지 까다로운 식사 예절을 따른다. 이들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익히고 경험한 식문화의 사회적 터부와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식탁 위에서 행하는 일련의 움직임, 이른바 냅킨을 접고 수저 또는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것 등은 모두 문화적 산물이고 이를 통해 문화적 아이덴티티와 사회적 지위가 드러난다. 한 문화권에서 식문화에 관한 예절은 엄격하게 학습되며 소위 가정교육과 소양의 척도, 가풍과도 닿아 있는지라 다음 세대에게 어김없이 강요하고 대물림해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허니 앤 버니는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왜 우리는 사회적으로 지정된 방식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가?” “레스토랑은 왜 일정한 틀이 필요하며, 우리는 왜 그곳에서 격식을 갖춘 의상을 입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음식을 맛봐야 하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그들의 고찰은 상식을 벗어난 식사 행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표현된다. 눈 내리는 야외 주차장과 엘리베이터 안에 밥상을 차리는가 하면, 식탁보를 냅킨처럼 목에 두르거나 수영복을 걸친 채 식사하기도 한다. 물총으로 서로의 목구멍에 음료를 쏘아대고, 전기톱을 이용해 피자를 자를 때도 있다. 한 편의 연극처럼 극적이고, 도구와 공간에서 독특함을 느낄 수 있는 퍼포먼스다. 이들은 퍼포먼스와 실험, 설치 작업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 다양한 전시, 출판, 교육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 동시대인이 공유하는 사회적 약속에 갇힌 규격화된 삶을 벗어나 도발적 실험으로 사회의 통념에 도전한다. 사고방식의 변화를 통해 식문화가 한 차원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사형수가 마지막에 먹은 음식을 접시에 그린 작품
마지막 음식 속에 남은 당신의 모습
줄리 그린(Julie Green)
사형 제도가 남아 있는 미국에는 사형 집행 바로 전날 사형수가 원하는 마지막 음식을 준비해주는 관행이 있다. 오리건 주립 대학의 회화 전공 교수 줄리 그린은 수년간 전국의 사형 집행소를 돌며 50여 명의 사형수가 사형 집행 전에 먹은 음식을 하얀 도자기 접시 위에 단색의 물감으로 그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각각의 접시에는 지역명과 사형 집행 날짜가 작품 이름처럼 적혀 있다. 일본 요코스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그녀는 평생 풍족하고 행복한 식문화 환경을 유지해왔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푸드인(food person)이라 부르며 자신에게 음식은 인생을 ‘축하’하는 의미였다고 덧붙였다. 그런 그녀가 사형수의 마지막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이 경험한 음식의 가치와 극적 대비를 이루는 그들의 현실 때문이다. 또 오랜 수감 생활 동안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던 사형수가 죽기 직전에 행할 수 있는 생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점도 관심을 끌었다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선택한 음식에는 사형수의 기질과 성격, 그만의 특별한 사연이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소박하게 사과 한 알, 혹은 일상적으로 먹고 자란 익숙한 정크푸드를 원하는 이도 있으며, 누구는 어머니의 요리를 찾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마지막 식사인 만큼 평생 먹어본 적 없는 고가의 프랑스 요리를 주문하기도 한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마지막 식사 주문을 포기하는 사람, 평생 가족에게 받아본 적 없는 생일 케이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고. 흉악한 범죄자로 분류되었지만 내면에 자리한 연약한 인간의 본성과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그녀의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녀는 이 작품을 모아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비인간적인 사형 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사형수의 마지막 음식을 통해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묻는다. “당신의 마지막 선택은 어떤 음식인가요?”
줄리 그린

레베카 마이어스(왼쪽)와 티모시 버그
달콤함 속에 숨은 소비사회의 씁쓸한 이면
마이어스버그 스튜디오(MyersBerg Studio)
마이어스버그 스튜디오는 그래픽 디자이너 레베카와 도자 예술을 전공한 티모시가 함께하는 작가 그룹이다. 현대사회에서 거대 자본으로 세계 소비시장을 주도해온 미국 출신으로 그들은 작품을 통해 미국의 화려함 뒤에 숨은 어두운 이면을 환기시키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런 메시지와 달리 역설적으로 달콤한 맛과 강렬한 (인공의) 과일 향이 연상되는 컬러를 띤 음식 형상의 작품은 팝아트 같은 생기발랄한 오라를 발산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누군가가 먹다 만 듯한 비스킷과 아이스크림이 녹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이 색다르면서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좀처럼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또한 이들이 의도한 현대 소비사회의 함정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화려한 사회적 이미지에 압도되어 정작 중요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소재로 삼은 건 규격화된 익숙한 형태의 과자와 아이스크림이다. 입안에 넣으면 순식간에 바스러지는(혹은 녹아내리는) 이 음식처럼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삶의 가치도 빠르게 또 덧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서 사라져가는 것이란 고도의 산업화로 환경오염의 피해를 입은 아름다운 자연과 삼림, 지구온난화에 힘겹게 버티고 있는 빙하일 수도 있고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적 삶과 인류애일 수도 있다. 현실 속에 드리워진 문명의 명암을 다루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라지고 녹는 과정을 보여줄 뿐,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다.


마이어스버그 스튜디오의 작품.
왼쪽부터 ‘지평선 위의 구름(A cloud on the horizon)’, ‘오늘은 여기있지만 내일은 없을 거야(Here today, gone tomorrow)’,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다(You can’t take it with you)’

마이어스버그 스튜디오의 작품. ‘부러워 약 올라(Eat your heart out!!)’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글 여미영(D3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