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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흔들다

LIFESTYLE

기괴한 괴물 형태의 조형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사이보그’ 시리즈와 ‘몬스터’ 시리즈에서 몸의 왜형(deform)을 과장된 형태로 이미지화하는 이불의 성격은 왠지 서슴없고 단호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두서없음’과 ‘서성거림’. 이것은 관람객을 짓누를 듯 강렬하고, 그래서 처절하기까지 한 대형 크리스털 조각 작품을 앞에 둔 그녀가 고백하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6개월 전, 롯폰기 한복판에 위치한 모리 미술관을 찾은 건 저녁때였다. 다른 일정을 소화하느라 늦은 시간 부랴부랴 표를 끊고 올라간 53층 모리 미술관에서는 이불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 작가를 제외하고 아시아 작가로는 아이웨이웨이 다음으로 모리 미술관에 입성한 그녀의 전시는 그야말로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미술관 창밖으로 빛나는 도쿄의 야경을 완벽히 KO패 시키리라 마음먹은 듯, 참으로 입이 딱 벌어지게 꼼꼼하고도 치밀하게 전시를 준비했다. 4개 섹션은 각 구성이 너무도 뚜렷했고, 작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녀가 겪는 고뇌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그동안의 메모와 스케치 그리고 전시장으로 옮겨온 작업실 구성까지, 관람객은 그녀의 세계를 완벽히 공유했다. 그녀는 크리스털 파편으로 만든 조각 ‘비밀 공유자’(개가 등을 움츠린 채 토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를 도쿄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전시실에 설치해 도시의 풍경까지 작품 속으로 끌어안는 치밀함을 보이며 그 어떤 말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불의 전시는 매번 이런 식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칭찬에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다가도 전시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길어진다. 이불이 비로소 국제 무대에서 이슈로 떠오르게 한 전시는 단연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개인전이다. 당시 그녀는 금속 조각과 스팽글, 비즈로 장식한 생선과 백합을 설치한 ‘화엄(Majestic Splendor)’을 선보였다. 시각적 끌림이 후각적 거부감과 어떻게 결합되는지 보여준 작품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생선은 부패해갔고, 악취가 전시장을 뒤덮었다. 마침내 MoMA 측에서 작품을 강제로 철거시켰다. 이 사건은 일대 파장을 일으켰고,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말 많은 현대미술계의 이슈 중심에 섰다. 그녀는 다양한 재료로 페미니즘과 대중문화, 테크놀로지와 미래 사회 등 현대미술이 직면한 아이러니한 문제를 억척스레 다루며 1998년 휴고 보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됐고,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MAC 마르세유 현대미술관에서, 2004년에는 시드니 현대미술관에서, 그리고 2007년에는 살라만카 도무스 아티움과 파리 까르띠에 재단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연 이래 지금은 한 해에 전 세계에서 6~7개의 전시 요청을 받는 한국 작가가 됐다.
썩은 생선만큼 그녀를 잘 설명하는 건 없지만, 사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그녀가 1980년대 말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다양한 퍼포먼스와 오브제 작업을 통해서다. 괴물 형태로 만든 과장된 조형물을 입고 거리에서 펼친 기이한 퍼포먼스는 그녀의 내면에 잠재한 에너지가 최고로 집약된 ‘어떤’ 형태를 보여준다.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만큼, 순간적으로 강렬한 에너지가 바닥난 것”도 이유지만 사실 한참 전에 그녀의 작업이 비주얼, 즉 시각화 작업으로 옮겨온 탓이 크다. 1990년대에 시작해 쭉 이어온 ‘사이보그’ 시리즈와 ‘애너그램’ 시리즈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낯익은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몬스터’ 시리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자신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사진을 높이 12m, 지름 3~4m의 대형 풍선에 프린트한 작품, 기르던 개가 작업실 마당에 앉아 먹은 것을 토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비밀 공유자’, 거울을 다각도로 세워 공간을 반사하고 중간에 위치한 양면의 거울이 다시 무한의 이미지를 순환시키는 설치 작품 ‘비아 네가티바’나 ‘인피니티’ 시리즈도 극도로 과장된 시각화가 두드러진다. 보는 이로 하여금 때론 낭만적이거나 때론 불편하거나, 때론 의문을 품게 하는 이불은 지금 새로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9월 30일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에서 첫선을 보일 대형 설치 작품은 아직 비밀리에 작업 중이지만, 분명 관람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이불이 제안하는 비관습적 메시지에 또 한 번 깊이 빠져들 것이다.

성북동 작업실에 걸린 대형설치작품

1990년 당시 괴물 형태로 만든 기괴한 조형물을 입고 펼친 퍼포먼스
Sorry for suffering You think I’m a puppy on a picnic?, 1990, 12-day performance, Kimpo Airport, Narita Airport, downtown Tokyo, Dokiwaza Theater, Tokyo Courtesy: Studio Lee Bul

2012년 아트선재센터 전시 모습
Diluvium, 2012, Plywood on steel frame, dimensions variable, View of “The Studio” section, Lee Bul exhibition, Artsonje Center, Seoul, 2012
Photo: Jeon Byung-cheol. Courtesy: the Artist and Bartle by Bickle & Meursault

9월 초에 버밍엄에 있는 아이콘 갤러리 전시 때문에 출국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름은 갤러리인데 사실은 미술관이에요. 버밍엄 시립 미술관이죠. 모리 미술관에서 소개한 작품 일부와 지난해 아트선재센터에 설치한 작품 일부를 더해 유럽 투어를 하는 중이에요. 지난해에 룩셈부르크 미술관에서 8개월간 전시를 마치고 재구성해서 아이콘 갤러리로 가는 거죠.

유럽에서는 반응이 어떤가요? 작품을 상당 기간 모아서 보여주는 전시라 한두 작품에 대해 ‘좋다, 안 좋다’를 말하기보다 ‘이 작가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보는 것 같아요. 스튜디오에서 제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한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어 비교적 반응이 좋아요. 그리고 대규모 전시다 보니 전시 장소에 따라 맥락을 바꾸거든요. 제 전시를 따라다니며 그것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는 관람객도 있더라고요.

1997년 뉴욕 MoMA,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2000년 상하이 비엔날레, 2001년 이스탄불 비엔날레 참가 등은 선생님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경력입니다. 이것 말고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전시가 있나요? 각 미술관마다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언어에 따라 전시 분위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미술관 쇼는 대부분 제게 흥미로워요. 각기 다른 건축가가 만든 공간에서 그 공간이 지닌 언어를 읽어 내려가는 걸 즐기는 편이죠.ㅍ
장소의 특성은 작가에게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우리가 매번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스토리를 풀어놓는 것처럼 작품도 그럴 테니까요. 예를 들어 2012년 모리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할 때 정말이지 여러 작품을 보여줬는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셨나요? 장소가 도쿄라는 점, 미술관이 53층이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일본에 큰 재앙이 일어난 직후였다는 점, 그 세 가지 특징을 다 담으려고 했어요. 또 미술관 내부가 거대한 꽃잎 모양이라 한 방에서 다음 방으로 갈 때 한 번씩 분위기를 걸러줘야 하는 구조였어요.

그 부분을 활용해 시기별로 나누신 거군요? 시기와 주제별로 나누고 묶은 다음,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중간 방에 불씨 역할을 할 작품을 배치하는 식으로 동선을 짰어요.

많은 사람이 마지막 방에 설치돼 있던 작품 ‘비밀 공유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관람객의 뇌리에 아주 강렬하게 남은 작품이죠. 그 방은 한쪽 창이 통유리라 도쿄 시내를 발밑으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강아지도 관람객이 들어오는 쪽을 보지 않고 관람객을 등진 채 창밖 도쿄의 야경을 바라보게 설치했어요. 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통해 다시 미술관으로 반사되는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까지 계산했죠. 그래서인지 그 작품을 낮에 보고 간 관람객이 밤에 와서 다시 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1997년 MoMA에서 생선을 비즈와 구슬로 장식한 ‘화엄’이라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반미학적인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이라는 개념을 흔들어놓았습니다. 1960년대에 야니스 쿠넬리스가 전시장에 말을 풀어놓은 작품, 카텔란이 말의 머리를 박제한 작품, 데이미언 허스트가 소를 반으로 갈라 포름알데히드에 넣은 작품 등 예술과 미학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화엄’은 어떤 의도로 제작한 것인가요? MoMA에서 초대한 그 작품은 제가 이미 몇 년 전에 발표한 거였어요. 저는 당시 퍼포먼스와 조각을 결합한, 뭐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작업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었어요. ‘화엄’ 외에도 대형 풍선 작품이나 여러 퍼포먼스가 그렇죠.

조각을 전공했음에도 초기에는 퍼포먼스를 활발히 선보였어요.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을 가시화하기 위해 나체로 거꾸로 매달리는 등 과격하리만치 대담한 퍼포먼스가 주를 이뤘죠. 퍼포먼스로 시작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조각이니 회화니 하는 장르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예술을 마음껏 다루려면 여러 가지를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미대에 다닐 때도 ‘꼭 미술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미술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표현 방식은 없을까?’ 같은 질문을 했죠. 기존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지루하거든요.

1990년 중반에 처음 선보인 ‘사이보그’ 작품을 계기로 행위예술에서 설치미술로 자연스럽게 옮겨온 것 같아요. 혹시 저희가 다시 선생님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그건 제가 여력이 되지 않아서…. 퍼포먼스는 물리적으로 그 순간 강렬한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제가 지금 그만한 에너지를 모으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써서 하는 건 싫고. 그리고 이제 제 관심이 상당히 비주얼 쪽으로 넘어온 것 같아요.

‘사이보그’ 시리즈에 대한 해석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을 표현한 것으로 모아지곤 하죠. 1970년대 작가들이 그랬듯 선생님도 외적인 영향에 의해 작품의 주제를 정하는 편인가요? 그렇다기보다 제 작품은 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과정입니다. 제가 다루는 주제들은 대부분 제가 가진 조건에서 나오죠. 물론 초기 퍼포먼스 작업에서 그 점이 더 강하게 드러나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제 작업은 저에게서 시작합니다.

역시나 1990년대의 작품을 이야기할 땐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동시에 미래 인간을 말하는 포스트휴먼 등의 단어도 언급하게 되죠. 선생님도 그런 단어를 머릿속에 넣고 작업하시나요? 그런 단어를 생각하진 않아요.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내고 만든 하나의 이름일 뿐이죠. 아마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제 작품을 읽고 말할 거예요. 지금도 사실 제가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는 평론가가 많아요.

2013년 로팍 갤러리 전시장 모습
Civitas Solis, 2013, Polycarbonate sheet, acrylic mirror, LED lighting, electronic wiring, stainless-steel, aluminum and steel base, 64 x 400 x 800 cm, with two walls 300 cm x 200 cm each as installed
Photo: Charles Duprat. Courtesy: Galerie Thaddaeus Ropac, Paris/Salzburg

뉴욕 리먼 머핀 갤러리에서의 전시
After Bruno Taut (Negative Capability), 2008, Crystal, glass and acrylic beads on stainless-steel armature, aluminum and copper mesh, PVC, steel and aluminum chains, 274.3 x 294.6 x 213.4 cm, Bunker (M. Bakhtin), 2007/2012, Cast fiberglass on stainless steel frame, plywood, fabric-covered foam urethane, acrylic mirror, electronics, interactive sound work, 300 x 400 x 280 cm
Courtesy: Lehmann Maupin Gallery, New York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뮤담에서의 전시
Souterrain, 2012, Plywood on wooden frame, acrylic mirror, alkyd paint, 274 x 360 x 480 cm, View of the exhibition LEE BUL, Mudam Luxembourg, 2013-2014
Photo: Eric Chenal

작가의 의도와 다른 잘못된 해석일 수 있는데, 그런 비평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잘못된 평가라는 건 없어요. 왜냐하면 비평은 평가가 아니니까요. 비평은 ‘어떤 시선’이에요. 비평가의 시선과 내 시선이 다르면 ‘아, 저 사람은 나랑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끔 제가 생각하지 못한 흥미로운 시선을 만나면 아주 반가워요. 혹평일지라도요.

‘사이보그’나 ‘몬스터’ 시리즈를 보면 아주 강하고 센 느낌을 받다가도 투명한 비즈나 구슬 등이 가득 박힌 크리스털 작품을 보면 반대의 생각이 듭니다. 유리나 거울, 사이보그 토르소 등을 제작한 자기와 같이 깨지기 쉬운 물성의 재료를 사용한 것에서도 그렇고요. 상반되는 재료를 따로 또 같이 다양하게 시도하는 이유가 있나요? 우선 제가 쓰는 재료가 한 가지 기준으로만 나뉘는 것은 아니에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표면이 단단한 것과 반사하는 것, 텐션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 컬러가 있는 것과 투명한 것 등 알고 보면 제가 사용하는 재료는 서로 모두 부딪쳐요. 저는 그렇게 상이한 재료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좋아해요. 그림도 그렇고 재료도 그렇고. 예를 들어 공간 배치를 할 때도 조화보다 대비에서 오는 긴장감을 흥미롭게 생각하는 편이죠.

작업 영상이나 방송 인터뷰, 그리고 저와 마주 앉은 지금도 선생님의 표정은 그야말로 무표정입니다. 몇몇 사람은 선생님의 작품이 그로테스크하다고 하지만 제 생각엔 작품도 작가를 따라가기 마련이라 선생님의 작품 또한 늘 무표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본인의 작품이 어떤 표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작업을 하면서 가장 경계하는 건 ‘내가 혹시 작업 중에 센티멘털해지는가’예요. 그렇게 되는 걸 아주 싫어해요. 작품 속 내러티브를 다룰 때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관람객 입장에선 제 작품을 보고 건조한 느낌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더구나 재료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낄 수 있죠.

작품이 감정적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나요? 특별히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작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해요. 제게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저는 작업을 합니다. 작품은 제가 다른 사람과 만나고 접촉하는 하나의 매개죠. 그런데 느닷없이 제가 상대에게 제 감정을 다 드러낸다고 생각해보세요. 생각만 해도 정말 불편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제 조각은 길게는 6개월이 걸릴 정도로 대부분 오랜 시간 작업하기 때문에 그동안 내내 같은 감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9월 3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현대차 시리즈의 첫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 프로젝트의 초대 작가로 뽑혔는데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올해 처음 시작하는 프로젝트인데, 일정 기간 현대자동차에서 지원을 받아 작업한 후 그 결과물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거예요. 상당히 규모가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한국 작가들이 좀 더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죠. 미술관의 좋은 역할 중 하나고, 기업이 할 수 있는 문화 예술 후원의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을 작업 중인가요? 전시 공간이 세 공간으로 나뉘는데 각 공간에 들어갈 작품을 모두 새롭게 만들고 있어요. 세 작품이지만 결국 한 작품처럼 보이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어요.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여기 성북동 작업실은 좁아서 장흥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데, 이번 작품 사이즈가 솔직히 많이 커요. 유닛을 따로따로 제작한 다음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서 재조립해야 해요.

이번 작품의 출발점은 어디인가요? 제가 늘 해온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최근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어요. 제가 지금 그 시점에 있으니까요. 아, 또 이번 작품도 어둡다고 하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제 작품이 그리 어둡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상상을 시각화하는 방식 자체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죠.

이번 작품의 재료는 뭔가요? 구조 때문에 철도 들어가고, 수증기와 거울도 들어가죠. 이런저런 것으로 방을 가득 채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거예요. 한 공간을 통과해 다른 공간으로 쭉 이어지면서 전체가 하나로 구성됩니다.

 

지난해에는 디올 향수 ‘미스 디올’과 15명의 작가가 컬래버레이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미러’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사실 커미션 작업이었는데, 그것 말고 선생님 작품이 만약 브랜드의 가방이나 신발 등에 사용되어 대량생산된다면 어떨까요? 예술의 대량생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건 절대 안 돼요’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조건에 따라 다른 것 같거든요. 컬래버레이션이라고 해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기업의 의도와 성격,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지, 그런 것에 대한 여러 가지 고려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조각가의 작품이 야외에 설치되는데, ‘벙커-바흐친’을 제외하고는 야외 설치 작업이 적은 것 같아요. 재료의 특성 때문이겠죠? 제 작품이 어떤 점에선 견고하지만, 어떤 점에선 파손되기 쉬운 재료가 있어요. 야외 전시 작품의 경우 아예 그걸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작업해요. 제 작품 중에도 외부에 설치해도 괜찮은 것이 있는데, 그걸 구입한 미술관이나 컬렉터들이 모두 안에 설치하시더라고요.

하루가 다르게 현대미술의 범주가 확장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이 생각하는 현대미술이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갖춰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현대미술을 정의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제가 하는 작업, 제가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해나가며 그것에 대한 답을 구하는 편입니다.

그럼 질문을 바꿔서 ‘예술가라면 이런 점은 갖춰야 한다’는 건 없을까요? 그게 참 어려워요. 예술가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예술을 규정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일 같아요. 제 자신에게도 ‘내가 예술가인가 아닌가’보다는 다른 질문을 많이 하며 살아요. 한 인간으로서 품을 수 있는 의문을 던지는 편이죠. 다른 50대와 비슷한 고민과 질문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한번은 심포지엄에서 어떤 관람객이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 끝까지 대답을 못했어요. 너무 근본적이잖아요. 지금 제 옆에 딱 붙어 있는 질문, 그리고 사는 동안 절대 떨어지지 않을 질문이라 답할 수가 없더라고요.

누가 뭐래도 한국의 대표 작가인 건 분명한 사실인데 그에 따른 사명도 있나요? 그런 사명감은 없어요. 오히려 인간으로서 느끼는 사명이 있죠. 거기엔 늘 끝없는 질문이 따라와요. 바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죠.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