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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과업

ARTNOW

지난 5월 11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에는 예술이 행해야 할 모든 역할이 담겨 있다.

브라질관 < Swinguerra >전에서 관람객들이 동명의 영상 작품 ‘Swinguerra’를 감상하고 있다.

미술이 짊어진 역할은 여럿이다. 미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고, 이 시대를 냉철히 바라봐야 하며, 관람객에게 다층적 감정도 전달해야 한다. 물론 언제나 ‘새로운(new)’ 방식으로. 비엔날레 홍수 속에서 베니스 비엔날레가 굳건히 왕좌를 지키는 건 단순히 긴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유는 매회 미술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참여 국가에 있다. 올해는 총 90개국이 참여했다. 어떤 국가관은 시각 언어에 집중했고, 부조리한 사회를 노골적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 자국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유구한 역사를 예술로 풀어낸 곳도 여럿. 그렇기에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은 최신이나 최첨단이라는 단어로 담을 수 없는 새로운 예술만 존재한다.

시대를 논하다
브라질관의 ‘Swinguerra’는 한 댄스팀이 완벽한 군무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다. 뚜렷한 목적은 없지만, 브라질 젊은이들은 한데 모여 온 힘을 다해 투쟁하듯 춤을 춘다. 그중 진한 화장에 탱크톱을 입고 몸매를 한껏 과시하며 춤을 추는 댄서가 있다. 사회 통념상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모든 요소를 갖췄기에 여자 댄서라 생각했건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면 트랜스젠더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또 모든 댄서는 유색인종으로 몸 형태도 제각각이다. ‘정상’ 인간의 조건인 백인, 이성애자, 중산층은 여기에 없다.
브라질 동북부에서 일어난 댄스 운동 ‘스윙게이라(swingueira)’와 전쟁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게하(guerra)’를 합친 타이틀을 내건 작품은 몸짓으로 무언의 투쟁을 벌이는 브라질의 젊은 세대를 조명한다. 소수자가 양지로 나오도록 예술이 도와야 함을 참여 작가 바르바라 와그네르(Barbara Wagner)와 벤자밍 드 부르카(Benjamin de Burca)는 작품으로 말한다. 두 작가의 전략은 제대로 통했다. 춤추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나아가 성 소수자를 비정상 범주에 넣고 구분하는 행위가 옳은지를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코소보관의 < Family Album >전 전경.

남유럽에 위치한 코소보. 애석하게도 이 작은 나라는 1만 명의 사망자와 90만 명의 난민이란 결과를 낳은 ‘코소보 전쟁’으로 유명하다. 코소보관 작가 알반 무자(Alban Muja)는 수많은 난민 중 유명 언론사의 보도사진 촬영 대상이 된 어린이를 추적했고, 20년 뒤인 그들의 지금을 카메라에 담았다. 3명의 인물은 어릴 적 겪은 내전과 사진 찍힘 ‘당한’ 일을 고해성사하듯 읊는다. 텍스트가 끝없이 나열되는 이 직설적인 영상은 다큐멘터리 같지만, 작가는 그 옆에 사진 작품을 배치해 이것이 예술임을 각인시킨다. 예술과 다큐멘터리 사이를 오가며 한 국가의 현실과 난민이 동시대에 존재함을 인지하라고 경고하는 코소보관. 세 편의 영상과 사진을 전시한 게 전부지만, 공간에는 묵직한 분위기가 감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한 가나관의 < Ghana Freedom >전.

아프리카 전통 가옥이 연상되는 가나관에는 엘 아나추이(El Anatsui), 존 아콤프라(John Akomfrah), 리넷 이아돔 보아케(Lynette Yiadom-Boakye) 등의 작품이 즐비했다. 그 벽을 따라 걷다 보면 황금빛 방에 당도하고, 전시는 화려한 막을 내린다. ‘베니스 비엔날레 첫 참여’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베테랑이었다. 왜 이제야 가나의 미술을 알았을까, 자조적 한탄을 하게 만들 만큼. 앞서 말했듯, 비엔날레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나라가 있는데, 가나가 바로 그렇다.
전의 큰 맥락은 역사와 디아스포라다.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가 따로 있듯이, 아프리카를 논하는 데 이주와 이민은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나관은 “디아스포라는 우리의 역사 중 하나다”라며 가나의 피가 흐르지만 국적은 다른 나라인 리넷 이아돔 보아케를 참여 작가에 포함시켰다. 아트 신에서 여전히 각광받는 디아스포라를 거장의 작품으로 풀어낸 가나는 예술을 통해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관광객을 늘리겠다는 전략을 꾀했다. 여러 나라가 예술 외교에 등을 돌리는 와중에 가나는 정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지금 가나관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핫한 국가관으로 꼽히니, 이들의 베팅은 성공했다 할 수 있겠다.

로르 프루보스트의 ‘Deep See Blue Surrounding You’(2019).

두 나라의 시각 언어
유럽의 라이벌 국가로 불리는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영향을 미쳤다. 각각 로르 프루보스트(Laure Prouvost)의 < Deep See Blue Surrounding You >전과 캐시 윌크스(Cathy Wilkes)의 < Cathy Wilkes >전을 꾸렸는데, 두 작가 모두 ‘예술’과 ‘시각’에 집중하는 행보를 보였다.
프랑스관에 들어가려면 정돈되지 않은 수풀을 헤치고 건물 뒤에 있는 비밀의 문을 찾아야 한다. 불친절하게도 입구에는 ‘EXIT’라는 표시 외에 그 어느 것도 없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지하 창고가 나오고, 유일하게 한 줄기 빛이 비추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눈이 아릴 정도로 환한 공간에 당도한다. 물처럼 투명한 바닥에는 문어, 구식 휴대폰, 생선, 마네킹 손 등 궁합이 맞지 않는 오브제들이 흩어져 있고 방 한쪽에서는 로드 무비 같은 영상이 흘러나온다. 작가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 알고자 했다.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전시실을 물이 차오른 공간으로 꾸미고, 그곳에 우리의 근원이 될 만한 다양한 오브제를 흩뿌려놓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프루보스트가 입구를 숨긴 건 예술가의 까칠함이 아닌 관람객의 탐험을 유도하는 장치였다는 걸.

작가의 이름인 캐시 윌크스를 전시명으로 내세운 영국관.

프랑스관이 정돈되지 않은 멋을 냈다면, 영국관은 깔끔함을 내세웠다. 미노타우로스의 미로처럼 화이트 큐브가 연달아 등장하는데, 각 공간에는 그녀의 작품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어느 정도냐면, ‘부제-캐시 윌크스 개인전 모음집’라 해도 무방할 만큼 전시장에는 작가와 관람객 둘만 존재한다. 실제 이 전시의 기획 의도는 오롯이 작가의 족적을 좇는 데 있다. 그녀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이기에 국가는 한발 뒤로 물러서고, 작가와 작업만을 앞세웠다. 물론 두 국가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이 더 많다. 그렇지만 예술 본연을 탐구하고자 작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건 의심할 여지 없는 공통점이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