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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광고를 구할 수 있을까?

ARTNOW

단순한 마케팅 도구를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몇몇 아트 광고를 살폈다.

호퍼의 작품을 영화화한 <셜리에 관한 모든 것>

TV를 향해 몸이 순간적으로 ‘쓱’ 다가갔다. 요즘 광고를 보고는 웬만해선 나오지 않는 신체 반응이었다. 실사인 것 같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인 것 같기도 했다. 맞아, 저런 그림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단번에 눈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쓱’으로 더 잘 알려진 SSG닷컴(신세계 통합 쇼핑몰) 광고였다. 보는 순간 알아챈 이도 있겠지만 독특하고 아름다운 SSG닷컴 광고의 ‘그림’은 미국의 대표적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재현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호퍼의 작품 13점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Shirley-Visions of Reality)>(2013년)에서 그 기법을 빌려왔다. SSG닷컴 광고는 영화 못지않은 완성도로 호퍼 특유의 색감과 간결한 느낌,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2015년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준 백종열 감독의 작품이다.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영상 덕에 ‘쓱’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운 느낌은 희석될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회화를 접목한 기법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반향을 불러오진 못했을 뿐 아니라, 신세계(SSG)가 추구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예술이 광고의 클래스를 높인 셈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펜디의 2010년 F/W 시즌 광고

에드가르 드가의 ‘무대 위의 발레 연습’에서 영감을 받은 LG의 기업 PR 광고

에드워드 호퍼에게 영감을 받은 또 다른 광고를 살펴보자. 칼 라거펠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작업한 펜디의 2010년 F/W 시즌 광고 캠페인이다. 같은 작가의 그림에서 출발했지만 각 브랜드와 크리에이터에 따른 해석의 차이가 흥미롭다. SSG닷컴과 펜디 광고를 보고 그 자리에서 똑같이 호퍼의 그림을 떠올릴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모르고 본다 해도 브랜드로서 손해 볼 일은 없다. 두 광고가 주는 시각적·예술적 즐거움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광고 제작자는 이 부분까지 계산에 넣은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도 세계적 명화나 조각 등을 광고에 사용할 때 우린 대체로 쉽게 해당 작품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게 바로 예술 작품을 광고 소재로 쓰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인종, 문화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통하는 시각언어로서의 예술은 즉각 이해되고 각인되어야 하는 광고에 아이디어의 보물 창고와 같다. 한편, 수년이 흘렀지만 LG의 기업 PR 캠페인 ‘명화 시리즈’(2008년)를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눈에 알 만한 유명 화가의 고전 작품 속에 휴대폰과 노트북, 냉장고, 세탁기 등 LG 제품을 감쪽같이 배치한 이 광고는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광고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르노삼성자동차에서도 ‘아트 컬렉션’이라는 테마로 유사한 아트 마케팅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지베르니 수련’ 연작을 그대로 사용했다.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모네의 놀라운 디테일에 자동차의 완성도를 비유해 자연스러운 이해를 도왔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모티브로 한 레고 광고

팝아티스트 로이 릭턴스타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페리에 탄산수 광고

물론 앞서 열거한 정공법 말고, 예술 작품과의 협업을 좀 더 재치 있게 표현하는 방법도 있다. 바로 레고의 인쇄 광고다. 너무나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반 고흐의 ‘자화상’,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르네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까지. 실제 작품이 아닌 컬러 블록의 조합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쉽게 원본을 떠올릴 수 있다. 뒤이어 한쪽 구석의 레고 로고를 발견하는 순간, 기분 좋은 웃음을 짓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렇게 카피 한 줄 없이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광고는 예술에 빚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고전 작품만 광고의 초대를 받는 건 아니다. 20세기 팝아트 혹은 팝아트적 표현 기법으로 제작한 광고가 최근엔 더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앤디 워홀의 작품은 국가와 브랜드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아트 마케팅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앱솔루트도 1985년 아티스트 시리즈의 시작을 앤디 워홀과 함께했다. 그 후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 협업한 ‘Absolute Paik’도 눈길을 끈다. 그런가 하면 레트로 트렌드에 힘입어 릭턴스타인의 스타일도 여기저기서 보인다. 주로 개성 있는 젊은 타깃에게 어필하고 싶은 제품이나 브랜드가 팝아트 광고를 시도한다. 예술을 광고에 접목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 기법일수록 광고의 아트 디렉션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원작의 유명세는 그 자체로 양날의 검이다. 친숙한 예술 작품을 활용한 광고가 그만큼 완성도가 높을 때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호감도는 올라간다. 반대로 원작을 지나치게 훼손하거나 패러디를 구실로 품질이 조악해진 경우 호감도는 더 큰 폭으로 떨어진다. 친밀함이 지닌 그림자다. 두 광고를 비교해보면 느낌이 확실히 온다. ‘모나리자’만큼 자주 쓰이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 영감을 받은 디올의 인쇄 광고는 원작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초현실적 모던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디올 제품은 자연스럽게 하이엔드 브랜드의 지위를 획득한다. 또 하나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지난해에 방영한 국내의 한 배달 앱 TV 광고에 등장했다. 풀밭에서 치킨을 시켜 먹는 코믹한 설정엔 문제가 없지만, 만들어낸 이미지의 완성도는 아쉽다 . 광고는 동시대를 실시간 무보정으로 비추는 거울이다. 어쩌면 사회 전반에서 여러모로 일어나는 퇴행을 가장 먼저 포착하는 것이 광고일 것이다. 이 문장을 기억하며 지금 당장 TV를 켜고 광고를 보자. 유튜브에서 동영상이 열리기 전 잠시 뜨는 바이럴 광고를 봐도 좋다. 10년 전보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를 비추는 광고는 더 나아졌는가? 최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요구하는 시대, ‘가성비’가 최고의 미덕이 된 이 시대의 광고들이 솔직히 탐탁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눈에 띄는 기술로 만든, 예술을 품은 광고를 만날 수 있는 건 반가움 그 이상의 의미다. 세상엔 광고가 미처 담지 못한 예술 작품이 여전히 많다. 지금 동시대 광고엔 더 많은 예술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과 예술이 더 멀어지기 전에 말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김진아(광고 플래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