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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삶이 될 때, 마이어리거 갤러리 설립자 요흔 마이어

LIFESTYLE

마이어 리거 갤러리 공동 설립자 요흔 마이어의 베를린 집에는 지난 30여 년간 수집해온 아트 피스가 가득하다. 안목과 취향을 담아 하나둘 수집한 작품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되어 그의 삶에 깊이 스며들었다.

회화부터 조각, 설치까지 아트 피스가 가득한 요흔 마이어의 집 거실 전경.

클라우디아 & 줄리아 뮐러의 벤치에 걸터앉은 요흔 마이어. 뒤에는 코니 마이어의 그림 ‘Wandern’이 걸려 있다.

오래된 좋은 관계는 때로 더 깊고 견고한, 새로운 미래를 만든다. 독일의 유명한 아트 컬렉터이자 에프레미디스 갤러리 설립자 스타브로스 에프레미디스(Stavros Efremidis)와 1997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마이어 리거 갤러리를 론칭해 세계적 갤러리로 성장시킨 공동 설립자 요흔 마이어(Jochen Meyer), 토마스 리거(Thomas Riegger) 역시 그런 사이다. 2008년 마이어 리거 갤러리가 베를린에 두 번째 지점을 내며 컬렉터와 갤러리스트로서 인연을 맺은 이들은 이후 꾸준히 아트에 대한 열망과 취향을 공유하며 관계를 공고히 해왔다. 그리고 올해 9월, 서로에게 시너지가 될 미래를 내다보며 마이어 리거라는 이름으로 갤러리를 합병했고,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진출했다.
독일의 명문 갤러리로 꼽히는 마이어 리거는 미리암 칸, 셰일라 힉스, 캐롤라인 바흐만, 존 밀러 등 세계적 작가 군단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 아트 신의 주요 갤러리임에도 대중적 작품보다는 실험적이거나 아카데믹한, 뮤지엄에서 전시될 법한 작품을 주로 조명하며 독자적 노선을 걸어왔다. 작가를 비롯해 다른 갤러리와 협업하며 동시대 정치적·사회적 주제를 예술 언어로 조명하고, 나아가 우리 존재에 대해 궁극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자 포부다. 이런 갤러리의 방향성은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요흔 마이어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갤러리스트는 본질적으로 협력자입니다. 언제나 아티스트와 함께하니까요. 우리는 그들의 작업을 처음 보고, 비평하고, 아이디어를 함께 발전시키며, 프로젝트를 실현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으며,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파트너인 토마스 리거와 함께 갤러리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마이어 리거 갤러리는 세계 최대 아트 페어로 손꼽히는 아트 바젤과도 관계가 깊다. 요흔 마이어 공동대표가 지난 20여 년간 아트 바젤 참여 갤러리 선정 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공정한 견해를 유지해야 하는 자리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경력은 갤러리의 방향성은 물론, 개인의 안목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터. 그의 개인 컬렉션이 자못 궁금한 이유다.

왼쪽 1900년대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 내부. 좌측 벽에는 호르스트 안테스가 1960년대 후반에 작업한 구상 작품 중 하나인 ‘Portrait: Zunge raus’를 배치했다.
오른쪽 침실을 장식한 미리암 칸의 ‘malfreude’.

위쪽 집 곳곳에는 100여 년 전 장식한 문양이 여전히 아름답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래쪽 요흔 마이어가 거주하고 있는, 1900년경 당대 가장 아름다운 아파트로 지은 빌딩 외관.

요흔 마이어의 개인 컬렉션은 베를린 쇠네베르크 지역의 바이에른 지구에 위치한 그의 오래된 아파트에 소장되어 있다. 바이에른 지구는 앨프리드 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에르빈 피스카토어, 발터 베냐민 등 과거부터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인물이 많이 머물렀던 동네로 지금도 작가, 예술가, 배우 등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웅장한 검정 외관이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건물은 1900년경 유대인 기업가 살로몬 하베를란트(Salomon Haberland)가 당시 가장 현대적이고 우아한 아파트를 콘셉트로 개발한 것. 12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완공 당시의 문과 나무 바닥, 1900년대 난방 시스템 등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말 멋지지만, 겨울에는 외풍이 심하고 많은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단점도 있어요.(웃음) 이 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거실 천장화입니다. 황도대의 12가지 별자리 그림과 함께 그 시절의 삽화와 그리스신화를 묘사한 부조가 담겨 있죠.”
요흔 마이어는 2010년부터 이곳에서 아내, 아들과 함께 거주 중이다. 침실과 거실, 주방, 발코니로 이뤄진 공간에는 일상의 흔적이 깃든 내추럴한 톤의 가구, 소품과 함께 크고 작은 아트 피스들이 자리한다. “30여 년간 하나둘 모은 작품이 제법 많아져 이제는 250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스케일이 큰 설치미술, 조각, 회화 등 작품을 비롯해 엽서, 도록 같은 소형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모두 눈에 보이는 곳에 전시하기는 어려워 일부는 벽에 걸거나 진열장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집 안 곳곳에 보관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감동받거나, 지적으로 도전하거나, 시간을 들여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작품을 수집 기준으로 삼는다는 그의 컬렉션 리스트에는 유진 르로이, 미리암 칸, 알마 펜드핸들러, 코니 마이어, 요나탄 몽크, 크리스토퍼 윌리엄스, 귄터 푀르크, 셰일라 힉스 같은 아티스트의 작품이 반복해 등장한다. “제게는 작품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가까이 두고 자주 바라보면 처음에 몰랐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런 소중한 순간이 작품을 수집하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침실에 걸린 미리암 칸의 ‘malfreude’는 요흔 마이어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알프스의 일출을 추상적으로 묘사한 화사한 색감이 특징으로, 매일 아침 일어나면 가장 먼저 이 그림을 마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2009년 처음 구입한 미리암 칸의 작품이에요. 빛과 날씨에 따라 형태와 색상이 계속 변화해 보는 시간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특별한 그림이죠. 밝은 색상의 상호작용이 마치 영적인 효과를 일으키는 듯해요. 미리암 칸은 매우 정치적인 작가로, 지금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때론 폭력적 결과물로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는 아름다움 그 자체 또한 주제로 존재해요. 이 작품은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입니다.”
1990년대 말 토마스 리거와 함께 데이비드 해먼스 작가의 ‘Basketball Drawing’을 인생 첫 컬렉션으로 구입했던 열정 가득한 청년은 24년이 지난 지금, 세계 아트 신의 영향력 있는 갤러리스트이자 250여 점의 작품을 보유한 아트 컬렉터가 됐다. 이런 그의 삶에서 ‘예술’이란 뭘까? “‘모든 것’입니다. 예술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이게 해요. 제게 가장 중요한 가족,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아트 피플, 아티스트, 그리고 우리 팀원 전부를요. 예술이 흥미로운 이유는 언어적 차원을 넘어 지적으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사물이나 현상을 비언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요. 또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성찰할 수 있게 해줍니다.”

왼쪽 스테인드글라스와 목재로 이루어진 클래식한 문과 캐롤라인 바흐만의 그림 ‘Lune arc-en-ciel’이 조화를 이룬다.
오른쪽 호르스트 안테스의 2023년 작 ‘Rotes Haus’가 잘 어우러지는 주방 전경.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최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