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가, ‘뮤비’인가
예술과 상품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꾸준히 예술적인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는 이들과 그들의 아름다운 작품에 대하여.
로맹 가브라(Romain Gavras)의‘Stress’(2009년)
Musician_Justice
프랑스 출신의 로맹 가브라가 26세에 연출한 저스티스의 뮤직비디오 ‘Stress’는 1990년대 뮤직비디오계의 전설 크리스 커닝엄이 연출한 에이펙스 트윈의 ‘Come to Daddy’와 맞먹는 충격적 영상으로 논란이 됐다. 너무나 리얼하고 강도 높게 프랑스의 인종차별을 묘사했는데, 저스티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가 상당히 많은 것만 봐도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촬영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전 스파이크 존스와 미셸 공드리 등의 계보를 이을 만큼 현재 로맹 가브라의 활동 영역은 넓다. 다만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술적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는 점. 이건 별별 첨단 장비를 모두 갖춘 요즘 세상에선 참으로 듣기 어려운 칭찬이다.
티모시 사센티(Timothy Saccenti)의‘Fall in Love’(2014년)
Musician_Phantogram
16세 때부터 사진을 찍은 티모시 사센티는 지금 가장 눈에 띄는 사진가 겸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그는 언더그라운드의 음반사를 비롯해 나이키, 디즈니, 쌤소나이트, 앱솔루트, MTV, 소니 등의 광고 사진을 찍어왔는데, 지난 몇 년간은 예술적 베이스를 바탕으로 뮤직비디오에도 발을 담갔다. 밴드 팬토그램의 이 작품은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고 흑백으로 변환한뒤, 다시 비디오 신시사이저로 작업해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느낌을 살렸다. 한 장면 한 장면이 화보 같은 이 작품은 빛과 그림자를 활용해 표현하는 예술 장르 ‘섀도 아트’로 평가받기에도 결코 부족함이 없다.
테리 리처드슨(Terry Richardson)의‘Wrecking Ball’(2013년)
Musician_Miley Cyrus
그를 이 리스트에 넣는 게 맞는가 생각해봤다. 그렇다. 테리 리처드슨은 패션 사진으론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사진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간 몇 편의 뮤직비디오도 감독했다. 지난해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이 뮤직비디오는 미국 팝 음악계의 신성 마일리 사이러스를 올 누드로 커다란 추 위에 올라타게 해 수많은 신문 1면을 장식한 바로 그 작품이다. 4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작품에 그는 예술성과 상징성, 영상미, 파격을 모두 담아냈다. 이런 설명에도 그를 외설 작가로 생각한다면, 당시엔 파격이었지만 지금은 우아함 그 자체로 남아 있는 샤넬의 옛 스커트들을 떠올려보자.
스티븐 클라인(Steven Klein)의‘Alejandro’(2010년)
Musician_Lady Gaga
노래보다 뮤직비디오로 더 화제가 된 레이디 가가의 ‘Alejandro’를 만든 이는 패션 사진가로도 유명한 스티븐 클라인이다. 알렉산더 왕, 발렌시아가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해온 그는 2010년 레이디 가가와 함께 이 작품을 만들었다. 컨셉은 특유의 음침함과 본디지. 어딘지 모를 기괴함과 미스터리한 누아르 스타일을 내기 위해 패션 요소를 화면 군데군데에 삽입한 스티븐 클라인은 자신의 본업인 패션 사진을 뛰어넘는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 레이디 가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뮤직비디오이기도 한 이 작품은 패션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는 가장 파격적이고 판타지한 필름으로 평가받는다.
1992년 12월 MTV는 뮤직비디오가 시작되고 끝날 때 곡 설명 맨 아랫줄에 뮤직비디오 감독의 이름을 넣기 시작했다. 이후 시청자들은 당대의 스타일리스트인 데이비드 핀처와 새뮤얼 베이어, 샘 바이어, 맷 마우린, 앤턴 코빈, 마크 펠링턴 등의 이름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밀레니엄을 앞둔 1990년대 후반, MTV에서 가장 눈에 띄는 뮤직비디오를 선보인 가수는 단연 비오르크(Bjork)였다. 그녀의 활동은 국내에서도 음악보다는 뮤직비디오로 먼저 알려졌다. 비오르크의 흥미로운점은 비주얼적인 면, 즉 뮤직비디오에 있었다. 물론 다른 뮤지션들도 뮤직비디오에 곡의 테마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녀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스스로도 밝혔듯, 그녀에게 뮤직비디오는 단지 부수적인 게 아니라 그 사운드를 이해하는 데 매우 결정적인 요소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비오르크의 뮤직비디오는 당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감독들이 두루 맡아 화제가 됐다.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돌아선 <이터널 선샤인>과 <무드 인디고>를 연출한 미셸 공드리나 <존 말코비치 되기>와
당시 크리스 커닝엄의 뮤직비디오는 세계 음악 신은 물론 다양한 장르의 많은 아티스트에게도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음악을 듣고 그 느낌을 강렬한 비주얼로 표현하는 기존 방식을 벗어나 음계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디자인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가 등을 총 동원해 만들어낸 그의 뮤직비디오와 스틸 컷은 지금 당장 갤러리 벽에 걸어둬도 될 만큼 진보적이며 ‘컨템퍼러리’했다(실제로 뉴욕 MoMA에선 6월 7일까지 비오르크의 특별전이 열린다. 전시에선 크리스 커닝엄과 미셸 공드리 등이 작업한 그녀의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다). 한편 크리스 커닝엄과 미셸 공드리의 출연을 등에 업고 등장한 2000년대의 뮤직비디오 감독들은 1990년대보다 현란하고 빠른 스피드로 시장을 채워나갔다. 마이크 밀스와 플로리아 시지스몬디, 프랜시스 로런스로 대표되는 당시의 뮤직비디오 감독과 그들의 작품은 시각과 청각의 감각적 구조로 완성해 젊은 층을 뒤흔들어놓았다. 영화와 광고의 아류 같기도 하지만, 영화보다 재미있고 광고보다 화려한 새로운 세계로 젊은 층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 중반 이후 주목받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론 누가 있을까? 아이튠스와 다양한 웹 콘텐츠가 등장하며 뮤직비디오의 시장성이 다소 시들해진 이 시점에, 꾸준히 예술적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뮤직비디오 감독과 그들의 작품을 알아본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