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시간
레페 1839의 모든 시계에는 시공간을 넘어 과학과 예술로 귀결된다는 철학이 깃들어 있다.

위쪽 2015년 MB&F와 협업한 ‘멜키오르’.
아래쪽 창립 185주년을 맞아 출시한 ‘T35’는 경주용 자동차 부가티 타입35에서 영감받았다.
스위스 하이엔드 클록 메이커 레페 1839(L’Epee 1839)가 지난 11월 1일 갤러리아백화점 EAST 1층에 국내 첫 번째 부티크를 오픈했다. 레페 1839는 말 그대로 1839년 프랑스 두(Doubs)강 지역에서 역사의 첫 페이지를 시작했다. 스위스 시계산업가 오귀스트 레페와 피에르 앙리 파우르는 함께 설립한 매뉴팩처에서 초기에는 탁상시계와 오르골을 주로 제작했다. 당시 레페 1839는 이스케이프먼트를 생산하는 노하우를 통해 캐리지 클록까지 직접 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 각국의 박람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1970년대 초에는 배터리로 구동하는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기존 기계식 시계 시장을 무너뜨린 쿼츠 파동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품 생산량을 조절하고 하이엔드 클록을 제작하는 데 중점을 두는 전략을 세웠고, 탄탄한 기반으로 하이엔드 클록 메이커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2014년 레페는 쉬지 않고 혁신하며 독립 시계 브랜드 MB&F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통적 시계 디자인의 한계를 넘어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면서 각자 방식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새로움을 더하는 컬렉션 ‘크리에이티브 아트 라인’을 선보였다. MB&F와의 첫 번째 협업 컬렉션 ‘스타플릿 머신’은 우주선 형태 시계로 더블 레트로그레이드 초침을 포함한 복잡한 메커니즘을 탑재해 시계라기보다 움직이는 조각에 가깝다는 평을 받으며 널리 알려졌다. 이후 루이 비통·티파니·샤넬 등 패션 하우스 브랜드와 꾸준히 협업했으며, 지난 6월에는 세계적 그룹 LVMH의 일원이 되면서 든든한 지원 아래 규모를 확장하는 것은 물론 거듭 진화하고 있다.
새롭게 오픈한 갤러리아백화점 부티크에서는 메종을 대표하는 ‘타임 패스트’ 시리즈를 비롯해 1930년대 비행기를 모티브로 한 ‘타임 플라이즈’, 수류탄 모양 ‘그레네이드’, 열기구 디자인의 ‘핫 벌룬’, 긴 요트를 세로로 놓은 듯한 ‘레가타’ 등 탁상시계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강렬한 피스를 통해 레페만의 대담한 독창성과 예술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의 흐름 속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온 레페 1839가 전개하는 깊은 울림을 만끽해보길!

레페 1839 CEO 아르노 니콜라스.
INTERVIEW with Arnaud Nicolas(CEO & CREATIVE DIRECTOR)
레페 1839를 소개해달라. 185년간 역사를 이어온 탁상시계 제조 브랜드다. 혁신을 비롯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인정신에 따라 스토리를 전달하고, 창의성과 엔지니어링의 경계를 넓히도록 설계된 예술 작품 컬렉션을 제작하고 있다.
항공 우주 분야 엔지니어 출신으로 알고 있다. 시계 제작에 발을 들인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기계 공학과 과학, 예술을 좋아했고, 늘 감성이 담긴 아름다운 것을 제작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과학과 예술을 결합할 수 있는 분야를 찾게 되었다. 시계는 두 분야를 조화롭게 융합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탁상시계의 필요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레페 1839는 꾸준히 새로운 탁상시계를 출시하고 있다. 탁상시계를 제작하는 주목적은 각 제품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엔지니어링을 갖춘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표현이 정확할 듯싶다.
레페 1839 제품은 시계보다 아트 피스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제작 과정도 다를 것 같다.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기존 엔지니어링 사고방식부터 부품 제조와 조립 방식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단순히 시계를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으로 전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제품은 스토리에서 출발한다. 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해 시계의 무브먼트와 디자인을 동시에 설계한다. 이러한 설계 방식은 다른 시계와 함께 쓰일 수 없기에 오직 하나의 디자인에 맞춘 무브먼트를 제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디자인부터 공정까지 모든 과정을 내부에서 직접 진행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제각각 노하우를 지닌 장인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하나의 팀이다. 시계 제작 분야와 관련한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 덕분에 외부 공급업체에 의존하지 않고도 창작이나 생산 단계에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
MB&F와의 협업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출시한 ‘스타플릿 머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스타트렉> TV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첫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막시밀리안과 나는 즐거움과 의미가 이어질 때까지 계속 작품을 만들 것이다. 언제나 함께하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해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에서 ‘메커니컬 클록상’을 수상했다. 클래식한 빈티지 자동차에서 영감받은 외관에 192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제공하는 수동 오토마톤 무브먼트를 탑재한 ‘타임 패스트 II’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실제 차량 요소를 모티브로 한 만큼 자동차의 스피드와 정밀함을 표현하기 위해 휠과 스티어링, 시계 움직임을 결합한 디자인으로 제작했다. 지금까지 참여한 프로젝트 중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힌다.
올해 LVMH의 가족이 되었다. LVMH와 함께하다 보니 얼마 전까지 친구와 둘이 회사를 운영하며 겪었던 고충이 줄어들었다. 팀을 확장하고 새로운 역량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새로운 컬렉션을 제작하기에 이상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LVMH의 지원 덕분에 훨씬 더 빠르게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작품을 탄생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레페 1839에서 일하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 처음 브랜드를 인수했을 때 시계 제작을 과거 유물로 여기며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비전과 열정 그리고 헌신을 통해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도 우리만의 길을 개척해나갈 것이다.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레페 1839의 입지는 이미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국 시장에 진입하려 노력했고, 오늘이 한국에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 순간이다. 한국 고객에게 브랜드를 알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지만, 우리 제품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봐줬으면 싶다.

갤러리아백화점 레페 1839 부티크.
에디터 한지혜(hjh@noblesse.com)
사진 레페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