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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실천의 혁신가

LIFESTYLE

경계 없이 작업하는 리처드 알드리치와 전시장을 거닐며 나눈 이야기.

‘Without Going Outside of My Door’, 2023~2024. © Richard Aldrich, Photo by Pierre Le Hors,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 중인 미국 작가 리처드 알드리치(Richard Aldrich)가 내한했다.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온 예술적 실천의 결과물이다. 지난 20년간 개념적 요소와 물리적 속성 사이를 넘나들고,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능숙하게 가로지르며 독창적 시각언어를 구축한 것. 풍성한 컬러와 질감의 화면 속 정교하게 직조된 문화적·자전적 암시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품고 있다. 로마의 줄리아니 재단, 벨기에 되를의 돈트-데넨스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조명했던 그의 작품 세계를 글래드스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여는 첫 개인전입니다. 이곳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소감이 어떠신지요. 전시로 다른 나라를 찾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서울은 이번이 첫 방문이지만, 몇 년 사이 한국 콘텐츠를 많이 접해서인지 친근하네요. 특히 TV 드라마 <빈센조>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드라마, 미스터리, 액션, 코미디 등 여러 장르가 어우러진 것이 신기하면서도 다양한 요소를 혼합한 제 작업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인 만큼 전시명 자체가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별자리는 쌍둥이자리예요. 별자리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이중성, 모순, 상반된 힘의 공존 같은 쌍둥이자리의 상징이 제 예술적 사고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특성이 작업에 녹아들기도 하고요. ‘더블’은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갤러리 창립자 바바라 글래드스톤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그녀도 쌍둥이자리였죠.
전시에서는 지난 10년간 작업한 회화와 조각 작품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 공간이 크지 않은 만큼 작품을 선정할 때 신중을 기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중요한 작품도 있을 거고요. 출품작을 뽑을 때는 작가의 인격이 아닌 큐레이터로서 자아가 나타나곤 합니다. 이 역시 이중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특정 작품을 꼽기는 어렵지만, 지하층에 ‘The Ballad of El Goodo’를 배치하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책을 쌓아 올린 모양의 나뭇조각에 구체 관절 인형을 올린 이 작품은 어느덧 세 번째로 선보이는데요. 첫 번째 전시에서는 좌대에 올렸고, 두 번째에는 바닥에 두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는 줄로 인형을 띄워 작품을 분리했어요. 해놓고 보니 인형이 깨달음의 계단을 올라 열반에 오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뭔가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이 투영된 것 같기도 합니다.
지하층에 회색 카펫을 깔아 1층과 환경을 달리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과거 전시에서도 회색 젤로 전구를 덮는 등 작품을 다르게 경험하도록 유도한 바 있지요. 언제 어디서 작품을 마주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듯합니다. 전시장이 2개 층인 것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입니다. 지하층에서는 카펫 덕분에 소리의 울림이 줄어요. 이를 머리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신체는 알게 모르게 반응하죠. 모든 것은 상대적이잖아요. 제가 아이 곁에 있으면 커 보이지만, 농구 선수 옆에선 작아 보이는 것처럼.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작품과의 조합에 따라, 주변 환경에 따라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살피는 것은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개인적 경험이 진하게 묻어납니다. 출품작 ‘Without Going Outside of My Door’만 해도 미국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에 걸린 차일드 해샘의 작품을 오마주했죠. 작품 중앙의 녹색과 흰색 면은 즐겨 하는 비디오게임 속 텐트에서 영감을 얻었고요. 그래서일까요. 각 작품이 당신의 자화상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작업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많은 작가가 훌륭하다고 규정하는 것, 반복적으로 회자하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선언입니다. 둘째, 저는 예술을 통한 인간성의 발현에 관심이 있습니다. 작품에 자신의 취약성까지 표현할 때 그것이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깊이 있는 사유가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죠.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나요? 딱 잘라 설명하기는 힘들어요. 이웃과 인사하고, 어머니에게 전화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직장 동료와 회의하는 일상을 떠올려보세요. 상대방과의 관계나 친밀도에 따라 대화 내용이 달라지죠.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새로운 대화를 나누는 만큼 다양한 작품이 나올 수 있고, 제작 기간도 천차만별입니다. 출품작 ‘A Mass of Vibrating Forms’에서는 다른 작품에서 그리고 남은 물감을 활용해 작업의 역사를 기록하기도 했죠.
재료 사용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 듯해요. ‘Untitled’는 2005년 어느 아트 페어에서 가져온 오브제를 붙여 만든 작품이죠. 주변의 모든 것이 작품 소재가 됩니다. 때로 다른 사람에게 의뢰해 재료를 제작하기도 하는데, 이를 위해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하는 것 역시 창작의 일부가 아닐까 싶어요. 최근 런던 전시에서 호두나무를 재료로 활용했는데, 짙은 갈색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런 당신의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요? 앞서 말했듯, 관람객들이 제 작품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만 이를 위해 사적인 레퍼런스를 공부할 필요는 없어요. 작품 앞에서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것도 환영하지만, 음악을 감상하는 것처럼 그저 작품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