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위 예술, 퍼포먼스
“퍼포먼스도 예술인가?”라고 묻는 관람객이 많다. 그러나 사실 퍼포먼스만큼 멋진 역사성을 지닌 장르도 없다.

우리가 흔히 이브 클랭 블루라 부르는 청색 작품.
L’accord Bleu(RE 10), 1960, Mixed Media Piece by Yves Klein Featuring IKB Pigment on Canvas and Sponges

4분 33초’라는 공연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존 케이지
1954년 뉴욕 어느 공연장에서 ‘4분 33초’라는 공연이 열렸다. 관객은 숨을 죽인 채 작가의 공연을 기다렸고, 그런 관객 앞에서 작가는 피아노 앞에 앉아 가만히 건반만 바라보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된 이 작은 소극장은 극도로 고조된 긴장감으로 가득 찼고 기다림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의 숨소리와 몸의 꿈틀거림, 기침 소리 등 우리의 일상에서 거의 ‘소리’라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을 그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4분 33초 동안 계속 건반만 바라보더니 이윽고 일어나 인사를 하고 퇴장해버렸다. 이게 그 유명한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초연 모습이다. 다시 1956년, 이브 클랭이 한창 청색의 추상회화 작업을 하던 당시, 작가는 프랑스 이리스 클레르(Iris Clert) 갤러리에서 <허공(Le Vide)>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갤러리의 창문은 푸른색으로, 벽은 흰색으로 칠해놓은 전시였다. 작품을 거래해야 하는 갤러리 전시에 팔 수 있는 작품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1960년엔 파리의 국제 현대 미술갤러리에서 나체 여인들이 걸어 나와 자신의 몸에 파란 물감을 묻혀 벽면에 붙어 있는 종이에 몸에 묻은 물감을 찍어내는 작품을 선보였다. 1959년 존 케이지와 함께 음악 활동을 하던 앨런 캐프로는 뉴욕의 루번 갤러리에서 ‘6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18개의 해프닝’이란 제목의 ‘해프닝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로 전시회를 열었다. 모두 1950년대 후반에 일어난, 퍼포먼스(소위 행위예술이라고 불리는)의 시작점으로 꼽히는 중요한 사건이자 전시회다. 물론 이 당시에도 여전히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적 회화와 조각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주요 흐름 안에 존재했다. 그럼 이러한 일련의 새로운 실험은 과연 어떠한 맥락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런던 트라팔가 광장 ‘4번째 좌대 프로젝트’의 10번째 전시작인 한스 하케의 ‘기프트 호스’. 독일 쾰른 출신 작가인 한스 하케는 예술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퍼포먼스의 공통점은 기존 미술의 유통 구조에 반해 비실용적이고 매우 무용적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 행위가 지향하는 개념이 분명 있다는 점이다. 존 케이지의 경우 그의 퍼포먼스는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과 더불어 일상의 ‘소리’ 자체가 음악이 될 수 있으며 그 음악은 연주자와 함께 관객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새로운 예술 창작법을 제안했다. 아주 간단한 일련의 해프닝 같은 공연 퍼포먼스는 미술 제작이라는 맥락에서 전복적인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이브 클랭 역시 설치미술, 프로세스 아트와 같이 ‘새로운 공간과 과정이 미술 자체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미술은 지난 18세기부터 그 존재 자체에 대해 매우 이성적인 질문을 하며 변화해오고 있다. 디드로가 “미술은 단지 미적 추구를 넘어 인류를 보다 높은 사회적·정신적 지평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시대마다 작가들은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가치, 권위에 대한 질문을 하며 여러 사회문제를 직시해왔다.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들은 그것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이 깨어 바라보는 현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상업적으로 치닫는 미술 구조와 미술가의 기능에 대한 비평과 도전을 하며 새로운 미술을 제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을 때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이던 다양한 행위가 보편적 가치를 갖게 되고, 이러한 예술적 퍼포먼스를 보며 관객 또한 자신의 세계관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매우 사소한 일상성에 내재된 개념을 찾아내는 퍼포먼스 작가들의 독창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제프 보이스의 퍼포먼스(코펜하겐, 1966)
Photo by Lothar Wolleh

요제프 보이스가 진행한 ‘에너지 플랜’이라는 미국 강연 투어의 포스터.
Offset Poster for US Lecture-Series Energy Plan for the Western Man(1974) by Joseph Beuys, Organised by Ronald Feldman Gallery, New York Courtesy of Ronald Feldman Fine Arts, New York
1950년대 후반에서 1960~1970년대를 거치며 확립된 퍼포먼스적 개념미술은 현재의 미술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중요하게 회자되는, 작가가 작품 전체를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개념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1961년 존 발데사리는 자신의 손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중단했고, 간판장이에게 캔버스에 글을 쓰게 한 뒤 이를 전시했다. 이는 물론 기존의 미술에 대한 반발과 풍자를 드러낸 개념미술 작품이나 이후에도 작가는 이러한 언어적 유희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는 전시가 있다. 1969년에 스위스의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린 하랄트 제만 기획의 <태도가 형태가 될 때>와 루시 리파드가 기획한 <비물질> 전시가 그것이다. 우리가 개념미술의 거장이라고 부르는 한스 하케, 요제프 보이스, 로런스 와이너, 로버트 모리스 등 중요한 작가들이 함께 새로운 무브먼트를 소개하는 전시였다. 4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이 중요한 전시를 재현해 그들의 미술에 대한 태도와 함께 현재의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을 다시 한 번 재고하는 시간을 선사했다. 그 덕분에 관람객은 기존의 미학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반미학적 접근을 통해 작품을 창조해낸 그들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퍼포먼스에서는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것이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맥락화하지 못한 약한 개념의 실험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사람들은 퍼포먼스 작업이 비용도 들지 않고, 매우 즉흥적으로 빨리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작가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좋은 퍼포먼스는 그것과 정반대 지점에 있다.
훌륭한 퍼포먼스는 준비와 진행 과정, 참여하는 대상에 대한 연구와 분석 등 매우 정교한 작업을 동반한다. 그리고 처음과 끝, 그 모든 과정이 관람객을 완벽히 끌어들여 작품의 일부를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이기에 매우 절제되고 정확한 게임의 룰을 구사한다. 퍼포먼스 작업은 개념미술과 함께 매우 중요한 현대미술의 언어가 되었다. 우리가 만나는 어떤 현대미술 작품도 퍼포먼스적(performative) 요소가 없는 경우는 드물 정도다. 퍼포먼스 작품은 우리의 ‘일상성’ 안에서, 작가들이 작품의 주제를 발견하게 하는 비평적 관점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노버트 린튼, <20세기의 미술>, p.238
에디터 |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 이지윤(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