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디자인
21세기적 의미에서 디자인은 망했다. 사회가 그렇게 돼버렸다. 단순히 세계를 매개하던 인터넷이 스마트 기기를 통해 현실과 완전히 뒤엉켜버렸으니, 이젠 뭐가 진짜고 가상인지 헷갈리는 시대다. 미래를 잃은 오늘이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되살린 진짜 같은 ‘과거’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지금, 미술평론가 임근준과 디자인 연구가 박해천이 미술과 디자인계의 (서글픈) 오늘에 대해 말한다.

망했어요, 디자인
박해천(이하 박)/ 어떻게, (디자인이) 망한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임근준(이하 임)/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앞으로 디자인이 유망할 거라는 착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어요. 이제 한국도 고도성장을 할 거니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죠.
박/ 맞아요. 올림픽 이전에 공부를 잘한 이들은 디자인이나 미술을 택할 수 없었죠. 집에서 부모가 허락을 안 했으니까요. 근데 올림픽 이후론 미래가 밝으니 성적이 좋은 애가 디자인학과에 간다 해도 반대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러면서 디자인학과에 갔고요. 사실 저희 집안은 다들 실용적인 것만 했거든요. 돈 벌 수 있는 일만요. 전형적인 부르주아 마인드라 절대 망하는 건 안 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당시 아버지가 절 디자인학과에 보낸 건 놀라워요.
임/ 맞아요. 원래 (박 선생님처럼) 전라도 엘리트면 미국에선 유대인이잖아요. 유대인은 돈 안 되는 덴 절대 안 보내죠. 그러고 보면 당시 우리 부모 세대는 디자인을 새로운 터닝 포인트라고 여긴 것 같아요.
박/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 게 문제지만.
임/ 그럴 리가요.
박/ ‘디자인!’ ‘디자인!’ 하는 이들이 있긴 하잖아요.
임/ 그건 약장수들이죠. 약 파시는 분들. 일단 미국의 주요 대학 디자인학과엔 현재 유대인 학생이 없어요. 백인도 없죠. 미국 대학의 한 전공에서 유대인이 빠졌다는 건 ‘아, 여긴 버림받았구나’ 그런 느낌이죠.
박/ 그건 맞아요. 제3세계 출신이 많으면 거긴 그냥 게임 끝이죠. 물론 공대는 좀 다르지만요. 근데 20세기의 대학 교육이라는 게, 공부 못하고 중산층이 된 부모들이 자식을 중산층으로 만들기 위해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려는 목적인 건 여기나 거기나 같아요.
임/ 맞아요. 요새 대학은 정말 침몰하는 배 같아요. 대학 제도가 붕괴하면, 엘리트 재생산의 프로토콜도 붕괴하는 거죠. 이제 디자인은 망했어요. 산업이 망했으니, 망할 수밖에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 디자이너 시대도 끝났어요. 왜, 디자인 전문지에서 소개하는 디자이너 중 제대로 큰돈 버는 이도 없잖아요. 사실 대학들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없다면, 현재 ‘디자인업계’라는 게 유지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워요. 그래도 예전에 시장에서 끝까지 버틴 게 하나 있는데, 그게 피처폰의 ‘버튼 키’ 디자인이었죠. 그게 생각보다 만들기 어렵거든요. 우수한 인력이 거기 다 투입됐죠. 근데 그것도 2007년을 넘으면서 다 망했잖아요. ‘아이폰’이 나왔으니까요.
박/ 맞아요. 그때 참 재미있었어요. 버튼 키 가지고 각종 연구에 리서치까지 하며 난리였는데, 터치스크린이 나오니까 그냥 하루아침에 ‘우린 이제껏 뭐 한 거야?’ 같은 시대가 왔죠.
임/ 근데 따지고 보면 디자인계의 1차 위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어요. IT업계가 버블로 무너질 때, 디자이너들은 어떻게든 적응해보려고 했죠.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가 그 시절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꾼 이들이 일자리를 못 찾자 스포츠업계로 넘어가 신발이 혁신되었다는 거예요. 당시 나이키 같은 데서 나온 곡선과 이중 스킨 구조의 괴상망측한 최첨단 신발도 원래 자동차에서 구현하려 한 것이죠. 지금도 나이키 신발은 너무 고퀄리티예요.
박/ 정말 그래요. 사실 옛날에 우리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들은 계속 판이 커지는 상황에서 디자인을 경험했으니 계속 좋아질 거라는 얘길 했잖아요. 왜냐하면 이전에도 자신들이 몰랐는데 좋아졌으니까.
임/ 정말로 그들이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조건이 좋아졌죠.
박/ 근데 한국의 경우 고도성장기가 끝났다는 건 이제 너무 명확하잖아요. 고도성장기의 핵심 동력이 제조 산업이었고, 제조 산업이 디자인의 성장 에너지원인 엔진 역할을 했고요. 근데 그 분야가 이제 일자리를 못 만들고 있죠. 근본적으로는 1997년 IMF 이후, 그리고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1990년대 중·후반에 이미 정점을 찍은 시대의 ‘앙시앵레짐 (ancien regime)’에 불과하죠. 근데 여전히 앙시앵레짐에 계신 분들(당시 30~40대를 보낸 이들)은 그때 그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고 여겨요. 가능한 얘기긴 하죠. 자기 머리로 하는 거니까.
임/ 그렇죠. 그들이 은퇴할 때까진 그 체제가 유지될 테니까.
박/ 제가 볼 때 한국 사회는 지금의 50대 초반이 크리티컬 포인트예요. 그걸 인식하시는 분과 어찌해도 못(안) 하시는 분. 내 능력으로 지금의 자산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분과 그것이 ‘시대발’이었다는 걸 아는 분.
그 세대의 중산층은 사실 자신이 어떤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서 아파트로 내 집 마련을 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일종의 중산층 신화가 이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고 할까. “난 열심히 일해 목돈 저축하고 집도 사고 자가용도 구입하고 자녀도 유학 보냈다”는 식의 성공담 말이죠. 근본적으로 이 신화가 가능한 게 아파트를 통한 자산 소득의 증대였는데 말이에요.
임/ 맞아요. 근데 어떻게 그리도 ‘디자인’은 잘 안 되고 망했을까요?
박/ 망할 수밖에 없었죠.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보다 테크놀로지의 담론 속도가 빨랐으니까요. 테크놀로지는 담론 자체가 워낙 뻥을 많이 쳐야 하기 때문에, 이 뻥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당시 그 중산층이 된 마지막 세대가 196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이들이라 한다면, 그들이 한국 사회 전반의 문화나 예술계에 자신들의 사상을 고스란히 적용한 것도 암울해요.
임/ 하하. 근데 사실 부모들은 괜찮아요. 그 애들이 문제죠. 그들이 낳은 2세대는 ‘원본’도 잘 모르죠. 부모들은 예전에 제대로 나온 것을 베꼈으니 원본이 뭔지 알죠. 인간에겐 의식주가 가장 중요한데, 지금은 입는 것도 옷이 아니라 옷 비슷한 거잖아요. 요즘 세대는 진짜 옷을 입어본 적이 없어요. 옷은 만들어 입어야 진짜죠. 물론 다른 것도 가짜예요. (디자인의 쇠퇴적 의미에서) 집도 집처럼 생긴 게 있고, 도시계획도 가짜잖아요. 근데 이젠 먹는 것도 가짜야. 요즘 먹는 소고기가 옛날 소고기가 아니잖아요. 옛날 소와 비슷한 애가 소로 살고 있는 거죠. 모든 재료가 그래요. 양질의 재료라는 것이 알고 보면 모두 가짜죠. 박/ 맞아요. 근데 신기한 건,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걸 자각하는 애가 더러 나온다는 거예요.
임/ 나오겠죠. 근데 그걸 자각하고 튀어나가야 하는데, 그네들도 대부분 신도시에 살면서 학교 졸업하고 제일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삼성’이죠. 그게 암담한 거지.
박/ 사실 전 어릴 때 가난한 적은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본 기억은 있어요. 그래서 이런 공포가 있었죠. 아버지가 회사를 나와 사업을 시작했는데 망하면 어떻게 될까? 제가 어릴 땐 그런 공포감이 존재했어요. 그리고 실제 주변을 보면 많이 망하기도 했고요. 그런 걸 보며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거예요. 망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망하는 건 이런 거구나. 근데 제가 요즘 학생들을 지도하며 느끼는 건 애들이 ‘망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른다는 거예요. 그리고 모르기 때문에 더 불안해하죠.
임/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옛날엔 도시에 부자와 중산층, 가난뱅이가 같이 살았잖아요. 한 동네에 같이 살았죠. 그런데 요즘 애들은 부자도 본 적이 없고, 가난뱅이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길이 없죠. 한 예로 2000년대 초반에 서울대 후배들을 아르바이트로 쓰려고 아트선재센터로 부른 적이 있어요. 근데 애들이 미술관 안에 들어와 처음 하는 말이 “여기, 동네가 왜 이렇게 가난해요?”였죠. 다들 강남이나 신도시에서 자란 거예요. 속된 말로 뇌가 완전히 맛이 간 거죠. 어디가 게토인지 모르는 거예요.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가 게토인지, 저쪽 성북동 부자 동네가 게토인지 모르는 거죠. 거긴 아예 가본 적도 없는 거예요. 그때 뇌에 불이 딱 켜졌어요. ‘아, 이건 완전히 새로운 신호구나.’ 얘네들은 절대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없겠구나. 그때 본 애들이 강남 재개발 아파트를 굿 디자인이라고 떠들고 다닌 애들이죠.
정크-스페이스(Junk-Space)의 도래
박/ 어쨌든 2008년 이후의 한국 사회는 오래전 쌓은 관성의 힘이 소진되는 과정에서 작은 오작동을 보이는 시기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임 선생님은 이 시대가 ‘정크-스페이스’(즉 쇼핑몰화한 공간)화 되고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 말 뜻 좀 설명해주세요.
임/ 간단히 말해, 강남에서 시작한 ‘프렌차이즈화’가 강북 지역까지 전부 전염시킨 걸 가리키죠. 탈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미래를 잃은 오늘이,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되살린 진짜 같은 과거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얘기예요. 근데 이런 현상은 사실 인간에게도 나타나요. 요즘 보면 ‘오늘’의 동적 공간이 유례없이 좁아지고 있잖아요.
박/ 그 말엔 저도 동감해요. 1990년대가 지나고 2000년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다들 내면을 자각하기 시작했죠. 한 예로 한국인은 어떤 시기엔 ‘청년’이었다가 어떤 시기엔 ‘민중’, 또 어떤 시기엔 ‘국민’, 어떤 시기엔 ‘시민’ 같은 걸로 계속 변하며 스스로 자각하기 시작했죠. 근데 2000년대에 들어선 그들이 전부 ‘소비자’가 돼버렸어요. 이 ‘소비자’의 출현이 정말 중요해요. 이전까지 존재한 ‘개인’이란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해버린 거니까요. 이전까진 내가 미술관에 가면 관람객이 되고, 극장에 가면 관객이 되고, 학교에 가면 학생이 되곤 했는데, 이젠 그네들의 정체성이 완전이 바뀌어버렸죠.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교육 서비스를 받으러 가는 소비자,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2시간 동안 시각적 쾌감을 누리기 위해 찾는 소비자, 갤러리에 작가의 새 작품을 보려고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세련미를 과시하려고 가는 소비자가 돼버렸죠.
임/ 근데 그게 다가 아니예요. 옛날엔 물건을 살 때 전부 돈이랑 바꿨잖아요. 지금은 나의 소비에도 ‘등급’이란 게 존재하죠. 카드 하나를 만들려 해도 이것저것 돌려서 ‘컨펌’을 받아야 하니까. 그렇게 고생해 카드가 나온 뒤에야 ‘그래, 이 정도면 나도 중산층이야’ 하면서 그걸 긁죠. 쉽게 말해 삶의 태도가 어떻게 되는가 하면, ‘내 위치’가 있고 ‘나의 소비 능력’이 있고, 그게 그 물건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되는 거예요. 모든 게 그렇죠. 그러니까 ‘마음에 든다, 안 든다’의 감정 또한 사실은 내 마음에 있는 게 아니죠.
박/ 맞아요. ‘불편하다’는 표현이 그렇게 쓰이죠. 자기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니까. 그걸 누가 정확하게 글로 쓴 걸 예전에 봤어요. “내가 살 수 없는 걸 누가 사면 불편하다”고.
임/ 그래요. 요샌 모든 사람이 하루 24시간 내내 그러고 있어요.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 싶으면 취하지 않는 거죠. 인간의 뇌엔 원래 ‘자아 조절 자원’이라는 게 있어요. 뭔가를 취할까 말까 판단할 때마다 그게 조금씩 새어 나가죠. 근데 ‘소비자’의 뇌로 살면, 모든 가치판단을 그렇게 하기 때문에 자아 조절 자원이 엄청 소모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즘 애들이 공부를 할 수 없어요. 그러니 뭔 작가가, 예술가가 나오겠어요? 근데 이런 자아 조절 자원을 제일 많이 깎아먹는 게 바로 스마트폰이에요.
박/ LED 색감에 익숙해지면 안 돼요. 그게 현실의 색이 아니거든요.
임/ 그렇죠. 인간의 뇌가 이해할 수 없죠. 특히 뇌가 발달하는 어린 시기엔 절대 이 인터페이스를 접하지 못하게 해야 돼요. 근데 그걸 부모들이 모르죠.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겠어요?
박/ 옛날에 LED의 인터페이스를 처음 만든 이들은 그걸 만듦으로써 새로운 능력이 ‘창발’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내적 이론은 복잡하긴 하지만요. 근데 지금은 스마트폰도 완벽히 자기 완결적 세계이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면 굳이 나올 필요가 없는 거예요.
임/ 서울 주변의 신도시도 그래요. 삶의 모든 게 패턴화되었기 때문에 내가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죠. 주변 환경에 그저 반응만 하면 되니까요.
박/ 지금 사람들은 반응형 생활의 가두리 양식장 밖으로 나가는 게 뭔지 아예 몰라요. 그러니 요새 예술가는 완전히 부잣집이나 완전히 가난뱅이 집에서 나오는 거죠. 아파트에선 절대 예술가가 나오지 않아요. 그게 또 소비자의 태도와 직결되기도 하고요. “네가 나한테 떠먹여줘야지 왜 내가 너를 눈에 쌍심지 켜고 응시해야 하지?” 같은 거죠.
임/ 맞아요. 지금 젊은 친구들은 그냥 뭘 취하기만 하면 되니까, 이전 세대하고는 멘털리티가 완전히 다르죠. 그러고 보면 지금의 20대들은 또 부모가 386세대잖아요. 그 세대는 엄마들의 ‘에고’가 완전 다르죠. 집에 가보면 전부 ‘엄마 책’과 ‘아빠 책’이 따로 있고. 근데 재미있는 게, 특히 아파트에 사는데 엄마의 에고가 너무 강하면 특히 딸자식이 찌그러져요. 집에서 엄마가 사회의 차별 때문에 에고가 빵 터져 소리 지르면 그 스트레스를 다 딸이 받아줘야 하거든요. 근데 단독주택에 살면 가난해도 애들이 도망칠 곳이 있으니까 안 찌그러지죠.
미술계의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다양한 담론을 늘어놓는 임근준(좌)과 박해천(우)
어쨌든 세대교체
박/ 언젠가 임 선생님이 88만 원 세대의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사정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그런데 ‘어’ 하고 보니 어느덧 1990년대생이 서서히 미술과 디자인계의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더라고요. 세상 참 빠르죠?
임/ 국내 현대미술계에선 세대교체가 확실히 일어났어요. 작년 말부터 1980년대생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죠. 세대교체가 아주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다가, 정확히 1979년생부터 시작한 거죠. 사실 1970년대 중반생은 다 망했고요. 보면 김영나 작가(1979년생)부터 시작하는데 1980년대 초반생은 또 약세예요. 오히려 1980년대 중·후반생이 강세죠. 지금 새로 등장하는 친구들을 보면 다 1987~1989년생이에요. 이들은 멘털이 거의 1990년대생에 가깝죠.
박/ 그렇죠. 1987~1988년생은 지금 한창 전시하잖아요. 저도 개인적으론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생이 느낀 유·소년기의 문화적 경험에 관심이 있어요. 그러고 보면 1987년과 1988년은 한국 사회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모한 시기이기도 해요. 자가용 보급률도 엄청났고.
임/ 솔직히 1987년생이면 완전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거죠. 1980년생이 태어날 때만 해도 못살던 나라였고요. 당시의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잖아요. 근데 1987~1988년생은 다르죠. 선진국 비슷한 곳에서 태어난 거니까. 또 큰 차이가 뭔가 하면, 1970년대 후반생부터 1986년생까진 동네에서 차에 치인 애들도 되게 많아요.
박/ 차에 치여요?
임/ 네. 어릴 때 놀다가 차인 치인 애들이 많다고요. 당시 부모들은 차가 무서운 것도 몰랐죠. 그런데 골목길에서 차가 쌩쌩 달리고, 아파트에도 지하 주차장이 없던 세대이니, 다 차에 치였죠.
박/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1987~1988년생들이 10대 초반일 무렵부터 집집마다 ‘ADSL’이 깔리기 시작했죠. 일본 문화도 개방하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오타쿠 문화가 자리 잡고, 이전 세대에 비해 별별 경험을 일찍 할 수 있었죠.
임/ 맞아요. 걔네들은 또 인구도 많아요. 부모님의 인구가 많으니까요. 그러니까 현대예술계서 중요한 모멘텀을 작게나마 기대해볼 수 있죠. 그런 ‘샤이니’ 세대가 현대예술 세계에서 뭔가 하나 해주지 않으면 정말 끝이에요. 이제 대가 끊길 위기예요.
박/ 근데 그런 와중에 임 선생님은 어떻게 살아남을 건가요?
임/ 뭐, 어떻게든 생존해봐야죠. 어쨌든 예술계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잖아요. 새로 출현한 작가들이 계속 새로운 동적 공간을 찾아낼 수 있게 도와야죠. 근데 사실 저도, 제 세대 작가들도 늙어가고 있으니, 주된 일은 젊은 세대 작가를 위하는 게 아니에요. 제 작업은 ‘역사화’죠.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정리하는 게 제가 할 일이죠. 어쨌든 뒷세대가 새로 청중을 개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모든 게 달려 있는 거죠. 그러는 박 선생님은 앞으로 어떻게 ‘버티실’ 건가요?
박/ 전 디자인을 하든지 미술을 하든지 뭐든 해야겠죠. 근데 그게 뭐 10만 명을 위한 대대적인 일은 아니라고 봐요. 다 망하는 판국에 10만 명이나 그걸 봐줄 필요는 없죠. 제 책을 보고, 강연을 들으러 오는 분들 정도죠.
임/ 그렇죠. 최대 3000명?
박/ 네, 3000명. 적으면 1500명까지도 만족.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적으로 계속 성장해나가는 게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 생각해요.
임/ 근데 무서운 건, 그 3000명이 유지되지 않을까 봐.(웃음)
박/ 유지 안 되죠. 제가 볼 땐 1500명이에요. 근데 중요한 건 이 1500명이 20~30대에 몰려 있다는 거죠. 대학생이라든지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사람.
임/ 그들도 어서 우리처럼 ‘청중’을 개발해야 할 텐데요.
박/ 기대해봐야죠.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 교육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아트선재센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아트인컬처> 편집장으로 일했고, <크레이지 아트, 메이드 인 코리아>와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 <이것이 현대적 미술> 등을 펴냈다.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겸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카이스트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영국 미들섹스 대학교에서 공간 문화 연구 석사 과정을 마쳤다. 지은 책으로 <인터페이스 연대기>와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 등이 있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Less(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