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미술왕 이야기
미술계의 지형도를 만드는 도구로 자리 잡은 미술상. 몇 가지 흐름을 통해 현대 미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국립현대미술관과 SBS 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15’ 시상식 현장

오감으로 느끼며 작품을 감상하는 2015 IK 프라이즈 프로젝트 ‘테이트 센소리엄(Tate Sensorium)’. David Bomberg, In the Hold, 1913
ⓒ Tate, Photo by Joe Humphrys
설치, 영상, 퍼포먼스, 미디어 아트 장르의 강세
2000년대 이후 주요 미술상 수상작을 살펴보면 과거의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 시각 매체보다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의 장르가 강세를 보이며 현대미술의 주요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적 미술상으로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브리튼에서 주관하는 터너상(Turner Prize)만 봐도 알 수 있다. 2014년 수상자 던컨 캠벨(Duncan Campbell)은 ‘It for Others’라는 영상 작품에 안무가 마이클 클라크(Michael Clark)의 무용 작품 등을 활용했고, 2013년 수상자 로르 프루보(Laure Prouvost) 역시 ‘Wantee’라는 영상 설치 작품으로, 2012년 수상자인 엘리자베스 프라이스(Elizabeth Price)는 3부작 비디오 설치 작품을 선보인 개인전 로 상금 2만5000파운드를 받았다. 1984년 이 상이 제정된 이후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1991년),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1995년),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1998년) 등 평면 작업이나 조각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가 1980~1990년대에 주요 수상자로 선정된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진 경향이다. 특히 테이트 브리튼은 2014년부터 IK 프라이즈(IK Prize)를 신설,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작품’을 만드는 디지털 크리에이터를 뽑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편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 수상자는 미국의 개념미술가이자 철학자인 에이드리언 파이퍼(Adrian Piper)로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기획한 본전시 에서 작가가 준비한 3개의 문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이에 대한 계약서에 서명을 유도하는 관람객 참여형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였다. 한국의 임흥순 감독은 아시아 이주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위로공단’으로 국내 작가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 티노 세갈(Tino Sehgal)은 관람객이 참여해 퍼포머들과 함께 즉흥 연극을 하는 퍼포먼스로, 2011년 황금사자상 수상자 크리스천 마클리(Christian Marclay)는 영화 4000여 편에서 시계 장면만 모아 편집한 영상으로 이목을 모았다. 세계 3대 미술상으로 꼽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휴고 보스상(Hugo Boss Prize)도 출판 프로젝트, 설치, 영상 작업 등을 하는 폴 챈(Paul Chan)을 2014년 수상자로 선정해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이 현대미술의 대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국내에서도 두드러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15’ 최종 수상자로 개념 설치 작업을 선보인 오인환 작가가 선정됐다. 김기라, 나현, 하태범과 함께 후보 4인에 오른 후 최종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사각지대 찾기’라는 설치 작품을 통해 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공간적 사각지대의 개념을 사회적·문화적 맥락으로 확장했다. 오인환 작가는 시상식에 대역 배우를 내세워 논란이 일었는데, 이를 작업의 연장선상 퍼포먼스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이 2014년 영상과 사운드 작업을 주로 하는 장민승 작가의 ‘Voiceless’에 돌아간 것에 이어, 2015년 신체와 기계의 움직임을 연계해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정금형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을 보면, 이전에 장르의 구색 맞추기 정도로 여기던 퍼포먼스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4 퓨처 제네레이션 아트 프라이즈의 수상자 나스티오 모스키토와 카를로스 모타
새로운 형식의 미술상 등장
참신한 작가 선정과 안목으로 관심을 끌던 미술상도 정착이 되면, 초반의 신선함과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에 따라 기존의 권위 있는 미술상과 차별화된 방향을 지향하는 미술상이 생기는 추세. 시청자 투표로 진행하는 TV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 대중의 의견을 직접 반영해 작가를 선정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미국 미시간 주의 그랜드 래피즈(Grand Rapids)에서 19일 동안 개최하는 아트 프라이즈(Art Prize)가 대표적 예다. 1999년 1회를 시작으로 2015년 7회를 맞은 아트 프라이즈는 일반인 투표로 선정한 우승자와 전문가들의 심사로 선정한 우승자 각각에게 20만 달러를 수여하고, 그 밖에 8개 부문으로 나눈 해당 분야 수상자에게 각각 1만2500달러를 지급한다. 시상 금액이 여느 상에 비해 최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반 대중의 투표를 전문가의 의견과 동등하게 반영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2014년에는 아닐라 콰이윰 아가(Anila Quayyum Agha)가 레이저 커팅한 나무 육면체를 이용해 공간에 그림자로 패턴을 만드는 작품 ‘Intersections’로 최종 우승자로 선정되었다. 아트 프라이즈는 또한 미술관 같은 전시 공간뿐 아니라 도시 곳곳의 공간과 연계해 독립적 전시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볼거리가 풍부하고, 이 때문에 일부러 아트 프라이즈 기간에 그랜드 래피즈를 찾는 관광객도 많다. 상금만 빼고 보면 미술상이라기보다 축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보다 젊은 연령대의 작가를 선정해 신선함과 차별화를 꾀하는 미술상도 있다. 2009년 제정한 신생 미술상 ‘퓨처 제네레이션 아트 프라이즈(Future Generation Art Prize)’의 경우 자격 기준을 ‘35세 이하’로 정해 ‘젊은 작가상’을 내세우는 다른 미술상의 자격 기준이 약 40세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2014년에는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모타(Carlos Motta)와 앙골라의 나스티오 모스키토(Nastio Mosquito)가 공동 수상했다. 젊고 참신한 작가를 선정하기 위해 심사위원 역시 젊어져야 한다. 송은미술대상의 경우 예선과 본선의 심사위원은 주로 40대의 큐레이터와 작가, 평론가다. 몇 해 전 다른 미술상을 받은 작가가 심사위원이 될 정도로 젊은 관계자로 구성되어 있다. 2014년 수상자는 퍼포먼스와 영상 등의 매체를 통해 일상 속 전문가들이 보여주는 예술적 태도를 다룬 전소정 작가다. 간혹 미술상의 심사위원이 중복되어 고유의 색깔이 희미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반면, 이런 차별화된 시도는 미술상의 다양성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평도 있다.
아닐라 콰이윰 아가, Intersections
ⓒ ArtPrize
빅 네임을 활용한 홍보 마케팅
기존의 미술상은 권위를 지키기 위해, 새롭게 생겨난 미술상은 이름을 알리기 위해 홍보와 마케팅에 신경을 쓰는데 특히 빅 네임을 활용한 홍보, 마케팅이 눈에 띈다. 미술상은 작가 발굴과 후원, 미술계 지원이라는 순수한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해당 지역의 미술계 혹은 미술 시장을 띄우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상을 운영하는 기관과 후원 기업, 언론 매체 등 다양한 주체가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작가 선정이나 진행, 시상식 등의 과정에서 대중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이유로 스타나 미술계 유명인사 등의 빅 네임을 통한 홍보, 마케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미 많은 미술 시상식이 여느 영화제 못지않게 포토 월을 만들고 셀레브러티를 초대해 분위기를 띄우며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지만 여기서 빅 네임은 단순히 연예인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타 큐레이터, 유명 작가, 컬렉터, 정치인까지 포함한다.
새롭게 만든 미술상이 가장 쉽게 신뢰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심사위원이나 주최자의 인지도다. 2008년 제정한 아브라즈 그룹 아트 프라이즈(Abraaj Group Art Prize)는 MENASA(중동, 북아프리카 및 남아시아) 지역의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데,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를 심사위원으로 두고 있다. 퓨처 제너레이션 아트 프라이즈의 경우는 적극적으로 설립자의 인맥을 활용해 유명인사를 이사회나 심사위원 등으로 영입하고 있다. 설립자 빅토르 핀축(Victor Pinchuk)은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사위로 20억 파운드 규모의 자산을 가진 우크라이나의 두 번째 부자이자, 런던의 큰손으로 통한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linton Global Initiative)’에 막대한 자금을 후원하면서 미국 정계와 인맥을 쌓고, ‘얄타유럽전략(Yalta European Strategy)’을 만들어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 인사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런 화려한 인맥을 바탕으로 퓨처 제너레이션 아트 프라이즈의 이사회 멤버로 구겐하임 미술관 관장 리처드 암스트롱, MoMA의 관장 글렌 로리, 패션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 가수 엘턴 존 등이 이름을 올렸으며, 선정된 작가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후원 작가 역시 안드레아 구르스키,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등이 함께해 세계 미술계 진출과 네트워킹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글 방소연(대림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