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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미술관이 인간의 감정과 의견을 분석하고 있다. 관람객이 미술관에 다녀와 소셜 네트워크에 남긴 짤막한 감상, 작가가 작품 제목에 담은 뉘앙스 등이 모두 미술관의 데이터로 활용된다.

감정, 의견 분석을 통해 관람객 친화적 미술관으로 거듭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확장 공사를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인파.

얼마 전 <아트나우> 다음 호 특집 주제를 정하기 위해 피처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의 관심사와 성향이 드러나는 여러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주제를 좁혀가던 중, 선배 에디터가 고심 가득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미술관에서 이런 경험, 한 적 없어요? 평소 좋아하던 작품인데, 그날 따라 기분 탓인지 작품이 너무 별로인거예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선배의 변은 이랬다. 분명히 지난번에 본 작품인데도, 그날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지 작품에 적잖이 실망했다고. 작품은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우리는 저마다 “뭐든 기분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철학적인데요?”라며 의견을 냈다. 선배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관람객의 컨디션이나 기분이 작품 감상에 영향을 미친다면, 반대로 작품의 컨디션도 최상이어야 관람객이 작품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였지만, 당시 미술관의 ‘감정 분석(sentiment analysis)’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에디터는 “기분이 안 좋으니 작품도 안 좋아 보인다”는 선배의 말에 완전히 꽂혔다.
몇 해 전, 해외 미술관이 감정 분석을 활용해 미술관의 방향성을 정하고 방문객 수를 늘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는 단신을 접했다. 감정을 분석한다는 말이 꽤 흥미로워 관련 자료를 찾아봤지만 거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선 감정 분석 사례를 종종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정서 분석’이라고도 불리는 감정 분석이 브랜드 마케팅에 사용될 때는 ‘의견 분석(opinion mining)’ 개념에 더욱 가깝다. 최근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고급 인공지능 기법과 다양한 알고리즘을 활용해 고객의 반응이나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형태의 마케팅이 늘어난 것. ‘고객이 브랜드의 제품과 서비스에서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지, 고객의 반응은 어떤지 등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주관적 감상과 정보를 식별, 추출한다. 소셜 네트워크나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사람들의 대화나 리뷰를 모니터링해 브랜드와 제품, 서비스에 대한 사회 전반의 정서를 이해하고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다.

1 향후 감정 분석의 영역이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의 ‘Stillness in Motion – Cloud Cities’ 같은 관람객 참여형 작품까지 확장되길 바란다.
2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의 ‘The Refusal of Time’도 제목에 담긴 뉘앙스로 본다면, 감정 분석에서 중립 점수 0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났을 때, 두 정상의 감정 분석 결과가 이슈화 됐다.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 두 정상의 얼굴을 이모션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로 분석, 표정에 나타난 행복지수가 100%에 달한다고 발표했기 때문. 이모션 API는 사진과 동영상 등에서 얼굴 표정을 분석해 분노, 멸시, 혐오, 공포, 행복, 평소와 다름없음, 슬픔, 놀람 등 8가지 감정으로 분류한다. 이를 0점부터 최대 1점까지 소수점 다섯 자리까지 수치화해 결과를 낸다. 이렇게 감정 분석 데이터를 활용하는 분야가 점점 늘고 있지만, 그 어느 곳보다 감정 분석 인터페이스를 도입해야 하는 곳이 바로 미술관이다. 미술 작품 감상은 기본적으로 관람객의 정서와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에 상업적 접근법과는 다른 더욱 섬세한 체계가 필요하다. 미술 분야에서 발 빠르게 감정 분석을 시도한 첫 주자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하 SFMoMA)이다. 애저처럼 얼굴 표정에서 감정을 인식하는 인터페이스와 달리, SFMoMA는 미술관을 찾는 방문객의 관람 패턴, 방문한 날의 날씨, 작품 앞에 머무르는 시간, 작품 제목과 캡션에서 드러나는 뉘앙스 등 작품 감상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행위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관람 트래픽 데이터를 구축했다. 현재 미술관의 감정 분석은 텍스트와 언어에 기반한다. 관람 후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는 리뷰나 코멘트에 담긴 긍정적 . 부정적 방향을 활용하는 ‘의견 분석’이다. SFMoMA는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정서 분석 인터페이스를 구축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으로 관람객의 빅데이터를 활용해온 이들은 2014년엔 스테이먼 디자인(Stamen Design)과 함께 ‘Art + Data Day’를 열어, 미술관의 새로운 API 알파 버전을 공개적으로 테스트하기도 했다. 미술관의 인터페이스는 SFMoMA의 컬렉션에서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별, 제목에 대한 감정 분석 그래프를 작성한다. 이런 감정 분석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작가가 쓴 텍스트(제목과 캡션)에서 주관적 정보를 추출, 제목을 짓는 작가의 감정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조사한다. 그다음 작품을 감상할 때 제목을 보는 관람객의 반응과 의견을 리서치하고 앞서 언급한 애저의 인터페이스와 마찬가지로 수치화해 그래프화 한다. ‘Collection API’라는 이름의 미술관 자체 인터페이스가 작품의 제목, 날짜, 캡션 목록을 가져와 감정 분석 엔진 API에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언어의 문맥에 담긴 뉘앙스를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수치화해 -1과 +1 사이의 양수값 또는 음수값으로 환원한다.
예시가 꽤 흥미롭다. 허버트 바이어(Herbert Bayer)의 포토 몽타주 작품 ‘외로운 대도시(The Lonely Metropolitan)’(1932년)는 ‘외롭다(lonely)’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 때문인지 -0.92로 상당히 부정적 수치를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비토 아콘시(Vito Acconci)의 ‘교실의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 in the Classroom’(1975년)라는 설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0.76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숫자로 나타났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림 ‘고릴라의 두개골(Skull of a Gorilla)’(1957년)이 받은 점수도 기가 막히다. 그의 작품이 시각적으로 어둡고 충격적이기로 유명한 만큼 부정적 숫자가 나올 것이라 예측했지만, 제목이 평범해서 그런지 0이라는 중립 점수를 얻은 것. 감정 분석 시스템이 ‘무제(untitled)’나 ‘시리즈’ 또는 ‘에디션의 숫자’처럼 작품 제목과 캡션에 많이 나타나는 단어를 중립적으로 채점, 숫자 0으로 표현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이렇게 쌓은 자료는 향후 관람객을 늘리기 위한 효과적 방법이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만일 미술관에 들른 내 얼굴을 누군가 수집하는 것은 아닌지, 무심코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 글이 무작위로 통계에 사용되는건 아닌지 걱정된다면, 개인 정보에 대한 걱정은 붙들어두자. 보통 정서 분석을 담당하는 전문가는 따로 소셜 팔로워를 모은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사용해도 좋다는 데 동의한 특정 집단을 활용하고, 소셜 네트워크 이용자 중에서도 개인 정보 활용에 동의한 사람의 데이터만 사용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
현재 SFMoMA에 이어 미국 카네기 미술관과 영국 테이트 모던도 감정 분석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제 관람객 수 같은 단순 수치만으로 미술관의 미래를 예측하긴 어렵다. 요즘처럼 미술관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더욱 넓은 생활 반경 이내로 들어온 시대엔 새로운 혁신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미술 작품이라면 더더욱 섬세한 감정 분석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미술 작품 앞에 선 당시의 감정을 호소하던 에디터의 선배도,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팀원을 설득할 말을 찾지 못한 에디터도 데이터로 감정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