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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차가 좋아

LIFESTYLE

남자 넷이 모였다. 나이와 직업과 개성이 제각각이다. 그런데 마치 오랜 시간 교류를 쌓아온 절친 같다. 관심사와 취미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그중에서도 1980~1990년대를 풍미한 올드 카가 그들의 수다 속 도마 위에 올랐다.

배한성 (성우,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60대 후반)
BMW 320 1989년식 쿠페와
1992년식 컨버터블

배한성의 BMW 320
블루 니트 톱은 Theory, 블루 체크 패턴 슈트는 Missoni.

그들만의 올드 카 이야기
장진택 이재룡 이사님은 시트로엥 XM도 갖고 계신다고요? 시트로엥은 디자인이 참 멋진 차라고 생각해요. 국내에 XM 모델이 들어올즈음 대우자동차에서 에스페로라는 모델이 나왔는데 생긴 게 비슷하다는 이유로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어요. 시트로엥을 디자인한 회사(이탈리아의 베르토네)에서 에스페로 디자인을 맡았거든요.
이재룡 신기한 게, 콜벳은 젊은 사람들만 쳐다보는 데 반해 시트로엥 차를 타고 나가면 어린 학생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 다들 예쁘다고 한마디씩 해요. 더 인기가 많죠. 1996년식임에도 디자인이 현대적이고 유니크한 프랑스 감성을 지닌 데다, 샴페인 골드 컬러라 근사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 같아요.
김동선 전 포르쉐 911을 워낙 좋아해요. BMW M3는 500대 한정 생산 모델로 204번째 플레이트가 달린 빨간색 차고요. 올드 벤츠는 벤츠의 첫 12기통 모델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탔다고 해서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모델이죠. 구입 후 3~4년간 수리비가 구입 가격의 3배 정도는 든 것 같아요.
배한성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외화를 많이 보며 자랐어요. 1950~1960년대는 국내 도로에서 자동차를 찾아보기도 힘들던 시절이라 영화 속 차를 보며 마치 보석이 굴러다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어요. 어린 나이에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에펠탑이나 베르사유 궁전, 자유의 여신상은 아무리 명물이어도 여행지에서 보기만 하고 살수 없는 것이지만, 외국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언젠가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얼마든지 구입해 타고 다닐 수 있다고 말이죠.
장진택 10여 년 전 배한성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땐 올드 카를 여러 대 갖고 계신 걸 보고 이해하지 못했어요. 왜 새 차를 안 사고 이런 고물 차를 타나 생각했죠.
배한성 차를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때가 1970년대인데, 그 당시 우리나라를 찾은 어느 외국인이 도로 풍경을 보고 ‘포니의 나라’라고 했을 정도로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포니가 많았어요. 조금 과장해 여기저기 온통 같은 차가 굴러다닐 정도였죠.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는 목소리로 연기하며 매번 크리에이티브하게 변화해야 하는 직업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 그 획일성이 못 견디게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런 나에게 다양한 디자인을 갖춘 외국 브랜드의 차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인지 1980~1990년대에 나온 올드 카에 더 애정이 가요.
김동선 저도 1980~1990년대 차가 좋아요. 훨씬 매력적이에요. 요즘 고성능 스포츠카인 페라리 458 스파이더 같은 모델은 많은 이들이 흠모하는 드림카 중 하나지만, 올드 카만큼 가슴이 뛰진 않더라고요.

김동선 (㈜크레스라이트 대표이사, 40대 후반) 공랭식 엔진 시절의 포르쉐 911 올드 모델 3대.
1994년식 964 스피드스터, 1993년 911 ‘탄생’ 30주년 기념 모델로 나온 964 주빌리
그리고 마지막 공랭식 엔진 모델인 1998년식 993 터보.
BMW M3 230 모델 1988년식,
1990년대에 나온 벤츠 세단 W140 S600

김동선의 포르쉐 964 스피드스터
레드와 블루의 테터솔 체크 슈트 Fay, 화이트 셔츠 Ist Kunst, 선글라스와 워치는 본인 소장품.

가치를 소유하다
김동선 갖고 있는 차를 팔면 다시 갖고 싶을 때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쉽게 팔지 못해요. 그래서 자주 타지 않아도 갖고 있죠. 주위에선 “관짝 하나 또 들여놨구나”라는 말까지 해요.(웃음) 993 터보가 국내에 그나마 10대 정도 있어요. 나머진 1~2대밖에 없고요. 희소성이 높아 가격도 어마어마하게 오르고 있어요.
장진택 올드 포르쉐는 요즘 중국인도 많이 산다고 해요. 다시 만들 순 없는데 수요가 많아지니 가격이 엄청 뛸 수밖에 없죠.
김동선 롤스로이스 팬텀 같은 슈퍼 럭셔리 카를 가진 중국인 부호의 시선이 클래식 카로 옮아가고 있죠. 그래서 일본이나 미국에서 열리는 옥션에서 고가로 구입하기도 해요. 주요 고객 중 독일인이 많은데, 구입한 차를 독일로 가져가 복원한 후 중국에 파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장진택 한동안 중국에 미술품 컬렉팅이 붐이었잖아요. 그런데 최근엔 자동차에 투자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1970~1980년대 작가의 판화 작품보다 벤츠 300SL 같은 올드 카를 사는 게 가치 있다고 여기는 추세예요. 실제로 2006년 독일에 취재 갔을 당시 300SL 걸윙 모델 가격이 8억 원이라고 들었는데, 2년 후 2008년에는 10억 원이더라고요. 1년에 1억 원씩 오른다는 관계자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던 거죠.
이재룡 올드 카 마니아는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아요. 올드 카 원형을 그대로 갖고 있다 몇 년 후 가격이 오르면 팔려고 하는 부류, 또 하나는 오래 소장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죠. 후자는 법규에 맞지 않아 번호판을 달지 못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나는 소장하기 위해 올드 카를 구입하는 쪽인데, 그러면서도 반드시 내가 평소에 편하게 타고 다닐 수 있어야 해요. 이를테면 오늘 촬영한 콜벳의 오버 펜더(over fender)와 광폭 타이어도 원형 모델에 있던 게 아니라, 그 후 모델의 모습을 적용한 거예요. 3단짜리 미션도 5단으로 바꿀 생각이에요. 연비도 안 좋을뿐더러 시끄럽거든요. 전 올드 카를 처음 구입하려는 이들에게 너무 투자가치로만 차를 고르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이재룡 (수도중학교 이사, 50대 초반)
콜벳 1978년식, 1996년식 시트로엥 XM,
1995년식 스타크래프트 밴

이재룡의 콜벳
구조적 패턴의 그레이 맨투맨 톱 Juun.J. 데님 플랫폼 스니커즈 Dsquared2. 데님 팬츠와 선글라스, 시계는 본인 소장품.

감성과 추억은 비슷하게 적힌다
배한성 중학교 시절 쓰던 일기 끝 부분에 꼭 자동차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지금도 1분 만에 자동차를 그럴듯하게 스케치해요. 어릴 적부터 키운 꿈이었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내가 딱 그러네요.
이재룡 저도 비슷한 기억이 있어요. 중학교 시절 자동차 그림을 많이 그렸거든요. 오늘 촬영한 콜벳 3세대 모델은 어릴 적 살던 이촌동에서 처음 봤어요. 처음 본 날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 차 앞에서 매일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차주인 장교가 한번 태워준 기억이 나요. 그때 절실한 소원을 품었죠. 어른이 되면 이 차를 꼭 사리라! 그러다 진짜 갖게 됐어요.
장진택 저는 어릴 적 관심이 직업으로 발전한 경우예요. 대학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 후 기아자동차에서 카 디자인을 했고, 자동차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니까요.
김동선 세 분과 달리 전 그림에 별로 소질이 없어요. 그렇지만 어릴 적 보던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의 잡지에서 매번 컬러 화보로 실린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 등의 자동차 사진을 뜯어 방에 붙여놓곤 했어요. 1970년대 초반에 나온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를 보고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죠.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 다양한 차를 경험해보니 나에게 맞는 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0년 즈음 처음 나온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도 운전해봤는데, 나에겐 즐기기보다 바라보기에 더 좋은 차인 것 같아요.
배한성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관련한 일화가 있어요. 처음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1967년식 머스탱을 갖고 갔대요. 진짜 귀한 모델이죠. 그 차는 청년 클린턴에게 드림카였어요.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모아 그 차를 샀고, 직접 세차하고 관리한 추억이 깃든 소중한 차였죠.
김동선 올드 카를 좋아하는 사람은 독특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얼마나 빠르냐보다 내 차가 얼마나 멋지게 달리느냐가 중요한 관건이죠. 2006년 당시 신형으로 나온 997 카레라 S를 산 적이 있어요. 그때는 운전대만 잡으면 보통 250km/h를 찍던 시절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 스피드는 관심 밖으로 사라지더라고요. 그러다 언젠가 지방의 와인딩 도로를 달려본 후 생각이 바뀌었어요. 차의 감성 그 자체를 느끼는게 훨씬 좋아요. 창문 열고 계곡에서 울리는 소리도 듣고.
배한성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일화도 들려주고 싶네요. 그의 포르쉐 사랑은 유명해요. 꿈의 차인 포르쉐를 구입했는데, 본인이 운전하지 않고 친구에게 운전해달라고 한 뒤 택시를 타고 그 차를 쫓아가며 즐겼대요. 자신이 운전할 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죠.
김동선 그 심리를 이해할 것 같아요. 993 터보의 머플러를 교체했을 때예요. 주위에선 더 좋아졌다고 하는데, 정작 운전하면서 잘 못 느끼겠더라고요. 911은 엔진을 뒤에 배치해 배기음도 뒤에서 나니 속도를 내다 보면 잘 안 들리거든요. 그래서 그 사운드를 듣기 위해 후배와 차를 바꿔 탄 경험이 있어요.

장진택 (카미디어 대표, 자동차 전문 기자, 40대 초반)
메르세데스-벤츠 190E

장진택의 메르세데스-벤츠 190E
그래픽적 프린트의 블루 맨투맨 톱 Juun. J, 코트와 화이트 셔츠, 데님 팬츠, 뿔테 안경과 슈즈는 본인 소장품

기다림의 미학
배한성 내 아내는 올드 카를 못 타요. 고장 날까 봐 두렵다고 하더라고요. 올드 카를 좋아하는 나와 아들을 두고 ‘고장 나는 걸 즐기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곤 하죠.(웃음)
김동선 확실히 그걸 이해 못하면 올드 카를 즐길 수 없어요. 전 올드 카를 소유한 후로 인내심이 생겼어요. 고장 난 후 바로 고치기 힘드니까요. 한 달 걸려도 빠른 거죠. 그나마 포르쉐는 클래식 카를 위한 엔진오일이나 현대적 장치도 계속 선보이고 있어요. BMW M3를 처음 구입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레이싱 튜닝이 되어 있어서 작은 요철을 지날 때도 충격이 느껴질 정도로 딱딱했어요. 그래서 복원하려고 부품을 알아봤죠. 해외를 여기저기 뒤져도 작은 보조 장치인 왼쪽 스트럿 바를 구할 수 없는거예요. 그러다 다행히 BMW에서 가능하다했고, 주문한 후 1년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어요. 결국 1년하고도 수개월이 지난 후 고칠 수 있었죠. 관리나 복원하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올드 카를 소유하기 힘들어요. 경제적 여건과는 별개로, 시간에 대한 인내와 마음의 여유가 반드시 필요해요. 고장까지 즐기는 마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장진택 전 직업의 특성상 몇 달 사이에 쏟아져 나오는 신차를 타볼 기회가 많아서 올드 카로 쉽게 관심과 흥미가 넘어온 게 아닐까 싶어요. 매일 타진 않지만, 올드 카를 타면 속도를 내는 대신 천천히 달리며 주변 광경을 살피게 되고…. 정신 수양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배터리가 금세 방전될 때도 있고 갑자기 고장 날까 봐 조마조마한 적도 있지만, 이 차만큼은 오래 갖고 있고 싶고 나중에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김동선 국내에서도 올드 카 마니아를 위해 법규가 좀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전 세계에서 환경 관련 규제와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기준이 가장 엄격한 도시인 캘리포니아에도 클‘ 래식 태그(classic tag)’라는 게 있어요. 나온 지 28년 정도 지난 올드 카에 부여하는 태그예요. 그 태그를 받은 올드 카엔 일반 신차보다 오래되어 매연 수치가 기준을 넘어도 좀 더 느슨한 법규를 적용해주죠. 국내에도 그런 게 있어야 올드 카 문화가 좀 더 활성화되고, 자동차 산업이 훨씬 다양하고 풍부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안지섭  의상 스타일링 정새미  헤어&메이크업 이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