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가 아니라도 괜찮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상인 오스카상(혹은 아카데미상). 평단의 지지를 받던 영화가 후보에서 빠지는 일도 흔하다. 우리가 마음으로 초대하는 작년의 영화와 연기.

작품상
<로건> 슈퍼히어로 장르를 작품상 후보로 올리려 했다면 올해가 기회였다. <로건>은 가장 위대한 마블 무비다. <엑스맨>으로 구축한 울버린의 전설은 부정되고, 서부극의 신화가 들어서며 로건은 마치 예수 같은 인물이 된다. 영화는 슈퍼히어로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그 희생 위에서 제 갈 길을 가는 자식 세대를 보여준다. 감정적 울림과 장르적 충만감 그리고 캐릭터의 힘이 극도의 시너지를 낸 걸작이다. 김형석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영화는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각계의 운동이 절정을 이룬 미국 사회를 문화적 레퍼런스의 재기 발랄한 설정으로 바라보는 비범함을 갖췄다. 예컨대 바비 릭스가 최초의 페미니스트 시트콤 <메리 타일러 무어 쇼>를 보다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돌리는 장면은 그의 심리적 명분을 유쾌하게 함의한다. 김효정
<고스트 스토리> 이 영화는 명백하게 태국 감독 아피찻뽕 위라세타쿤과 대만 감독 차이밍량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죽음, 그 윤회(輪廻)에 대한 동양적 사고(思考)를 서양적 정서로 풀어낸다. 지난해에 나온 작품 가운데 서정성이 가장 뛰어나고, 또 특이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오동진

감독상
<윈드 리버>의 테일러 셰리던 배우로 시작했지만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시나리오를 써서 세간에 충격을 주고 <로스트 인 더스트>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른 그는 첫 연출작 <윈드 리버>에서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서 있었던 실화를 토대로 영화는 사회적 고발, 드라마의 진정성, 배우의 호연, 스토리텔링의 완급 조절이 어우러진 비범함을 내보인다. 김형석
<올 더 머니>의 리들리 스콧 <올 더 머니>는 로케이션 촬영과 공간 속에서 동선을 고안하는 기술 등 리들리 스콧의 전매특허가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82세의 스콧은 네 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아직도 감독상을 받지 못했다. 걸작만 10편 이상 연출한 스콧의 무관 행렬은 불행을 넘어 미스터리에 가깝다. 김효정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드니 빌뇌브 1979년 리들리 스콧이 만든 작품에 ‘2049’라는 숫자를 더해 다시 한번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창조해냈다. 전작 <컨 택트>에 이은 또 한 편의 SF 철학 에세이로 인간 존재의 근원을 궁금케 한다. 사유하는 SF 연출은 도통 쉽지 않다. 오동진

1 <23 아이덴티티>의 제임스 매커보이 2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의 스티브 커렐 3 <윈드 리버>의 제러미 레너
남우주연상
<23 아이덴티티>의 제임스 매커보이 부드럽고 유약한 이미지의 제임스 매커보이가 삭발을 감행하고 <23 아이덴티티>에서 보여준 연기는 그저 그런 버라이어티쇼가 아니다. 그는 정말 미친 사람으로 보였고 헤드윅이 되어 감전된 사람처럼 도리도리 춤추는 장면만으로도 아카데미상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릴 법했다. 판에 박힌 사이코도, 흔해빠진 살인마도 아닌, 수시로 바뀌는 아이덴티티를 통해 시종일관 관객을 긴장시킨 이 영민한 배우는 ‘비스트’라는 초월적 존재를 열망하며 말 그대로 야수로 변해간다. 2019년 나오는 속편 <글래스> 때는 아카데미가 응답하길. 김형석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의 스티브 커렐 바비 릭스를 100% 가깝게 재현한 스티브 커렐은 ‘세기의 연기’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코미디언 출신 ‘희극 배우’라는 라벨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이제 모든 주어진 역할을 뛰어넘는 재능을 가진 배우가 됐다. 이 작품에서 허풍과 광기를 넘나드는 한물간 스포츠 스타, 바비 릭스에게 페이소스와 연민을 불어넣은 스티브 커렐. 교만한 릭스의 처사에 분노하면서도 영화 말미에서 코트장을 떠나는 처연하고 안쓰러운 모습에 계속 눈이 가는 것은 온전히 스티브 커렐의 힘이다. 김효정
<윈드 리버>의 제러미 레너 몬태나 북부 인디언 보호구역의 대설원을 누비는 밀렵꾼 역할, 과거 딸을 잃은 상처를 소금에 절이듯 참고 인내하며 살아온 무표정한 내면 연기가 좋다. 요즘 이 배우를 좋아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는 점에서 특히. 적어도 후보에 오르기엔 충분했다. 오동진

4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의 에마 스톤 5 <아토믹 블론드>의 샬리즈 시어런 6 <마더!>의 제니퍼 로런스
여우주연상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의 에마 스톤 한마디로 운이 좋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작년에 오스카를 거머쥔 후 올해까지 스포트라이트를 기대하는 건 과욕일 테니. 에마 스톤은 실화의 전형적인 드라마 연기에 머물지 않는다. 남성우월주의와 이성애 중심주의에 동시에 맞서서 고독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여성으로 현신한다. 똑 부러지는 야무진 연기가 주특기였던 스톤은 여기에 하나의 미덕을 더한다. 영화 전체를 감싸는 여유로운 감성의 눈빛이다. 어쩌면 그는 작년에 오스카를 선불로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올해야 비로소 진정한 ‘오스카 위너’가 된 느낌이다. 김형석
<아토믹 블론드>의 샬리즈 시어런 아카데미는 보수적이다. 특히 형평성 면에서는 더욱더. 매년 시상식을 둘러싸고 젠더와 인종적 이슈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또 하나, 아카데미는 액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액션 영화에서 열연한 배우가 수상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아토믹 블론드>에서 샬리즈 시어런이 보여준 연기는 액션의 가치 이상의 것이었다. 특히 그가 작은 아파트에서 악당과 7분 동안 벌이는 현란한 롱테이크 액션은 세대에 걸쳐 회자되는 전설이 될 것이다. 김효정
<마더!>의 제니퍼 로런스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경악스러울 만큼 난해한 시나리오를 독해해낸 수준이 뛰어나다. 패러노이드에 빠진, 히스테릭한 연기를 이 정도로 해낸다면 상을 타기에 모자람이 없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이미 한 차례 수상한 경력이 걸림돌이 됐을 듯. 오동진
2018년 개봉 기대작 (가나다순)
<마약왕> 송강호가 연기하는 한국판 파블로 에스코바르(콜롬비아의 마약왕이자 화제의 미드 <나르코스>의 주인공)를 기대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감독은 <내부자들>의 우민호다. 그가 보여준 질척한 비리의 온상이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할지 궁금하다.
<미션 임파서블 6> 쉰다섯 살 된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마지막 편이 될 듯한 작품인 데다 레베카 퍼거슨이 다시 나온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여배우, 실로 섹시하도다.
<보헤미안 랩소디> 퀸의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전기 영화. 그의 폭발적인 퍼포먼스가 부활한다.
<신과 함께 2> 속편도 ‘1000만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번 주인공은 마동석이다!
<안시성> 오랜만에 만나는 사극 대전투 서사극이다. 안시성 오픈 세트를 어떻게 구현해냈을지, 대규모 몹신이 어떻게 펼쳐질지, 한국 영화의 테크놀로지가 또 한번 ‘격상’될 것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오션스 에이트> 모두가 기다려온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작품이자 세 번째를 맞는 오션스 프랜차이즈 작품. 샌드라 불럭,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다코타 패닝, 킴 카다시안 등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여배우 8명이 출연한다.
<인랑> 오시이 마모루의 그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김지운 감독이 어떻게 ‘조리’해냈을까.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낸 <공각기동대>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된다. 뭣보다 김지운이 너무 좋아!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글 김형석(영화 평론가), 김효정(영화 평론가), 오동진(영화 평론가)
사진 제공 더 쿱, 롯데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유로픽쳐스, 판시네마, 20세기 폭스 코리아, UPI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