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디자인하다
파리 올림픽을 위해 우아하고 세련된 디테일을 구현해낸 두 디자이너와의 대담.

평화를 그리는 곡선, 마티외 레아뇌르
2024 파리 올림픽 성화봉을 탄생시킨 세 가지 키워드는 평등(equality), 흐르는 물(fluidity), 평화(tranquility)다. 프랑스 산업 디자이너 마티외 레아뇌르(Mathieu Lehanneur)는 자연에서 받은 영감으로 유기적인 동시에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성화봉 역시 와인병이 연상되는 유려한 곡선에 키워드 중 ‘평등’을 상징하는 완벽한 상하 대칭이 특징이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위 절반은 무광택 마감을, 아래는 반짝이는 반사 마감 처리했다. 움직이는 파도를 연상시키는 입체적 곡선의 텍스처를 반영해 성화 봉송자가 손에 쥐었을 때 안정적 느낌을 준다. 상단 윗부분의 세로로 파인 홈은 성화봉이 이동하며 불꽃이 바깥쪽으로 빠져나와 깃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으로, 불꽃으로부터 색이 변하지 않도록 하이테크 코팅을 더했다. 이런 기술력을 모두 담은 성화봉은 1만 개를 생산하던 이전 올림픽의 관행을 깨고 새로운 정책에 따라 100% 재활용 철강으로 2000개만 제작해 재사용할 예정이라 친환경 올림픽의 선례 또한 구축 중이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1만 명의 성화 봉송자들이 연이어 운반하는 성화는 8월 11일 올림픽 경기가 끝난 후 8월 28일 패럴림픽 대회 개막을 위해 1000명의 성화 봉송자에 의해 또 한 번 성화대로 향하게 된다.
지난해 7월 성화봉 디자인 발표 이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점점 고조되는 올림픽에 대한 관심만큼 성화봉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체감하고 있어요. 스케줄은 꽉 차 있지만, 현장 분위기를 직접 느끼며 매 순간 즐기려고 노력 중입니다. 코르시카에서는 직접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했는데,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평등, 흐르는 물, 평화라는 세 가지 키워드 중 가장 중점을 둔 단어는 무엇인가요? 평등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자 철학입니다. 프랑스 국가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이 세 단어의 국가 이념을 성화봉, 성화 봉송 성화대, 올림픽 성화대에 하나씩 적용했습니다. 성화봉이 ‘평등’을 바탕으로 한다면 봉송 기간 동안 여정을 따라다니며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고리 형태 성화 봉송 성화대는 ‘박애’를 의미해요. ‘자유’라는 키워드는 올림픽 성화대를 위해 사용했죠.
키워드는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지정한 것인가요? 전권 위임(카르트 블랑슈) 격의 디자인 의뢰를 받았기에 키워드 또한 제가 정할 수 있었어요. 처음 의뢰받고 2024 파리 올림픽에 대한 자료를 읽으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참가 남녀 선수의 비율이 동일하다는 점 등을 통해 ‘평등’이 중요한 철학임을 깨달았죠. 평등이라는 개념을 사물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 결과 지금의 디자인이 탄생했습니다.
제작 과정 중 기술적 측면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버너, 가스통을 포함해 불이 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평등, 물, 평화라는 추상적 개념에 담아내는 것이 어려웠어요. 전통적 디자인의 성화봉을 보면 아래가 좁고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인데, 불이 켜지는 윗부분에 모든 기술적 엔진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 성화봉의 경우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디자인이라 불이 제대로 켜지고 유지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어요.
7월 26일에는 오르세 뮤지엄 테라스에서 30명의 게스트와 함께 개막식을 관람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호스트 입장에서 이 공간을 직접 꾸미기도 했다고요. 이날 특별히 준비한 이벤트가 있나요? 직원들과 함께 테라스 전체 인테리어를 마쳤고, 여기에 성화봉을 포함한 작품 몇 점을 전시할 예정이에요. 에어비앤비에서 이 행사를 계획하고 초대했을 때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환상적 뷰와 센강이 바로 앞에 펼쳐지는 만큼 개막식을 경험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장소는 없으니까요.
올림픽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긴 여정이었죠. 폐막식 이후 기분이 어떨 것 같나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복잡하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해야 했는데, 감사하게도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무한한 자유와 믿음을 주었어요. 이런 특별한 프로젝트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허전하고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까다로운 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해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되었다는 점이 자랑스럽고 뿌듯할 것 같아요.

놀라운 디테일 세계, 위고 가토니
이번 올림픽 포스터는 발표되자마자 화제를 불러 모았다. 로고와 마스코트를 보여주던 전통적 방식을 탈피해 만화 혹은 숨은그림찾기를 권하는 듯한 일러스트레이션이 파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에르메스 스카프 작업으로 친숙한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위고 가토니(Ugo Gattoni)는 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받고 아이디어를 스케치에 반영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오륜기 등 상징적 그래픽부터 프랑스와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 많은 경기 종목, 센강의 개회식, 평등의 가치, 마르세유에 도착하는 성화봉 등 파리 올림픽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풍부한 디테일을 담은 포스터가 6개월의 작업 끝에 지난 3월 4일 오르세 미술관에서 발표되자 전 세계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시대에 부합하는 디자인과 독창성, 과거 공식에서 탈피, 올림픽과 패럴림픽 대회를 구분하지 않고 한 장에 담아 평등 정신을 일깨운 시도까지, 모든 요소가 파리 올림픽을 향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2024 파리 올림픽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포스터에 들어갈 내용이 너무 많아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동안 해오던 작업과 달리 대중을 상대로 한 프로젝트인 만큼 내 스타일을 배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원하는 방향대로 작업이 이루어졌고, 생각한 부분이 100% 반영되어 무척 기쁩니다.
과정 중 기술적·심리적으로 힘든 순간이 있었나요? 포스터는 한 장이지만, 이를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어요. 지난해 여름 처음 의뢰받고 한 달 후인 9월에 첫 번째 스케치를 선보였죠. 이후 약 2주간 열 번가량 수정이 이루어졌고, 9월 19일 최종 스케치가 결정된 후 정확히 4개월간 약 2000시간을 투자해 2024년 1월 19일 작업을 완성했어요. 포스터 설계를 위해 아카데믹한 드로잉을 주로 했던 첫 달 이후에는 데드라인을 생각하느라 주말과 크리스마스 휴가도 반납했습니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스튜디오에 도착해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작업했죠. 다음 날 그릴 그림을 생각하느라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고, 손에는 마비가 올 정도였어요.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푹 빠져 작업했고, 완성된 결과물이 곳곳에 활용되는 것을 보니 뿌듯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포스터가 공개된 후 받은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에르메스 스카프의 경우 작업 후 1년 정도 지나야 제품으로 출시되지만, 이번에는 완성하자마자 대중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신선했습니다. 비평을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들조차 포스터 안으로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소감을 들었을 땐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올림픽이 열리는 8월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 예정인가요? 당연히 파리에 남아 개막식은 물론, 몇몇 경기를 관람할 계획입니다. 이미 콩코드 광장을 포함한 많은 지역이 경기장으로 변신했는데, 올림픽 기간에 파리가 어떻게 변화할지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싶어요.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글 양윤정
사진 임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