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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얼굴

ARTNOW

역대 올림픽 엠블럼을 살펴보며 현대 올림픽 게임의 역사를 시각화하다.

1 1896년 아테네 올림픽 포스터.   2 1908년 런던 올림픽 포스터.   3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포스터.   4 1924년 파리 올림픽 로고.   5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로고.   6 1924년 파리 올림픽 포스터.   7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 엠블럼을 담은 공식 포스터 중 하나.

1896년에 시작한 올림픽을 시각화 차원에서 되돌아보면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변곡점이 나타난다. 올림픽 게임이 현대화의 추동과 함께 탄생, 전후 현대사회의 번영을 이끌고 탈전지구화 시대의 불안정한 오늘과 함께해왔으므로 어쩌면 하나 마나 한 당연한 소리가 되겠다. 작년에 전설적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가 역대 주요 올림픽 로고에 점수를 매기며 촌평한 웹진〈AIGA〉의 아티클이 온라인상에서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그의 평가 기준은 다소 일면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1924년 파리 올림픽부터 로고를 제작하기 시작했지만 이전에도 시각화 기제는 존재했다. 또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전에는 올림픽 게임을 하나의 총체적 스펙터클로 통합, 연출한다는 아이디어가 부재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이상을 되살려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한다는 발상은 애초에 문화 예술계에서 먼저 나타났다. 체육계는 그 뒤를 따른 것으로 1896년 아테네 올림픽 포스터가 그 점을 직설적으로 잘 나타냈다. 1908년 런던 올림픽 포스터엔 고대 그리스의 이상을 현대적으로 구현해낸 스포츠맨이 처음 등장했고,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의 포스터는 그리스 조각상과 같은 이상적 육체를 지닌 현대적 스포츠맨을 제시했다. 사실 1924년 파리 올림픽의 로고는 안이하고 지루한 접근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1912년 올림픽을 대표하는 오색 오륜 심벌을 디자인, 1914년엔 오륜기를 제작해 널리 활용한 당시는 아직 로고의 기능을 중시한 때는 아니었다. 오히려 파리 올림픽 로고보다는 포스터의 경례 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바닥이 보이도록 팔을 쭉 뻗어 올리는 이 경례법은 로마식 경례를 변형한 보편적 보디랭귀지로 사용됐지만, 독일의 사회주의자가 이를 차용한 탓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금기시되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로고는 주경기장의 올림픽 종과 고공의 종탑을 물신화해 그 안에 독수리를 그려 넣었다. 세계 인민의 시선을 주경기장으로 모으고 그 소실점 가운데 하나를 종탑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안한 로고인 것. 즉 유럽 통일이라는 나치의 비전을 내세운 정치적 디자인으로 당시엔 효과적 프로파간다로 작동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 로고는 시각적 정체성을 팝적 감각으로 확장해 호평을 받았다. 또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법한 로고는 1968년 멕시코시티와 1972년 뮌헨이다. 그래픽 요소를 부각한 간결한 로고는 여느 회사나 브랜드의 로고와는 달랐다. 하지만 육상 경기 트랙을 연상시키는 멕시코시티의 로고나 옵아트적 성격이 도드라지는 뮌헨의 로고엔 묘하게도 사이키델릭한 코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뮌헨 올림픽 로고에 담긴 소실점의 이미지와 회전하며 상승하는 나선 구조는 모더니스트 특유의 가치관을 대변한 것으로, 다시 말하면 모더니즘의 종언을 예고한 것처럼 독해하기도 한다.
반면, 1980년대의 키워드는 냉전과 체제의 대결이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의 대결은 흥미진진했다. 둘 다 제국주의적 면모를 제국주의적 어법에서 벗어난 언어로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1980년 모스크바는 세계의 힘이 붉은 별을 향해 집결하는 로고를 제시했고, 1984년 LA가 성조기의 별을 앞세워 사회주의적 붉은 별을 아메리카나 이미지로 희석하려 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로고도 그 연장선에 있다. 삼태극을 육상 경기 트랙처럼 제시한 효과는 미미했지만 세계 화합의 이미지를 드러내기엔 충분했다. 2028년에 다시 올림픽을 치르는 LA는 과연 로고 디자인에서 어떤 전략을 취할까?
올림픽 로고 자체의 문법이 포스트모던화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최초다. 종이를 찢어 만들거나 프리핸드 드로잉으로 그린 것 같은 로고는 새로운 탈냉전 시대에 부합하는 신선한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바르셀로나 출신 예술가 호안 미로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땄다는 걸 모르고 보더라도 대단히 멋져 보였고 기하학적 모더니즘과도 결별한 것 같았다.

8 1972년 뮌헨 올림픽 로고.   9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로고.   10 1984년 LA 올림픽 로고.   11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로고.   12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로고.   13 2020년 도쿄 올림픽 로고.   14 2012년 런던 올림픽 로고.

2006년 베이징처럼 민족주의 단체를 거쳐 현대 국가를 건설한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릴 때는 대체로 로고에 자국의 전통을 담아내려는 충동을 드러낸다. 하지만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시드니나 밴쿠버처럼 딱히 표상으로 내세울 만한 요소가 없으니 평범해지거나 아니면 거꾸로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로고는 포스트모던 방식으로 이누이트족의 토템 조각상 이눅슈크를 형상화했는데, 이누이트 전통을 잘못 해석했다며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로고는 보수적인 런던인의 반감을 샀다. 1980년대의 포스트모던 그래픽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형태와 다소 키치적인 초기안의 화려한 색상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로고를 홍보하는 TV 광고 영상을 본 일부 간질 환자가 발작 증세를 보여 비난 여론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디자인 회사 울프 올린스가 만든 이 숫자 로고는 대중의 거센 비판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는 점에서 올림픽에도 21세기적 노이즈 마케팅이 통한다는 점을 입증했다.
다가오는 올림픽도 연이어 엠블럼을 발표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로고는 디자이너 하종주가 한국의 문자인 피읖과 치읓으로 기단과 눈송이를 표상해냈다. 반면, 2020년 도쿄 올림픽ㆍ패럴림픽 경기 대회 조직위원회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표절 논란 끝에 엠블럼의 원안을 파기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택했다. 디자이너이자 도쿄 조형대학교 객원교수인 도코로 아사오가 디자인한 새 로고는 일본의 바둑판 격자무늬인 이치마쓰모요를 테마로 삼았다는데 역시 핑계에 불과하고, 그저 20세기 전후 모더니즘의 문법을 21세기적으로 재활용한 안전한 디자인으로 보일 뿐이다. 올림픽의 역사에서 탈전지구화 시대의 불안정한 오늘에 부합하는 새로운 로고 디자인 문법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럼 2024년 파리 올림픽은 어떤 그래픽 정체성을 제시할까? 그 사례를 2024년 파리에서 보게 될지 아니면 2028년 LA에서 보게 될지 궁금하다. 혹시 동아시아의 올림픽 3종 세트가 열리는 2018~2022년 구간에 새로운 시각언어가 탄생하게 될까? 동아시아인이 혁신을 주도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임근준(미술ㆍ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