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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여는 첫 작가

ARTNOW

자신의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또 자세히 들여다 보는 관찰자 윤지영의 이야기.

윤지영 1984년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시카고 예술대학 대학원 조각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안과 밖이 있는 조각의 속성을 이용해 우리 외부의 사건과 상황에 영향을 받아 갖게 되는 태도와 상태 등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해왔다.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 4인에 이름을 올리고 전시를 펼쳤으며, 올해 9월 베를린에 있는 다트갈레리(daadgalerie)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올해의 작가상〉전의 첫 전시장을 작가님이 꾸미셨습니다. 우선 공간을 빈틈없이 채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전시에 대한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전시는 최조훈 디자이너와 함께 관람객이 오래 머무르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조성에 목표를 두었습니다. 신작 영상 ‘호로피다오’를 보며 다른 신작에 관한 단서를 찾고, 다시 입구에 있는 작품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았죠. 전시 작품 목록은 신작을 더 잘 보여주는 연결성이 있는 구작을 위주로 이주연 큐레이터, 임나영 코디네이터와 함께 골랐고요. 입구에 걸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의 최초 설치 계획은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탄 관람객, 유모차를 밀고 오는 관람객 등 걸어 들어오는 모든 관람객이 그물과 접촉해 약간 불편하게 지나가도록 유도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최종적으로 긴 전시 기간을 고려하고 많은 관람객과 휠체어 동선을 생각해 한쪽을 더 열어두기로 했죠.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게 불편하기도, 어렵기도 한 일이라는 사실을 입구에 걸린 그 그물 작품을 통해 직관적으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간 한 사람이 외부 상황 혹은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그에 대한 반응에 주목한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개인적 감정을 어떻게 작품화하는지요? 질문이 어렵네요. 감정은 단순히 개인의 내면적 경험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 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내면적 반응이 사회적 관계와 권력 구조에 어떻게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싶은 거죠. 왜,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잖아요.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될 수 있죠. 예를 들면 관계에서 겪는 불편함이나 그로 인해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한 감정처럼요. 그런 질문이나 감정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며 해결되지 않으면, 익숙한 언어를 통해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관람객이 작품을 관람하며 제가 품은 질문을 떠올리길 기대하기도 하죠. 개인이 스스로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그 자신뿐 아니라 사회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불편한 느낌이 들면 그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그걸 일으킨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후 무슨 얘기를 어떻게 작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작품으로, 특히 조각으로 형상화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좀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 조각을 만들기 전에 꼭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대해 글로는 정말 쓸 수 없는가?’ 또 ‘글로 쓰는 것보다 작품을 통해 훨씬 잘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가?’ 같은 질문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각의 특성을 이용해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조각적 우화’라고 불러도 될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조각을 통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싶거나 조각에 관해 다룰 때는 영상을 만듭니다. 그래서 퍼포먼스 영상을 제외한 다른 영상 작품은 주로 이야기를 기반으로 영상을 끌고 가죠. 예를 들면 ‘오죽 -겠, -으면’(2018)이나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호로피다오’(2024)처럼요.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 전경. 사진 CJY ART STUDIO(조준용).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 전경. 사진 CJY ART STUDIO(조준용).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작가님의 조각 작품 표면에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마치 육신을 가진 어떤 생명체처럼 느껴져서요. 전시장에 있는 ‘옐로 블루스’ 시리즈와 ‘–없는 몸’, ‘미, 노’라는 조각 작품에서 그런 인상을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모두 2021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입니다.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드러내는 데 주목했어요. 그걸 뼈와 피부에 빗대어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몰드 메이킹-캐스팅 과정에서 구조를 잡는 뼈 역할을 하는 ‘머더 몰드’인 딱딱한 겉 틀과 유연한 성질의 재료인 속 틀의 상호작용에 주목해 은유로 활용했습니다. 또 저는 피부에 관심이 많아요. 자아의 첫 번째 보호막으로 정신적 경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피부는 단순히 신체 외형의 일부를 넘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인식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장이기도 하고요. 경계인 동시에 정체성이 드러나는 요소로서, 피부는 단순히 물리적 표면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층위와 함께 고민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작품명과 캡션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화두를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작품을 보고 작품명을 읽은 후 그다음을 상상하게 하신 것 같은데, 제목은 보통 어떻게 짓나요? 작품을 만들고 나면 제목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요.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전시에 올리고 나서 제목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번 제목이 다르게 기록된 작품도 꽤 있어요. 제목과 캡션은 제가 시각언어로 전달하지 않는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왠지 다 아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하나도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어떤 질문으로 남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신작 영상 역시 내레이션, 내용이 굉장히 주효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 작품에서 이러한 텍스트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나요? 보통 저는 내레이션이 중심이 되는 영상을 만드는 것 같아요. ‘호로피다오’는 언젠가 작업 소재로 쓰려고 적어둔 꽤 오래된 이야기부터, 새로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와 자전적 이야기까지 활용해 다양하게 구성했어요. 이를 통해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또 처음 보시는 분들은 작품을 이야기 자체로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반면에 앞서 말한 것처럼 분명히 전달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로 할 수 없을 때 조각이나 퍼포먼스로 작업하죠. 제목과 캡션은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로 만들어두고요. 어찌 됐든 저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질문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것 같습니다.

오금쟁이 위로 다섯치, 거기서 세치 반, 강화 석고, 한방 침, 2021. Photo by Euirock Lee.

저 기 저 위 에 선, 싱글 채널 비디오 인스톨레이션6’ 45”, 2016. Photo by Euirock Lee. © Insa Art Space.

모난절충, PVC 비닐, 액체 라텍스, 직물, 금속, 아쿠아 레진, 버킷, 페인트, 면, 우레탄폼, 유리 깔때기, 베이비 파우더 조각, 600×600×20cm, 2016. Photo by Jaemoo Jo. © Seoul Museum of Art.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 전경. 사진 CJY ART STUDIO(조준용).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언제였나요? 영상 작품 ‘호로피다오’의 한국어 스크립트는 먼저 영어로 번역하고, 다시 그리스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4명의 친구가 내레이션을 해줬어요. 특히 그리스어 번역에 참여한 그리스인 친구는 제 대학원 동기이자 하우스메이트였는데, 막상 아테네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해보니 목소리가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 거예요. ‘보고 싶어’라는 문장을 번역한 그리스어 ‘μου λείπεις [mou leípeis]’를 화난 사람처럼 퉁명스럽게 읽어서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죠. 그러자 어느 정도 감정을 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끼하게 하는 걸 원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웃더라고요. 근데 사실 저희가 통화할 때 서로 보고 싶다고 자주 말하거든요. 그때는 ‘I miss you’라고 영어로 말하니까 아마 모국어로 하는 게 어색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도 확실히 한국어로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건 더 어려울 것 같거든요. 또 제가 친구들한테 본인에게 편한 언어로 우리 관계에 대한 ‘비는 마음’을 왁스 실린더 앞에서 표현해달라고 했어요. 말, 노래, 침묵, 비명도 모두 괜찮다고 했죠. 그때 스페인 친구가 편지를 써 와서 스페인어로 읽었는데, 끝나고 나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는데도요. 그래서 서로 안고 울고 난 후 좀 멋쩍어하던 기억이 있어요. 이번 작업은 확실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응원을 받으며 따뜻하게 진행한 것 같습니다.
새삼 세상을 보는 시각과 마음에 대해 묻고 싶어졌습니다. 일상에서 작가님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질문지를 미리 받고, 너무 어렵게 느껴져 계속 고민하다가 파트너한테 한번 물어봤어요. 그러자 단박에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조개껍데기 구멍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 이번 신작 ‘호로피다오’에도 조개 구멍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구멍 난 조개껍데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 가까이 들여다보니 아무리 봐도 밖에서 뚫린 모양새더라고요. 마치 핸드 드릴로 뚫어놓은 것처럼 보여서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저에게는 아주 익숙한 노래 ‘라라라’도 바로 생각났죠.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조개껍데기를 줄에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 것 같은데 그 구멍을 자세히 보고 이에 대해 찾아보니, 참골뱅이, 맹지고동 혹은 골뱅이로 불리는 큰구슬우렁이가 조개를 꽉 잡고 염산 성분 독을 뿌리면서 톱처럼 생긴, 이빨 역할을 하는 혀(치설)로 구멍을 뚫어 조개의 입을 벌려 잡아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이 살패(殺貝)의 뒷이야기는 모른 채 구멍을 줄에 꿰어 만든 목걸이를 연인의 목에 걸어주는 이야기를 지어, 또 다른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때 조개껍데기에 관한 글을 짧게 하나 써놨고, 수년이 지나 ‘호로피다오’에 담게 됐죠. 이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 궁금해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많은 작품 중에서 ‘윤지영’을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를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 고르는 건 어려울 것 같고, 아직까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달을보듯이보기’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3월 23일까지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도 보실 수 있으니 살펴봐주세요.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작가,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