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안무가로 선정된 이들의 이야기
한국무용의 현재와 미래를 도모하는 국립극장의 ‘2025 안무가 프로젝트’. 올해의 안무가로 선정된 여성 안무가 정소연, 박수윤, 이지현은 각기 다른 주제와 몸짓으로 한국무용의 내일을 묻는다

왼쪽부터 정소연, 박수윤, 이지현 안무가.
국립극장은 ‘안무가 프로젝트’를 매개로 매년 동시대 한국 안무가들의 실험을 무대에 올리며 한국무용의 내일을 탐구하고 있다. 젊은 안무가로서 자신만의 언어를 증명할 수 있다는 점이 이 프로젝트에 특별한 가치를 더한다. 오는 11월 첫 주에 막을 올리는 안무가 프로젝트의 올해 안무가로 선정된 정소연, 박수윤, 이지현은 이번 참여를 ‘도전’이라 표현한다. 무용수가 아닌 안무가로서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마음, 말 대신 몸으로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었던 욕구, 그리고 새로운 무용수들과 호흡하며 작업해보고 싶었던 열망이 그들을 움직인 것이다.
작품 주제 역시 저마다 뚜렷하다. 정소연은 ‘AI’라는, 기존 무용 신에서는 다소 낯선 영역의 소재를 차용했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몸짓으로 가장 혁신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가 안무를 구상하는 첫 질문이었다고 말했다. 전통적 호흡과 품새를 바탕으로 초지능 시대에 인간의 존엄과 질서가 다시 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호기심의 몸짓을 무대 위에 올리는 것. 한국 춤 고유의 메서드가 동시대에도 여전히 지켜야 할 인간다움의 본질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것이 훼손이 아닌 확장되기를 바라는 바람이 정소연의 작품에 깃들어 있다.
박수윤은 죽음을 ‘페스티벌’로 치환해 이야기한다. 과거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경험에서 출발해 죽음을 절망과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과정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그래서 작품 제목도 ‘죽음의 페스티벌’로 명명했다고. 장례식장의 소리와 냄새, 사람들이 나누는 감정과 기억 같은 감각적 경험을 무대 위로 소환하며 관객이 죽음을 축제처럼 받아들이고 삶을 한 단계 더 폭넓게 바라보게 만들고자 한다.
이지현의 출발점은 ‘옷’이다. 두 팔과 다리를 벌린 ‘옷’이라는 글자 형태에서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인간 형상을 떠올렸고, 이러한 시각적 인상을 사회적 틀과 자아 문제로 확장했다. 옷이란 스스로 선택해 입는 정체성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사회가 씌운 가면이 되기도 한다. 옷걸이에 걸린 옷처럼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진 자아, 그리고 진짜 내가 원하는 모습의 갈등을 몸으로 풀어내고자 한 것. 결국 작품은 관객에게 ‘나는 어떤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가 더욱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성 안무가 세 사람을 동시에 무대 위에 세웠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여성 무용가, 안무가의 존재감에 대한 인식 제고의 발판이 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후배들이 나를 보며 더 용기 내어 도전하기를 바란다”는 세 사람의 말이 단순한 참여 소감을 넘어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정소연 안무가는 “성별을 떠나 춤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세 사람은 서로에게서도 많은 자극을 받는다.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가는 선배에게서는 꾸준함과 성숙함의 태도를, 젊은 동료에게서는 에너지와 도전의 용기를 발견한다. “작품이 막혀도 함께 얘기하면 위로가 된다”는 말처럼,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발표 무대가 아니라 연대와 자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저마다 생각하는 춤의 의미를 실현하는 중이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춤을 추지만, 한국무용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는 “의도적으로 기획한 장르가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춤”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시대마다 새롭게 창작되고 전승되어온 만큼 지금 우리가 몸으로 이어가고 변주하는 과정 자체가 곧 미래라는 것이다.
초연을 앞둔 마음은 불안과 설렘이 교차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려는 의지, 협업을 통해 예기치 못한 시너지를 기대하는 마음, 혹은 자신을 몰아붙이던 태도에서 벗어나 작업의 즐거움에 집중하고 싶다는 바람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 사람의 무대가 군더더기 없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미완성 상태임에도 그 자체로 무대에 실존하는 것이 안무가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본질이다. 그들에게 이번 안무가 프로젝트는 단지 한 편의 공연으로 갈무리되지 않는다. 여성 안무가로서 무대 위에 새기는 다짐이자 한국무용이 지닌 가능성을 시험하는 장이 될 테니까.
에디터 이호준(hojun@noblesse.com)
사진 김은지
헤어 안나영
메이크업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