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소리를 찾아서
20년째 엔지니어와 프로듀서의 일을 모두 아우르는 톤마이스터의 길을 걸어온 최진. 그는 연주자와의 음악적 교감을 바탕으로 완벽한 소리를 찾을 줄 아는 진정한 소리 장인이다.

독일어로 소리를 의미하는 톤(ton)과 장인을 뜻하는 마이스터(meister)를 합친 소리 장인 톤마이스터. 클래식 마니아라면 익숙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여전히 톤마이스터는 낯선 직업이다. 톤마이스터는 클래식 음반을 제작할 때 사운드 엔지니어와 레코딩 프로듀서를 아우르며 녹음을 전반적으로 감독하는 사람으로 연주는 물론 음악사, 화성악 등의 음악 이론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학 등 공학 지식까지 쌓아야 하기에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그중 한국인 톤마이스터 최진은 도이체 그라모폰·데카·워너·소니 등 세계적 레이블과 작업하고, 피아니스트 백건우·손열음, 소프라노 조수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클라라 주미 강,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등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가 이렇듯 훌륭한 성과를 내며 톤마이스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휘자인 아버지와 플루티스트인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것도 한몫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들었고,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을 정도로 제게 음악은 공기와도 같았어요. KBS FM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 해설을 하신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많은 음악을 접하고, 무엇이 좋은 소리이며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녹음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다양한 기기로 음악을 녹음하는 것이 제 취미 중 하나였죠.”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톤마이스터와 지휘 공부에 관심을 둔 그는 1997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뒤셀도르프 국립 음악대학 사운드 & 비주얼 엔지니어링학과를 졸업하고, 뒤셀도르프 콘서트홀인 톤할레와 예전 필립스 레코딩 센터인 폴리힘니아 인터내셔널에서 톤마이스터로 활동했다. 2001년 독일인 동료 슈테판 카헨과 이탈리아어로 ‘음악과 항상 함께하라’는 뜻의 셈프레 라 무지카를 설립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핸슬러 레이블에서 나온 존 피오레가 뒤셀도르프 심포니를 지휘한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녹음 프로듀서를 맡은 것이 독일 클래식계에 제 존재를 알린 첫 프로젝트였어요. 당시 제가 스물아홉 살이었는데,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외국인에게 톤마이스터의 일을 맡기는 건 드문 일이었거든요. 좋은 결과물로 인정 받고 싶은 마음에 몇 달간 그 앨범 하나에 매달렸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독일 현지에서도 섬세한 묘사와 생동감 넘치는 녹음을 칭찬하는 긍정적 평가가 잇따랐다. 톤마이스터 최진은 그 후 리처드 용재 오닐의 <브리티쉬 비올라>, 조수미의 <라 프리마돈나>, 정명훈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한 롯데콘서트홀 오프닝 콘서트 기념 앨범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반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엔지니어와 프로듀서의 역할을 아우르는 톤마이스터의 일은 세부적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음반 종류, 아티스트, 오케스트라 등 대략적 구성을 정해 레이블에서 의뢰를 합니다. 톤마이스터의 본격적 업무는 레코딩에 적합한 홀을 찾는 것으로 시작돼요. 그다음 홀의 울림에 최적화한 위치에 마이크를 셋업하죠. 연주회에서는 청중을 고려해 마이크를 무대에 설치해야 하지만 녹음할 땐 객석이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 될 수 있습니다.”
연주자가 오면 사운드 체크를 한 후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경험이 쌓이면 홀의 구조만 보고 마이크 위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그래도 조정 작업은 필수입니다. 10cm를 높이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녹음 준비를 마쳤다면 이제부터는 프로듀서의 역량을 발휘할 차례. 연주자와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보통 300~500회의 테이크를 이어가며 한 곡을 녹음한다. 그 후 녹음한 테이크 중 최적의 결과물을 추려 사운드 밸런스를 조절하는 믹싱, 음반 전체의 톤을 정돈하는 마스터링 작업을 마치면 완성된다. 그중 가장 어렵지만 희열을 느끼는 순간을 묻자 녹음 과정을 꼽았다. “섬세한 감성의 음악가에게 냉철한 조언을 건네고, 끊임없는 수정을 통해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톤마이스터는 연주자의 주관적 해석을 존중하면서도 객관적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리드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한 비법이 있느냐고 묻자 “그런 건 없어요. 연주자의 음악적 성향을 파악하고 교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도 들어본 적 없는 가장 좋은 음악과 소리를 낼 때 정말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죠”라고 말한다.
그래서 톤마이스터는 수백 번의 테이크를 반복하는 엄청난 인내심, 무엇보다 일에 대한 열정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다. “20년 동안 톤마이스터의 길을 걸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에요. 익숙한 홀에서 녹음할 때도 있지만 새로운 장소를 찾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새로운 장소와 레퍼토리, 연주가 어우러질 때 어떤 소리가 흘러나올지 알 수 없거든요. 이런 변수를 고려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간파하고 연주자에게 의견을 전하는 과정을 통해 늘 성장하는 기분입니다.”
그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독일 정부 산하 연구소 프라운 호퍼가 주도적으로 개발한 차세대 오디오 시스템 MPEG-H를 국내에 대중화하는 일이다. “지난 5월 말부터 한국이 세계 최초로 공중파에 MPEG-H를 적용한 4K 고화질 UHD 방송을 시작했잖아요. 그건 단순히 화질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음향도 고음질을 지원한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서라운드보다 공간감 있는 소리를 들려주는 3D 서라운드를 지원하는데 마치 소리에 파묻힌 듯한 느낌을 주죠.
MPEG-H라는 인프라는 구축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라 제가 1년전부터 어떻게 하면 고품질 녹음을 하고 송출할 수 있는지 방송국 엔지니어와 콘서트홀 관계자에게 교육하고 있어요. 국내에 완벽하게 시스템이 자리 잡을 때까지 계속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에요.” 부소니, 제네바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슈만 앨범을 비롯해 현재 작업하고 있는 프로젝트만 10개, 매달 해외 출장을 다니느라 바쁜 와중에도 각별히 신경 쓰는 걸 보니 또 다른 이유가 있는 듯 싶었다. “클래식 음악은 서양에서 시작해 공연장, 녹음 방식 등 모든 것이 그들을 쫓아가기 바빴잖아요. 하지만 집에서도 고품질 사운드를 바탕으로 최정상 연주자들의 공연 실황을 감상할 수 있는 MPEG-H시스템을 통해 점차 클래식 음악계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거라고 믿어요. 궤도에 오르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한국도 클래식 레코딩의 주류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요?”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잔듸 장소 협찬 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