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
말 그대로 ‘왕의 귀환’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봄까지, 일본 미술계의 중심은 단연코 무라카미 다카시였다. 아시아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그의 회고전 <500 나한>(3월 6일까지)이 모리 미술관에서 성대하게 열린 데다, 요코하마 미술관에서는 그의 수집품 5000여 점 중에서 1100여 점을 선별한 기획전 <무라카미 다카시의 슈퍼플랫 컬렉션: 쇼하쿠와 로산진부터 안젤름 키퍼까지>(1월 30일 ~4월 3일)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출품작의 규모와 완성도, 그 방대함은 어떤 아시아 작가도 성취하지 못한 영역에 도달해 있다. 현재 다카시는 세계 미술계에서 최정상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일본에서그의활동과작품에대한평가는늘 갈지자로 엇갈리곤 했다. 주된 비판의 초점은 이렇다. ‘슈퍼플랫’이라는 개념하에, 일본의 하위문화를 서구 주류 문화의 입맛에 맞춰 왜곡하며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것. 일본에서의 화려한 컴백을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그와 <아트나우>가 이야기를 나눴다. 잇따라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개최하며,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지금인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그의 ‘슈퍼플랫’ 컬렉션
왕의 귀환
무라카미 다카시 Takashi Murakami
모리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500 나한>의 전시 전경
Photo by Takayama Kozo, Courtesy of the Mori Art Museum, Tokyoⓒ 2012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모리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500 나한>이 개막했습니다. 일본에서 14년 만에 대규모로 회고전 성격의 개인전을 여는 소감, 그리고 이번 전시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무척 궁금해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본의 미술관에서 제 개인전을 여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어왔어요. 그래서 정말 기쁩니다. ‘500 나한’처럼 종교적 주제를 선정할 수 있었던 것도 만족스럽고요. 이번 전시가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일본에서 열리는 마지막 미술관 전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일본에서 이런 규모의 전시를 준비한 과정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듣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개인전과 모리 미술관의 성격(대중적이면서,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혼합해 전시하는 큐레이팅을 잘 보여준다는 점)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롯폰기힐스 개발 사업을 시작할 때, 모리 빌딩의 소유자인 모리 미노루 씨가 제게 캐릭터 디자인을 의뢰했어요. 그때 맺은 인연으로 그의 기업 철학을 배웠고, 그를 매우 존경하게 됐죠. 그도 저를 신임했고, 제가 디자인한 귀여운 캐릭터를 모리 빌딩을 위한 모든 광고의 전면에 내세웠어요. 제가 패션 혹은 부동산 개발과 협업한 첫 사례입니다. 제겐 큰 모험이었죠. 모리 씨 역시 자신의 통찰력 덕분에 일이 잘 성사됐다고 느꼈을 거예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 작품으로 전시를 열자고 요청했다 하더군요. 하지만 사실 일본 미술계에서 저에 대한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아요. 특히 대체로 큐레이터들이 절 싫어하죠.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일본은 해외에서 성공한 일본인을 폄하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 온 가와라는 죽기 전 한 번도 일본에 돌아온 적이 없고, 쿠사마 야요이도 60대가 되도록 냉대를 받았죠. 70세가 돼서야 일본 사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그런 점으로 미루어, 제가 70대까지 산다면 인정받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 저는 혐오의 대상입니다. 둘째, 일본의 오타쿠들은 제가 그들 문화의 본질을 착취했고, 이를 해외 비즈니스에 이용했다고 여겨요. 그뿐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그 본질을 왜곡해왔다고 생각하죠. 셋째, 경매에서 고가에 판매된 제 일부 작품을 상스럽다고 여겨요. 그런 생각과 작품의 높은 가치의 간극을 일반 관람객의 머리로는 가늠할 수 없죠. 결국 제 작품엔 진정한 가치가 없다고 믿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미술계의 연구와 이해 부족에 대해 저도 오랫동안 화가 나 있는 상태라 트위터나 다른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그런 현상을 자주 공격해왔죠. 결과적으로 서로에 대한 적대감으로, 제 분노를 일본 미술계에 돌려준 셈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모리 빌딩의 대표 츠지 신고 씨가 모리 미노루씨의 염원을 잘 받들어 이번 전시를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리 씨의 부인이자 모리 빌딩의 이사장인 모리 요시코 씨가 이 아이디어를 지원해줬죠. 이 프로젝트는 그들의 강력한 지원 덕분에 실현됐어요. 이번 전시는 10여 년에 달하는 모리 가문과 제 관계가 만들어낸 결실입니다.
Ensō: At Our Side, 알루미늄 프레임의 캔버스에 은박, 금박, 아크릴물감, 170×144.7cm, 2015
ⓒ 2015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The 500 Arhats[Black Tortoise], 보드에 고정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302×10000cm(부분), 2012_ 2012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개인전 <무라카미-에고>에 처음 선보인 이 대작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일본에서 처음 공개했다. 중국 고대 사상에서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사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이름을 딴 4면으로 구성했다. 일본 전역의 미술대학에서 선발한 학생 200여 명과 함께 제작했다.
Photo by Takayama Kozo ⓒ 2012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Hands Clapsed, 알루미늄 프레임의 캔버스에 은박, 아크릴물감, 180×240cm, 2015
ⓒ 2015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전시의 제목이기도한 ‘500 나한’입니다. 일본 미술계의 혹자는 이 작품을 호류지의 금당벽화에 비유하더군요. 또 다른 평론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봤습니다. 폭 100m, 높이 3m의 거대한 화폭에 종교적 도상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동시에 그 정교하고 화려한 색채가 관람객을 압도합니다. 현대미술에서 사라진 ‘숭고미’를 느끼기에 충분하죠. 이 작품은 카타르 알 마야사 공주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완성됐지만, 작품 탄생의 근원적 계기는 2011년 일본에서 발생한 3·11 대지진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일본에서 선보이는 것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3·11 대지진 이후 당신을 비롯한 많은 일본 작가가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본질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로 내세운 것만 봐도 당신이 이 작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짐작이 갑니다. 저는 일본 문화계에서 정말 악당 취급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게 일본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아무 의미 없다고 답할 겁니다.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곳에서 제 작품을 보여주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여전히 그렇게 믿어요. 제가 카타르 전시를 위해 초반에 미팅을 할 때, 알 마야사 공주의 부군인 자셈 씨가 제게 아주 많은 영향을 준 말을 했어요. “다카시 씨, 카타르가 아시아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삶의 방식과 기후, 종교 등이 서로 다르지만 모두 아시아인입니다. 당신은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국제적 작가고요. 그러니 저희에게 아시아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세요.” 그 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어요. 그 사건은 제가 살면서 겪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어요. 그 당시에 제가 느낀 종교적 형식의 필요성에 대한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저로 하여금 ‘500 나한’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 작품은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당신이 이끄는 회사 카이카이키키의 공장형 시스템을 통해 완성한 최고 수준의 기술력도 보여줍니다.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은 그 자체로 감동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오늘날 이렇게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미술 작품의 존재론적 질문까지 던지게 합니다. 최고 전문가들의 분업화와 정밀한 테크닉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에 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100% <스타워즈> 세대가 만들어낸 산물이에요. 우리는 조지 루커스의 창조물을 보면서 자랐죠. 루커스의 위업은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 위대한 이미지를 선보이길 원한다면, 당신 스스로 맨 처음부터 이를 만들어내야 한다”라는 그만의 철학을 완벽하게 실현했다는 겁니다. 그는 ILM을 설립했고, 픽사의 초기 투자자입니다. 이 두 기업은 그가 영화 프로덕션의 근본적인 것을 다시 고찰할 수 있는 실험적 연구소가 됐어요. 피터 잭슨도 〈반지의 제왕〉을 제작할 때 WETA 디지털을 설립함으로써 루커스와 같은 일을 했고, 결국 컴퓨터 그래픽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죠. 이런 일에 정말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겁니다. 제 회화는 컴퓨터 그래픽 프로덕션이 지닌 복잡함의 단 1%에 해당하는 과정을 거쳐 제 공장에서 제작합니다. 누구도 회화를 이렇게 실험적인 연구소에서 제작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저 역시 독보적인 것 같아요.
Tongari-Kun, 파이버글라스, 철, 합성수지, 유채, 아크릴물감, 702×350×350cm, 2003-2004_ 2010년에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무라카미 베르사유> 전시 전경
Photo by Cedric Delsaux, Courtesy of the Galerie Perrotin ⓒ 2003-2004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Daruma the Great, 보드에 고정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은박, 160.1×351cm, 2007
Courtesy of the Galerie Perrotin ⓒ 2007 Takashi Murakami/Kaika i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이번 전시는 그동안 당신이 강조해온 현대미술의 ‘콘텍스트’를 살펴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저서 <예술투쟁론(芸術闘争論)>, <예술기업론(芸術企業論)>에서 ‘콘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역사의 중층화를 강조했습니다. 그것을 이번 전시 이벤트와 연결해 살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기동전사 건담>, <건담 G의 레콘기스타> 등 건담 시리즈 작품을 만든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 도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는 다양한 키워드를 바탕으로 당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고, 당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미술사학자 츠지 노부오(?惟雄)는 ‘기상(奇想)’ 화가의 계보에 관한 강연을 했습니다. 또한 당신의 초기작부터 ‘500 나한’까지 오랜 시간 관찰해온 미술평론가 사와라기 노이(?木野衣)는 자신의 관점으로 본 당신의 작품에 관해 강연했고요. 당신의 작품을 제작한 니시다 료지(西田良治), 미야와키 슈이치(宮脇修一), 요시자와 히로코토부키(吉澤??)는 각 회사의 역사와 개인사 및 일본의 제조업과 당신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했죠. 작품의 레퍼런스가 되는 일본의 대중문화, 미술사와 평론, 작가와 포스트 프로덕션 제작자가 모두 모여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여러 맥락에서 두루 살펴본 매우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런 이벤트를 기획한 의도를 설명해줄 수 있나요? 모리 미노루 씨에 대한 경의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고민했고, 또 이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습니다.
제게 당신의 모습은 아주 극적인 두 가지 이미지로 떠오릅니다. 굉장히 심각한 고민에 빠져서 어딘가 조금 지쳐 보이는 ‘작가’의 모습,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손바닥을 펼쳐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는 스타의 모습입니다. 후자는 당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웃는 꽃과도 닮았습니다. 또한 작품에도 당신의 모습은 직간접적으로 등장해요. 카타르에서 열린 <무라카미-에고>전에선 거대한 불상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들기도 했죠. 이번 전시에 출품한 사진 ‘Reborn’과 이 작품의 모티브를 얻은 기계 인형은 캐릭터로서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존재를 더욱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예술투쟁론>에서 본 이 문장이 기억나네요. “지금의 예술 세계에서는 얼마만큼 깃발을 꽂을 수 있는가가 그 아티스트의 가치 중 하나가 돼요. 작가 이미지의 멀티플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두세요.” 이렇게 하나의 캐릭터로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제시할 때, 작가로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분노입니다. 카메라의 렌즈가 저를 향할 때, 제가 짓는 표정은 그저 근육의 움직임일 뿐이죠. 제 입은 웃고 있을지 몰라도, 눈은 그렇지 않아요. 확신하건대, 아이들은 그걸 그 자리에서 집어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런 종류의 분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다카시
1962년 도쿄 출생. 일본화에 관한 연구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작 공방, 갤러리 등을 포함한 예술 종합 회사인 카이카이키키의 대표다. 2008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으며, 루이비통, VANS, 슈에무라, 롯폰기힐즈 등의 기업 브랜딩 프로젝트와 카니예 웨스트, 퍼렐 윌리엄스, 유즈 등의 음악가와 협업했다. 최근 영화, 영상 제작에도 참여하며 2013년에는 최초의 실사영화 작품 ‘메메메의 해파리’를 발표했다. TV애니메이션 시리즈 ‘6HP(Six Hearts Princess)’의 공개도 앞두고 있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