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와 사람을 말하다,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로 돌아온 이욱정 PD
전 세계 20여 개국을 다니면서 촬영한 이욱정 PD의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는 예고편만 봐도 입맛이 살아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먹거리와 요리로 시작해 만드는 사람, 그 뒤에 숨은 역사까지 시선을 확장한 맛있는 다큐멘터리가 온다.
“육류와 사냥에 대해 촬영하기 위해 오지 중의 오지인 러시아 타이거 숲에 갔어요. 외딴 기차역에서 느낀 황량함과 강추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강도였어요. 사람이 사는 것조차 신기한 그곳에서 노인들이 식량 해결을 위해 사냥을 나서요. 하루 종일 새 한 마리 못 보고 허탕치는 그들을 옆에서 보면서, 한 점의 고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죠.” 이욱정 PD는 정말 그때의 추위를 다시 느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2008년 혁신적 다큐멘터리라는 평을 들으며 한국방송대상 대상, 피버디상을 수상했던 화제작 <누들로드>를 만든 이욱정 PD는 왜 오지로 달려갔을까?
우리가 흔히 먹는 우동 한 그릇을 달리 보게 만든 이욱정 PD가 5년 만에 KBS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를 들고 돌아왔다. 요리의 본질을 알고 싶어서 잘나가던 PD 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파리 르 코르동 블뢰에서 유학하고 온 PD가 만든 다큐멘터리라니, 기대가 커질 대로 커지는 건 당연하다. ‘요리인류’라는 거창한 제목에 지레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국수 하나만 다룬 <누들로드>와 달리 <요리인류>는 빵, 고기, 커리 등 여러 가지 주제를 골랐어요. 기준이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음식이면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죠.” 3월 26일 첫 방송을 앞두고 만난 그는 전작의 성공이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리인류>는 제게 평생 걸릴지도 모르는 특별한 여정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다루고 싶은 주제도 무궁무진해서 마라톤을 하듯 긴 호흡으로 만들 계획이에요.”
1 덴마크에서 만난 토마스 로드 앤더슨
2 프랑스에서 최고의 크루아상을 만드는 로랑 뒤센
이욱정 PD는 <요리인류>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전, 유학을 다녀오고 준비한 지난 시간을 방송국이라는 온실 속에 있다가 쌩쌩 부는 찬 바람을 맞고 돌아온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그냥 흘려보냈을 것이 요리를 배우고 나니 새롭게 보였어요. 예를 들어 프랑스의 한 장인이 닭을 다듬는 걸 봤는데, 저라면 5시간 정도 걸릴 일을 너무나 능숙하게 해내는 거예요. 닭을 다듬는 사소한 행위에도 요리의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는 걸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싶었죠.” 이처럼 요리를 다루는 그의 시야는 한층 넓어졌고,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고 싶은 욕심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상수동에 프로그램 이름 그대로 ‘요리인류’ 쿠킹 스튜디오까지 만들었다. <요리인류>가 색다른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스튜디오 한쪽 벽면에 붙은 홍보 포스터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포스터라면 사실적 현장 사진을 담는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일러스트로 완성했다. 다큐멘터리라면 지루하고 어렵게 여기는 이들까지 끌어들일 줄 아는 영민함이 돋보인다.
“<요리인류>는 사실 <누들로드>를 만들 때 이미 구상한 프로그램이에요. 그 당시 찍은 영상을 참고하려고 봤는데 이미 빵을 많이 찍었더라고요.(웃음) 후에 르 코르동 블뢰에 다니면서 프로그램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죠. 음식 자체가 지닌 여러 겹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다큐멘터리에선 볼 수 없던 빠른 편집과 전개 방식으로 호평을 받은 <누들로드>처럼 그는 이번에도 다양한 형식적 시도를 했다. 드라마 재연은 물론 <누들로드>보다 뛰어난 영상미를 기대해도 좋다. “음식 그 자체, 요리의 본질을 어떻게 하면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미세한 것도 놓치지 않기 위해 잠들기 전까지 생각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가 <요리인류>를 위해 전 세계를 헤매는 동안 시청자의 눈은 빠른 속도로 높아졌다. 맛집과 요리는 지금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트렌드이자 화두다. 맛있는 음식, 몸에 좋은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매일 쏟아진다. 요리라는 주제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오랫동안 고민해왔을 그는 사람들이 참 힘들구나,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도덕적·금전적으로 허용된 선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쉽게 허락되는 것이 음식에 대한 욕망인 것 같아요. 맛있는 음식에 위로받는 한편,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도 담겨 있어요. 무엇을 먹느냐가 곧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니까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담론은 음식에 관한 것이고 우리나라는 지금 막 시작하고 있다고 봐요. 앞으로 더 크고 깊어지는 것만 남았죠.”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오감 만족 이상의 문화적인 경험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요리인류>도 하나의 음식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 상징, 요리를 만드는 사람까지 거미줄처럼 얽힌 여러 요소를 총체적으로 다룬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요리와 관련된 사람, 농부, 사냥꾼, 어부 등 말 그대로 요리 인류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어요. 동료 의식도 느끼고요. 제가 그런 것처럼 시청자도 방송을 보면서 생존을 위해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맛도 있고 몸에도 좋은 음식처럼 <요리인류> 역시 볼 때도 즐겁고, 본 후에도 시청자의 감성과 지성에 자양분이 되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는 이욱정 PD. 순수 다큐멘터리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방송 환경에서, PPL 없이 요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그가 쏟은 노력의 결과물을 만날 때가 왔다. 총 8부작인 <요리인류>는 2014년 상·하반기에 나눠 방영하며 내년에 또 다른 주제로 돌아올 예정이다. <누들로드>를 맛본 시청자들은 이미 이 맛있는 여정에 동참할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요리인류>를 본방 사수할 때는 반드시 식사는 마치고 배부른 상태에서 볼 것을 당부한다. 참을 수 없는 식탐에 괴로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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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고현경
사진 이영학(인물) 사진제공 KBS 요리인류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