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우동 말고, 예술제

LIFESTYLE

가가와 현에는 우동 말고, 예술제도 있다. 지난 2010년 시작해 3회째를 맞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 다녀왔다. 물론 맛 좋은 우동도 맛봤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야마구치 게이스케의 ‘걷는 방주’

비가 온다. 아스팔트가 젖고 운동화가 젖는다. 다카마쓰 공항에 내려 올라탄 택시는 하얀색, 숙소까지 1시간은 달려야 한다고 말한 기사는 구김 없는 푸른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 서울에선 시큰둥하던 장마가 800km가량 떨어진 가가와 현 다카마쓰에선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택시는 몇 개의 교차로를 빠르게 지나쳤다. 그럴 때마다 저쯤 어디에선 일본 지방 소도시 특유의 예스럽고도 반듯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이 다 되어 도착한 가가와 현의 명승지 고토히라 정은 빼곡히 솟은 나무들 탓에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동네에서 가장 융숭한 대접을 한다고 알려진 ‘고토산가쿠 온천 료칸’ 의 방은 8층. 창문을 여니 검고 푸른 숲 아래로 우동 면을 뽑는 작은 제면소 몇 곳이 희미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가가와는 여전히 ‘우동의 현’으로 통하는지 모른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집, 논밭 한가운데에 있는 집, 장작을 때는 가마솥에서 면을 삶는 집, 하루 1시간만 문을 여는 집 등 인구 100만밖에 되지 않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현인 이곳에 우동집만 800개가 넘는다(인구 약 1300만인 도쿄엔 맥도날드가 500개쯤 있다). 하지만 가가와는 지금 우동이 아닌 다른 하나로도 들끓고 있다. 바로 ‘ 아트’다. 일본 교육 기업 ‘베네세’가 1980년 중반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를 발표한 후부터다. 베네세는 지난 30여 년간 일본 본섬인 ‘혼슈’와 ‘시코쿠(가가와 현이 속한 섬)’ 사이 에 낀 세토 내해에 있는 몇 개의 섬을 찬찬히 바꿔나갔다. 구리 제련소가 문 닫고 주민들이 떠난 나오시마엔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과 ‘이우환 미술관’ 등을 열었고, 일본 최악의 산업폐기물 투기 사건이 일어난 데지마엔 ‘데지마 미술관’이 개관해 사람들을 맞는다.
2010년 시작해 올해 3회째를 맞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Setouchi Triennale)’도 이런 효과에 힘입어 탄생했다. 대부분의 일본 지방 시골 마을이 그렇듯, 세토 내해의 섬들 또 한 근래 들어 눈에 띄게 줄어든 인구와 남은 지역민의 고령화로 크고 작은 문제를 겪었다. 쉽게 말해 이 예술제의 의의는 세토 내해의 섬들이 처한 현실적 문제를 ‘현대미술’이란 도구로 해결하는 것이다. 버려진 집과 논밭, 폐교, 경사진 산길, 울창한 참나무 숲 등 곳곳에 예술 작품을 만들고 다양한 연령층과 소통을 꾀해 이전처럼 섬에 사람들이 붐비게 하는 게 목표다.

메기지마 항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기무라 다카히토의 ‘갈매기 주차장’

오타케 신로의 컬러풀한 설치 작품 ‘여근’

올해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바다의 복권(바다가 가진 권위를 복귀하자는 뜻)’이라는 테마로 세토 내해의 나오시마와 메기지마, 오기지마, 데지마, 쇼도시마 등 12개 섬을 예술 가의 작품으로 연결한다. 총 165점에 달하는 작품을 시즌제로 소개하는데, 이미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29일간 봄 축제가 열렸고, 여름 축제는 7월 18일부터 9월 4일까지, 가 을에도 10월 8일부터 11월 6일까지 30일간 열릴 예정이다.
사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니가타 현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열리는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와도 많은 것을 공유한다. 이 방면의 유명인사 기타가와 프램(Fram Kitagawa)이 똑같이 디렉터를 맡고 있고, 여기나 거기나 지금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예술의 성지’를 건설하는 데 집중한다. 지금껏 많은 예술제가 단 몇 회 만에 자신들이 내세우는 담론과 주제를 이루려 했다면, 이들은 땅속 깊은 곳에서 굼뜨게 움직이며 관람객이 주위를 하나하나 살필 수 있게 한다. 단순히 사려 깊다는 말로는 쉬이 정리할 수 없 는 이 축제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저녁식사 후 뜨거운 탕 속에 몸을 푹 밀어 넣었다.
다음 날, 몹시 흐림. 투명 우산을 가방에 매달고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의 중심 항구인 다카마쓰 항에 도착했다. 까마귀와 비둘기가 서로 경쟁하듯 낮게 나는 묘한 하늘. 이곳에서 오기지마행 쾌속정을 탔다. 예술제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나오시마에서 동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섬이다. 주민 200명, 평지는 거의 없고, 대부분 산으로 이뤄진 전형적 인 어촌. 여기 전시한 작품들은 이 섬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를 작가의 갤러리처럼 활용하는 ‘빈집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산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빈집 프로젝트 중 하나인 마쓰모토 아키노리(Akinori Matsumoto)의 ‘아키노리움’에 다다랐다. 1982년부터 손수 나무를 깎아 악기를 만들고, 그것 들이 밴드처럼 합주할 수 있게 한 ‘나무 오타쿠’의 실내 설치 작품.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나무 악기의 미세한 ‘깎임’이 맞닿아 내는 자연 교향곡. 바람개비 모양의 피리, 단 소 모양의 관악기, 우리의 장고와 비슷해 보이는 타악기 등 20여 개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한 결 한 결의 화음은 지금 당장 낮잠을 부르는 ‘주문’과도 같았다.
아키노리움에서 나와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온바 팩토리(Onba Factory)’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이 섬의 대표적 작품이 이곳에 있었다. 온바 팩토리는 가 가와 현 출신 작가 5명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의 이름이자 작품의 이름. 이들은 섬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쓰는 온바(노인용 보행기)를 빌려 각각 페인트칠을 하고 가공해 새로운 모습으로 내놓았다. 한마디로 노인과 산비탈이 많은 오기지마의 생활 자체를 작품화한 것. 저마다 같은 바퀴, 같은 손잡이, 같은 바구니 디자인이라도 그렇게 서로 다를 수 없었 다. 이 생활 밀착형 작품은 섬에서만 실제로 100여 개가 쓰인다고 했다.

마쓰모토 아키노리의 빈집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아키노리움’

스푸트니코!의 ‘운명의 빨간 실을 켜는 누에고치_다마키의 사랑’

다카마츠 시내에 설치한 줄리안 오피의 작품들

다카마쓰 항의 다채로운 환경을 표현한 오마키 신지의 ‘Liminal Air -core-’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역시 산비탈에 숨어 있는 프렌치 식당 ‘민슈쿠 사쿠라’다. 테이블이 4개뿐인 아기자기한 실내. 근데 그보다는 주민 절반 이상이 70~80대 노인인 섬에서 도 마땅히 영업하는 집념을 더 높이 쳐주고 싶다 할까. 이곳의 한입 요리와 고기 요리, 디저트를 전부 세심하게 제공하는 ‘민슈무 코스’는 서래마을의 비싼 식당 메뉴가 조금도 부 럽지 않았다. ‘정통’ 운운하는 방식과는 거리를 둔 채 재료를 아끼지 않고 내놓는 젊은 셰프의 거뭇한 얼굴에선 시골 사람 특유의 넉넉함도 묻어났다.
점심을 먹고 나오자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잇몸으로 사르르 녹여 먹은 홍시 셔벗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이었다. 우산을 바짝 뉘어 쓰고 섬 이곳저곳을 살피며 항구 쪽으로 내려오는데, 저편에서 스페인 작가 하우메 플렌사의 ‘오기지마의 혼’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반나절을 어두컴컴한 산비탈만 헤집고 다녔으니, 저쪽에서 먼저 이쪽을 알아봤다고 해야 할지도. 물 위에 뜬 하얀 깃털 같은 모양새. 바다의 물을 끌어들여 수면 공간을 조성하고 그 위에 순백색 단층 건물을 올린 이 작품은 현재 이 섬에서 배 매표소 겸 매점으로 쓰인다. 원래 이 작품의 천장에 붙어 있는, 세계 각국의 문자를 제대로 보려면 저편 산비탈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비가 내리는 동안만큼에는 실내에서도 그 특징을 하나하나 제 대로 관찰할 수 있다. 하얗고 아름다웠다.
오기지마를 떠날 때만 해도 극성스럽게 내리던 비는 메기지마 항에 도착하자마자 소강상태를 보였다. 이 섬 어딘가에 이 섬을 지키는 ‘토속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불현듯 들었다. 아니, 그런데 섬 입구의 안내문을 살펴보니 메기지마는 예부터 ‘도깨비 섬’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섬 중앙의 와시가미네 산 중턱엔 도깨비가 살았다는 도깨 비 동굴도 있었다. 점점 흥미로워지는 아트 투어.
메기지마는 다카마쓰 항에서 겨우 4km 떨어진 작은 섬이다. 이곳의 풍광은 제주도의 그것과 비슷했다. 정확히는 우도. 방풍·방파용으로 ‘오테’라고 하는 3~4m 높이의 돌담을 쌓은 게 비슷했고, 파인애플 이파리 같은 이국적 나무가 자라는 것도 그랬다. 어쨌든 이 섬에서 오타케 신로(Shinro Ohtake)의 그 이름도 짧고 강렬한 ‘여근’을 봤다. 나오시마의 목욕탕 ‘아이러브유(I♥湯)’를 만들기도 한 그는 특히 모으고 편집하고 조합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 게다가 핑크와 레드, 블루를 조화롭게 사용하는 특유의 색조도 아주 강렬하 다. 이번에 그는 오래전 문을 닫은 학교 건물과 그곳의 뒷마당을 손봐 거대 야외 조각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 모양새는 추상적 설치미술의 느낌과 메기지마 섬의 기운과 정서를 동시에 담고 있는 듯했다. 함께한 스태프에게 ‘여근’의 어원을 묻자, 예상한 답이 돌아왔다. 붉은색 화분 모양에 커다란 나무를 담은 이 작품은 어렴풋이 자궁을 연상시키기도 했 다.
‘메기지마 명화 극장’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요다 요이치로(Yoichiro Yoda)의 작품이다. 세 살 무렵 부모와 미국으로 이민 가 그곳에서 생활한 그는 오랫동안 낡은 극장과 호텔 등 기억 속 맨해튼의 풍경을 묘사했고, 이번에도 1950년대의 뉴욕 극장을 그대로 재현했다. 버려진 2층 창고를 완전히 하나의 극장으로 재창조한 고집. 그는 작품을 위해 1950 년대 미국에서 실제 사용한 극장용 의자와 철근 등을 배로 실어왔다. 또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지는 복도에 찰리 채플린과 <스타워즈>의 위대한 스승님 ‘요다’(심지어 자신의 이 름이기도 한)를 수없이 그려 넣었다. 예술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 말부터 이곳에선 메기지마 마을 주민을 위한 영화제도 열린다고 했다. 이 얼마나 기특한 생각인가. 극장 을 나와 자석으로 만든 식물의 덩굴을 실내에 온통 둘러친 다카하시 하루키(Haruki Takahashi)의 실내 설치 작품 ‘Sea Vine’, 버려진 옛집의 내부 인테리어를 정확히 90도로 틀 어 착시 효과를 주는 오이와 오스카(Oscar Oiwa)의 ‘방 속의 방’, 약 400개의 도자기 블록을 산 중턱 계단식 밭에 설치해 바다와 작품이 하나의 경관을 이루게 한 스기우라 야스 요시(Yasuyoshi Sugiura)의 ‘계단식 바람’ 등을 연달아 봤다. 어떤 작품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기도 했고, 어떤 작품은 처음에 느낀 최초의 감정을 평생에 걸쳐 기억하고 싶기도 했다.
오전에 오기지마에서 마주한 작품들이 지역 주민을 위한 위로(혹은 배려) 같은 것이었다면, 메기지마에서 본 작품들은 섬 밖의 관광객을 끌어안는 무엇에 가까웠다. 일례로 이 섬에서 작품을 보다 마주친 중년 여성과 근사하게 머리를 넘긴 할머니는 서로 다른 지역 사람이란 느낌이었지만, 작품 앞에서 나란히 고개를 슬쩍 끄덕이는 모습은 아주 정답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 섬 곳곳에 설치한 많은 작품은 섬 주민과 외지인을 하나로 묶는 소통의 매개가 되고 있었다. 뭐가 그랬느냐 하면 ‘메기 초등학교’가 특히 그러했다. 이 학 교는 섬의 유일한 교육기관이었지만, 수년 전 무기한 휴교령을 맞았다. 학교에 학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곳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 섬의 크고 작은 예술 작품을 보고 돌아간 어린 학생들이 부모를 설득해 몇 세대의 가족이 이곳으로 이주해온 것이다. 교육 당국은 돈을 끌어와 곧장 학교를 재건했다. 그 덕에 내년 이 섬에선 보육원 생과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총 12명의 학생이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날, 섬을 빠져나와 저녁은 다카마쓰 시내의 간판 없는 심야 우동집에서 카레우동을 먹었다. 호텔 방에 들어서 문을 닫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맑은 날, 쇼도시마 항에서 발견한 최정화 작가의 ‘태양의 선물’

오기지마의 대표적 작품 ‘온바 팩토리’

오기지마의 대문 역할을 하는 ‘오기지마의 혼’

다음 날, 몹시 맑음. 아침 일찍 데지마 섬 중턱에 있는 ‘데지마 미술관’ 입구에 도착했고, 깊은 날숨이 쏟아져 나왔다. 탄성과 탄식 모두였다. 일본의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Ryue Nishizawa)는 미술가 레이 나이토(Naito Rei)와 함께 두꺼비집을 짓는 원리를 이용해 거대한 조개껍데기 형태의 건축물을 만들었다. 안은 로마의 판테온 같고, 밖은 애플이 만 든 우주선 같았다. 안에는 양쪽으로 커다란 구멍 2개가 뻥 뚫려 있어 햇빛도 들어오고 비도 들이친다. 그리고 새도 들어온다. 바람도 들어오며, 구름도 한 움큼 보인다. 이걸 ‘디 자인한 자연’이라 해야 할까? 여기에 30분간 누워 지구와 나무들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마음이 평안해져서, 1985년생의 젊은 일본 작가 스푸트니코!(Sputniko!)의 ‘데지마 팔 백만 랩’으로 향했다. 이 작품은 과학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과 ‘운명의 빨간 실을 켜는 누에고치_ 다마키의 사랑’이라는 영상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5분 분량의 영상 작품이 압권인데, 선배를 짝사랑하는 한 소녀가 유전자공학으로 절대 차이지 않는 ‘운명의 빨간 실을 뽑는 누에고치’를 만들어 선배가 반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예술제 어 디서도 본 적 없는 ‘니코니코’(일본 UCC 동영상 커뮤니티)식 재치와 치기, 아마추어리즘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그냥 ‘너무 좋았다’라는 말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작품의 유튜 브 링크_ youtube.com/watch?v=08BFqcZ1xYI). 섬을 나가는 길엔 요코 다다노리(Tadanori Yokoo)의 ‘데지마 요코관’에 들렀다. 여긴 오래된 민가를 재단장해 안방과 창고, 헛간 등으로 구성한 미술관이다. 요코 다다노리를 ‘일본의 앤디 워홀’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여기서 만난 그의 예술 세계는 그의 친구이자 사진가인 아라키 노부요시에 더 가까웠다. 삶과 죽음을 색조로 표현한 붉은색과 파란색 페인팅, 볼일을 보면서(혹은 볼일 없이도) 무한궤도를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은 화장실, 바닥과 천장이 반사되는 재질로 되어 있어 블랙홀 같은 원통형 탑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고’ 싶다기보다는 ‘만져’보고 싶은 것들이라 아쉽고 또 아쉬웠다. 섬이란 대체로 폐쇄적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낯선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영역으로 들어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닐 거다. 하지만 이날 데지마에서 본 사람들은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꺼이 뭔가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쾌속정을 타고 데지마를 빠져나오며 지는 해를 봤다. 비는 완전히 그쳤 고, 내일도, 또 내일의 내일도 맑을 예정이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홍보팀장 이마타키 데쓰유키(Tetsuyuki Imataki)

Mini Interview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일본에서도 유독 시민의 참여도가 높은 축제로 소개합니다. 특별히 무엇이 그런가요? 작게는 작가가 섬에 들어가 작품을 완성할 때 주민들이 집을 빌려주는 것이 그렇고, 크게는 아예 작품 자체를 작가와 주민이 함께 만드는 경우입니다. 일례로 데지마에 있는 오타케 신로의 ‘바늘 공장’의 경우 인근의 우와지 마 조선소에 약 30년간 방치돼 있던 어선 선체용 목형을 작가와 섬의 아이들이 힘을 합쳐 육로와 배로 운반한 작품입니다. 그 작품에 많은 관람객이 찾아온다면 아이들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테죠.
예술제를 시작한 2010년과 비교해 현재 눈에 띄게 달라진 점으로 무엇이 있나요? 섬으로 돌아오는 이주자가 늘고 있는 겁니다. 오기지마의 경우 지난 3년 간 주민이 30명이나 늘었고, 예술제를 개최하는 주요 섬 중 한 곳인 쇼도시마는 매년 300명씩 주민이 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체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많은 걸 생 각해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예술제의 디렉터 기타가와 프램과 함께 오랫동안 실무를 봤습니다. 그간 예술제를 꾸려오며 느낀 섬과 예술 작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젊은이들이 머 물지 않는 섬은 인간처럼 노령화되기 마련입니다. 젊은이가 모두 도회지로 떠난 섬에 노인만 남는 현상은 한국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가 거기서 이미 작은 도약을 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결코 유명 작가와 값비싼 현대미술품으로 섬을 꾸밀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현대미술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의 재생’입니다.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