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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다

ARTNOW

상상도 못했다. 중국의 스타 작가 저우춘야(周春芽), 우밍중(武明中), 왕칭쑹(跟我学), 펑정제(俸正杰)를 한국 제주에서, 그것도 한자리에서 동시에 만나리라고는. <아트나우>가 제주에 있는 펑정제 작가의 작업실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산증인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네 예술가를 직접 마주했다.

왼쪽부터_ 펑정제 작가의 제주 작업실에 모인 펑정제, 왕칭쑹, 우밍중, 저우춘야.

제주국제공항에서 꼬박 1시간을 달려 저지리예술인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굽이진 길을 돌고 돌아 중국 현대미술의 대가 펑정제의 작업실에 다다랐다. 세계에 중국 예술의 폭풍을 몰고 온 주역 저우춘야, 우밍중, 왕칭쑹, 펑정제가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열린 중국과 한국의 교류전 <제주, 아시아를 그리다: 한·중 아방가르드 대표 작가>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김동유, 홍경택, 김근중, 이길우, 임택, 양태근, 고광표도 함께했다.

<제주, 아시아를 그리다: 한·중 아방가르드 대표 작가>전 전경.

아쉽게도 또 다른 참여 작가이자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예술영화의 거장 쥐안치는 사정상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저우춘야, 우밍중, 왕칭쑹, 펑정제를 만난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그들은 중국 미술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가 아닌가! 중국 작가가 서로 친구처럼 지내며 교류하길 좋아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을 논할 때만큼은 눈빛이 매서웠다. 작가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이들은 이제 안주할까? 아니다. 네 작가의 작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왕칭쑹
1966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난 왕칭쑹은 급변하는 중국 사회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현대사진의 거장이다. 중국의 1세대 사진작가인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에 익숙한 중국 사진계에 치밀하게 연출한 풍자적 사진을 등장시켰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중국관 대표 작가로 뉴욕 국제사진센터, 상하이 미술관, LA 해머 미술관 등에서 전시했으며 현재 베이징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Follow You, C-Print, 180×300cm, 2013

“제주 해녀의 사진을 찍고 싶다. 해녀 2000명을 모아줄 수 있겠는가?”

제주에 발을 디딘 사진작가 왕칭쑹은 말했다. “제주 해녀의 사진을 찍고 싶다.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녀 2000명을 모아줄 수 있겠는가?”라고. 이 한마디는 그의 작품 규모를 짐작케 한다. 전시에 참여한 홍경택 작가도 “왕칭쑹의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감각과 스케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며 감탄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교실 사진 ‘Follow You’(2013년)도 마찬가지다. 수백 명의 인물이 수천 권의 책을 쌓아놓고 교실에 모여 있는 모습은 압도적 규모를 자랑했다. “어느 나라든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다. 물론 특별한 공간에 연출해 찍은 사진이다. 수능 직전 공부에 지친 학생의 모습을 담았고, 이 작품을 제작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이 장면에 끌렸을 뿐이다.”
“사진과 그림은 다르다. 사전 지식이 필요한 그림은 진입 장벽이 있지만, 사진은 보이는 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특히 나는 진실을 담고자 한다. 누구든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밝힌 왕칭쑹은 원래 기자였다. 그는 “사진을 통해 현실과 가장 가깝고 진실한 모습을 담으려 한다. 아티스트로서 작업할 때도 사진을 촬영할 땐 기자의 자세로 임한다. 중국에서 기자로 살면서 오히려 진실을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예술가의 삶을 택했다. 미술을 좋아했고 미술은 곧 내 취미다. 자연스럽게 전시에 참여하고 그 인연이 또 다른 전시로 이어지며 지금까지 왔다.”

Follow Me, C-Print, 120×300cm, 2003

진실을 말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그는 1년에 적게는 한 장, 많으면 5~6장의 사진을 찍는다. 억지로 영감을 떠올리려 하지 않고 사진을 찍지 않을 때는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사회에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거나 관심을 끄는 주제를 발견해 찍기도 하고, 돌아다니다 눈에 띄는 장면을 찍기도 한다. 내 작품은 삶에 대한 느낌이 하나하나 쌓여 만들어낸 역사와 인식의 결과”라는 그는 현재 스토리를 담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빠져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다. 현재 5~6장 정도 찍었고, 13장을 찍을 생각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13명이라 13장을 찍으려 한다. 단순히 종교적인 작품은 아니다. 한 작품에 사랑과 배신, 증오 등 사회의 모든 이야기가 담긴, 사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왕칭쑹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며 한국의 젊은 예술가를 만난 경험을 회상했다. “전반적으로 예술 교육적 측면은 한국이 중국보다 뛰어나다. 중국은 시험 위주고, 기초는 한국이 탄탄하다. 하지만 졸업하고 나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 예술가는 완벽함과 깔끔함을 추구하는 반면, 중국 예술가는 자유롭다. 한국 예술가의 정교함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작품의 완성도는 높지만 예술보다는 영화나 디자인 분야에서 더욱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저우춘야
1955년 중국 쓰촨성에서 태어난 저우춘야는 쓰촨 미술학원에서 수학한 후 독일에서 유학, 귀국해 중국 전통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돌’ 시리즈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고, ‘녹색 개’ 시리즈로 세계 예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했다. 휴스턴 미술관, 마드리드 ARCO, 베이징 중국미술관 등에서 전시했고, 현재 청두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Purple Rock, Oil on Canvas, 56×76cm, 2014

“예술가 자신이 관람객의 입장에서 스스로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면 날 알아보는 관람객을 만날 수 있다.”

회화를 매체로 작업하는 저우춘야가 살아온 문화대혁명기는 자신이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실력도 뛰어났던 그는 자연스레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터 몇십 년간 급변하는 사회에서 변함없이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며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예술가로서 시험대에 오르는 것 같다. 젊은 예술가들보다 큰 변화를 자주 겪었고, 그래서 더 와 닿는다. 내가 처음 예술을 시작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원하는 예술을 할 수 있다. 특히 삶의 진실한 모습을 캡처하고자 한다. 사회와 삶의 변화를 겪으면서 심리나 관점의 변화 또한 매우 컸다.”
이번 전시엔 두 작품을 출품했다. ‘A Self Portrait on a Toilet’(2001년)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주로 일상의 자연스러운 순간, 그중에서도 사적인 순간을 담고 싶다. 큰아들이 처음 태어난 순간을 그린 ‘Purple Rock’(2014년)을 통해서는 한 아이의 인생, 그 시작을 표현하고 싶었다.”

Green Dog 2001.A, Oil on Canvas, 250×200cm, 2001

그는 2년여 전부터 숲을 걷기 시작했다. “고대 예술가가 걸은 길을 따라 걷는다. 당시 풍경은 여전하지만 그 길을 거닌 예술가의 감정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느낌만 받아들이고 있다. 작품으로 발전시키고 싶지만 아직은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없어서 그냥 끊임없이 거닐며 영감을 얻는다”는 저우춘야는 한 소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몇 년에 한 번씩 소재를 바꿔 시리즈 작품을 내놓는다. 특정 소재에 천착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전반적 삶에 대한 진심을 담는다. 그만큼 그의 작품을 받아들이는 관람객도 열린 태도를 보이길 바란다. “작가가 관람객의 볼 권리에 간섭하면 복잡해진다. 누구나 시기나 장소에 따라 작품을 보고 느끼는 바가 다르다. 관람객이 작품을 자유롭게 관람하길 바란다. 물론 보다 많은 사람이 내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 때문에 소신을 잃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예술가 자신이 관람객의 입장에서 스스로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면 날 알아보는 관람객을 만날 수 있다.”
생전 백남준과 친분이 있었다는 저우춘야는 2000년대 초반에 한국에서 중국 작가를 주목한 전시에 참여했다. 당시 한국 예술가와 교류할 기회가 없어 아쉬웠던 그에게 이번 전시가 주는 의미는 크다. “한국 예술가와 함께하는 전시는 처음이다. 한·중·일 작가의 교류를 꿈꾼다. 서양뿐 아니라 가까운 이웃이자 역사적으로 복잡한 관계로 얽힌 세 국가의 아티스트가 함께 자주 전시를 열고 교류했으면 한다.”

우밍중
1963년 중국 허베이성에서 출생한 우밍중은 허베이 사범대학과 베이징 수도사범대학에서 수학했다. 모노톤 회화에 레드로 포인트를 준 작품으로 탄탄한 마니아 컬렉터를 구축한 그는 러시아와 미국, 중국 등에서 강의하며 많은 제자를 키워냈고 현재 모교인 베이징 수도사범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베이징 중국미술관, 아테네 현대미술센터, 광둥 미술관, 선전 미술관, 청두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Love, Oil and Acrylic on Canvas, 150×100cm, 2018

“나만의 소신으로 꾸준히 작업에 몰두한다. 작가의 역할은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작품이 관람객에게 도달하면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다 지금에 이른 우밍중은 이번 전시에 두 작품을 출품했다. 위태로운 인간 군상을 표현한 대표 시리즈 ‘유리 인간’의 이미지가 어김없이 작품에 담겼다. “사랑을 말하는 작품을 출품했다. ‘Youth Hormone’(2016년)은 두 남성이 한 여성을 끌어안은 작품이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시점에 아들의 젊음과 청춘을 보고 느낀 감정을 작품에 녹여냈다. 신작 ‘Love’ (2018년)는 맞잡은 손을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을 표현했다.”
초기엔 사실적 묘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상처받기 쉬운 인간의 마음과 쉽게 깨질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유리 인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술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복이 있다. 개인의 상태나 심리가 바뀐다. 작품도 이에 따라 변화하지만 관람자가 그 작품을 다 좋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만의 소신으로 꾸준히 작업에 몰두했다. 작가의 역할은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작품이 관람객에게 도달하면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사람들이 작가의 신호를 받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작품을 해석하기도 한다. 다른 각도의 반응을 보면 더욱 흥미롭고 신선하다.”
우밍중은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주제에 열려 있다. 사랑, 결혼, 아름다움, 청춘, 종교, 생명 같은 보편적 주제를 다룬다. “지금은 중국 문화 예술에 관심을 두고,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를 결합할 수 있는 소재를 찾고 있다. 주로 평소 생각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살아가며 경험의 깊이가 더해지면 더 많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순간적 영감은 굉장히 드물게 찾아온다. 평생 한두 번밖에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감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밍중은 중국과 한국의 예술가에게서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두 나라의 예술가는 서양을 바라보는 관점이 같은 결을 띤다. 주변 국가와의 역사적 관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펑정제
1968년 중국 쓰촨성에서 태어난 펑정제는 쓰촨 미술학원에서 수학, 베이징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 전통 드로잉과 현대적 상업광고의 영향을 동시에 받은 그는 중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다. 상하이 아트 페어, 멜버른 국제 현대미술 페어, 청두 비엔날레 등 다양한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현재 베이징과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Chinese Portrait N Series 2008 No.03, Oil on Canvas, 300×300cm, 2008

“중국은 지금까지 30~40년간 이룬 변화의 폭이 매우 크다. 정신적·문화적 충격을 많이 받았고 그만큼 중국 예술가는 그 충격을 담은 작품이 많다.”

펑정제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좋아했지만 예술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환경도 따라주지 않아 느지막이 시작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예술가로서 발전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렇게 꾸준히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중국 사회가 많이 변했다. “시대의 변화를 겪는 중국인의 모습을 눈의 방향을 통해 표현한다. 중국은 큰 변화를 겪으며 과거 폐쇄적 사회에서 지금의 자유로운 상태로 바뀌었다. 그래서 다양한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초점을 맞출 수 없는 상태다. 출품작 ‘Chinese Portrait N Series 2008 No.03’(2008년) 속 여인은 다채로운 세상에서 한 포인트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옷장에 옷이 많으면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처럼 펑정제의 작품에 등장한 사람은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눈이 사방팔방을 향하며 초점도 맞지 않는다. 충격적인 비주얼과 컬러의 작품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이번 전시엔 가로세로 3m짜리 초대형 작품을 들고 나섰다.

Animals and Human Beings No.23, Oil on Canvas, 160×160cm, 2017

펑정제는 말한다. “인간은 구체적 시공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 시대나 상황이 바뀌면 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정 사건이 작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내가 창작자의 관점에서 예술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는 시대적 변화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묘사한다. 하지만 작품에 구체적 상황을 표현하진 않기에 관람객 각자의 느낌에 따라 이해하길 바란다. “예술가로서 관람자를 바라볼 때 개방성을 유지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른 경험, 관점, 지식, 견문을 갖고 있다. 각기 다른 각도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에 나는 작품에 대해 지나치게 설명하지 않는다. 관람자의 반응과 이해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1000명의 관람자가 있으면 1000개의 관점이 있다.”
펑정제는 중국과 한국의 미술이 유사하지만 다르다고 말했다. “중국의 현대미술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발전했다.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발전을 시작했다. 과거엔 폐쇄적이었다. 한국이 중국보다 빨리 발전했다. 중국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30~40년간 이룬 변화의 폭이 매우 크다. 정신적·문화적 충격을 많이 받았고, 그만큼 중국 예술가는 그 충격을 담은 작품이 많다. 물론 중국과 한국은 큰 방향은 유사하지만, 한국은 안정적인 상태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중국과는 다르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취재 협조 및 사진 제공 아시아예술경영협회, 이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