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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모르는 터너상 이야기

ARTNOW

터너상은 명실공히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상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도 가장 많다. 터너상과 그 수상작에 얽힌 결코 웃지 못할 뒷이야기를 알아본다.

터너상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그룹 스터키스트 /Photo Stuckism.com

전 세계엔 수많은 미술상이 존재한다. 이런 미술상이 꼭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또한 늘 있어왔다. 후보자가 될 수 있는 충분조건이나 후보자에 대한 심사 기준, 심사위원 선정 기준 그리고 수상 작가의 역량 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한 고귀하고 정신적이고 철학적이며 비물질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예술가들의 창작을 물질적이고 경박하며 지극히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상에 대해, 무엇보다 상을 받는 대상인 예술가들이 먼저 불편하게 여기기도 했다(실제로 미술상 수상을 거부한 사례도 간혹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술상은 꾸준히 존속해왔고 발전해왔다.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상인 영국 터너상의 경우 50세 미만의 영국인 작가 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회화나 조각, 비디오 등 장르의 제한은 없고, 상금은 2만5000파운드(약 5000만 원)다. 후보로 선정된 4명의 작품 전시가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먼저 열려 관람객에게 선보이고, 연말에 수상자를 발표한다. 주로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작가가 수상하면서 터너상은 영국 전역에, 나아가 전 세계에 현대미술에 대한 열띤 논쟁을 일으켜왔다. 하지만 이런 터너상의 이면엔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일화도 많다. 상의 빛나는 권위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1 해마다 터너상 수상자 발표와 안티 터너상 시위가 동시에 벌어지는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Photo Stuckism.com
2 터너상 후보자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3 2013년 터너상을 발표하는 세어셔 로넌과 수상자 로르 프루보(가운데) /Photo Phil Smyth

2013년 12월 3일 저녁, 수많은 영국인이 영국을 대표하는 TV 채널 ‘채널 4’ 앞에 앉았다. 그들은 2013년 영국 최고의 현대미술 작가를 발표하는 순간을 지켜봤다. 아일랜드 출신 미모의 여배우 세어셔 로넌(Saoirse Ronan)이 올해의 터너상 수상자로 로르 프루보를 지목하자 이내 박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영국인의 자부심이자 영국 현대미술을 세계 곳곳에 알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온 터너상의 이번 수상자는 영국인이 아닌 프랑스인이었다. 따라서 터너상 수상자 발표는 도버 해협을 건너 이웃 나라 프랑스인에게도 특종이 됐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자문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프랑스인도 영국의 젊은 예술가에게 프랑스 최고의 현대미술상을 안겨줄 수 있을까?
로르 프루보는 터너상 시상식 연단에 올라 “프랑스인인 나를 기꺼이 받아들여준 영국인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침내 터너상은 영국에서 예술가로서 업적을 쌓는다면 국적 따윈 상관하지 않는 관대한 상으로 성숙하고 발전한 것이다.
물론 터너상이라고 수상 그 이면에 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채널 4에서 생중계를 시작한 것은 1991년부터인데, 미술계 관계자가 아닌 유명 연예인을 시상자로 초대하면서 터너상 시상식 생중계는 더더욱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됐다. 2001년 시상자로 무대에 선 마돈나가 방송 중 욕설을 퍼부은 것 역시 뉴스거리가 됐다. 많은 사람이 당시의 욕설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 욕설만 빼면 마돈나의 연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마돈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수상자를 발표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미술상을 만들고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하는 시상식이라는 제도가 매우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은 사랑과 같습니다. 사랑처럼 영감을 줄 수 있고, 사랑처럼 설명하기 힘들고, 사랑처럼 격노하게 합니다. 우리는 미술 없인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 명의 작가가 다른 작가들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에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고, 이를 말할 용기가 있는 작가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1 매년 터너상 발표 날 스터키스트는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앞에서 안티 터너상 시위를 벌인다. /Photo Stuckism.com
2 영국 미술계의 문제적 작가 트레이시 에민
3 쇼킹한 작품으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아온 데이미언 허스트는 1995년 터너상을 수상한 후 단숨에 세계 미술계의 스타가 되었다.
4 스터키스트를 만든 빌리 차일디시. 그는 트레이시 에민의 옛 애인이기도 하다.

그해의 수상자는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의 텅 빈 전시장에서 불이 5초씩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개념주의적 설치 작품을 선보인 마틴 크리드(Martin Creed)였다. 그의 작품은 예술의 정의에 대한 대중의 열띤 토론을 끌어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단연 ‘쓰레기’였다. 많은 이들이 그의 퍼포먼스를 ‘작품’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진짜 쓰레기를 선보인 작가도 있다. 1999년 터너상 후보에 오른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 ‘나의 침대(My Bed)’다. 작가가 자살을 기도하고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한 실제 침대를 전시장에 재현한 작품인데, 침대 시트는 심하게 얼룩져 있었고, 침대 발치엔 담배꽁초와 콘돔, 팬티, 종이 뭉치 등이 널려 있었다. 이 작품에 대한 미디어와 관람객의 비판은 거의 분노에 가까웠다. 에민은 결국 터너상을 타지 못했지만, 수상자인 비디오 아티스트 스티브 매퀸보다 유명세를 치렀다. 그녀의 침대 작품은 영국 최대의 컬렉터 찰스 사치가 15만 파운드(약 3억 원)에 사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그에 앞서 1995년엔 1990년대 초반부터 영국 미술계의 스타였던 데이미언 허스트가 반을 가른 젖소를 방부액에 넣어 전시한 ‘Mother and Child Divided’로 상을 받았다. 거대한 타이거 상어를 방부액에 넣은 작품과 죽은 말의 머리를 먹고 사는 파리들을 유리 상자에 넣어 전시한 작품 등 충격적인 작품으로 찬사와 비판을 받은 데이미언은 터너상을 수상하면서 과거의 쇼킹한 작품과 행적이 모두 ‘오라’가 돼 더 높은 곳으로 승천했다.
해마다 터너상이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이 상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비판을 떠나 조직적으로 가시화되기도 했다. 대표적 터너상 안티는 ‘스터키스트(The Stuckiest)’ 그룹이다. 스터키스트는 터너상이 포커스를 맞춰온 개념미술에 대항해 구상미술을 추구하는 것을 골자로 1999년 출범했다. 이들은 터너상 시상식이 열릴 때마다 시상식장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광대 복장으로 시위를 벌인다. 터너상 시상식을 보도하는 미디어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들은 터너상 수상자나 예술계 전반에 만연한 엘리티즘을 작품을 통해 풍자하기도 했는데, 트레이시 에민의 팬티를 앞에 두고 소장 여부를 고민하는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관장 니콜라스 세로타의 그림이 대표적 예다. 사실 스터키스트 운동을 창시한 빌리 차일디시(Billy Childish)는 영국의 젊은 작가(yBa) 그룹으로 유명해진 트레이시 에민의 옛 애인이기도 하다. 그는 1999년 에민이 터너상 후보에 오르고 그녀의 작품 ‘My Bed’를 찰스 사치가 사들이자 자신도 창고에 에민이 사용하던 침대를 가지고 있으며,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2만 파운드에 팔겠다고 말했다. 어쨌든 스터키스트의 유명세도 상승하고, 이 그룹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이들의 이념이 나름 설득력을 얻었음에도 영국 미술계는 이들에게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1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의 니콜라스 세로타 관장이 트레이시 에민의 팬티 구입을 망설이고 있다고 말하는 작품. 스터키스트 그룹 작가 찰스 톰슨이 그렸다. /Photo Stuckism.com
2 스터키스트 그룹의 안티 터너상 퍼포먼스 /Photo Stuckism.com

또 하나의 안티 터너상은 ‘케이파운데이션(K-Foundation)상’이다. 영국 출신 작가이자 뮤지션인 빌 드러먼드(Bill Drummond)와 지미 코티(Jimmy Cauty)가 만든 상으로, 이들은 1993년 터너상 수상 작가인 레이철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를 영국 최악의 작가로 발표했다.
레이철 화이트리드는 처음에 케이파운데이션에서 주겠다는 상금 4만 파운드의 수령을 거부했지만, 받지 않으면 그 돈을 태워버릴 거라는 소식을 듣고 받아서 3만 파운드는 젊은 작가 지원금으로, 1만 파운드는 집 없는 사람을 위한 단체에 기부했다. 이들은 또한 1998년 코끼리 똥으로 작품을 제작한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작품에 항의하며 미술관 계단에 한 무더기의 똥을 뿌리기도 했다. 돈에 의해 미술계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비판하기 위해 상을 제정했다는 빌 드러먼드와 지미 코티의 이런 촌극을 영국 미디어에서 대서특필했고, 이들의 행위는 터너상을 이용해 유명세를 타고자 하는 얄팍한 해프닝으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정작 영국 미술계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이후 그들은 영국의 대형 갤러리와 연계해 캠페인을 벌이고자 했지만, 아무런 호응이 없자 캠페인을 위한 자금 100만 파운드 (약 20억 원)를 스코틀랜드의 주라 섬에서 태우는 영화를 제작했다.
아, 그 거금이 가난한 작가들을 지원하는 데 쓰였더라면! 이렇게 무모하고 극단적인 저항의 책임을 터너상에 물어야 할까?
최근 들어 현대미술상의 과잉으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에 미술상이 필요한 이유는 많다. 그 가운데에서도 터너상은 숱한 화제를 만들며 꾸준히 존속해왔고 발전해왔다. 터너상 수상 작가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격렬한 반응이 아이러니하게도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또한 논란의 대상이 된 작가들이 세계적 작가로 성장하면서 터너상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 터너상의 스캔들과 스토리가 넘쳐날수록 터너상의 권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최선희(아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