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젖어서 접었다 펴는 우산 사이, 잠시 붉었다 지는 꽃
우리가 아직 청춘이었을 때, 이렇게 살고 말하고 부딪혔네.

파편적 성장
청춘, 산울림, 1981년
외삼촌 김제년은 산울림의 ‘청춘’을 부른다. 그리고 외삼촌 김제년은 핑크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을 듣는다. 외삼촌 김제년은 산울림을 부르고, 핑크플로이드를 듣는다.
Smells like Teen Spirit, Nirvana, 1991년
친구 이희철은 뮤직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에서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보여준다. 이후, 세상의 남자들은 거지꼴로 흐느적, 구부렁, 울렁거리면서 말하고, 걷는다.
제주도, 1993년
내 친구 강성규, 김영운, 문희근, 박선욱, 전주성, 조성진, 최정민, 황성정, 허영, 홍석화는 태풍주의보가 내린 제주 큰 바다에 뛰어든다. 아무도 없는 제주 큰 바다에서 큰 파도를 타고, 바닷물을 많이 먹고, 모래가 매우 엉킨 채 길게 웃는다.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1997년
나는 비 내리는 보스턴 시내에 있는 어떤 빌딩으로 들어간다. 백인 여성이 과자와 차를 내준다. 자리에 앉아 비 내리는 창을 바라본다. 그리고 비를 맞고 들어온 갈색 머리 백인 여자가 바라보고 있던 창가에 앉는다. 잠시 후,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관계자가 학교 설명을 한다. 그리고 다음 해에 나는 IMF로 한국에 들어온다.
Yangachi Guild 양아치 조합, 2002년
나는 첫 개인전
밝은 비둘기 현숙 씨,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2010년
나는 ‘밝은 비둘기 현숙 씨’로 제1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다. _ 양아치(아티스트)
아키라(アキラ), 1988년
<아키라>를 넘겨보는 순간, 오토모 가쓰히로(大友克洋)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물론 조형성에 압도된다. 나는 10대를 <아키라>와 보낸 것이 자랑이다.
오현경, 1988년
나는 서울로 가는 기차에서 잡지를 본다. 그리고 아모레퍼시픽, 지지 (GG, Green Generation) 광고에서 오현경을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989년, 오현경은 미스코리아가 된다.
Standing Youth, Wilhelm Lehmbruck, 1913년
부산예술고등학교, 서양 미술사 선생님은 어두운 교실에서 슬라이드 환등기로 빌헬름 렘브루크의 ‘서 있는 청년’을 보여준다. 나는 빌헬름 렘브루크의 ‘서 있는 청년’을 바라본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하얀 나비, 김정호, 1983년
가수 김정호는 눈을 깊게 감고, 검은 양복을 입고, 마이크를 크게 돌려 감은 채 노래를 부른다. 근사하고, 처연하고, 그윽하고, 영원하다.
청춘, 차려!
청춘들에게 정신 차리라며 ‘차려’를 요구하던 음료 광고가 있다. 그 에너지 드링크는 ‘뜨거운 여섯(핫식스)’이란 이름으로 그렇게 청춘을 채찍질했다. 그러나 기분 나쁘진 않았다. 어설픈 위로보다는 차라리 나았으니까. 모든 촬영이 그렇듯 예산이 적은 현장은 더욱 고되다. 몇 년 전 여름 영화 <용순>의 촬영 현장에서 난 늘 반수면 상태였다. 매일 핫식스를 몸에 들이부으며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그것은 내게 사고 없는 현장을 선사했고, 크랭크업 뒤 한 달을 꼬박 기면증 환자처럼 잠만 자는 정도의 무난한 부작용을 남겼을 뿐이다. 핫식스는 나를 버티게 해준 내 청춘의 상징이다. 그렇다. 청춘은 하루를 버티는 것이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버티는 것에도 자기최면이 쉬웠지만 하루를 버티고 또 하루를 쌓아 꼬박 몇 년을 버티는 삶이 지속되어왔다. 늘 버티는 게 일이었으니 새삼 놀랄 일도 아니지만 ‘왜 청춘은 마냥 버텨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저 청춘과 젊음 운운하며 구워삶으려 드는 사기꾼을 주변에서 걸러내는 데에만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이 필요했을 뿐이다. 사방을 경계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착취당하기 쉬운 게 청춘 아니던가. “누가 좋아하는 일 하랬냐?”란 지적은 고루했다. 어떤 일이든 청춘은 착취당하기 좋은 명분으로 활용되고 공격 받아왔으니까. 영화도 예외는 아니었고. 나의 고생 내역을 나열하는 건 무의미하다. 우리 모두 청춘으로 얼마나 빡센 삶을 버티고 있는지 다 짐작하니. 그래도 <용순> 촬영 현장은 행복했다. 청춘들끼리 무모한 열정으로 뭉쳤기에 어떤 고생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한 스태프와 배우들이 내게 착취당하는 청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 악착같이 핫식스를 들이켰다. 나는 제작사도, 투자사도, 배급사도 아니지만 감독은 연출만 잘하면 된다는 뻔한 말보다 나 때문에 함께 고생한 이들의 청춘이 낭비되지 않길 바랐다. 내 영화보다 우리 영화니까. 어느 영화제에서 받은 상금 전액을 스태프, 배우들과 나누었을 때 그 작은 행복을 잊을 수 없다. 아마도 내 청춘에서 가장 다행스러운 순간이 아니었을까. 물론 아직도 마음엔 빚이 남았다. 청춘은 내게 버릴 수 없는 페이스메이커다. 부디 청춘 타령하며 꼰대질하는 못난 아저씨로 늙진 말아야 할 텐데, 그땐 확다 관두고 떠나야지, 그런 마음을 품고 산다. 그러니까 난 아직까진 썩 괜찮은 청춘인가 싶기도 하다. 착각하며 사는 게 오히려 마음은 편하니까. 청춘의 빛으로 마음의 빚을 갚아야지. 오늘도 내 청춘아, 부디 차려!
_신준(영화감독)
엉거주춤한 청춘
고등학교 재학 시절 S 집에 자주 모였다. 독채로 지은 옥탑엔 3평 남짓한 방이 있었다. 곳곳에 곰팡이가 핀 눅눅한 공간이었다. 문이 헐거워 가을부터 추웠고, 여름엔 찜통처럼 더웠다. 그곳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어스름한 밤이면 나를 포함한 3명이 빈 도시락을 들고 옥탑에 모였다. 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S는 콘센트가 뽑힌 전기기타로 브라이언 메이의 리프를 따라 쳤고, C는 잡지에 실린 두카티 파니갈레 사진을 보며 침을 삼켰다. 나는 신해철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거나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를 읽었다. 딱히 모여 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딱히 갈 곳도 없었으므로 우린 모여 하릴없이 빈둥댔다. 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고 몰래 숨어 콜록대며 담배를 태웠다. 도서관에서 마주친 여자아이 이야기를 하고 새벽녘 자전거를 타고 빈 거리를 쏘다녔다. 수능이 끝난 겨울엔 여행을 떠났다. 진작 대학을 포기한 C가 영화관 매점에서 팝콘을 튀기며 번 80만 원이 경비였다. 목적지는 7번국도, 이동 수단은 자전거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이다. 아마도 김연수의 소설을 읽은 누군가가 제안했을 것이다. 남은 2명은 별생각 없이 동의했을 거고. 호기롭게 짐을 잔뜩 싼 배낭을 싣고(왠지 농구공과 오디오도 챙겼다) 잠실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몇 시간 안 돼 웃음기가 사라지고 말이 줄었다. 클랙슨 소리에 자주 멈춰 물통을 비워댔다. 지도는 필요 이상으로 복잡했으며 서울 촌놈들은 국도와 고속도로의 차이도 몰랐다. 우린 결국 경기도 양평 부근 모텔에 주저앉았다. 골대 없는 흙바닥에서 농구를 하고 밤새도록 토이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챙긴 CD가 그것뿐이었다). 소주 단 두 병에 열아홉 혈기왕성한 남자 3명은 만취해 밤새 화장실을 오갔다. 김연우가 부른 노랫말처럼 ‘거짓말 같은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린 자전거를 모텔 주인 아저씨에게 기증하곤 무궁화호에 올랐다.
지질하고 궁상맞은 기억을 늘어놓는 건 내 청춘이 딱 요런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별 볼일 없는 에피소드와 엉성한 자세, 주춤한 태도, 지루함, 빈둥거림 같은 것이 나의 청춘이었다. 청춘이란 말은 나를 당시로 데려간다. 도로 갓길을 위태로이 달리던 자전거의 안장 위로, 12월의 뾰족한 태양이 피부를 찌르던 감촉의 시간으로, 한없이 이어지던 고속도로의 지루한 풍경으로 이끈다. 시답잖은 시간이었지만 당시를 더듬는 것은 즐겁고 아련한, 조금 아픈 일이다.
_ 조재국(에디터)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곽기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