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이 바로 차마고도
멀티 크리에이터 이상일 부부가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빛과 그림자처럼 또 함께 움직이면서. ‘숲속의 우주’를 곧 공개할 이들 부부가 25년간 함께 살아온 삶을 기념하며 티베트의 차마고도로 여행을 떠난 은혼식을 추억했다.

티베트의 전통 의상을 입고 은혼식을 올린 이상일 부부.
스타일리스트 이상일이 이번엔 진짜로 숲속의 새소리를 보내왔다. 여자를 둘러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멀티 크리에이터에서 이제는 정말 숲속의 요정이 된 듯했다. 세상의 순수와 온갖 자연이 여기 있으니 이제 그만 쉬어가라고 언젠가 말했는데, 그 말을 진짜 실현한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놓고 말이다. 곧 오픈할 이 공간은 숲속에서 자연과 벗하며 쉴 수 있는 곳이랄까. 화려했던 현직 생활을 후배들에게 과감히 넘기고 그는 새로운 노년의 인생 무대를 이 산속의 문화 공간에 펼칠 생각이다. “이 공간은 가족의 축제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새로운 결혼 문화를 펼칠 공간으로 안성맞춤이죠. 카페, 레스토랑, 미술관, 전통 한옥, 유러피언 빌라, 미니 도서실까지 모두 산속에 품었습니다. 취미로 그린 그림 300여 점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개인 미술관 또한 기획하고 있습니다.”

리장시의 설산 앞에서 장이머우 감독의 뮤지컬 <리장의 인상>을 함께 봤다.
그의 말처럼 부부가 신혼 때부터 이사 다니며 꿈을 실현한, 재미있는 서울의 동네 이름을 붙인 각 빌라는 완벽한 독채로 만들었고, 모든 길이 물처럼 자연스레 이어지며 중간에 만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작은 돌 하나까지 그대로 살린,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광활한 느낌이 들면서도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작은 빌라들이 모여 있는 셈이다. 이곳의 정상에는 멋진 한옥 두 채도 고고하게 자리 잡았다. 점점 현대화되어가는 한옥에 고집스레 전통성을 부여한 한옥이다. 들기름을 나무에 먹이는 작업이 계속 이어져 근처에만 가도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3년 동안 드문드문 ‘어딘가 숲속에서…’라는 소식만 들려왔는데, 은퇴 후 그는 이곳에서 마지막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1 남초 호수. 이상일의 소망은 아내와 함께 한 인간으로서, 오래 익은 술과 같은 친구로 살고 싶다는 것. 남편으로, 부모로 살아오는 동안 그의 소망 한 가지는 짐꾼의 표정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고 한다.
2 천년을 이어온 신비한 내륙의 염전, 옌징.
하긴, 그는 정말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결혼 25주년의 은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티베트의 차마고도까지 여행을 떠난 부부이니 말이다. <마사 스튜어트 웨딩 코리아>에 이들의 멋진 은혼식 사진을 공개하고 그 추억담을 공유한다.
“공간 오픈을 앞두고 서재를 정리하다 다시 마주한 은혼식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남은 삶을 새롭게 계획하게 한 은혼식 여행이었죠. 3주간 티베트 차마고도로 떠난 여정이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치 우리를 기다린 것처럼 티베트의 한 민가에서 준비한 결혼식 복장입니다. 나는 들꽃을 꺾어 집 안을 장식하고 아내는 화덕에 불을 지펴 요리를 준비했죠. 그리고 티베트식 만찬을 즐기며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가 생각했어요.
차마고도는 중국 윈난에서 티베트를 거쳐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5000km의 길인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어요. 수많은 복병에도 불구하고 25년 동안 한 울타리를 지켜온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이 길을 선물했어요.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말하던 천국이 바로 이곳인가 싶었죠.

3 해발 5000m의 높은 산에 안긴 도시, 샹그릴라.
4 지구상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 남초 호수 앞에 자리한 남초 마을의 천막촌에서 이상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림을 그리고 있다.
또 하나 기억에 남은 건 협곡 아래로 거세게 흐르는 란찬강과 그 옆의 염전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옌징에서 직접 물동이를 지어본 일입니다. 마치 조각보 같은 염전이 펼쳐진 곳이었죠. 염전까지 물동이를 지고 나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언제나 우리 부부의 소망 하나는 짐꾼 같은 얼굴이 되지 말자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짐꾼 같은 표정이 되어 있진 않은지….
그럴 때마다 저는 이곳에서 자연의 가르침을 깨칩니다. 앞산과 뒷산은 언제나 티 없이 살라고 하는데 아직 말을 잘 듣지 않고 있죠. 열심히 마음 공부를 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가장 원소적인 연필로만 그리는 모노톤인데도 마음속으로는 오만 가지 색을 넣고 있어요. 그 깊이와 정서에 반해 당분간은 계속 연필로만 작업할 겁니다. 이 연필 끝은 바로 소름 돋는 제 가슴과도 같죠. 이 공간도 사실 도면 작업 없이 제 드로잉만으로 설계했습니다.” 그는 마치 완벽한 작품 같은 드로잉 도면지를 펼쳐 보여주었다. 포도나무 한 그루까지 드로잉한 정밀한 설계지. 그가 가장 먼저 이곳에서 한 일도 길을 닦으며 포도나무를 심은 것이라 했다. 산을 오른 이들이 하산길에 따 먹으라고.

5 옌징의 한 집에서 그들의 은혼식을 도왔다.
6 축하 파티를 위해 이상일이 준비한 야생화 꽃꽂이.
“신혼 때부터 사용한 소품과 그곳에서 그린 드로잉 작품도 모두 이곳에 두었습니다. 특히 여행지에서 구입한 물건이 많아요. 오대양 육대주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죠. 이 옷들은 요르단 사막 시골에서 힘들게 구입한 거예요. 오래된 전통 예복인데 한 땀 한 땀에서 정성과 살아 있는 예술이 느껴져 구입했죠. 그동안은 그곳 사람들의 삶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갔어요. 앞으로요? 이곳을 오픈하고 나면 데이트할 때 다니던 유럽 쪽 나라들을 다시 돌아볼 생각이에요.” 아내와 함께 한 인간으로서, 오래 익은 술과 같은 친구로 살아가고 있는 그. 그는 이곳에서 예술을 펼쳐 보이고, 아내는 조력자가 되어 가끔은 그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척척 해결해준다. 부부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완벽한 공동체처럼 보인다. 참, 그의 숲속 비밀 아지트,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말하는 이 거대한 공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인생은 예술’이라고 했다. “어차피 인생은 예술이니까요!”
에디터 김수진(suze@noblesse.com)
사진 전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