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자리
전시 기획자로 우리 앞에 선 배우 류덕환과 스튜디오 언라벨의 르동일 디자이너가 예술가로 서로 궁금한 점을 물었다.

류덕환 기획자가 입은 이너 셔츠와 핀스트라이프 슈트 셋업 모두 NEU_IN, 슈즈와 액세서리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르동일 디자이너가 입은 이너 폴로셔츠 NEU_IN, 버튼 디테일 코트 SCHAFT, 팬츠와 슈즈, 액세서리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8월 9일부터 25일까지 앤더슨씨 성수에서 열린 전시 〈NONFUNGIBLE: 대체불가〉를 기획한 이는 배우 류덕환. 기획자로서 그는 이 전시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그 얘기를 하기보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 배우 류승룡, 천우희, 지창욱, 박정민에게 자리를 마련해줬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한 이 프로젝트에서 스피커인 4명의 배우만큼 중요한 인물이 또 있었으니, 바로 스튜디오 언라벨의 르동일 디자이너다. 그는 이 전시를 위한 ‘에틱 체어’를 만들어 참여했다. 이 특별한 의자는 참여 배우들은 물론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람객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는 장치다.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사람의 끈끈한 협업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어떻게 서로에게 끌리게 된 것일까? 이 모든 궁금증을 풀기 위해 르동일 디자이너가 만난 류덕환의 이야기를 전한다.
르동일 L 이번 전시 기획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요.
류덕환 R ‘하고 싶어서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혼하면서 가정에 충실하고자 배우라는 직업을 잠깐 내려놨어요.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막연히 전시를 비롯해 이것저것 보러 다녔어요. 그 세계를 들여다보니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배우로서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정작 ‘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음에도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지?’란 의문이 생겼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시작했어요. 전시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죠. 같은 결핍, 고민이 있는 배우들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종합해 선보이는 방식으로 말이에요.
L 의자가 프로젝트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앞서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하며 잘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뜻 하겠다고 했고요.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나요?
R 기획 단계부터 의자는 정말 중요한 요소였어요. 어떻게 하면 참여 배우들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인터뷰를 흑백으로 촬영하기로 결심했어요. 자연스럽게 의자를 매개체로 ‘자리한다’란 의미를 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냥 패브릭이나 우드 의자는 흑백에서 잘 드러나지 않더군요.
L 매체적 특성은 금속에서 잘 드러나긴 하죠.
R 맞아요. 흑백이지만, 그 재료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금속 의자를 떠올렸고, 그래서 디자이너님과 꼭 함께하고 싶었어요. 배우들이 앉아서 촬영하는 것을 넘어 관람객 모두 이 자리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의자죠.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는데, 디자이너님은 어떠신가요?
L 저도 클라이언트에게 하드웨어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다 보니,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갈증은 물론 ‘공허함’도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를 어떻게든 전달해보기 위해 ‘연약한 구조’라는 개념을 세우고 작업해왔어요. 디자인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이 개념 위에서 제 불완전한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죠. 그런데 에틱 체어는 육중함을 뽐내면서 단단하고 강직한 오브제입니다. 처음엔 제가 탐구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여기에 앉아 촬영하고, 자신의 불온하고 연약한 감정을 내비칠 때 비로소 제가 가진 개념이 여기에 투영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전시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는 ‘저작권’의 개념도 제 업과 맞아떨어져 또 의미가 있었어요. 이런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신 건가요?
R 배우로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어요. 작품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우리는 그 저작권을 소유하지 못해요. 아이러니하죠. 이번에 류승룡, 천우희, 지창욱, 박정민 배우가 참여했는데, 모두 섭외 전화를 걸자마자 재미있겠다며 흔쾌히 참여를 결정했죠. 저만큼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최초의 관람객으로서 생생히 전달받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르동일 디자이너님과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몸담은 인테리어 세계 역시 비슷한 갈증을 느끼는 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L 사실 인테리어디자인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카피가 난무하는 시장이에요. 어떤 것이 성공하면 그다음엔 모두가 똑같은 걸 만들어요. 이런 현상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배우에게도 작품의 저작권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어요.
R 사실 디자이너님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으로 함께한 거죠. 다른 어디에서도 다시 만들 일은 없을 거라고 하셨죠. 이 의자는 참 오묘한 힘을 지녔어요. 관람객이 처음엔 배우가 앉은 자리란 점에서 호기심을 느끼다가, 자리에 앉는 순간 참여 배우와 똑같은 집중력을 보여줘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다고 느끼는 듯해요. 이 의자는 그런 힘을 지녔어요. 그건 그 누구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없는 작품의 ‘오라’라고 생각합니다. 전시 공간인 앤더슨씨와의 인연도 비슷해요. 대체 불가한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 같은 가구, 오브제를 선보이는 곳이잖아요.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존재감을 논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죠.
L 의자의 존재감도 그렇지만, 배우 류덕환이 관람객에게 던지는 질문도 의미심장해요.
R 전시 제목처럼 대체 불가한 무엇, 혹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어요. 희소성이 있다는 건 뭘까요? 모든 사람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 보니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으론 결국 ‘나’, 그리고 ‘존재’, ‘자리’에 관한 것을 선정했어요.
L 가령 어떤 질문이 있나요?
R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는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어떻게 불렸으면 좋겠는가?’ 등이 있어요. 배우들처럼 멋지게 대답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1분이라는 제한 시간 동안 말없이 고뇌하는 사람도 있고, 눈물을 펑펑 쏟다가 마지막에 겨우 한마디 얹는 이도 있습니다. 모두 나 자신에게 던져본 질문이에요. 결국 정답은 못 찾았고,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 ‘존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거죠. 디자이너님도 참여했을까요?
L ‘행복’에 대한 이야기의 잔상이 많이 남았어요. 살면서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찾으려고 애쓰지도 않았죠. 그래서 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궁금해졌어요. 더 많은 배우, 관람객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해서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향후 프로젝트 계획에 대해서도 공유해주세요.
R 이 전시를 통해 참여 배우는 물론,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 모두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거나, 존재 이유를 찾는 일에 갈증을 느낀다는 걸 알았어요.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세부 사항은 아직 좀 더 고민해야겠지만, 르동일 디자이너님의 의자는 이대로 고스란히 가져갈 생각이에요.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