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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짜릿한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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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과 젊음의 상징인 빨강, 태양처럼 빛나는 노랑, 여유와 개성이 느껴지는 파랑. 무엇을 고를까? 뭐든 좋지 않을까? 전부 포르쉐라는데, 그것도 신형이라는데.

911 카레라 S 카브리올레 레이싱 옐로 컬러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 가즈 레드 컬러

테네리페 섬은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 속한다.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에서 뚝 떨어진 아프리카 북서쪽 대서양 한가운데 떠 있었다. 테이데 봉우리가 솟아 있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화산섬. 이는 스페인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이곳에 머무는 3일 동안 야속한 구름에 가려 파란 하늘을 한 번도 볼 수 없었지만 거뭇거뭇한 현무암이나 주홍색 스페인식 가옥, 가로수만큼 많은 길가의 선인장을 통해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했다. 뉴 포르쉐 911 카레라를 타고. 빨강, 노랑, 파랑을 적절히 바꿔가며, 지붕도 열고 닫으며. 그렇다. 이런 호사는 흔치 않으리.
포르쉐에는 많은 기함이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911이다. 포르쉐 가문의 역작으로 196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첫선을 보인 이래 지금까지 7세대를 거쳐오면서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해마다 부분 변경 모델을 선보이며 “나 더 예뻐지는 중이야. 좀 더 편리해졌어. 그리고 여전히 잘 달려. 그러니까 다른 모델에 눈독 들이지 마” 하고 끊임없이 어필한다.

911 카레라 S 쿠페 인테리어

세로로 변형한 공기 흡입 스크린과 날렵한 리어 램프

뉴 포르쉐 911 카레라는 이전 모델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포르쉐의 엘레나 스톰 스포츠카 미디어 담당자는 ‘기술에서 레볼루션(revolution, 혁신), 디자인에서 이볼루션(evolution, 진화)을 이룬 모델’이라고 자평했다. 주차장에 도열한 911 군단은 전통적인 (개구리 눈처럼 생긴) 동그란 헤드라이트, 특유의 우아한 지붕선과 앞은 길게, 뒤는 짧질주게 뺀 차체 라인 등 포르쉐 스포츠카의 정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멀리서도, 누가 봐도 저건 911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데 미묘하게 바뀌었다. 더 날렵하고 또렷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먼저 항공기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조각 같은 형태로 디자인한 프런트 스포일러가 차폭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 그게 무엇이든 웃는 얼굴은 보기 좋다. 헤드라이트는 바이-제논 램프를 중심으로 4개의 LED 주간주행등이 자리한다. 이건 요즘 포르쉐가 공통적으로 가져가는 디자인 DNA다. 옆면에서는 차 문에 핸들 리세스 커버를 적용하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작은 무게라도 덜어내자는 스포츠카의 경량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한 것. 이를 위해 새로운 외부 도어 패널까지 개발했단다. 날렵하게 다듬은 LED 후미등은 뒤태를 강조해주는 ‘에지’ 같은 요소. 새로운 공기 흡입 스크린은 터보 엔진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가로에서 세로로 바꾸었는데, 이는 지붕선을 따라 내려온 공기가 자연스럽게 엔진룸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려는 의도다.
사실 뉴 포르쉐 911 카레라의 가장 큰 변화와 혁신은 엔진에 있다. 지난 50년간 이어온 포르쉐 911 모델의 신념인 자연 흡기 방식 대신 트윈 터보차저를 장착한 6기통 수평대향 엔진을 얹는다. 별도 장치램프를 통해 압축한 공기를 엔진에 공급해 작은 배기량에서도 더 높은 출력을 끌어낸다. 이 덕분에 엔진 배기량을 기존 3.8리터에서 3리터로 줄였다. 날로 심해지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고, ‘몸집 줄이기’를 통한 효율성 증대라는 요즘 추세를 따랐다. 효율적으로 더 빠르게, 강하게 만들어 쓰기. 포르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뉴 911 카레라를 통해 이를 증명했다. 신형 911 카레라는 370마력, 911 카레라 S는 420마력으로 기존 모델보다 20마력씩 향상됐다. 최대토크는 1700rpm에서 각각 450N·m와 500N·m이며, 엔진 출력은 최대 7500rpm이다.
우려한 트윈 터보 엔진의 사운드는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좀 더 앙칼지거나 우렁차길 바랄 수도 있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평소 실내 ‘정숙성’을 따지는데 포르쉐만큼은 이 소리에 취하고 싶어서 시승하는 내내 스포츠 배기 버튼을 눌러놓았다. 이 버튼을 누르면 배기음이 증폭돼 실내에서도 차와 함께 반응하며 역동적인 운전을 즐길 수 있다. 테네리페 섬의 시승 코스는 다이내믹 그 자체였다. 해안 도로부터 낮은 언덕, 고봉까지 굽은 길투성이다. 반 원이 넘는 궤도를 그리는 고난도 ‘헤어핀’ 구간도 곳곳에 나타났다. 하지만 더 강해진 뉴 포르쉐 911 카레라 덕분에 헤쳐나갈 수 있었다. 신형 카레라 S에 옵션으로 장착한 ‘액티브 리어 액슬 스티어링’ 기술이 큰 의지가 되었다. 운전자가 시속 50km로 산악 도로 같은 굽은 길을 지나면 앞뒤 바퀴가 다른 방향으로 회전한다.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앞바퀴는 오른쪽, 뒷바퀴는 왼쪽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앞뒤 차축 간 거리가 짧아져 회전 직경이 0.4m 줄어드는 효과가 난다. 더 민첩하고 안정적으로 곡선 주행이 가능하다는 얘기. 크게 애쓰지 않아도 차체가 본능적으로 노면을 따라 돌아간다. 운전 실력보다 차의 기본 성능이 더 뛰어났다.
새로 적용한 ‘다이얼 스위치’는 운전 중에도 즉각적인 서스펜션 조작이 가능해 편리했다. 운전대 오른쪽 부분에 노멀, 스포츠, 스포츠플러스, 인디비주얼 4가지 주행 기능을 선택할 수 있는 버튼을 장착한 것. 인디비주얼을 선택하면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 액티브 엔진 마운트, PDK 변속 등 원하는 맞춤형 설정이 가능하다니 이 차를 장난감처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도해도 좋을 것 같다. 다이얼 스위치 가운데에는 ‘스포츠 응답 버튼’을 추가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최고 가속 성능을 내기 위해 엔진과 변속기가 20초간 최적화 상태를 준비한다. 발 빠르게 튀어나갈 준비를 하는 것으로 차선 변경 시 유용하다.

새로운 PCM 7인치 멀티 터치스크린과 포르쉐 카 커넥트 앱 시작화면

어떤 차량의 성능을 이야기하며 정지→시속 100km에 달하는 시간, 이른바 제로백을 따질 때가 있다. 일반 도로 주행에서는 ‘엔진 반응이 즉각적이다’ 정도로 밖에 체험할 수 없는 일. 하지만 포르쉐의 아우구스트 아흐라이트너 911 담당 사장이 “뉴 포르쉐 911 카레라 S의 경우 마의 4초 벽을 깬 최초의 카레라 모델”이라고 한껏 자랑한 터였다. 그래서 포르쉐는 안전하게 이를 체험할 수 있는 ‘런치 컨트롤’ 섹션을 마련해주었다. 산타크루즈 마을의 한 부둣가, 커다란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에서 진행했다. PASM 모드를 스포츠플러스에 맞추고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 속도계의 바늘을 레드 존까지 올리면 계기반에 런치 컨트롤 표시가 들어온다. 가속페달을 밟은 채 왼발을 떼니 와우,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눈 깜짝할 새에 저만치 날아가 있었다. 뉴 포르쉐 911 카레라 S의 제로백은 3.9초다. 그 힘을 얻어 찰나의 시간에 수십 미터를 전진해버렸다. 운전대를 조작하지 않아도 직선을 유지해주는 것 역시 신기했는데, 이 또한 포르쉐의 안정성에 관한 기술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시승하는 내내 음악을 들었다. 포르쉐 측에서 장르별 음악을 선곡해놓았지만 내 귀에 익숙한 내 아이폰에 담긴 음악을, 실제 폰을 조작하듯이 간편하게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골라가며 들었다. 포르쉐의 새로운 기능인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PCM)를 활용해 애플 카 플레이를 작동시킨 덕분이다(옵션 사양이다). 뉴 포르쉐 911 카레라의 가장 큰 인테리어 변화는 PCM에 기인한다. 사이즈가 커진 7인치 멀티 터치스크린을 달았다. 엄지와 검지손가락만으로 화면을 확대, 축소할 수 있으니 지도를 볼 때 편리하다. 실시간 교통 정보, 구글의 어스, 스트리트 뷰 등도 이용할 수 있어(이게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할지 지켜봐야 한다) 내비게이션 성능으로는 꽤 만족스럽다. 스마트폰 연동도 가능한데, 거치대를 대신해 센터 콘솔 안에 스마트폰을 올려둘 수 있는 링크 선반을 마련했다. 배터리 충전이 가능하며 동시에 블루투스로 애플 카 플레이, 포르쉐 카 커넥트 앱 등을 연결할 수 있다. 터치스크린은 근접 센서가 있어 근처에 손만 갖다 대도 바로 반응을 보인다. 오디오를 이용 중이라면 멈춤, 재생, 되감기 같은 버튼이 화면에 들어온다. PCM의 개선은, 포르쉐의 본질은 스포츠카지만 일상에서도 편안하게 탈 수 있는 데일리 카로 완벽한 기능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지붕 열고 달릴 때 음악이 빠지면 섭섭지 않은가. 폼 잡다 길을 잃어서도 안 되고.

4점식 LED 주간주행등을 켜고 달리는 모습. 오른쪽 차량은 911 카레라 S 쿠페 마이애미 블루 컬러다.

GTS 전용 패키지 옵션을 적용한 인테리어

GTS 감성을 강조한 계기반

뉴 포르쉐 911 카레라에 집중했지만 사실 이번 시승 행사에는 한 가지 모델이 더 있었다. 포르쉐의 열번째 GTS, 마칸 GTS다. GTS는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Grand Turismo Sport)의 약어.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고성능 차라는 뜻이다. 마칸 GTS는 마칸 S와 마칸 터보의 중간에 자리한 세그먼트로 SUV와 스포츠카의 교집합을 표방한다. 편안함과 스포티함의 절묘한 만남이다. 마칸 GTS는 6기통 3리터 바이 터보 엔진을 장착해 마칸 S보다 20마력 높은 360마력의 최대출력을 뽑아낼 수 있다. 최대토크는 500N·m으로 911 못지않은 가속력을 자랑한다. 지면과의 간격이 마칸 S보다 15mm 낮아졌고, 정밀한 7단 더블 클러치, PASM 같은 스포츠카 고유의 성능이 기본으로 들어갔다. 스포츠플러스 모드를 선택해 응답성을 높이고 스포츠 배기 버튼으로 배기음을 키우면 이 차가 SUV인지, 스포츠카인지 헷갈릴 정도. 핸들링이 민첩해 유연하게 코너 진입이 가능하고, 연속 커브를 빠르게 통과할 수도 있다. 마칸 GTS 역시 테네리페 섬의 아찔한 와인딩 산악 도로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험로를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뉴 포르쉐 911 카레라는 빨간색(guards red), 노란색(racing yellow), 파란색(miami blue)을 골라 타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마칸은 빨간색에 집중한다. 같은 빨강이라도 911과는 다르다. 약간 톤 다운된 빨강(carmine red)이다. 스포츠카 유전자를 전면에 내세운 빨간 바탕에 블랙 컬러로 카리스마를 더했다. 고광택 블랙 컬러를 입힌 상단 부분과 매끄러운 무광 블랙으로 마감한 하단의 조합이 멋스럽다. 20인치 무광택 휠도 디자인의 일부로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실내는 알칸타라 소재로 장식했다. 검은색 가죽 테두리와 빨간색 스티치는 GTS 전용 패키지 옵션인데 없으면 아쉬울 것 같다. 카이엔 같은 대형 SUV는 부담스럽지만 스포츠카를 원한다면 마칸만 한 게 또 있을까. 계기반 정중앙에 위치한 카마인 레드 컬러로 포인트를 준 rpm 측정기 바늘이 올라갈 때마다 질주 본능이 되살아나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은 마칸 GTS만이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카마인 레드 컬러 마칸 GTS

블랙 포인트로 카리스마를 더한 뒤태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사진 제공 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