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려 퍼지는 소리
젊은 국악인의 행보를 조명하는 트래디션 시리즈, 그 두 번째 주인공은 소리로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소리꾼 김준수다.

김준수의 시간은 농도가 유달리 짙다. 2월 말 종영한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현역가왕 2>에서 맹활약하며 겨울 내내 사람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했고, 바쁜 와중에도 <김준수의 수궁가> 완창 판소리 공연과 <마당놀이 모듬전>을 소화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3월 초에는 세조의 권력욕에 의해 희생된 안평대군을 소재로 한 국립창극단의 창작극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걷는 자>(3월 13일~20일)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되짚어보니 몸을 혹사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다만 제가 선택한 일이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이 시간이 힘겹게 느껴지기보다는 즐겁습니다.” 그는 자신이 연기할 안평대군 역에 푹 빠져 있었다. “안평대군은 세조의 권력욕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알려진 세종의 셋째 아들입니다. 계유정난의 비극이 벌어진 지 27년 후가 배경인 이 작품에서는 나그네로 떠돌며 살아가고 있죠. 실제로 그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꺾였으니 얼마나 한이 많을지 상상하게 됩니다.”
김준수의 안평대군이 훌륭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건, 창극 배우로서 역량을 이미 충분히 증명했기 때문이다. <배비장전>의 배비장 역을 시작으로 <메디아>의 이아손 역, <적벽가>의 제갈공명 역, <오르페오전>의 올페 역, <춘향>의 몽룡 역, <패왕별희>의 우희 역 등 2010년대부터 국립창극단의 굵직한 작품을 빛낸 그다. 2013년 국립창극단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해 ‘국악계 아이돌’로 이름을 알렸고, 현재 창악부 부수석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베테랑이 됐다. “모든 작품이 특별하지만, 여성 캐릭터인 헬레네 역을 맡은 <트로이의 여인들>은 창극을 한층 넓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리어>에서는 80대 노인 리어로 분했는데,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를 소화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만큼 공연을 마치고 스스로 성장했다는 뿌듯함을 느낀 작품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새로운 작품에서는 그에 걸맞은 신선함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 이전의 연기가 묻어나는 것 같아 고민입니다. 역시 예술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아직 창극이 낯설다면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이나 셰익스피어의 <리어>를 우리 소리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질 수 있다. “제가 창극단에 들어갈 즈음 창극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시도가 늘었습니다. 연이은 파격에 창극의 정체성, 소리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이야기도 나왔죠. 결과적으로 창극의 외연은 넓어졌고, 창극의 매력을 알아보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도 크게 늘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10월에는 <리어>로 런던 바비컨 센터 바비컨 시어터 무대에 올랐다.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에서 펼쳐진 익숙하고도 새로운 이야기는 현지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끌어냈다. “언어를 넘어 오롯이 전해지는 감정과 에너지, 그리고 그들로서는 처음 듣는 독특함 덕분이겠죠.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고 작은 변화 속에서도 전통의 소리가 중심에 단단히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김준수가 지난해 12월 6년 만에 완창 판소리 공연을 연 것은 오랜 세월 이어진 전통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전남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이수자이기도 하다. “완창 판소리 공연은 소리꾼에게 큰 도전으로, 이를 준비하면서 소리를 다집니다. ‘수궁가’에 이어 ‘춘향가’를 익히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는데, 다음에는 이 작품으로 완창 판소리 공연에 나서고 싶어요. 소리는 저를 이루는 근본인 만큼 현존하는 다섯 마당을 모두 완창하는 날을 위해 정진하려 합니다.”
지난해 여름 첫 단독 콘서트 <창(唱): 꿈꾸다>는 1분 만에 이틀 치 표가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몇 년 전부터 틈틈이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한 것도 인기에 한몫했다. 다만 김준수가 TV 방송에 출연하는 기준은 얼마나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는지, 즉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지다. “퍼포머로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무대에 오르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믿어요. 많은 사람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가요에 소리를 녹여내면 소리에 호기심이 생길 테고, 관심으로 발전해 애정으로 이어질 수 있겠죠. 또 소리꾼의 활동 영역을 넓히면 다음 세대는 마음껏 뭔가에 도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김준수는 앞으로도 바쁠 예정이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재연 무대에 이어 새로운 <심청>을 준비 중입니다. <현역가왕 2>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 여름 무렵에는 <2025 한일가왕전>에 출연하고, 1년간 관련 콘서트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전통 판소리와 대중가요 레퍼토리를 섞어 더 큰 규모로 단독 콘서트를 열고, 작창한 곡으로 음반도 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관객과 소통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소리꾼이 되고자 하니 지켜봐주세요.”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신유나
헤어 & 메이크업 강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