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땅에서 살아남기
연이어 지진 뉴스가 들려오는 이 시점에 한국은 안전한지, 지진 연구는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지진학의 발전은 앞으로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을까?
태풍, 홍수, 화산 등 여러 종류의 자연재해 중 지진처럼 많은 피해를 불러오는 것은 없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이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지난 4월 14일과 16일에 일본 구마모토에서 발생한 지진은 각각 규모 6.2와 7.0으로 지역 전체 건물의 절반 가까이 붕괴되었거나 붕괴될 위험에 처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4월 17일에는 에콰도르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650여 명의 사망자와 46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지진은 지각의 일부가 응력을 받아 변형되다 깨지면서, 주위에 모여 있던 응력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뀌어 파동이 사방으로 전파되는 현상이다. 쉽게 비유하면 자를 잡고 힘을 가했을 때 자가 휘어지다 어느 한계점에 이르면 한 부분이 부러지면서 진동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전 세계에서 지진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지각이 이런 응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각이 깨지면서 지진이 발생하는 부분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활단층이다. 단층은 과거 수많은 지각변동에 의해 지층이 깨진 적이 있는 부분을 말하고, 그중 지질학적으로 가장 최근인 제4기(약 25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에 깨진 적이 있는 부분이 활단층이다. 활단층은 지각의 다른 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지진이 발생한다.
땅의 움직임을 읽는 학문 지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더불어 관련 학문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지진학은 지진과 지진파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물론 지진은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지구의 내부가 지각, 맨틀, 외핵, 내핵으로 구성됐음을 밝히는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바로 지진이 발생하는 진원에서 지표면의 여러 곳에 도달하는 지진파가 그 경로상에 있는 물질에 관한 정보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지진학은 지진파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진계가 개발된 19세기 말에 정밀과학으로서 제대로 그 면모를 갖춘 젊은 학문이다.
그런데 19세기 말 이전에도 지진이 전 세계에서 고루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주로 특정 지역을 따라 띠 모양으로 발생했는데 이를 지진대라 부른다. 지구에는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아메리카에서 북아메리카를 거쳐 알류샨열도, 캄차카반도, 일본, 인도네시아, 뉴질랜드로 이어지는 ‘환태평양지진대’가 있고, 인도네시아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지나 지중해로 이어지는 ‘알프스히말라야지진대’가 있다. 이 두 지진대에서 전 지구에서 방출되는 지진에너지의 98% 정도가 나온다. 그런데 왜 지진은 지구에서도 특정 지진대에서 주로 발생할까? 또 지각에 작용해 지진을 일으키는 거대한 응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두 가지 의문은 오랜 기간 지진학에서 풀지 못한 미해결 과제였다. 1960년대 후반 판구조론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의 외각은 평균 두께가 100km인 10여 개의 단단한 암석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판들이 하부에서 일어나는 맨틀 대류에 의해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일 때 그 경계의 지층이 깨지면서 지진이 발생하고, 마그마가 상승해 화산이 폭발한다. 이런 판구조론은 지진대가 모두 판의 경계임을 보여준다. 최근 일본 구마모토에서 일어난 지진은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의 경계에서, 그리고 에콰도르 지진은 나스카판과 남아메리카판의 경계에서 발생했다.
판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판경계지진, 판 내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판내부지진이라 한다. 한국과 중국은 유라시아판 내부에 위치해 판내부지진에 속하며, 이는 판의 경계에서 작용하는 응력이 내부로 전파돼 활단층을 깨면서 발생하는 지진이다. 판내부지진에 의해 방출되는 지진에너지는 전 지구에서 방출되는 지진에너지의 2% 미만으로, 지진 발생 빈도가 낮고 매우 불규칙한 편이다.
한국은 지진 안전지대일까? 우리나라의 지진 자료는 서기 1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 기록된 역사 지진 자료와 20세기 초 설치한 지진계에 기록된 계기 지진 자료가 있다. 지진 소식이 들릴 때마다 다시 떠오르는,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 지진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전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는데, 이는 다수의 활단층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지난 2000년간 한반도에 방출된 지진에너지의 3분의 2 정도가 15~18세기에 집중돼 있다. 한국의 지진이 매우 불규칙한, 전형적인 판내부지진임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지진은 1643년 울산에서 발생했고, 그 규모는 6.7로 추정된다. 20세기의 계기 지진 중 규모가 큰 지진은 1936년 진도 5.1의 지리산 쌍계사 지진과 1978년 진도 5.0의 홍성 지진이다. 20세기 초 계기 지진은 연평균 10회 정도 발생했는데 1980년대 이후로는 대략 20회, 현재는 40여 회에 이른다. 이러한 빈도의 증가는 전국적으로 지진 관측망이 확장돼 지진계에 감지된 수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규모 3.0 이상 지진의 연평균 발생 횟수는 대략 10회로, 20세기 이래 한반도의 지진 활동에는 큰 변화가 없는 셈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지진 연구지진학적으로 보면 규모와 빈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 세계에 지진 안전지대는 없다. 전 세계의 지각이 판의 충돌에 의해 끊임없이 응력을 받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역사 지진과 계기 지진 자료는 반도 전역에 다수의 활단층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데, 이 활단층에서 언제 얼마나 규모가 큰 지진이 발생할지 모를 일이다. 이 문제는 ‘지진예지’의 영역에 속한다. 지진예지는 지진학에서도 거의 해결 불가능한 부분으로 꼽힌다. 기상예보의 경우 대기 중 여러 관측기구를 띄워 기온, 기압, 풍향, 풍속 등 예보에 필요한 자료를 측정할 수 있지만 지진은 접근상의 문제로 지각 내부를 측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측 자료가 쌓이면서 지진에 대한 분석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홍성 지진 이후 기상청의 지진 관측망이 점차 확대돼 현재 국내에 127개의 지진관측소가 있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의 기관도 독자적 지진 관측망을 운영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원자력산업계와 정부의 지원으로 활단층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한편 지진예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현재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조기경보’다. 지진 재해에 지진학이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기경보는 지진 발생 후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이를 통보해 인명과 시설물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그 원리와 시스템은 이렇다. 지진이 발생하면 진원에서 P파와 S파가 사방으로 전파되는데 P파가 S파보다 먼저 도달한다. 그러나 표면의 진동인 지진동의 진폭은 S파가 P파보다 커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주로 S파에서 발생한다. 지진 발생 시 진앙 주위에 있는 관측소에서 10초 이내에 관측된 P파를 경보 발표 기관으로 보내면 이를 분석해 S파의 도달 시간과 강진동에 관한 조기경보를 발령한다.
‘지진 토모그래피(Seismic Tomography)’도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는 분야다. 지구 전체에 있는 수천 개의 지진관측소에 기록된 지진파를 분석해 지구 내부의 지진파 속도 구조의 3차원 이미지를 만드는 것. 의학에서 엑스선을 이용해 컴퓨터 단층사진(CT)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험실 연구 결과, 비교적 차고 단단한 암석에서는 지진파가 빠르게 전파되고 따뜻하고 가벼운 암석에서는 느리게 전파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지구 내부의 지진파 속도 구조가 밝혀지면 구성 물질의 3차원적 구조를 추정할 수 있다. 또 특정 지역의 지진 활동 자료에 근거해 그 지역의 건조물이 큰 피해를 입지 않도록 내진 설계를 연구하는 지진공학도 지진학과 함께 재해 대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강진에 의한 건조물의 피해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론적 연구도 진전되고 있다. 향후 지진 활동과 지진 재해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해와 함께 안전을 위한 내진 설계 기법의 발전도 기대된다.
글쓴이 소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빅토리아 지구물리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78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 지진학의 선구자로 꼽히며 저서로 <한국의 지질학>,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 등이 있다.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 이기화(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일러스트 | 이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