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인다
지난 3년간 김주원은 발레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그리고 움직였다.
부슬비가 내리는 10월의 어느 밤. 서울의 한 지하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주원은 무대에서처럼 춤췄다. 실제 무대에서와 같은 연기를 한 건 아니지만, 온몸을 움직여 말하는 몸의 아티스트처럼 현장을 꽉 붙들어 맸다. 지난 3년간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김주원’에서 내려와 ‘발레리나 김주원’으로 활동하며 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 그녀에게, 더불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모습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그녀에게 이 정도의 움직임은 일도 아니다.
아이보리 터틀넥 Escada, 가죽 베스트, 네이비 와이드 팬츠 모두 Celine
이게 다 발레 때문이죠
“새로운 사람들과 예술을 자유롭게 접하는 생활이 즐거워 요샌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그녀는 오랫동안 국립발레단의 얼굴 같은 존재였다. 발레계의 르네상스를 함께 이끈 몇몇 발레 스타가 해외 진출 등으로 퇴단한 후에도 홀로 남아 후배들과 무대에 섰다. 발레의 본고장 유럽에서 활동한 강수진과 달리 러시아 유학 후 줄곧 국내에서 활동해온 그녀는 한국 발레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 중 하나다. 3년 전 국립발레단에서 나온 그녀는 발레를 알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나서겠다는 각오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고, 그중 하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을 택했다. “2013년부터 학교(성신여자대학교 무용예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해줘야 하는 시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이런 자리로) 연결됐죠. 아무래도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라 다른 일보다 힘들긴 해요. 하지만 진심으로 학생들과 소통하려 하고, 학생들도 그냥 같이 뛰는 선배처럼 느끼는 것 같아 좋아요.”
지난 3년 동안
‘프리랜스 발레리나 김주원’으로 활동한 지 벌써 3년째. 그녀는 그간 발레의 영역 안에서 대중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공연에 참여했다. 2013년엔 재즈 뮤지션 남궁연, 미디어 아티스트 하석준, 현대무용가 이용우와 조형준, 클래식 작곡가 최우정 등과 협업한 <레플리카>에 출연해 영상과 예술을 결합한 새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지난해엔 유니버설발레단의 객원 수석 무용수로 <지젤>과 <춘향>의 주역도 맡았다. 또 올 초 뮤지컬 <팬텀>에서 발레리나 역으로 출연한 데 이어,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 <놀이의 품격>에서도 국악 리듬에 맞춰 춤췄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철저히 세우기보다 현재 제가 끌리는 일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라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여러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아이보리 재킷, 슬릿 디테일을 가미한 스커트, 레더 벨트 모두 Marni, 뱅글, 네이비 부티 모두 Tod’s

기하학적 패턴이 특징인 풀오버 Tod’s
발레의 밖
인터넷 검색창에서 김주원을 검색해보자. ‘우아한 드레스’, ‘발레리나의 반전’, ‘서울패션위크에서의 포즈’ 등 발레의 대중화로 널리 이름을 알린 이답게 실로 다양한 이미지로 그녀는 소비되고 있다. 근데 그런 만큼 그녀 자신도 예술의 여러 영역에 관심이 많다. 지난 10월 국내의 한 슈즈 브랜드와 협업해 발레 슈즈에서 모티브를 얻은 슈즈를 내놓는가 하면, 최근엔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 9>의 스타 현대무용가 김설진과 만나 오랫동안 해온 정통 발레에서 벗어난 모던발레 <발레리나>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때 라디오 DJ(EBS 라디오)를 하기도 했는데, 시작 6개월 만에 성대 결절로 중단해 고정 팬들을 아쉽게 했다.
몸으로 하는 연기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이런 질문도 나왔다. “김주원은 발레도 발레지만, 연기 테크닉이 출중하다”는 말. 그러자 이내 그녀의 ‘반격’이 이어졌다. “발레는 무대에서 온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라고 생각해요. 그냥 테크닉만 보여주면 스포츠라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발레를 예술 영역에 넣는 건 무대에서 언어 없이 몸으로 연기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연기는 발레라는 영역에 당연히 꼭 붙어 있어야 해요. 물론 그렇다고 ‘연기’만 뚝 떼어와 앞으로 그걸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말로 하는 연기를 하면 아마 엄청 웃길 거예요. 그게 드라마든, 뭐든 말이에요. 물론 춤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면 적극적으로 나서긴 하겠지만요.”
오늘 이후의 김주원
“예술가로서 경험이 틀에 박히거나 고갈되지 않도록 그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있어요. 큰 무대에 설 기회가 예전보다 줄었다고 관객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되죠. 그래서 연습도 거의 매일 쉬지 않고 하고 있죠.” 그녀는 11월 말(23일, 24일)에도 또 다른 공연에 참여했다. M발레단의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에서 안중근의 아내를 연기한 것. 국립발레단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문병남 연출이 함께하는 이 공연에서 그녀는 안중근의 죽음을 누구보다 슬프게 받아들였을 그의 아내 역을 맡았다. “지금은 곧 시작할 다음 공연 연습부터 후배들을 가르치러 학교에 나가는 일, 그리고 대중적으로 발레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문화 예술 향유 기회가 적은 소외 계층 학생들을 위해 ‘올키즈스트라’ 아이들과 연말 공연 또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한준 스타일링 에디터 현재라 헤어 하나(김청경 헤어 페이스) 메이크업 방선화(김청경 헤어 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