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거나, 울리거나
조르제 오즈볼트의 작품은 때론 우스꽝스럽게, 때론 진지하고 심각하게 우리 마음을 흔든다.
하나의 주제 아래 드로잉과 회화, 조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그의 작품에서 진짜 우리네 삶을 엿본다.

1 런던 작업실에서 만난 조르제 오즈볼트
2OMG I, Mixed Media, 203×69×47cm, 2016
에술가란 하나의 ‘미디엄(medium)’이다. 그들을 통하는 순간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은 새 질문으로 바뀌어 돌아온다.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의 양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리고 그걸 어딘가에 쏟아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미디엄으로서의 예술가’는 아마도 조르제 오즈볼트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인간의 삶, 그 순간순간의 맥락을 끊임없이 예술로 승화시키는 조르제 오즈볼트를 그가 활동하고 있는 런던에서 직접 만났다.
지금 영국 하우저 앤 워스 서머싯(Hauser & Wirth Somerset)에서
이번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더 충실했다고 하셨는데, 기존엔 작품의 개념에 좀 더 집중하셨는지요?
그렇습니다. 특히 조각 작품의 경우 먼저 개념을 세우고 그것에 따라 형태를 만들어내는 식이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였습니다. 먼저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것의 완성된 모습과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죠. 이는 제게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과정의 변화가 전시의 출발점이었고요. 앞으로도 이런 과정을 자주 작업에 적용할 것 같습니다.

3 지난 1월 영국 하우저 앤 워스 서머싯에서 열린 개인전
4 만화와 인터넷 그리고 다양한 국가의 전통에서 찾은 이미지를 조합해 그린 회화 작품. Moral Dilemma of a Confused Mind, Acrylic on Canvas, 152×122cm, 2016
전시 제목 ‘Brave New World’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사건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데, 어떻습니까?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우연히도 제가 레지던시를 하고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전시 제목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지어놓은 겁니다. 그러고 나서 많은 사건이 일어났죠. 전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가능한 한 TV와 신문, 라디오를 멀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까지 전부 무시할 순 없었죠. 이번 전시는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라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 같은 감정이죠. 이를테면 전시 작품 중에 80개의 다양한 문화에서 가져온 오브제가 정글로 둘러싸인 벽을 보며 등을 마주하고 있는 설치 작품이 있어요. 바로 우리의 모습이죠. 정글 같은 이 세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열심히 찾고 있는 겁니다. 이번 전시에 사용한 가든 놈(garden gnome, 19세기 중반부터 독일에서 유행한 정원과 잔디밭을 흑마법으로부터 지키는 수호신 인형)은 주로 키치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오브젝트입니다. 그것에 이민자들을 투영시켜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죠. 이번 서머싯 전시에선 야외에서 실내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그런 가든 놈을 설치했어요. 그러다 전시장 입구에서 제멋대로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만나 길을 잃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늘 변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거죠. 지금 세상은 변화하고 있지만, 그 변화가 과연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이전에 건축 공부를 하던 시절 얘기가 궁금합니다. 건축 공부를 꾸준히 하다가 순수미술로 전공을 바꾸셨다고요.
어린 시절, 건축가인 부모님과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던 형의 영향으로 유고슬라비아에서 건축 공부를 했습니다. 3년 정도 건축 공부를 하다가 1991년에 형이 있는 런던으로 갔는데, 그때 마침 유고슬라비아에서 전쟁이 시작됐어요.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징집당할 게 뻔했으니까요. 그렇게 런던에 머물기로 결정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예술에 빠졌고, 건축은 제 관심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건축은 예술의 자유로움과 비교 대상도 못 되었죠. 이후 런던에서 본격적으로 예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를 떠나 런던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고, 이후 런던을 중심으로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술 작업을 하는 데 ‘장소’는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저는 장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특히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곳을 좋아하죠. 그래서 여행도 자주 합니다. 새로운 장소는 늘 영감을 주거든요. 기존의 관념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것을 만나는 건 제 작품의 소재로도 많이 쓰이고 있고요.
특별히 좋아하는 여행지가 있나요?
인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죠. 아내와도 여러 번 여행했고, 히말라야 근처에 자리 잡고 몇 년간 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자주 가고요. 인도에서 영감도 많이 받습니다. 전 지금도 아내에게 인도에 가서 살자고 자주 얘기해요. 대답은 물론 ‘No’지만요.
런던은 어떤가요?
런던은 제게 고향 같은 도시예요.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여주기 위해 1977년부터 어머니가 형과 저를 런던으로 데려왔죠. 또 제가 예술 공부를 하던 시절, 런던은 예술가에게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yBa가 탄생했고, 이스트런던에선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죠. 모든 문화에 관대했고, 세계 최고의 전시를 런던에서 접할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저를 그곳이 아닌 이곳(런던)을 선택하게 한 것 같아요. 오래전엔 그 상황에 무척 화가 났었죠.
전시 얘기로 돌아가죠. 당신은 그간 하나의 주제로 페인팅과 드로잉, 조각 같은 다양한 표현 기법을 제시하는 전시를 이어왔습니다. 마치 큐레이터와 아티스트가 동시에 작업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전시들이죠. 보통 주제를 정하고 작품을 만드시나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혹은 다른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요?
큐레이팅은 예술가의 본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큐레이터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전 전시를 준비할 때,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일일이 그 느낌과 과정을 설명하는 건 어렵지만요. 저는 전시 제목을 정하고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도, 반대로 작품을 만들고 그것들을 모아 새로운 제목으로 전시하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전시 제목은 제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건 전시에서 작품의 일부처럼 작용하죠. 저는 전시 제목이 작품에 대한 이해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저는 이제껏 같은 작품으로 두 번의 전시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전시를 새롭게 기획하고 작품을 제작하죠. 요즘은 전시 일정이 빠듯하게 잡혀 다소 힘들지만, 여전히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5 하우저 앤 워스 서머싯의 전시 전경. 5개의 전시실과 아트 북 서점, 레스토랑 등이 들어선 이곳에서 조르제 오즈볼트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전시를 선보였다.
6 세계 각국의 전통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Full Moon, Acrylic on Canvas, Pen and Ink on Paper, 99.5×90cm, 103.2×93.3×4.7cm(framed), 2016
7 아프리카 문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회화 작품. Free your mind (and your ass will follow), Acrylic on Icon Board, 90×79.5cm, 2016
주로 어디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나요?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이것저것, 여행, 신문, 잡지 등에서요. 저는 특히 그래픽 노블 같은 만화를 즐겨 봅니다. 그중 <탱탱(Tintin)>이나 <아스테릭스(Asterix)> 같은 만화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즐겨 보는 작품이죠. 그 외에 중고품 가게도 즐겨 찾고요. 그런 가게의 혼란함을 좋아하죠. 이를테면 유행이 한참 지난 털실 뜨개질 책 옆에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이 놓여 있어요. 또 그 옆엔 피카소의 작품집이 있고. 이런 무질서가 제게 영감을 줍니다.
당신의 작품은 종종 직설적 웃음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재미있어요. 이런 유머 코드는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사실 웃음을 유발하는 제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뜩해질 때가 있을 겁니다. 목을 맨 사람을 배경으로 서로 사랑을 노래하는,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새들을 그린 페인팅도 있으니까요. 사랑은 행복한 경험이지만, 죽음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거죠.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저는 자신이 꽤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 안의 진짜 나는 아주 기복이 심한 편이죠. 아, 그리고 저는 언젠가부터 후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죠. 의사의 오진과 늦은 치료가 이런 화를 불렀고요. 후각은 제게 아주 중요한 기능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이런 얘길 아무렇지 않게 할 만큼 익숙해졌지만, 후각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당시 전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우울증을 겪었어요. 하지만 뭐 어떻게든 살아가야죠. 웃음과 우울이 공존하는 성격이 제 작품의 유머 코드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오는 4월, 서울의 갤러리바톤에서 전시 계획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작품을 준비중인가요?
아프리카의 원시적 토템 조각을 소재로 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건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의 전시를 무척 고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한국에 가보지 않았거든요. 주변에선 제가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에 놀라는 친구도 많아요. 그리고 제가 거길 좋아하게 될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책을 한 권 기획하고 있습니다. 제 전속 갤러리인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와 함께 준비 중이죠. 그리고 당분간은 런던을 떠나 있을 것 같아요. 곧 서울에서 전시가 있고, 이후엔 일본에서 전시가 열립니다. 그게 끝나면 인도에서 개인적 시간을 좀 보내고, 다시 뉴욕에 갈 예정이에요. 벨기에와 브라질에서도 전시를 기획하고 있고요.
조르제 오즈볼트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1990년대부터 런던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신문과 그림, 만화,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드로잉과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고 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양혜숙(기호 리서처) 사진 Rei Moon(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