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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FASHION

지난 8월 랑에 운트 죄네가 글라슈테 공장 증축을 마치며 최정상의 워치메이킹 기술력에 힘을 더했다. 1845년 설립, 독일을 대표하는 기계식 시계 명가로 이름을 날린 브랜드지만, 널리 알려졌듯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50년간 명맥이 끊긴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노블레스>는 개관식에 직접 참가해 성공 신화의 새 장 오픈을 축하하는 한편, 이들의 시계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최정상의 자리에 군림할 수 있게 된 이유를 여실히 느끼고 돌아왔다.

새 매뉴팩처와 옛 매뉴팩처가 조화를 이룬 글라슈테의 전경. 사진 속 왼쪽 건물이 새 매뉴팩처다.

작은 글라슈테 마을이 들썩이다
독일 동부에 위치한 드레스덴은 웅장하고 정교한 바로크 양식 건축뿐 아니라 과학, 예술, 문화의 다양한 유물을 간직한 도시이며 랑에 운트 죄네의 첫 부티크가 오픈한 곳으로도 유명하다(프라하 못지않은 야경을 자랑하는 독일의 대표적 관광도시다). 이곳에서 차를 타고 1시간가량 더 남쪽으로 가면 조용한 도시 글라슈테가 나온다. 독일을 대표하는 기계식 시계 브랜드가 밀집한 곳으로 시계업에 종사하거나 이 지역 주민이 아닌 이상 타지 사람은 좀처럼 찾지 않는 아담하고 평화로운 도시(스위스의 라쇼드퐁과 비견되며, 전통적으로 광산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는데 랑에 운트 죄네로 인해 시계 산업의 중심지로 바뀌었다고). 그런데 마을이라 해도 좋을 것 같은 작은 이 도시가 지난 8월 26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방문 때문이었고, 놀랍게도 랑에 운트 죄네의 새 매뉴팩처 개관식 참석이 그 이유였다. 도시는 실로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행사 참석을 위해 독일로 날아간 에디터는 총리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매뉴팩처에 도착해서야 접할 수 있었는데, 그 순간 잠깐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에 해당하는 총리가 시계 매뉴팩처의 개관식에 참석할 정도로 한가한 걸까? 더욱이 현재 유럽에서 가장 바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아니던가.’ 그 의문은 그녀의 개관 선언문을 통해 곧장 해소됐다. 랑에 운트 죄네는 단순한 하이엔드 기계식 시계 브랜드가 아니라 분단의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선 독일의 정신을 대변하는 상징이었던 것! “새로운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브랜드를 재건한 발터 랑에와 그의 동료 덕에 랑에 운트 죄네는 최고의 고급 시계 브랜드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랑에 운트 죄네의 성공에 깊은 축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녀의 말처럼 랑에 운트 죄네는 매뉴팩처 재건을 결심한 후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워치메이킹 분야에서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개관 커팅 행사에 참석한 발터 랑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리치몬트 그룹 회장 베르나르 포르나스, CEO 빌헬름 슈미트(왼쪽부터)

랑에 운트 죄네의 옛 회중시계. 무브먼트의 대부분을 덮는 스리쿼터 플레이트는 브랜드의 상징

독일식 하이엔드 시계의 요람
매뉴팩처를 돌아보기에 앞서 랑에 운트 죄네가 걸어온 유구한 역사를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드레스덴의 워치메이커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는 1845년 매뉴팩처를 설립하며 작센(Saxony) 주의 파인 워치메이킹을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오늘날 랑에 운트 죄네 무브먼트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스리쿼터(3/4) 플레이트는 아돌프 랑에가 개발한 것으로 여러 개로 쪼개져 있던 브리지를 하나로 통합하며 무브먼트의 안정성을 향상시킨 발명품이다. 현재 이들이 전개하는 랑에 1 컬렉션의 특징인 큰 날짜 창의 원형이기도 한 젬퍼 오페라하우스 5 미니트 클록 또한 그의 작품. 시간이 흘러 가문 2대손인 리하르트 랑에와 에밀 랑에가 설립자인 아버지의 뒤를 이었고, 정교하고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시계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19세기 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랑에의 화려한 회중시계를 다른 나라 황제에게 손수 선물할 정도로 이들의 작품을 아꼈다고. 1924년에는 창립자의 증손자 발터 랑에가 태어났다. 그는 이후 세계대전으로 사라진 랑에 운트 죄네를 1990년 다시 세운 인물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매뉴팩처가 동독 정부로 넘어가자 공산주의 정권을 피해 서독으로 탈출했고,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후 곧장 매뉴팩처가 있던 글라슈테로 돌아온 것. 50년간 명맥이 끊긴 이들의 역사는 1990년 15명의 직원으로 문을 연 작은 공방으로 다시 시작됐고, 1994년 랑에 1을 비롯한 4개의 작품을 선보이며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1815, 리처드 랑에, 자이트베르크 등 대규모 컬렉션을 런칭하고 수동 크로노그래프의 신화라 해도 좋은 다토그래프, 하이 컴플리케이션 걸작인 그랑 컴플리케이션을 차례로 내놓으며 독일을 넘어 전 세계 하이엔드 시계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한다.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독일의 눈부신 햇살은 정교한 워치메이킹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브랜드의 단정한 이미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입구의 전경

시계 조립을 방해하는 외부의 먼지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복도

브랜드의 상징인 큰 날짜 창과 문페이즈를 탑재한 랑에매틱 퍼페추얼

고급 시계를 완성하는 최적의 조건
개관식에 이어 매뉴팩처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정갈한 외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옅은 회색으로 칠한 건물은 갓 지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정하고 고풍적인 느낌이 흘렀다. 그리고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둔 기존 매뉴팩처와도 이상하리만큼 잘 어울렸는데, 옛 건물이 독일의 기념 건축물로 지정되고 보호받는 터라 이에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했다고. 하지만 내부는 최신 기계 설비를 도입한 것은 물론, 워치메이커들이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69개의 콘크리트 기둥과 253개의 대형 창문으로 이루어진 내부 공간은 먼지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워치메이커가 일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 유리로 만든 파사드와 공방 사이의 복도는 외부와 실내의 기압 차는 물론, 여름철 실내의 기온이 올라가지 않도록 열을 조절한다.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는 건물 지하에 위치한 지열발전소. 환경친화적 설계를 바탕으로 지열을 통해 냉·난방장치를 가동함으로써 글라슈테 지역, 더 나아가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려 힘썼다. “새로 완공한 공방은 최근의 고용 성장을 반영한 결과인 동시에 매뉴팩처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상징합니다. 그렇기에 매력적인 주변 환경 조성은 물론, 현대적이고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을 완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죠. 이를 통해 시계의 품질을 더욱 개선하고 생산 공정의 효율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랑에 운트 죄네의 CEO 빌헬름 슈미트(Wilhelm Schmid)의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렇게 멋진 공장을 건설하고 시설을 확장했음에도 생산량을 많이 늘리진 않을 계획이다. 현재 이들의 연간 생산량은 5000개 정도로 다른 하이엔드 매뉴팩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이유는 명쾌했다. 공장의 규모를 키운다고 해서 수작업이 주를 이루는 이들의 시계를 만드는 워치메이커까지 늘어나진 않기 때문이다. “많은 고객이 시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워치메이킹 학교에서 많은 견습생이 우리의 시계를 만들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중이고, 그 수도 많이 늘렸습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워치메이커가 만든 시계를 고객에게 전달할 수는 없죠. 그건 창업자와 재건을 이룩한 발터 랑에의 생각에 위배되는 행동입니다.”

랑에는 거의 모든 부품의 모서리를 45도로 폴리싱하는 챔퍼링 공정을 거친다.

건물 지하에 위치한 지열발전소. 환경친화적인 랑에 운트 죄네의 철학이 느껴진다.

전통적 꽃무늬 패턴으로 수공 인그레이빙한 밸런스 콕의 확대 사진. 각각의 시계가 세상에 단 하나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랑에 운트 죄네의 가치를 구현하는 공간
사실 이번 매뉴팩처 투어는 개관 행사에 맞춰 전 세계 프레스가 모인 자리인 터라 공방 곳곳을 속속들이 살펴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지만 몇몇 주요 공방을 돌며 랑에 운트 죄네의 시계가 왜 추앙받을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인그레이빙과 함께 정밀한 부품을 제작하는 공방에 들어섰다. 현미경을 통해 부품과 백케이스에 정교하게 세공하는 장인을 보고 있노라니 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조용히 일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 한편 정말 귀한 광경을 마주하기도 했다. 랑에 운트 죄네의 손꼽히는 기술 중 하나인 퓌제 앤 체인 트랜스미션(fuse′e-and-chain transmission)의 체인을 만드는 장면이었다. 참고로 시계는 태엽이 풀리며 에너지를 전달하는데, 그 힘이 일정하지 않으면 정확성에 문제가 생긴다. 퓌제 앤 체인 방식은 쉽게 말해 태엽의 힘이 약해지더라도 배럴(태엽통)을 체인으로 묶고 풀면서 그 힘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로 랑에 운트 죄네가 손목시계에 처음 도입한 것. 동전 크기만 한 무브먼트에 수백 개의 체인이 들어간다니, 입이 절로 벌어졌다. 컴플리케이션 공방에서는 고객의 기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워치메이커들이 분주하게 부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한 젊은 워치메이커가 자이트베르크 스트라이킹(차임 기능을 탑재한 세계 최초의 점핑 디스크 디스플레이 모델)을 조립하다 취재진을 향해 유창한 영어로 시계에 대해 설명한 순간에는 독일의 기계식 시계, 무엇보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랑에 운트 죄네에 대한 자부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기서 잠깐, 랑에 운트 죄네의 시계가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들은 모든 무브먼트를 두 번씩 조립하는데, 첫 번째는 모든 부품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제 기능을 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고, 그다음은 분해한 부품에 장식을 더해 다시 조립하는 ‘최종 조립’ 과정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됨에도 고객의 손에 완벽한 시계를 전달하기 위한 이들의 철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시계 반품률은 현저히 낮다.
개관식에 이어 매뉴팩처 투어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워치메이커의 퇴근 시간이 되었다. 새로 지은 건물의 너른 마당에 새 건물에서 작업하는 직원은 물론 길 건너 옛 건물의 직원들까지 모두 모여 새 매뉴팩처의 완성을 축하하며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선조의 원대한 꿈을 이어가기 위해 20여 년 전 작센 주 글라슈테를 다시 찾은 창업자의 증손자 발터 랑에.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독일 기계식 시계에 대한 열정으로 두 눈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메뉴팩처 재기의 초석을 마련한 랑에 1 컬렉션. 1994년의 첫 모델과 변함없는 모습이다.

에디터 이현상 (ryan.lee@noblesse.com)
사진 제공 랑에 운트 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