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의 세계
지금 집단지성의 산물인 위키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일에 대해.

2018 호주오픈의 황제 로저 페더러가 울보라는 사실은 위키를 통하기 전엔 알 수 없다.
얼마 전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로저 페더러를 찾으면 “눈물이 많고 일단 챔피언이 되면 80% 확률로 울먹거린다. 특히 통산 20번째 우승인 2018 호주오픈 땐 아주 오열하셨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인스타그램을 찾으면 “외국어로 쓰인 게시물 밑에 있는 ‘번역 보기’를 누르면 엄청난 발번역을 볼 수 있다”라고 나온다. 또 현재 시청률 1위 TV 드라마 <미워도 사랑해>를 찾으면 “어려서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다가 결국 모든 걸 잃고 새롭게 시작한 시기에 아이러니하게 인생의 꽃을 피우는 한 여성의 삶을 따라가면서 우리를 지탱하는 가장 큰 가치는 핏줄도 법도 아닌, 바로 인간 사이에서 채워지는 인간 간의 정이요,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휴먼 가족 드라마…일 리는 만무하고, 실상은 그런 거 1도 없는 막장 드라마”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글을 볼 수 있는 곳은 나무위키(namu.wiki)다. 현재 인터넷의 모든 검색어는 이곳에서 통한다. 적어도 사람들이 많이 찾은 자료를 맨 위쪽에 보여주는 구글 검색창에선 말이다. ‘문재인’이나 ‘트와이스’, ‘미세먼지’, 평창 동계 올림픽과 관련해 뜨거운 ‘인면조’와 ‘쇼트트랙’ 등 뭘 써넣든 결과 페이지 상단엔 이들의 링크가 걸린다. 문서 규모로는 한국어 위키 중 1위, 일일 편집 빈도수 1위다. 이런 나무위키는 2015년 4월 17일에 탄생한 위키(유저가 직접 내용과 구조를 수정하는 백과사전)다. 더 자세히 말하면 2012년에 오픈한 ‘리그베다위키’, 더 이전으로 거슬러 가면 2007년에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 팬들의 커뮤니티 사이트 ‘엔젤하이로’(‘엔하위키’로 더 잘 알려져 있다)로 시작되는 서브컬처계의 전설이다.
국내의 위키는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전후로 탄생해 기존 매체나 사전이 다루지 않는 애니메이션과 만화, 게임, IT 등에 특화된 백과사전으로 인기를 끌었다. 언어유희나 농담을 섞어 쓰는 특유의 서술 방식 덕에 딱딱한 설명을 싫어하는 이용객을 대거 끌어들였고, 다양한 마니아와 재야의 고수들이 그간 숨겨온 ‘글발’을 폭발시키고 내용을 업데이트하며 지금은 서브컬처 신은 물론 사회, 경제, 인물, 스포츠, IT, 기업, 세계 등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룬다.

1 국내 위키들이 가진 서브컬처 성향의 시작점인 <건담>.
2 최근 개봉한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의 한 장면. 이 작품을 만든 유아사 마사아키에 대한 다량의 정보는 위키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나무위키는 2018년 2월 10일 현재, 국내 전체 인터넷 사이트 중 이용률 9위(데이터 분석 기관 www.similarweb.com 참고)로 네이트(14위)와 네이버 쇼핑(22위), 옥션(28위) 등을 크게 앞질렀다. 미국에선 11위를 차지한, 전 세계 유저가 만드는 오픈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국내 49위)도 ‘넘사벽’ 수준으로 앞서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아니,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위키피디아보다 B급 정서 그득한 위키를 더 많이 이용하는 걸까?
혹자는 “B급 정서를 좋아하는 한국의 젊은 인터넷 문화가 지식을 공유하려는 열망과 만난 결과”라고 말한다. “한국판 위키피디아가 다른 나라 버전보다 규모가 작고 내용이 부족한 것도 인기를 북돋우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현재 국내에서 나무위키와 비슷한 정체성으로 운영되는 위키는 대략 30~40개나 된다. 너무 진지해 재미없는 위키피디아를 패러디하기 위해 탄생한 ‘백괴사전’, 단순히 웃음만 유발하는 풋내기 정보를 지양하고 정보 서술 중심 위키로 방향을 잡은 ‘큰숲백과’, 국내 모든 위키 중 가장 관대하며 정보보단 재미를 추구하는 ‘구스위키’, 최근 여러 페미니즘 이슈가 부상하면서 영 페미니스트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페미위키’, 디시인사이드 특유의 자유로움과 과격함, 황당함, 지나치게 전문성을 띠는 특성을 모두 담은 ‘디시위키’ 등 말이다. 일례로 여기에 나열한 위키에 들어가 영화 하나를 검색하면 전체 줄거리나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는 물론 해당 작품을 본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농담이나 트리비아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불특정 다수가 참여해 내용을 채워 넣는 집단지성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에디터만 해도 스마트폰에 위키 앱 하나 내려받고 아예 그걸 달고 산다. 얼마 전 극장에서 본 애니메이션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전반에 깔린 컬트 요소에 반해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의 모든 작품을 찾아본 것부터 유동성의 시대에 미래의 가계를 걱정하며 현재의 암호화폐 시장이 거품인지 아닌지, 거품이라면 배 한 척 값에 맞먹는 가격에 거래된 인류 최초의 거품인 ‘튤립 한 송이’와 비교해 어느 정도의 거품인지 따지며 긴긴 밤을 지새운 것도 바로 그런 앱을 통해서였다. 직접 경험한 바, 오늘날 위키는 지금 가장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허브다. 요즘같이 매일 새 정보가 탄생하는, 오늘의 정보가 내일은 과거가 되는 시대엔 다수의 사용자가 만드는 정보 다발을 습득하는 게 가장 빨리 새로운 정보를 갱신하는 방법이다. 덧붙여 평범한 일반인이(단 특정 정보엔 마니악한) 스스로 지식 생산의 주체가 되고, 그들이 만든 정보가 기존 소수 엘리트에 의한 지식의 독점을 허무는 위키의 특수성은 어떻게 생각해도 그걸 직접 이용하는 유저로서 흥분되는 요소다. 요즘 같은 세상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획기적 변혁.

3 장르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 나무위키에선 그가 전화번호부를 써도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미국 현지 농담까지 소개하고 있다.
4 집단지성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위키피디아의 창립자 지미 웨일스.
그런데 이쯤 되면 이 같은 위키에 문제점은 없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오픈 백과사전의 문제? 당연히 있다. 이들 위키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요인은 ‘재미’. 한데 역설적으로 이 재미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바로 편향된 정보와 루머, 검증되지 않은 정크 데이터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여러 작성자가 가담해 내용을 수정하기도 하지만, 미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해 잘못된 내용이 그대로 방치되는 건 이들 위키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백과사전이 알려주지 않는 영역을 다루지만 한계도 분명한 플랫폼이란 얘기다. 예로 앞에 언급한 한 위키에선 남성 편향적 서술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송혜교’ 페이지엔 한때 “남자들이 ‘난 통통한 여자가 좋더라. 음, 송혜교 정도?’라는 말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며 “(송혜교가) 2000년대 중반까지 여자들의 적”이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여성의 체중에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건 남성인데, 이 부분은 무시하고 ‘여자는 예쁜 여자를 싫어한다’는 편견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덧붙여 ‘쿵쾅이’(여성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는 인터넷 기사에 뚱뚱한 페미니스트 여성이 ‘비공감’을 달기 위해 달려오는 모습을 조롱한 단어) 같은 항목이 당당히 등록되어 있고, 이를 여성 혐오적 단어가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편향된 서술이 있다고 해도 이 같은 위키에선 작성자를 알 수 없다. 그럼 이런 잘못된 정보는 어떻게 고칠까? 대부분의 위키에서 잘못된 글을 수정하는 방법은 그냥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밖에 없다. 마지막까지 계속 덤벼 고쳐놓는 쪽의 서술이 관철되는 것. 이 때문에 국내 대표 위키인 나무위키를 비롯한 여러 온라인 오픈 백과사전은 여전히 그 나름의 검증을 거쳐 문서화하는 한국판 위키피디아의 대안이 되긴 부족하단 얘기가 나온다.
참여나 공유, 개방 등에 대해 말하는 요 근래 인터넷 환경은 자연스레 집단지성을 이뤄냈다. 하지만 거기서 만든 정보가 다 집단지성의 산물은 아니다. 누구도 어떤 문제에 늘 꼭 맞는 답을 주진 않는다. 아직 집단지성이 인터넷 공간을 넘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단 얘기다. 국내에서 나무위키가 세계인이 쓰는 위키피디아를 이용률이나 완성된 문서의 수 등에서 이긴 원동력은 인터넷이라는 개방형 플랫폼을 통해 입증된 참여와 공유의 힘이다. 이 힘, 앞으로 좀 더 유용하게 쓸 순 없을까?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