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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현대 도예의 새로운 거점

ARTNOW

벨기에 수도 브뤼셀을 거점으로 독특한 도예신을 선보이는 신진 아트 페어 세라믹 브뤼셀.

2024년 첫선을 보인 세라믹 브뤼셀 행사 전경. Image Courtesy of Sophie Carrée. Photo: Geoffrey Fritsch.
아래 ‘포커스 노르웨이’ 섹션에 참가하는 QB 갤러리 전시 공간. Image Courtesy of Sophie Carrée.

17세기 유럽은 머나먼 동쪽 아시아에서 유입된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 아름다움을 손에 넣고자 독일의 마이센 지역에 도자기 공방을 열었고, 유럽의 도자기 수입에 중요한 역할을 한 영국과 네덜란드 역시 도예 기술을 개발하며 유럽 도예의 또 다른 주요 거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브뤼셀은 17세기 파이앙스(faience) 도자기가 유행하던 시기에 도예 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도심 그랑플라스에 속속 도자기 공방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 브뤼셀의 도예 역사를 계승하는 국제 아트 페어 ‘세라믹 브뤼셀(Ceramic Brussels)’은 도예를 중심으로 열리는 동시대 연례행사 중 유럽 최대 규모다. 주최 측이 예술가와 갤러리, 관계자와 애호가를 다각도로 연결하기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5일간 아트 페어 형태의 전시는 물론 대담과 연계 레지던시, 명예 게스트 초청과 ‘포커스 노르웨이’ 등이 있다.
가장 돋보이는 섹션은 예술상을 수상한 예술가 10인의 단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박람회 행사 중 그룹 쇼와 출판물을 통해 소개하는데, 세라믹 브뤼셀은 무엇보다도 유럽 도예 분야에 기여할 젊은 예술가에게 방점을 찍으며 주요 기관의 주목과 관심을 촉구한다. 올해는 예술가 350여 명이 지원하며 인지도 면에서 부쩍 성장한 모습이다(작년 200여 명). 수상자 10인은 2024년 6월에 미리 선정해 홈페이지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개했다. 본행사 개막일인 1월 22일에는 이들 중 최종 수상자를 선정해 발표한다. 최종 수상자에게는 다음 회차인 2026년 세라믹 브뤼셀의 개인전 개최, 미술 기관 케라미스(Keramis)의 레지던시 참여 자격 등이 주어진다. 지난 1회 행사에서는 한국의 박인업 작가가 10인의 수상자에 포함되기도 했다.
도자 예술에 다양한 매체와 혁신을 접목한 수상자들의 작품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형태와 테마를 아우르며 현대 도자 예술의 영역을 폭넓게 확장한다. 동시대의 여러 쟁점과 공명하는 모습에서 작가들의 심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그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먼저 생명의 원천인 씨앗과 미생물의 자유로운 생태에 천착한 작가 마엘 뒤푸르(Maëlle Dufour)는 일부러 부식을 겪도록 프로그래밍한 설치 작품을 통해 생태계를 탐구한다.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는 정적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마련인 도자기 소재에 독특한 질감을 삽입했다. 도자기와 3D 프린팅 공방을 운영하는 라파엘 에민(Raphaël Emine)은 유기 생명체를 담도록 설계한 테라코타 케이스를 제작, 이론적 지식과 기술적 실천 사이의 장벽을 허문다. 액체가 유입되거나 식물, 곤충, 박테리아가 관입하는 유기적 형태를 지닌 그의 조각은 기술과 자연과학을 결합해 생물학적 시각을 반영하는 동시에 사변적이고 몽환적인 진일보를 실현한다.

‘포커스 노르웨이’ 섹션에 참가하는 키오스켄(Kiosken) 전시 공간. Image Courtesy of Sophie Carrée.

세라믹 브뤼셀 2025 예술상 수상자 마엘 뒤푸르의 ‘Jusqu Ici Tout va Bien’. Photo: Jérémy Josselin.

세라믹 브뤼셀 2025 예술상 수상자 루나-이솔라 베르사네티의 ‘La Reconstruction’. Photo: J. C. Lett.

엘레오노르 그리보(Éléonore Griveau)는 포스트휴머니즘 시대를 반영해 신체의 지각과 물질이 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양상을 탐구한다. 도자와 전자 제품을 혼합한 인터랙티브 설치물을 통해 현대인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방문자의 날숨으로 일부가 훼손되는 바람에 폐쇄된 라스코 동굴에서의 일화에서 착안, 관람자의 숨결과 움직임에 의한 진동으로 천천히 부서져내리는 설치 오브제를 선보였다.
뤼나-이솔라 베르사네티(Luna-Isola Bersanetti)의 작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직물을 연결해 이끌어낸 도자기의 유연성에는 패션 디자인을 연구한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브제의 질감을 퍼포먼스로 드러내면서 역사와 전설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고전적으로 여성이 주도해온 재봉, 직조, 뜨개질 기술을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건축양식과 장식에서 영감을 얻는 베아트리스 기유망(Béatrice Guilleman)은 브뤼셀에서 브르타뉴를 거쳐 그리스까지, 자신을 둘러싼 건축적 · 자연적 풍경에서 새로운 형태와 개념을 발굴한다.
노르웨이의 도예 신에 초점을 맞춘 ‘포커스 노르웨이’ 섹션에서는 비영리단체 노르웨이 크래프츠(Norway Crafts)와 협력했다. 역동적인 세라믹 아트 현장을 확인하며 유럽 아트 신에 다양한 관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슬로의 5개 주요 갤러리가 함께하며 노르웨이의 도예 산업과 예술계의 주요 관계자가 대표단으로 참여한다. 더불어 노르웨이의 권위 있는 시각예술 레지던시에서 세라믹 브뤼셀 2025의 수상자 중 한 명을 초청, 그 예술가가 현지의 예술계에 직접 뛰어들어 예술관을 확장할 기회도 제공한다.
그 외에도 세라믹 브뤼셀은 매년 한 명의 ‘명예 게스트’를 선정하는데, 뉴욕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엘리자베스 재거(Elizabeth Jaeger)가 올해의 주인공으로 뽑혔다. 갤러리 므누르를 대표해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은 행사장 초입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세라믹 브뤼셀은 내년 1월 22일부터 26일까지 7000㎡ 규모의 전시장 투어 앤 택시(Tour & Taxis)에서 열린다. 유럽 도자 예술의 활력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을 세라믹 브뤼셀. 추운 겨울, 불이 빚어내는 도자 예술의 자유분방한 최전선을 방문객에게 확인시킬 것이다.

 

이미솔(미술 저널리스트)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