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지고 싶어요?
SNS 의 스타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지금 모든 남자는 미니 셀레브러티다. 그만큼 지켜보는 눈이 많다. 어디를 가건 내 뒤에서 누가 사진을 찍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해도 카메라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아버지가 주물과 유리로 만든 묵직한 카메라를 정성스레 분리해 닦는 모습을 지켜보던 것은 나만의 추억이 아닐 것이다. 카메라는 비쌌고, 조작법도 복잡했다. 말하자면 한 집안의 보물이자 일종의 권력이었다. 필름은 24장에서 36장의 사진밖에 담지 못했고, 그나마 어스름해지면 카메라는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 상태로 돌아갔다.
지금은 모든 사람의 호주머니에 카메라가 있다. 식사와 여행, 연애, 심지어 내가 다른 사람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 모습까지 찍힌다. 우리 모두 파파라치가 쫓아다니는 셀레브러티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요즘의 우리는 누군가를 의식하고 자신도 모르게 삶을 연출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노출된 내 모습에 ‘좋아요’를 많이 누르면 ‘인지도’라고 부르는 측정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 올라간다고 믿으며 기뻐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을 때의 편안함을 그 비용으로 지불했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현대인은 셀레브러티의 모든 고통을 느끼게 되었지만, 혜택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시대가 피곤하다. 어릴 때 나는 상당히 소심했고, 사람들의 관심이나 주목을 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살던 강원도 원주의 단독주택은 가파른 언덕 중턱에 있었는데, 언덕 아래 빈터에 갑자기 공사판이 열리더니 평생 처음 보는 유럽식 주택이 들어섰다. 완성된 새집의 담벽을 감싸고 있던 차고의 문이 가끔씩 열릴 때, 그리고 짙게 선팅된 수입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공터로 흘러나올 때, 아이들은 그 차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동네 사람 누구도 그 집 주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나는 그 신비로운 부를 동경했다. 어른이 되면 그 집 주인처럼 철옹성 속에서 고독한 무명의 특권을 즐기는 큰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자 시대가 바뀌었다. 소위 ‘이미지 소비 시대’에 성공하려면 자신을 알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나는 스물한 살에 멤버 2만 명이 넘는 프리챌 커뮤니티를 운영했고, 지금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의 눈을 탄다. 방송, 인터넷 강의, 잡지 인터뷰 등 내 하루는 카메라 앞에서 시작되고 카메라 앞에서 끝난다. 나의 이미지는 복제되고 수많은 사람에 의해 소비된다.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에 프린트한 수많은 메를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그래서 나는 장 폴 사르트르가 이야기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 같은 사안에 대한 내 견해와 타인이 보는 견해의 일치 정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가 다른 사람을 보는 ‘눈’이다. 내가 누군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내 시선을 의식한다. 그리고 내 시선은 그 사람의 행동을 바꾼다. 그 상황에서 나는 ‘주체’가 되고 그 사람은 ‘객체’가 된다. 바뀐 행동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 말하자면 나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남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눈에 노출되는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당연히 더 많은 사람이 쳐다볼수록 나는 더욱 심하게 객체화될 것이다.

조선 개화기의 서양 예술가들은 ‘은둔의 나라’ 조선을 신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 나라에 대한 사진 자료를 남기고 싶어 했는데, 한국 궁중의 아름다운 의상과 의례가 최고의 관심사였다고 한다. 그때 한국에 온 한 서양 사진가가 명성황후의 사진을 찍고 싶어 사진기 앞에 앉아주실 것을 간청했는데, 명성황후는 “이놈아, 왜 나의 영혼을 빼앗으려 하느냐?”라고 호통을 치며 거절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온다. 실제로 19세기에 친구 루이 다게르가 발명한 사진기를 들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찍으러 이집트로 떠난 사진작가 막심 뒤 캉의 일기에는 이집트인을 촬영하려 하면 화를 내며 항의한 일화가 적혀 있다. 항의 내용은 대체로 자기 몸에서 나온 형상을 떠서 상자 안에 가두어 프랑스로 가져가는 것은 안 된다며 저항했다는 것이다. ‘셀레브러티’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익명의 사람이 자기 형상을 소지하거나 들여다보는 것을 상당히 불쾌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다.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가장 효율적인 감옥 형태로 ‘팬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건축 디자인을 선보였다. 건물 한가운데가 뻥 뚫린 팔각형 형태로, 각 감옥의 방문에는 창살만 존재해 탑 꼭대기에 있는 간수실에서 단 한 명의 간수가 감옥 전체를 상시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간수실의 창문이 좁아 죄수들은 간수가 그 안에서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지, 비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간수가 자신의 행동을 상시 관찰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간수가 굳이 근무를 서지 않아도 죄수들이 알아서 규율을 지키고, 결국 감옥의 모든 죄인이 교화될 것이라는 것이 벤담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은 예부터 ‘남자다움’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남이 보건 말건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는 사람을 ‘남자답다’라는 말로 칭찬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인지도’라는 토큰을 벌기 위해 ‘벤담의 감옥’ 속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새삼 궁금해진다. 인기란 과연 뭘까?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라던 앤디 워홀의 말처럼 모든 상품의 품질이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대에 개인 역시 이미지를 무시하고 살긴 힘들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네로 황제의 이야기도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네로 황제는 지금은 끔찍한 폭군 이미지로 남아 있지만 사실은 가장 대중의 인기에 목숨을 건 사람이다. 그는 그 당시 대부분의 로마 시민이 싫어한 기독교인을 잡아들이고 시민들이 열광하는 잔혹한 경기의 희생물로 삼아 인기를 유지하려고했다. 시민들이 정치보다 노래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직접 악기를 들고 길거리에 나가 노래를 불렀고, 로마 시가지에 큰 화재가 나자 사재를 털어 구호에 보태기도 했다. 그럼에도 네로가 정적에게 암살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그의 곁에는 충직한 군인 한 명만이 남아 자살을 도왔다고 한다. 대중의 인기를 끌기 위해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비참한 상황에 놓이자 그 수많은 군중은 단 한 명도 그의 곁에 머물지 않은 것이다.
투표로 직위가 결정되는 로마의 정치가들은 어떻게 보면 ‘이미지 소비 시대’라는 것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유명세라는 역설의 극치를 겪으며 산 셈이다. 로마인은 ‘vox populi, vox dei(민중의 목소리, 신의 목소리)’라며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했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현대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로마인은 거꾸로 민중을 ‘mob’이라고 불렀다. mob은 ‘움직인다’를 뜻하는 ‘mobile’을 줄인 말이다. 민중의 마음은 움직이는 것이고, 얻기 힘들지만 잃기는 쉽다는 것을 이미 로마인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인지도는 양날의 칼이며 절대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셀레브러티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한 권력과 자유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문을 품을 때가 많다. 내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인 유럽풍 저택에 살던 사람처럼, 스스로를 내놓을 수 있는 권력보다 감출 수 있는 권리가 더 희소성 있고 중요한 자산일지도 모른다.
에디터 |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 조승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