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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과의 對話

LIFESTYLE

대중에게 ‘우리 국토 전체가 박물관’임을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국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된 이 책은 1993년 남도 답사기를 시작으로 지난 5월 일본 교토 편까지 총 10권의 답사기로 세상에 나와 널리 읽히고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DDP에서 열린 문화 예술 아카데미 에이트인스티튜트의 ‘In between Art book’ 강의에서 “문화유산 중 명작은 기술과 정성, 재력이 뒷받침될 때 탄생한다. 거기에 해석의 역사가 쌓이고 쌓여 비로소 완전한 명작이 된다”고 했다. 해석의 역사 그것은 비단 문화유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국가, 명품 국가가 되는 데 꼭 필요한 것도 올바른 해석의 역사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임을 최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도하고 있다.

유홍준 교수는…
단순히 미술평론가나 대학교수라는 단어로 규정짓기엔 무리가 있는 유홍준 교수(66세)는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미술사학 석사와 예술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영남대학교,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2003년 만해문학상 수상, 2004년부터 2008년까지 3대 문화재청 청장을 지내며 국내 문화유산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려 노력했다. 1993년 남도 답사 일번지를 시작으로 지금껏 10권에 이르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를 비롯해 국내 문화 예술에 관해 50권이 넘는 책을 집필해온 그는 지난 5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교토의 역사>를 펴내며 일본 속에 건재하는 한국 문화를 다시 한 번 독자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강의를 하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워낙 논란이 많은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공간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현대건축을 선도하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건물이 세워진 것은 서울의 건축 문화 발전을 위해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울어진 벽, 미로 같은 동선으로 인한 공간의 로스(loss) 등 이제껏 서울에서 보지 못한 독특하고 거대한 공간적 구조를 갖추었지요. 현대건축이 구현한 이 놀라운 건축물은 서울 시민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할 거라고 봅니다. 다만 서울성곽이 지나가는 역사적 지형에 대한 고려나 동대문이라는 장소가 지니는 의미를 간과한 부분은 아쉽습니다.
선생님의 이름을 널리 알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20여 년 전 남도 답사를 시작으로 여전히 진행 중인 거대한 프로젝트예요. 선생님의 인생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처음 답사기를 쓰기 시작할 땐 부담이 없었는데, 마무리 지어야 할 시점이 오니 어떻게 하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부담감이 느껴져요. 제가 사회적으로 존재를 드러낸 것도 이 책 덕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제 인생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함께 가게 되겠죠. 그런데 저는 제 책을 뛰어넘는 새로운 책이 나타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그만 팔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나를 알고, 역사를 알고, 이웃의 역사를 배우겠다’는 의지는 시대를 거스르는 영원한 주제이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답사기가 나올 거라고 믿어요. 결국 다음 세대의 책이 나오는 것이 문화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선생님 책 속에 등장한 많은 문인과 예술가, 장인 중에서 특별히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인물이 있나요? 단연 추사죠. 추사는 예술가이자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 살면서 세상에 휘둘리고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 쓸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왕가의 사돈집 귀공자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몰락할 수 있는지 인생이 참 드라마틱해요. 추사는 인생을 너무 힘들게 산 것 같아요. 예술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너무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깊은 아픔 속에서 남긴 그분의 유산이 우리의 사상이 되었으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답사기와 달리 추사 김정희의 평전인 <완당 평전>의 문체에서는 추사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완당 평전>이 출간되고 나서 예산에 있는 추사의 무덤 앞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무덤 앞 비탈길 아래 스크린을 펼쳐놓고 300여 명이 잔디밭에 모여 앉았는데, 위에서 추사 선생께서 내려다보고 계신 셈이었죠. 어쩌면 제 얘기를 다 들으시고 ‘나 그렇게 안 살았다’고 하셨을지도 몰라요.(웃음) 어쨌든 그분이 이룩한 것이 후대의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참 큰 것 같아요. 제가 죽으면 꼭 한번 만나뵙고 싶은 분이에요.
언젠가 강연회에서 “자서전을 쓸 만한 인생을 살 자신이 없으면 훌륭한 분의 평전을 쓰는 일에 인생을 매진하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인문학을 전달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바로 바이오그래피예요. 추사의 평전은 추사 개인의 생애를 뛰어넘어 그분의 사상과 세상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 사회적 실천 등을 통해 그 시대의 역사가 복원되잖아요. 한 시대를 상징하는 몇 사람의 바이오그래피를 보면 결국 역사를 이해할 수 있어요. 저는 제 전공에 맞춰 추사의 평전을 썼어요. 물론 그분은 대단한 사상가이자 정치가였지만 우리에게 더 귀중한 건 추사의 글씨와 예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자신의 이상적 인간상을 찾아 그의 바이오그래피를 쓰는 건 무엇보다 값진 일이라고 봅니다.
규슈와 아스카·나라 편에 이어 최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교토의 역사>를 출간하셨습니다. 교토라는 옛 도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욱 많았을 것 같아요. 교토는 일본 역사에서 볼 때 무려 1000년간 수도였던 곳입니다. 그 때문에 언급해야 할 유적이 참 많죠. 교토를 제대로 보려면 교토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야 하는데, 너무 광범위해서 이번 책에는 먼저 교토의 역사에 대해 썼습니다. 교토의 명소 편도 곧 출간할 예정이에요. 교토는 지난 20년간 매년 찾아가 며칠씩 답사를 하곤 했어요. 심도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같은 유적지도 여러 번 봐야 하지만, 무엇보다 계절에 따라 각각의 장소가 다르게 다가오거든요. 교토라는 도시에는 일본미의 진수가 녹아 있어요. 일본의 아름다움, 일본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거기에 있어요. 특히 교토는 정원이 참 아름다워요. 정원이 1000년간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 살피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일본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한국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부분을 기술할 때 이야기가 본인도 모르게 길어졌을 것 같습니다. 네. 특히 고대 부분에서 그렇죠. 교토라는 도시가 탄생한 건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의 절대적 도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도래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어요. 교토를 이룩한 것이 하타씨(秦氏)의 진하승(秦河勝)이라는 사람인데, 그의 조상인 신라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간 게 500년 무렵이고 하타씨가 활동한 시기는 630년 무렵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도래인이 과연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생각해봐야 해요. 이미 그들은 일본인으로 살고 있었어요. 케네디 대통령도 미국 사람이지만 아일랜드 출신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케네디를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엔 문제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식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그들의 삶은 이미 교토 이민 개척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다만 서로 문명을 교류하고 전파하고 소통했다는 역사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유대를 이어주는 것이지요.
교토에 대한 연구와 답사 그리고 집필에 오랜 시간을 쏟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일본 미학의 진수’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분명한 건 교토 편 하권까지 써봐야 알 것 같은데, 무엇보다 일본 사람은 자신의 미(美)를 개념화하는 데 성공했어요. 일본은 화려한 것은 무척 화려하고 소박한 건 아주 소박해요. 극과 극이 공존하죠. 그건 엄연히 이것과 저것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지 조화는 아닌 것 같아요. 무엇이든 정제되고 반듯해야 하면서도 인간의 손길을 끝까지 반영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어요. 그것이 일본미의 특징인데, 우리에겐 때로 그것이 갑갑하게 느껴지죠. 그렇게 조금이라도 비뚤어진 걸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만의 미가 형성된 것이겠지만요. 반면 일본 사람은 ‘한국은 조금만 더 반듯하게 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지 몰라요. 인간이 지닌 미의식과 감성이 그렇게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참 재미있어요.
선생님의 새 책이 더 반가운 건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일 겁니다. 우리는 일본 문화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일본 역시 한국에서 배울 게 있고요.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본의 지성인 중에 한국을 연구하는 분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일본을 배우겠다고 하면 무조건 친일로 몰리는 경향이 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껏 알지 못한 사실, 감각이나 정서의 층위를 일본 문화를 통해 새롭게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위한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1월에 출간한 <명작 순례>는 조선의 명작을 소개한 책입니다. 그 책에서 교수님은 여러 차례 ‘안목’의 중요성을 언급했는데, 가끔은 안목이 선천적 산물로 보일 만큼 노력만으론 갖기 어려운 덕목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안목을 기르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뭘까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단 좋은 작품을 수없이 보고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해설을 접하며 그 작품의 의미를 익혀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훈련을 오랜 시간 하다 보면 자신만의 안목을 갖게 되지요. <중용(中庸)>의 저자는 공자님의 이런 말씀을 인용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며, 어떤 사람은 노력해서 안다. (중략) 그러나 이루어지면 매한가지다.”
수많은 작품을 마주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강렬한 순간이 있었나요? 1980년대 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시대 문인 화가 능호관 이인상이 그린 ‘설송도(雪松圖)’라는 작품을 봤어요. 눈 덮인 소나무 두 그루를 하나는 꼿꼿하게, 하나는 오른쪽으로 휘어지게 그린 작품인데, 그 속에서 뭔가 삼엄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어요. 그림 한 폭에서 화가의 내공이 느껴졌죠. 그래서 석사 학위 논문을 ‘능호관 이인상의 삶과 예술’을 주제로 썼어요. 화산관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단원 김홍도가 몸을 그린 ‘서직수 초상화’도 참 멋져요. 특히 두루마기 부분의 표현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 품위 있고 리얼할 수 있는지 볼 때마다 감동으로 다가와요. 역시 단원이구나 싶어요.
집필 중 휴식할 땐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특히 요즘 같은 계절에는요. 시골 생활이 좋아서 내려가 쉬려고 몇 년 전에 부여에 작은 집을 마련했어요. 그래서 집 이름도 휴휴당(休休堂)이라고 지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 가기도 힘들어요. 거기 가서는 아예 책은 안 읽죠. 하늘 바라보고, 잡초 뽑고, 상추도 가꾸면서 시간을 보내요. 새소리 들으며 냇가에서 놀다 보면 서울에 올라오기가 참 싫어져요. 제가 건강을 지키는 첫 번째 비결은 평소 답사 여행을 하면서 많이 걷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일주일에 하루는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겁니다.
부여의 어떤 점에 그렇게 끌리셨나요? 부여는 백제 역사의 고도인데, 어딘가 쓸쓸해요. 그곳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었어요. 서울에서 오가기에도 적당한 거리에 있고요. 무엇보다 집을 짓는 일은 인연이 닿아야 하는데 마침 반교리 냇가에 폐가가 하나 나와 그곳에 작은 한옥을 지었죠.
언젠가 선생님이 ‘내 인생의 책’으로 추천한 조르조 바사리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같은 책을 요즘 사람들은 읽지 않아요. 독서 풍토의 변화에 따른 한계로 보아야 할까요? 우선은 사람들이 점점 책을 사 보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어요. 최근 10년간 출판계 전체 매출이 매년 10%씩 계속 줄었다고 하잖아요. 출판 시장의 위축은 결국 지식의 몰락입니다. 지식을 소비하기 전에 축적해야 하는데, 요즘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지극히 파편화된 지식만 소비하려고 해요.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전히 배움의 기본이 되는 것은 책이고요.
우리 역사의 모든 시대를 아우르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국 미술사 강의> 등의 책을 집필해오셨습니다. 혹시 특별히 애정을 느끼는 어떤 시대의 미감이 있나요? 요즘엔 더 이전의 유물이나 유적지가 멋져 보여요. 조선시대보다는 고려시대 것이 멋있고, 고려보다는 통일신라 것이 더 멋져 보여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총체적인 무언가를 만들려는 의지가 강한 것 같아요. 신을 주제로 모든 사상적·예술적 역량이 응집된 시대이기 때문에 여전히 감동을 주는 거겠죠. 그래서 고전이 위대한 겁니다. 반면 지금의 예술에는 한 시대나 집단적 개성보다는 주로 개인의 경험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걸어온 여정을 따르다 보면 한 시대의 예술 작품이나 예술가 못지않게 시대마다 새롭게 탄생하는 작품에 대한 해석 역시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작은 그것에 대한 해석의 역사와 함께 존재합니다. 카를 야스퍼스가 1945년 교토에 와서 미륵보살반가상을 보고 쓴 글을 보면 얼마나 탁월한지 모릅니다. “이 미륵반가상에는 극도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의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음을 본다. 그것은 지상의 시간과 속박을 넘어서 달관한 인간 실존의 가장 깨끗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본다. 나는 몇십 년간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 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다. 이 불상은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원한 평화의 이상을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현하고 있다.” 카를 야스퍼스의 이 표현이 미륵보살반가상을 새롭게 합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마음으로 본다는 최순우 선생님의 수필이 부석사를 다시금 보게 하고요. 명작의 역사에는 이런 끊임없는 해석의 축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다음 책이 궁금합니다. 구상 중인 책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당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교토의 명소>를 써야 하고, <미술사 강의> 4권과 <화인 열전>도 한 권 더 구상 중입니다. 그리고 <명작 순례>의 속편으로 명품 순례도 준비 중이에요. 1년에 한 권씩 부지런히 쓴다고 해도 70세가 넘어서까지 책만 쓰게 생겼네요.(웃음) 좀 억울해요.
오늘 강의 중, 명작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장인정신과 최고의 기술 그리고 재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문화 향유, 나아가 문화 창조에 뜻을 둔 <노블레스> 독자에게도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음악을 모르고 살다 어느 날 클래식에 귀가 열리면 그동안의 삶이 얼마나 건조했는지 깨닫게 되죠. 마찬가지로 우연히 미술에 눈떠서 박물관에 찾아가 그림을 수없이 보다 옥션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구입했을 때의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 게다가 미술품은 온전히 내 것이라는 소유의 충족감도 더해주죠. 아름다운 15세기 백자 하나를 사방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 작품과 교감하며 고상한 정서를 키우는 경험은 새로운 감동을 전해줄 겁니다. 문화란 그걸 향유하는 소비자가 있을 때에만 발전시킬 수 있어요. 좋은 전시회와 음악회를 향유하는 <노블레스> 독자야말로 이미 문화의 창조자인 셈이죠.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진행 박선영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