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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의 반짝이는 뉴스] 뱀이 세르펜티 주얼리가 되기까지

FASHION

불가리의 아이콘인 세르펜티 컬렉션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 ‘세르펜티 하우스’가 오픈했다. 과거 왕권 수호의 상징에서 주얼리의 신비로운 모티브로 거듭나기까지, 세르펜티 주얼리의 뱀 모티브에 얽힌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1962년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 현장에서 불가리 세르펜티 워치를 착용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불가리의 아이콘인 세르펜티 컬렉션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 ‘세르펜티 하우스’가 오픈했다. 과거 왕권 수호의 상징에서 주얼리의 신비로운 모티브로 거듭나기까지, 세르펜티 주얼리의 뱀 모티브에 얽힌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수천 년 전부터 왕권 수호의 상징이었던 뱀은 선과 악, 독과 약, 죽음과 부활이라는 상반된 모순성으로 수많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특히 똬리를 틀고 꼬리를 무는 역동적인 형상은 팔찌와 반지의 핵심 모티브로 거듭나 일찍이 주얼리에서도 궁극의 힘을 발휘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뱀은 절대적 긍정의 존재였다. 사람들은 뱀이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현상을 통해 재생과 불멸, 부활, 영원, 지혜라는 상징성을 끄집어냈다. 심지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ēpios)의 표상인 지팡이를 휘감은 뱀은 치유의 의미에서 오늘날 현대의학의 엠블럼으로 진화했다.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 피에로 디 코시모, 1480~1490년, 프랑스 콩데 미술관.

고대 그리스·로마로의 회귀를 주창한 르네상스 시대, 뱀은 초상화 속 캐릭터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상징체로 우뚝 섰다. 피에로 디 코시모가 그린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의 주인공 시모네타는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걸작 ‘비너스의 탄생’의 실제 모델이었을 정도로 미의 대명사로 칭송받은 그녀가 23세에 요절한 스토리는 당대 예술가들의 감성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림 속 그녀의 목걸이를 휘감은 뱀은 시작과 끝이 이어진 순환 고리의 모습으로 시모네타의 영원한 아름다움과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오마주라는 두 가지 해석을 낳았다. 누구를 그렸든, 뱀이라는 매개체로 죽음과 시간을 초월한 불멸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영국의 르네상스를 이끈 엘리자베스 1세의 ‘무지개 초상화’에서 뱀은 지혜의 상징이다. 여왕은 의복과 주얼리로 ‘위대한 통치자’이자 ‘처녀왕’의 이미지를 설정한 인물이므로 망토를 수놓은 눈, 코, 입과 뱀 장식에서 심오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뱀이 물고 있는 루비는 여왕의 심장이고 머리 위에 놓인 보주는 천구(天球)를 의미한다. 심장의 열정을 지혜로 통제하는, 세계 정복의 야망을 지닌 여왕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림 왼쪽 상단의 “태양 없이 무지개도 없다”라는 라틴어 문구 역시 평화와 번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왕의 힘을 강조한다. 결국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고 있는 여왕은 가장 지혜롭고 강한 존재임을 시사한다.

’무지개 초상화’, 아이작 올리버, 1600~1603년, 영국 햇필드 하우스.

한편, 주얼리에서 뱀 모티브가 대유행의 씨앗을 뿌린 데에는 19세기 중반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약혼반지가 한몫했다. 남다른 금실을 자랑한 여왕 부부에게 뱀은 영원한 사랑 그 자체였다. 뱀은 유색 보석을 활용한 다채로운 주얼리로 거듭났고, 역사와 헤리티지를 중요시한 상류층에서는 이 유행을 충실히 따랐다. 19세기 말에는 부드러운 곡선을 지향한 아르누보 양식과도 절묘한 궁합을 자랑했다. 생명력 넘치는 우아하고 유기적인 뱀의 라인은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는 예술로 승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부상한 뱀 모티브 주얼리는 그 시대가 요구한 기술력에서 비롯됐다. 특히 불가리의 투보가스 공법으로 무장한 세르펜티 컬렉션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다이애나 브릴랜드 등 주얼리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존재감을 공고히 했다. 수천 년의 역사 속 뱀은 오늘날 대담한 창의성을 대변하는 아이콘이자 헤리티지와 혁신의 조화를 상징하는 최고의 모티브로 자리 잡았다.

 

에디터 김희성(alice@noblesse.com)
윤성원(주얼리 칼럼니스트,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디자인 장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