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 슈토셰크
“나는 움직이는 그림에 매력을 느낀다.” 독일 컬렉터로 유일하게 미디어 아트 작품만 컬렉팅해온 율리아 슈토셰크(Julia Stoschek). 그녀는 한 해 동안 독일 현대미술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이에게 수여하는 ‘아트 쾰른 프라이스’의 2018년 수상자이자, 현재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컬렉터 중 한 명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모은 미디어 아트 작품이 대략 800점. 현대미술 중에서도 미디어 아트, 그중에서도 유독 동시대성을 담은 작품만 컬렉팅해온 기조는 ‘시대의 거울’이라 불리는 미디어 아트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후대에 그대로 전하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1 동시대성을 담은 미디어 아트 작품만 컬렉팅해온 율리아 슈토셰크.
2, 3 지난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뒤셀도르프와 오는 7월 29일까지 그곳에서 열리는 <세대 손실>전 전경.
1975년생으로 아트 컬렉터 중에서 젊은 편에 속하는 율리아 슈토셰크는 1908년에 창업한 세계 유수의 자동차 부품 기업 브로제(Brose Fahrzeugteile)의 상속자이자 대주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200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미술관(Julia Stoschek Collection Dusseldorf)을 뒤셀도르프에 열었으며, 2016년에도 베를린 미테에 새 미술관(Julia Stoschek Collection Berlin)을 개관해 실험적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 팝 음악 시장에서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레이디 가가 못지않은 인기를 현재 독일 현대미술계에서 누리는 이가 바로 율리아 슈토셰크다. 그녀는 젊은 컬렉터답게 언론에서 선호할 만한 용모와 패션으로 미술계 밖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이 인터뷰는 국내 매체에서 단 한 번도 다룬 적 없는 율리아 슈토셰크의 미디어 아트 컬렉팅에 관한 생각 그리고 그것의 속성에 관한 탐구를 키워드로 이루어졌다.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뒤셀도르프에서 현재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세대 손실(Generation Loss)>(7월 29일까지)이란 전시죠. 그런데 가만 보니 큐레이터가 미디어 아티스트 에드 앳킨스(Ed Atkins)더군요. 어떻게 미술 작가가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죠?
저는 오랫동안 뒤셀도르프의 전시 공간을 ‘예술가를 위한 집’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개관 10주년 전시도 전문 전시 기획자가 아닌 미술가에게 부탁했죠. 미술 전시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였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아바타로 작업하는 에드 앳킨스는 이번 전시를 위해 단순히 제 컬렉션에서 보기 좋은 것만 추린 것이 아니라, 미디어 아트라는 매체에 담긴 기술과 그로 인한 사회의 정치적 변화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더라고요. 수백 점에 이르는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의 작품 중에서 48점만 선정해 좀처럼 보기 힘든 구성의 전시를 선보였죠. 한데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 지금도 ‘시대를 담는 거울’로서 미디어 아트에 접근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실은 미디어 아트를 어떻게 ‘시대의 거울’이라고 여기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듣고 싶어요.
미디어 아트는 어떤 장르보다 생동감 넘치는 예술 형식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주제가 실시간으로 포착되고 주석까지 달리는 현대의 시대상을 모두 다루니까요. 어떻게 보면 최신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제가 미디어 아트에 끌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동시대를 첨단 기술을 집약한 영상과 전자 매체 등으로 가장 빠르게 반영하기 때문이죠.
컬렉션에 어떤 작품을 포함시킬지 결정할 때 기준 같은 게 있나요?
우선 지금의 정치나 사회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작품인지 봅니다. 저는 예술이 비판적 토론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보거든요. 제가 구입하는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그걸 포착하고 싶기도 하고요. 제 컬렉션의 궁극적 목표는 1960년대 비디오 아트의 시작부터 오늘날 그것의 발달에 이르기까지 다리를 놓는 겁니다.

4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베를린에서 오는 11월 25일까지 전시하는 아서 자파의 < Arthur Jafa: A Series of Utterly Improbable, Yet Extraordinary Renditions >전 전경.
5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베를린에서 7월 1일까지 전시하는 미국 작가 이언 쳉(Ian Cheng)의 ‘Emissary in the Squat of Gods’ 설치 전경. 작품은 인간의 돌연변이 현상을 다루고 있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컬렉팅한 지 2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아트 컬렉션을 시작하셨나요? 가족 중에 아무도 아트 컬렉션을 하는 이가 없는 걸로 아는데요.
2000년대 초반 컬렉터 하랄트 팔켄베르크(Harald Falckenberg)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함부르크에 있는 개인 미술관 팔켄베르크 컬렉션(Falckenberg Collection)으로도 유명한 그와의 만남이 제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죠. 컬렉팅에 대한 그의 생각과 철학, 행동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어떤 가능성에 눈뜨게 했습니다.
다소 외람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문득 유명 갤러리스트인 마이클 슐츠(Michael Schultz)가 한 말이 떠올라서요. 그는 요새 컬렉터들이 미술품 수집을 재테크 수단으로만 이용한다고 했죠.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다행히 전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 같네요.(웃음) 만약 재테크 수단으로 작품을 모으려 했다면 미디어 아트가 아닌 다른 걸 수집했을 테니까요.
그럼 지금껏 십 수년 동안 단 한 점의 작품도 되팔지 않았다는 얘긴가요?
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미디어 아트를 무작위로 컬렉팅하지 않아요. 기존 제 컬렉션과 어울리는 작품을 신중히 선택하죠. 이는 제 컬렉션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컬렉션 중 어느 하나를 파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2000년대 초반인 컬렉팅 초창기가 궁금합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당시 어려움이 많았다는 기사가 있더라고요. 젊고 예쁜 여성이 갤러리에 들어와 작품에 대해 문의하니 작가의 마스터피스를 보여주기보단 그저 그런 작품만 권유했다고요.
이미 오래전 일이죠. 그런 일이 반복돼서 갤러리가 아닌,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다니게 됐고요. 그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갤러리스트들의 반응도 변하기 시작했죠.
현재 800여 점의 작품을 모았으니, 몇 년 지나지 않아 1000점의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가 될 듯합니다. 작품을 구입할 때 누군가의 조언을 듣기도 하나요?
개인적으로 컨설턴트나 자문을 통해 작품을 구입하는 걸 선호하진 않습니다. 아트 컨설턴트나 자문과 함께하기엔 미디어 아트에 대한 제 생각이, ‘동시대의 반영과 정치적 진술’이라는 키워드가 분명하고 독립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 컬렉션을 위해 일하는 몇몇 큐레이터는 지속적으로 제게 작품에 대한 의미 있는 제안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 많은 작품을 어떻게 일일이 관리하고 보존하는지 궁금합니다. 일례로 비디오 아트라면 영상이 깨지거나 소리가 뭉개지는 일이 빈번할 것 같은데요.
작품의 관리와 보존에 관한 문제는 처음부터 제게 아주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최신 기술로 완성한 지금의 미디어 아트 작품이라 해도 반년만 지나면 쓸모없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뒤셀도르프엔 작품의 보존을 위한 기술자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미디어 아트 작품이 최신 기술이란 날개를 달고 빠르게 진화하는 것처럼 그것을 관리하는 분야 또한 마찬가지죠. 일례로 어떤 비디오 작품을 수리하기 위해 필름 롤을 꺼낸다면 그것이 부패하는 걸 막기 위해 제한된 짧은 시간 동안 온도와 습도 등을 예민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재차 말하지만 저는 동시대성을 담은 작품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미디어 아트를 컬렉팅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예술품 보존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죠. 저는 지금껏 구입한 모든 작품을 디지털로 변환하고 아카이빙해왔습니다. 물론 16mm 필름을 디지털 저장 매체로 옮길 땐 어떤 요소가 뒤바뀌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미디어 아트에 대한 이런 기술적 처리가 없다면 제 컬렉션은 분명 몇 년 후 사라질 겁니다.
미디어 아트 컬렉팅에서 역시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그걸 보존하는 일이군요?
맞습니다. 컬렉터의 관점에서 볼 때 그건 또 다른 ‘도전’이죠. 하지만 저는 전문 복원 담당자와 긴밀히 협력해 컬렉션의 모든 부분을 가능한 한 가장 효율적으로 보존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그간 주목받지 못한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에 포함되어 미술계에서 빠르게 인정받는 경우를 봐왔습니다. 컬렉션의 오너로서 의미 있는 일일 것 같은데요.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은 애초에 여러 전문가와 함께 작업해왔습니다. 작품의 규모와 수준을 박물관급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죠. 그래서 지금도 강도 높은 관리가 이어지고 있고요. 주목받지 못하던 작가들이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에 포함되어 인지도를 높이는 건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양쪽의 노력이 있어야 하죠. 사실 저도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제 컬렉션에 포함되길 원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이란 공간에서 전시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요. 물론 그건 제게도 여러모로 흥분되는 일입니다.
현재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있나요?
몇 명 있습니다. 젊은 작가인 버니 로저스(Bunny Rogers)와 아서 자파(Arthur Jafa), 존 래프먼(Jon Rafman), 레이철 로즈(Rachel Rose) 등이죠. 그중 아서 자파는 지난해에 제가 발견한 최고의 수확입니다. 마침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베를린에서 그의 개인전 < Arthur Jafa: A Series of Utterly Improbable, Yet Extraordinary Renditions >가 열리고 있죠. 11월까지 이어집니다
2016년에 두 번째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을 베를린에 연 이유는 무엇인가요? 베를린의 공간은 독일에 개인 미술관이 개관한 최초의 분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시 공간을 통해 예술가들과 가까워지는 걸 좋아합니다. 베를린에 새 미술관을 연 이유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상당수의 작가가 그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죠. 또 베를린엔 작가를 위한 작업 공간과 예술 관련 시설이 독일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많습니다. 뒤셀도르프에 비해 물가도 아주 싼 편이고요.
컬렉터로서 또는 예술 후원자로서 미디어 아트 작가를 위한 지원 활동도 하고 계시나요?
제가 작품을 사기로 결정한 미디어 아티스트에게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의 공간 한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을 발전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죠.
미술계에서 컬렉터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작가들에게 작품 제작비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요 임무는 무엇보다도 컬렉션을 확장하고 보완하는 일이죠. 또 그중 고장 난 걸 복원 및 보존, 문서화하는 일입니다.
이제 막 미디어 아트 컬렉팅을 시작하려는 이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열정과 호기심은 컬렉션을 구축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요소를 갖춰야 자신의 컬렉션을 다른 이들의 그것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죠. 참고로 저는 여러 예술가와 소통하기보단 하나의 좋은 작품을 얻기 위해 오랜 기간 소수의 미디어 아트 작가와 밀접하게 만나는 걸 선호합니다.

6 독일의 대표적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mans)의 2013년 작품 ‘Heartbeat / Armpit’.
7 율리아 슈토셰크가 지난해의 ‘최고 수확’이라 말한 아서 자파의 ‘Mickey Mouse was a Scorpio’.흑인의 문화와 이론, 미학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Arthur Jafa
미디어 아티스트와 영화 촬영감독으로 활동하는 아서 자파는 1991년 영화 <도터 오브 더 더스트(Daughters of the Dust)>로 데뷔해 주목받았다.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10여 편의 상업 영화를 촬영했으며, 미술가로서 흑인과 흑인 음악이 지닌 힘 그리고 존재와 소외에 관해 다룬 영상 작품을 제작했다. 2013년 마틴 루서 킹의 연설 5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드림스 아 콜더 댄 데스(Dreams are Colder than Death)>로 호평을 받았다.

8 폭력에 대한 시선을 클레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표현한 나탈리에 유르베리 & 한스 베리의 ‘We are not Two, We are One’.
9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많은 것에 의문을 던지는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2007년 작품 ‘When Love is not Enough Wall’.
Nathalie Djurberg & Hans Berg
나탈리에 유르베리와 한스 베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스웨덴 출신 듀오 아티스트다. 나탈리에 유르베리가 질투, 복수, 욕심 등의 감정을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 한스 베리가 그것에 음악을 입히는 식이다. 둘은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전후로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 현재 동유럽과 북유럽 등지에서 활발히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2009년 경복궁에 설치한 프라다 트랜스포머를 통해 한국 관람객에게 <턴 인투 미(Turn into Me)>를 소개한 바 있다.

10 24시간 뉴스 채널 Sky News의 방송을 음소거로 변형, 관찰과 해석에 대해 질문하는 에드 앳킨스 & 사이먼 톰프슨의 ‘Sky News’ 설치 전경.
11 흑인 문화에 대한 아름다움을 다루는 아서 자파의 2013년 비디오 작품 ‘Apex’.
Ed Atkins & Simon Thompson
영국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에드 앳킨스와 팝아티스트 사이먼 톰프슨.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아바타로 주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온 에드 앳킨스와 풍자적 작업을 해온 사이먼 톰프슨은 각자의 작품 활동 외에도 뉴미디어의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따금 협업한다. 단순한 형태의 반복적 상영이 특징인 둘의 작업은 현재 유럽 현대미술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12 페인터와 조각가로 활동한 독일 작가 이미 크뇌벨의 유일한 비디오 작품 ‘Projektion X’.
13 늘 직설적인 메시지로 자신의 예술관을 작품에 투영하는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의 1967년 비디오 작품 ‘Walking in an Exaggerated Manner around the Perimeter of a Square’.
Imi Knoebel
페인팅과 조각에 대한 열정적 탐구로 ‘추상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독일 출신 작가 이미 크뇌벨. 젊은 시절 요제프 보이스에게 사사한 그는 건축적 추상 풍경화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고, 더 나아가 현대적 회화 양식의 새로운 담론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갤러리현대의 <독일 현대미술 3인전>을 통해 한국에도 작품을 소개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김은아(미디어 컨설턴트) 사진 제공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