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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

LIFESTYLE

독주회를 준비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최윤제를 만났다. 그녀는 음악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그 어떤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연 준비를 하는 연주자에게 이번엔 무엇을 연주하느냐는 질문은 곧 지금 이 순간 어떤 작곡가에게 빠져 있는지, 혹은 이번에는 관객에게 어떤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지 묻는 말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최윤제의 독주회 프로그램을 보고 궁금해졌다. 그녀가 무대 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한 작곡가의 곡을 탐구하거나 한 국가의 곡을 모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작곡가의 곡을 아우른 레퍼토리를 보고, 연주자의 의도를 읽고 싶었다. 너무나 유명한 독일 작곡가의 ‘덜’ 사랑받는 곡(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으로 시작해 프랑스 작곡가의 재기 넘치는 대표곡(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으로 끝맺는 프로그램. 그리고 그 사이에는 익숙한 작곡가의, 그러나 흔히 연주되지 않는 곡으로 채웠다.
12월 6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을 찾는 관객은 최윤제의 독주회에서 베토벤, 드보르자크, 슈만, 생상스의 바이올린 곡을 만나며 그녀가 제안하는 특별한 음악 여정에 함께하게 된다. 그녀와 마주 앉았을 때 자연스레 시작된 첫 번째 화제도 독주회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 첫 곡이 궁금했다. 베토벤이 작곡한 10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인기 순위에서 뒷전에 밀려 누군가 전곡 연주를 할 때나 들을 법한 3번을 선택한 이유가. “베토벤의 초기 곡이면서도 규모가 크고 아름답죠. 덜 알려졌지만 제가 참 좋아하는 곡이에요. 또 예전에 고 배익환 선생님이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과 슈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같은 무대에서 연주하신 적이 있는데 그 공연이 정말 감동적이어서 프로그램을 비슷하게 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이번 독주회에는 화음쳄버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실내악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 선생을 향한 마음도 담았다. 최윤제는 얼마 전 그의 1주기 추모 연주회 무대에도 섰다.

 

그녀는 미국 줄리아드 음악대학과 대학원을 거쳐 뉴욕 주립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뒤 1999년 귀국해 지금까지 17년째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실내악 무대만으로도 연주 일정이 많았기에 독주회를 개최하는 건 오랜만이다. 굳이 이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프로그램에는 항상 그녀의 독주곡이 있었다. 연구 실적처럼 매년 한 번씩 의무적으로 하는 독주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연주하고 싶은 곡이 꽤 늘어나 이번 무대를 준비했다고 한다. “혼자보다 함께하는 연주를 더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맞는 말이에요.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실내악이 필수 과정이 아니라도 꼭 참여했고, 대학 시절에도 동시에 몇 그룹씩 참여해 활동했어요. 이츠하크 펄만의 반주자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고 새뮤얼 샌더스(Samuel Sanders)에게 실내악을 배웠죠. 훌륭한 솔리스트가 되기 위해 방에서 혼자 연습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지만 저는 그룹을 만들어 다양한 연주 활동을 하는 게 훨씬 즐거웠어요.” 당시 줄리아드 스트링 콰르텟의 제1바이올린 주자로서 최윤제를 지도한 로버트 만(Robert Mann)은 그녀에게 “악기를 다루는 것은 다른 연주자가 더 뛰어날지 모르나 음악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다”라는 말을 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연주가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위해 다른 연주자들과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가던 그녀를 정확하게 평가한 것이다.
귀국해 연주 활동을 하며 세월이 흘렀지만 그런 음악적 자세는 바뀌지 않았다. 교감을 나누는 여러 연주자와 함께하는 재미있는 음악회는 더 많아졌다. 그러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영향을 주고받는 연주’에 대해서다. “제가 생각하는 음악은 ‘들려주는’ 것, 결국 남을 생각하는 거예요. 연주는 지나가버리면 끝나는 시간적 행위이기 때문에 곡 자체를 표현하는 것뿐 아니라 관객에게 곡의 정서를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껴요.” 최윤제는 ‘순간’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특별히 빠져 있는 작곡가나 편애하는 곡보다는 마음을 끄는 어떤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2번 1악장의 기가 막히는 변화의 순간이나 풀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1악장의 드라마틱한 순간 같은. 사진처럼 남아 있는 그런 순간을 떠올리면 연주가 곧 여행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을 다녀온 뒤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리듯 관객에게 행복감을 주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연세대학교와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강의할 때도 영화의 한 장면이나 책의 한 구절을 통해 상상을 유도한다. 시범을 보이면 학생들이 금세 따라 하지만 그보다는 상상 그릇을 넓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녀는 이번 공연 이후 내년에 또 한 번 독주회를 열 계획이다. 5년 전 슈만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노블레스> 가 주최한 다섯 번의 음악회에서 슈만의 실내악 전곡을 연주했는데, 소나타를 하지 않은 아쉬움이 남아 이번에 1번을 연주하고 내년 독주회에서 2번을 연주할 생각이다. 그때 협연한 피아니스트 윤철희가 이번 무대에서도 함께한다. “앞으로도 저를 내세우기보다는 콰르텟이나 체임버, 혹은 독주나 강의를 통해 주위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활동하고 싶어요.” 겸손히 말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좋은 영향을 주는 연주자야말로 진정한 음악인이란 것을.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김제원 장소 협조 스트라디움 의상 및 액세서리 협찬 퍼블리카 아틀리에(드레스), 타니 바이 미네타니(이어링) 어시스턴트 이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