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형식은 없다
도상의 의미를 이해하고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을 ‘도상학’.

‘Chaekgeori (Scholar’s Accoutrements)’, Late 1800s, Korea, Exhibited in the <The Power and Pleasure of Possessions in Korean Painted Screens>(April 15~June 11, 2017, Long Ellis Foundation Gallery&Dolph Simons Family Gallery)
도상학(iconography)은 미술에서 내용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며 20세기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술의 가장 강력한 힘이자 고유한 영역은 ‘보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술은 문화와 관습이라는 내용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우리는 눈으로 작품을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같은 궁금증이 따라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도상학으로 접근하면 작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겼는지 알 수 있다. 덧붙여 작품을 대하는 태도의 무게도 달라질 것이다.
그림을 보고 주제를 궁금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20세기 도상학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에는 선, 색채, 명암 등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형태적 특징을 분석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형식주의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의미 없는 형식은 있을 수 없다”고 선포한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와 그의 선후배가 이어간 연구 덕분에 도상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인 7세기경부터 서양미술은 전통적으로 도상학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고 해석했다.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던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만일 그림 속 인물의 포즈와 사물의 상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사전이 있다면, 그림의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열쇠를 쥔 셈이다. 1593년, 이탈리아 출신인 체사레 리파(Cesare Ripa)는 도상의 백과사전 <이코놀로지아(Iconologia)>를 출판한다. 이 책에서 그는 고대부터 당대인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이 사용한 미술 어휘를 총망라하며 시간, 비탄, 사랑 등 다양한 개념을 그림으로 풀이해 정리했다. 가령 ‘나태함’은 누더기 옷을 입은 늙은 여인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는 모습으로, ‘지식’은 거울과 삼각자를 각각 쥔 손을 공 위에 얹은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도상학이라는 렌즈로 작품을 들여다보면 마치 암호를 해독하는 듯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저울을 다는 여인(Woman Holding a Balance)’을 보자. 정적이 감도는 실내에서 한 여인이 보석의 무게를 재고 있다. 얼핏 그림의 고요한 분위기 때문에 소박한 일상을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허영심과 유혹을 상징하는 보석과 장신구의 의미를 간파한다면 작품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여인의 뒤쪽 벽에 걸린 액자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말해 영혼의 무게를 재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는 ‘최후의 심판’ 장면이다. 여인과 마주 보는 벽면에는 거울이 걸려 있다. 화면에 널린 여러 단서를 조합하면 이 작품은 유혹이 가득한 삶에서 내면의 영혼을 살피고 마음속 균형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왼쪽 Cesare Ripa, Nova Iconologia(book, p. 319), Woodcut, 22.5×16.5cm, 1618,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른쪽 Albrecht Durer, Melencolia I, Engraving Print, 24×18.8cm, 1514
20세기 들어 도상학이 작품을 해석하는 중요한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독일 출신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의 역할이 크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도상해석학’이란 이름을 붙이며 한 단계 높이 끌어올렸다. 또 미술 작품은 제작 당시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특정 시대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을 볼 때는 시간을 되돌려 당시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역사,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참고해 작품을 분석하고 수많은 형상으로 ‘위장’한 그림 속 진짜 의미를 찾아야 한다.
3단계로 진화하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은 뒤러(Albrecht Durer)의 ‘멜랑콜리아 I(Melencolia I)’ 연구에서 빛을 발한다. 1514년에 만든 뒤러의 판화는 지금껏 수많은 연구자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논란을 일으킨 문제의 작품이다. 파노프스키의 첫 단계는 캔버스에 그린 형상과 표현 방식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컴퍼스를 쥔 채 먼 곳을 응시하며 앉아 있는 한 여인이 가장 눈에 띈다. 그 옆 침울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아기 천사 푸토(르네상스 조각상이나 그림에 자주 등장한 큐피드) 주위에는 사다리, 천칭, 모래시계 등이 벽에 걸려 있다. 여인의 발치에는 톱, 자, 망치, 나무로 만든 구가 널려 있고 조금 뒤로 모서리를 자른 육면체 돌이 있다. 이 사물들의 기능과 쓰임새로 추측하건대 건축, 기하학, 수학의 분야를 연상시킨다. 대체 이런 도구가 작품 제목 ‘멜랑콜리아’, 즉 깊은 우울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건물 벽에 걸린 숫자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기서 두 번째 단계인 도상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이 단계에서는 제작 시기의 문화적 관습에 따라 작품을 이해해야 하므로 전방위적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 숫자판은 마방진으로 전통적으로 우울감을 이겨내는 점성술의 부적으로 작동한다. 멜랑콜리에 대해서는 의학적 지식을 동원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의학 사상에 따르면 사람의 육체와 정신은 네 가지 체액에 의해 기질이 결정된다. 그중 검은 담즙의 양이 많은 사람은 멜랑콜리아, 즉 우울한 기질을 드러낸다. 중세에는 이 체액이 사람의 기질뿐 아니라 성격과 유형까지 결정해 우울한 기질의 사람은 보통 생기가 없고 나태하고 음침하게 묘사했다.
그런데 뒤러의 여인은 전통적 도상학과 달리 나태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제 마지막 단계인 도상해석학적 분석에 들어갈 차례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 문화적 징후, 작가 개인의 심리를 반영해 표현한 방식을 종합적으로 해석한다. 판화 속 여인은 우울하다기보다는 무언가에 몰두하며 주변의 기하학적 도구로 우주의 질서와 만물의 이치를 알고자 고뇌하는 모습이다.

Joseph Beuys, Fat Chair, Wood, Glass, Metal, Fabric, Paint, Fat and Thermometer, 183×155×64cm, 1964~1985, Tate Collection
파노프스키는 모든 단서를 종합해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도출했다. 그는 뒤러가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이라는 지성적 힘을 갖고도 세상의 본질에 결코 닿을 수 없어 깊은 우울감에 갇혀 있는 ‘예술가의 멜랑콜리’를 그렸다고 주장했다. 바로 뒤러 자신의 정신적 자화상이라는 것. 수학과 과학적 지식을 갈망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지만 신의 영역에 범접할 수 없어 절망한 한 예술가의 우울을 판화에 담은 셈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우울한 천재 예술가’의 이미지가 이때부터 등장했다. 도상해석학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작품의 의미는 기존의 것을 전복, 극적 반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흔히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작품을 그린 시기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탐색하며 그 진의를 들추는 것이 바로 도상학이다. 도상학은 마치 작품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듯 흥미진진한 분야다. 하지만 작품의 도상에 집요하게 매달려 자료를 샅샅이 들추고 시대적 징후를 간파해야 하므로 전문 연구자에게도 꽤나 까다로운 분야다. 파노프스키는 ‘멜랑콜리아’ 속 여인이 쓴 화관에 매달린 식물의 의미까지 해석했다고 한다.
물론 도상학이 그림 자체의 형태나 형식을 간과하고 지나치게 문헌 자료에 의존해 그 의미를 찾으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도상학을 통해 미술사가 역사, 문화, 종교, 철학 등 다른 분야와 접합하며 저변을 넓혀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서양 고전 미술 작품에 최적화된 방법론이나,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형상이 반복해 나타나고 관련된 역사적 자료가 있다면 무엇이든 도상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부처의 손짓에도 의미를 담은 불교미술은 도상학이 탄탄하게 구축된 장르다. 현대미술도 예외는 아니다. 허영과 기회를 상징하는 현대 문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오드리 플랙(Audrey Flack)의 작품이나 지방, 펠트, 꿀 같은 물질로 시대정신을 표현한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설치 작품 등도 도상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눈앞에 놓인 그림을 다시 보며 탐정의 눈으로 단서를 찾고, 인류학자의 눈으로 화석처럼 보존된 문화적 상징을 찾아내자.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타데우스 로팍・로버트 라우션버그 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