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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OW

지금 화제인 책, 전시, 음악, 영화에 대한 문화 인물 4인의 에세이.

1 조나단 힉맨이 쓰고 닉 피타라가 그린 그래픽 노블 <맨해튼 프로젝트>.
2 3채널 영상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의 스틸컷.

발칙하고 뒤틀린 상상력
우리가 아는 역사는 틀렸다. 과학자와 프리메이슨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미국 만화에는 슈퍼맨과 아이언맨이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코믹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축에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 대니얼 클로즈의 <고스트 월드> 같은 예술성 강한 그래픽 노블이 있다. 특히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양대 산맥인 DC와 마블이 아닌 이미지 코믹스(Image Comics)의 만화는 더욱 개성이 강하다. 한 회사가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모든 권리를 소유하는 미국 만화계의 관행을 거부하고 창작자에게 소유권과 창작권을 부여하는 이미지 코믹스는 1992년에 출범했다. 드라마화되어 대성공을 거둔 <워킹 데드>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한 이들은 2016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만화인 우주를 배경으로 한 <사가>,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디센더> 등 DC나 마블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이는 다크호스 출판사다.
<맨해튼 프로젝트> 역시 이미지 코믹스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본래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비밀 계획의 암호명이다.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와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가 주축이 되어 개발한 원자폭탄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고, 전쟁을 끝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기에, 이 작품의 표지를 처음 보고는 역사 만화일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긴 순간 강렬한 느낌의 그림에 매혹되며 완벽한 오산임을 깨달았다. 이 책은 실제 인물과 역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보통 사람으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하고 뒤틀린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쳐낸다.
책 속엔 오펜하이머와 페르미는 물론 아인슈타인, 파인먼, 폰 브라운 등 과학에 흥미가 있다면 익히 들어봤을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이 미국에서 원자폭탄과 미사일, 우주 개발에 지대하게 공헌한 건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맨해튼 프로젝트>는 실제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치 평행 우주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모든 것을 해체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오펜하이머는 연쇄살인마고, 페르미는 외계인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방대한 지식과 결단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과학자들은 그를 AI로 되살린다.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는 실상 원자폭탄을 만든다는 목적을 내세워 우주와 다른 차원을 아우르는 방대한 실험을 하려는 비밀 계획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상상력에 끝이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대통령직을 계승한 트루먼은 프리메이슨으로, 고대부터 지식을 전승하며 권력을 독점해온 집단을 대표한다.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를 인정할 수 없는 프리메이슨은 마법과 권력을 앞세워 맞대결을 펼친다. 역사적 사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신비주의, 초자연주의적 상상력을 제멋대로 구사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진다. 현란하고 변화무쌍하게 독자의 머릿속을 헤집는다. 가볍고 유쾌한 환각이다. 정교하면서도 뒤틀린 세계를 묘사하듯 구불거리는 그림체 역시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새로운 만화적 경험을 안겨준다. 스토리만이 아니라 그림에서도 일본 만화와는 다른 질감의 시각적 경험을 맛볼 수 있다.

. 김봉석
김봉석은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등에 대한 글을 쓴다.

산(生) 자의 의무
작가 임흥순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이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역사에서 소외된 여성, 이름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역사의 연결 고리를 찾는다.
지금, 문화 예술계의 화두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다. ‘촛불’이 바꿔놓은 것은 정치 지형만이 아니다. 우선 격동의 시대를 담은 영화들이 눈에 띈다. 고(故) 김근태 의원을 추모하는 <남영동 1985>(2012년)와 1981년 9월 부산 ‘부림 사건’을 다룬 <변호인>(2013년)에서 출렁인 물결은 1987년 봄을 그린 <보통 사람>(2017년), 1980년 5월 광주를 스크린으로 옮긴 <택시 운전사>(2017년)를 넘어 1987년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증언한 <1987>(2018년)에 이르러 정점을 찍는 분위기다. 미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건설 현장에서 일한 아버지와 방직 공장에서 일한 어머니를 통해 노동, 이주 노동자, 베트남전쟁 등을 다뤄온 임흥순 작가에게 방점이 찍혔다.
임흥순은 미술과 영화를 오가며 시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가다. <위로공단>(2014년)으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미술가이자 <려행>(2016년), <환생>(2017년)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받은 감독이다. < MMCA 현대차 시리즈 2017: 임흥순-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4월 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 이후 작가가 처음 여는 개인전이다. <비념>(2012년)으로 제주 4·3항쟁을, <위로공단>으로 한국 여성 노동자의 역사를, <려행>으로 탈북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 뿌리에 해당하는 ‘분단’과 ‘전쟁’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40분짜리 3채널 영상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 20분짜리 2채널 영상 <환생>, 그리고 아카이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는 4명의 할머니가 등장해 해방 전후부터 현대사로 이어진 우리 민족의 굴곡진 역사를 소리 없이 증언한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란·이라크전쟁을 모두 겪은 이정숙 할머니,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20년 상하이로 망명한 후 26년간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펼친 정정화 할머니, 1950년 토벌대를 피해 지리산으로 올라간 아버지를 찾으러 산에 올라 3년간 빨치산으로 살고 가족을 지리산에서 모두 잃은 고계연 할머니,
제주 4·3항쟁 당시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에 오르고 이후 지리산을 거쳐
일본 오사카로 밀항해 그곳에서 산 김동일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전시를 둘러싼 이야기도 저릿하다. 정정화 할머니의 손녀 김선현은 영상에서 친할머니로 직접 분했다. 김동일 할머니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단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유족이 기증한 할머니의 유품 4000점은 전시장을 나서는 길목에 정갈하게 모셨다.
<환생>은 베트남전쟁과 이란·이라크전쟁을 경험한 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를 두 편의 영상에 아로새겼다. 관객은 스크린과 스크린 사이, 이란과 베트남 사이, 전쟁과 전쟁 사이에 위치해 역사에서 소외된 여성의 이야기와 ‘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게 된다. 그래서일까? 전시장 출구 쪽에 모아놓은 아카이빙 풍경 앞에서 관람객은 쉬 발길을 떼지 못한다. 그렇게 역사는 우리의 일상과 조우한다.
바야흐로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비주류의 이야기를 비주류가 발언하는 시대다. 그 통로에 사진과 영상이 유효한 매체로 자리 잡았다. 시대의 문맥을 미술의 맥락으로 변용시키는 다큐멘터리적 기승전결이 어떤 감각을 유발하고 어떤 의미를 제시하는지 탐구하는 것이 동시대 미술을 독해하는 방법이다. 좋은 예술은 미래를 주시하면서 현재를 진단해 과거를 서술한다. 포스트시네마라는 용어로 정리되는 근래의 영상 작품들이 머지않은 과거, 아직 청산되지 않은 야만의 시대를 기록하고 고발하는 것은 ‘달라진’ 시대를 향한 당연한 헌정일 것이다.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예술의 역할이 있다면, 산 자의 의무가 있다면 그것이 아닐까.

. 윤동희
미술 기자 출신인 윤동희는 현재 북노마드 대표다.

3 전자양의 앨범 <던전> 재킷.   4 영화 <1987>의 스틸 컷.

던전에서 살아 나온 음악의 사춘기
가수 전자양이 ‘던전 사운드 시리즈’를 통해 공개한 곡을 모아 앨범 <던전>을 발매했다. 스스로‘괴물들’이라 부르는 밴드와 백재중 작가의 아트워크를 결합한 진정한 컨셉 앨범.
한없이 미묘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게 뭐든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서로의 목록을 틀어주며 내가 떠올린 공간과 취향을 너도 느끼는지 확인하던 시절, 전자양의 1집 타이틀곡 ‘아스피린 소년’도 그중 한 곡이다. 보글거리는 물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며 연약한 목소리로 속삭이던 존재. 음악의 공간을 감싸고 있던 나른하고 매력적인 정서. 그러나 이번에 <던전>과 함께 오랜만에 들은 ‘아스피린 소년’은 그때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뭐랄까, 보사노바 리듬에 리버브를 잔뜩 넣은 꽤 간결한 곡이었다. 가사 역시 읽어보니 ‘부유하는 물속’은 아니었다. 여름의 동네 약국이 배경이었다. 어린 시절 꽤 넓다고 생각한 횡단보도에 다시 가본 기분이랄까. 이 도로가 그렇게 넓었단 말이야? 음악의 오라 중 어떤 것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진다. 한때 무척이나 설레던 음반도 중고 매대에서 마주치면 ‘어! 나 이거 참 좋아했는데’라는 행동 이상(또 한번 구입하기)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오라는 청자인 우리가 붙였다가 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음반은 꽤 큰일을 해낸 고마운 영웅이다. 한 시기를 잘 보내게 해주고 묵묵히 매대에 꽂혀 있으니 말이다.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CD에서 스트리밍으로 듣는 방식은 변했지만, 음악의 외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같은 악기, 한정된 리듬, 어딘가 비슷하게 존재할지 모르는 멜로디가 시즌마다 쏟아진다. 그것은 실험적인 ‘인디 팝’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중 몇몇 음악은 음악의 힘이 그런 외형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여전히 누군가는 비슷함 속에서 자신의 유일한 음악을 찾아내 인생의 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 또 그 진한 공명의 정체가 무엇인지 헤아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던전>도 내게 그런 음반이었다. 나는 이 앨범을 들으며 어느 던전 같은 지하상가에서 미리 듣기 없이 음반을 고르느라 몇 시간씩 틀어박혀 있던 시절을 생각했다. 그때 이 음반을 집어 들었다면 케이스 안에 정말 미로 같은 속지가 들어 있을지, 이 음악이 던전만큼 충분히 날 멀리, 깊숙이 데려갈지 궁금했을 것이다. 음악 듣기의 매력은 소리뿐 아니라 그것을 감싼 모든 것에서 오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입 벌린 고양이를 향해 빨려 들어가는 자동차 그림과 ‘던전’, ‘사스콰치’, ‘스티커’ 같은 제목은 음악 못지않게 속지와 해설 읽기에 열을 올리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악몽 같은 현실의 은유일 거라 생각한 제목 너머에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있었다. 음악은 그저 악몽이라기보다 생생하게 반짝이는 금맥 같았다. 어쩌면 이것은 던전을 빠져나오려는 고투가 아니라 던전에 매료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 여기에는 세상의 악과 결연히 맞서던 사춘기의 정신이 살아 있었다. 음악이 흔하디흔한 것이 아니라 수신자와 발신자를 이어주는 근사한 통로이던 때의 기억. <던전>의 송신자는 여전히 음악을 만드는 재미를 간직한 채 장난기와 집착, 공상을 보내오고 있었다.
인디 음악의 시야는 10여 년 전보다 훨씬 넓어졌지만 그건 그만큼 ‘어른’이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집에서 혼자 음반을 만드는 사람들조차 웬만한 상업적 전략을 훤히 꿰고 있다. 나는 그런 시대에 이런 음반이 얼마나 과감한 것인지 안다. 온갖 공상과 시도가 한순간 악취미로 평가절하될 수 있는 시대. 바로 그런 시대에 전자양은 여전히 사춘기처럼 매력적인, 그러면서도 신선한 앨범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쁘고 신기한 것은 정말 많은데, 정말로 웃어본 지도 백만 년”(‘유물과 유적’)인 시대. “같아도 똑같지 않을 수 있는, 달라도 다르지 않은”(‘사스콰치’) 음악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던전>이 보여주고 있다.

. 김목인
김목인은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영미 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다.

영화 <1987> 하루 전 이야기
영화 <1987>을 보다가 문득 제임스 터렐의 ‘달의 뒤편’이 떠올랐다.
일본 나오시마의 혼무라 지역은 낡은 옛집을 고친 공간을 작품으로 전시하면서 주민의 일상을 예술로 전환하는 ‘이에(家, 집)’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제임스 터렐의 ‘미나미데라(Art House Project Minamidera)’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 ‘달의 뒤편’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미나미데라는 ‘빛’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극단의 어둠을 체험케 한다. 관람객은 이곳에 일렬로 줄을 서 앞사람의 어깨를 잡고 들어가 완벽한 어둠을 만나게 된다. 처음 겪는 공포다. 단순히 무섭거나 두렵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처음과 끝을 모르는 막막함의 공포. 이내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미세한 빛이 드러나는 경이로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흔하고 익숙해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하던 일상 속 빛과 어둠이 미세한 여과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평소에 모르고 있던 진짜 ‘빛’과 진짜 ‘어둠’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반가움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영화 <1987>을 보다가 왜 미나미데라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달의 뒤편’이라 불리는 미나미데라의 제임스 터렐 작품이 너무 강렬해서였겠지만,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 이후 유명해진 대공분실이라는 공간이 그새 익숙해진 탓도 크다. <1987>은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사건부터 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1987년의 현장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자칫 신파조로 흐를 수 있는 영화 속 사건은 감정 과잉을 자제하는 연출로 1987년의 원경(遠景)을 담담히 그려낸다. 영화는 30년 전, 젊은 청년 한 명이 그곳에서 물고문을 받다 죽는 시점으로 시작한다. 청년의 죽음을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는 경찰은 빠르게 시신을 화장하려 하지만, 한 검사가 이를 거부해 부검이 이뤄진다. 그때 현장에 남은 흔적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리키고,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들에 의해 사건은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그 부조리함에 대한 순수한 분노에서 비롯된 6월 민주항쟁. 그런데 나는 문득, 청년이 죽은 그 하루 전날의 시점에서 영화가 시작했으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봤다. 그랬다면 아마 조금 다른 영화가 되었겠지만.
“사건 하루 전날, 청년은 경찰에게 잡혀 검은색 지프차에 태워진다.
한참 도로를 달려 잘 지은 단아한 회색 벽돌 건물로 들어간다. 어디로 가는 건지, 눈을 가린 완벽한 암흑 속에선 시간도 평소와는 다르게 흐른다. 차에서 내려 계단 두 단을 올라 철문 안으로 끌려 들어간 청년은 차가운 원기둥이 가운데 박힌 나선형 철 계단을 걸어 오른다. 경찰 둘이 앞서서 팔을 끌고 뒤에서 등을 밀며 따른다. 세다가 몇 바퀴인지 알 수 없게 될 즈음 나선형 계단은 끝나고 곧 냉정한 공기가 가득한 공간이 나타난다. 본능적으로 눈앞을 가린 막 사이로 빛을 찾으려 애써보지만 소용없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것으로 봐선 단단한 벽에 둘러싸인 복도 같다. 그 재료는 주로 콘크리트와 금속일 것이다. 소리의 울림이 신경질적이고 차갑다. 공기는 습하고 무겁다. 창문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멈추라는 소리에 발을 멈춘다. “좌향좌.” 경찰 하나가 장난치듯 구령을 붙인다. 청년은 좌측으로 몸을 돌려 두껍고 투박한 철문 앞에 선다. 청년은 자신 앞에 무거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발바닥에서 무릎, 허벅지 위로 전율이 올라온다. 곧이어 ‘텅’ 무심하게 문이 열리는 소리. 방 안의 살기가 청년 주변을 솔바람처럼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 현실인지 착각인지 모를 또 다른 소리가 미세한 진동과 함께 청년을 감싼다. 한데 그것은 너무 익숙하고 평범한 소리다.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 플랫폼의 신호음 소리, 그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익숙하고 평범한 세상의 소리. 눈이 가려진 채 불안하게 닫혀 있던 청년의 입가가 순간 짧게 빙긋거린다. 조금씩 걷히는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함과 불안…. 청년이 방으로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내게 영화 <1987>은 다시 이렇게 시작한다.

. 최준석
최준석은 건축사사무소 NAAU LAB을 이끌며 집과 공간을 설계한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백아영(xiaxia@noblesse.com), 황제웅(hjw1070@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