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예술입니다
순수 미술과 디자인은 자칫 이분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을 오가며 멋진 작업을 하는 작가가 참 많다. 디자인을 넘어선 예술, 예술을 넘어선 디자인.
프랭크 스텔라, Harran II, 캔버스에 형광 고분자 페인트, 304.8×609.6cm, 1967
/ ⓒ 2015 Frank Stella/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Mr. Robert Gober, Single Basin sink, Plaster, wood, steel, wire lath, semi-gloss enamel paint, 24×90×27 in. 1985 Gift of Robert H. Halff C. Robert Gober
<앤디 워홀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워홀은 작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것들을 생산하는 사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사람들에게 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 수년 전에 읽었지만 유독 인상 깊게 남은 이 문장은 지금도 내가 작가를 정의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반대로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쓸모없는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은 집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물론 목적과 기능을 의무적으로 수반할 필요가 없는 일반적 의미의 미술 작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재력을 과시하고 뽐내려는 디자인을 지양하라는 의미일 터. 그럼에도 이들의 말을 간단히 정리하면, 결국 작가는 ‘필요 없는 것’을 생산하는 사람이고 디자이너는 ‘쓸모없는 것’을 생산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을 뜻하는 디자인은 태생적으로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미술은 오히려 그 과정을 주목한다. 미술은 반복이 진정성과 개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야지만, 디자인에서 반복은 발전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디자인은 삶의 실용적 필요를 충족하고 사물의 목적을 표현해야 하며 결코 실상과 다른 모습을 취해선 안 되지만, 미술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 작업 방식도 다르다. 많은 디자이너가 혼자 작업하지 않는다. 일의 성격상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컨셉을 제안하거나 세부 디자인을 그리는 전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번갈아 수행한다. 상호 보완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형 작품을 제작하는 미술 작가나 그룹 프로젝트 작가를 제외하고 이런 식으로 일하는 작가는 별로 없다.
미술과 디자인이 닮은 점도 물론 있다. 우리 시대의 정신을 표출한다는 것, 작품의 모티브는 대부분 우연히 떠오르고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뜻밖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 만드는 모든 것에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저마다 의미를 담는다는 것,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이나 디자인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기쁨과 유대감을 느낀다는 것 등이 미술과 디자인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본다면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나 우리의 일상생활 공간을 디자인 제품으로 꾸미는 것이나 모두 결국 ‘우리의 삶을 조형하는 디자인의 이상을 구현한다’는 맥락 또한 엇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Ugo Rondinone, Vierzehnternovemberzweitausendundvierzehn, Acrylic on canvas, 39 3/5× 26 2/5×1 3/5 in. 2014
이러한 미술과 디자인의 공통적 맥락을 인지한 도널드 저드 같은 작가는 작품과 사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수한 오브제를 만들어내며 미술이 평면 또는 화이트 큐브의 갤러리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완벽하고 세련된 작품과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를 활용하는 등 기존 작가들의 작업 과정과 상당히 다른 방법을 차용했고, 이는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아트 퍼니처라는 영역을 새로이 개척한 웬들 캐슬은 디자인에서 순수 미술로 확장한 경우다. 예술가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한 그의 작업은 가구를 새로운 예술 장르로 재탄생시켰다. 사람들은 그의 전위적 가구에서 이전의 디자이너가 아닌 예술가의 혼을 느꼈고, 그렇게 선보인 그의 작품은 기존 가구의 개념과는 달리 가구 자체가 공간을 뒤흔드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회화 작가이면서 직접 잡지를 만들기도 하는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 마르쿠스 뤼페르츠도 그림을 그리는 일련의 행위와 잡지를 디자인하고 글을 쓰는 행위는 결코 별개가 아니라고 얼마 전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러한 모든 예술 활동에는 연결성 같은 게 있습니다. 그림 속 작은 무언가가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것은 일련의 띠처럼 이어져 있고, 그 안에 작가의 지난 삶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나타나죠.”
2월 12일 미국 신시내티의 컨템퍼러리 아트 센터에서 개막한 서도호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에서도 그의 작품과 나란히 건축 디자인 작품이 디스플레이됐다. 장소 특정적 작업을 건축 모형으로 실현한 ‘틈새 호텔(In between Hotel)’. 서도호 작가가 동생 서을호 건축가와 함께 만든 이 호텔은 평범한 시민이 마치 유목민처럼 하룻밤 투숙하며 인간과 역사 그리고 틈새를 생각해보게 한다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서도호의 작업에 꾸준히 모티브로 등장하는 ‘집’이 건축 디자인적 관점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는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다.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점점 투명하게 하는 이러한 행위는 30~40대 젊은 작가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최근에 만난 한 갤러리 대표가 “이 친구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라며 극찬한 장민승 작가가 대표적 인물이다. 작가, 음악 프로듀서, 파티 기획 연출자라는 여러 타이틀이 있지만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건 테이블 가구 ‘T1’이다. 미니멀리즘의 끝을 보여준 이 테이블 디자인으로 그는 2006년 올해의 영 디자이너로 선정되었고, 그 후 그는 ‘미술은 미술처럼 보여야 한다’는 시대의 상식에서 벗어난 작품 활동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2014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인 슬기와 민도 비슷한 예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범주 안에서 예술의 뒤섞기를 시도하는 이들은 그래픽 디자인의 전형적 문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예술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는 듀오 디자이너다. 이들은 현대미술가 박미나, Sasa와 함께 협업하며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공격적인 방식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2014년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인 김영나 작가도 두산갤러리에서 개최한 <선택표본>전에서 전시 공간과 관람 환경을 그래픽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관람객에게 시공간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과 유럽을 무대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한 디자인 계간지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2014년 11월 석촌호수를 유유히 부유한 노란 오리 ‘러버덕’의 작가 플로렌테인 호프만은 <뜻밖의 미술>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내가 예술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크기가 커야 하며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처럼 작가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이 예술의 일부가 될 수 있고, 그것은 다시 일상이 될 수 있다.” 순수 예술이 기존의 것, 즉 과거의 시간에서 현재 그리고 이를 기초로 미래를 향해 내비치는 지표라 한다면, 디자인은 현재까지 쌓이고 이어져온 문화를 대변하는 축적된 지금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었고 디자인은 이전 시대와 달리 더 이상 피동적인 성격을 띠지 않는다. 미술과 디자인 모두 서로의 개념을 담아내고 그 안에서 사람들과 주도적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뿐, 우리의 시각적 기관을 통해 인지된다는 것 또한 미술과 디자인의 공통점이다. 이쯤에서 건축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카우프먼 주니어의 말이 떠오른다. “현대 디자인은 동시대 순수 미술과 순수 과학 분야의 진보로 인한 혜택을 입어야 한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