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의 역사
눈앞의 물건에서 끌어낸 역사는 어떤 자리에서도 흥미로운 대화거리가 된다. 적어도 코스피 지수보다는 타율이 높다.

카페에서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만나는 자리라 치자. 공식은 간단하다. 먼저 청중을 자처하다 컵을 만지며 “전 커피는 깊이 모르지만”이라며 겸양하고, “그런데 최초의 보험이 런던 커피 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해본다. “안정적 사업의 성공 원리는 변치 않는 것 같습니다. 일상적 대화에서 사람들의 불안 요소를 잡아내 해결하면 되겠죠.”
부담 없이, 당신의 통찰력을 돋보이게 하는 시간. 이렇게 역사 이야기로 새로운 관계에서 지적 대화의 마중물을 준비하려면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가 적당하다. 베스트셀러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를 쓴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세계사에서 일상 물건의 연대기를 골라 짤막하지만 흥미로운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목차를 훑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커피와 위스키, 또 보험의 관계를 각 장에서 골라 조합할 수 있다. 17~18세기 유럽 경제의 패권을 차지한 영국은 배로 실어 보낸 물건과 사업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현대화된 해상 보험 제도를 만들었다. 손실 발생에 대한 정확한 확률 계산은 상인 간 끈끈한 협력 체계를 필요로 했는데, 그들이 모인 사교장이 바로 커피 하우스. 이슬람에서 전파한 커피 한 잔의 습관은 당시 런던에만 3000개의 커피 하우스를 만들었고, 작은 미팅부터 정치 담론까지 오가는 각종 집회의 장이 되었다. 이렇게 대화가 무르익은 다음 식사 초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음식 인문학이 있다.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는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에서 식사 방식으로 한국 음식 문화사를 일별한다. 어느덧 서양화된 라이프스타일 속에서도 독립적으로 변화해온 우리 식탁 풍경에 대한 순진한 의문이다. 이를테면, “왜 지금도 신혼살림을 꾸릴 때 교자상 두 벌을 챙기는가?” 같은 것. 1970년대 아파트와 슬래브 주택이 보급되면서 식탁이 일반화됐지만, 여전히 우리 거주 공간은 바닥이 따뜻하고 평소 접어두었다 손님 치를 때 연결하면 여덟 명쯤 거뜬히 앉는 교자상이 사라질 이유가 없다는 점을 문화 인류학자와 머리를 맞대 답한다. 백자를 닮은 멜라민수지 그릇이나 중국 것보다 얇고 일본 것보다 납작한 수저 세트를 식당에서 볼 때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갖가지 반찬으로 가득 채운 한식당 상차림처럼 각 장마다 놓여 있다. 이쯤 되면 누구든 궁금할 돈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터. <상속의 역사>가 등장할 차례다. 유럽이나 중국이나 변치 않는 인간의 욕망과 부모 자식 사이는 어떻게 문서화되어 공고히 하며 얼마나 지혜로운 방식으로 해결했는지 역사학자 백승종이 술술 풀어낸다. 한때 서양에서 흔했던 농부의 은퇴 계약서를 보면, 경작지를 소유한 사람이든 소작농이든 땅을 물려받은 자식이 은퇴한 농부를 부양하는 것이 골자인데, 부농이 많은 지역에선 부모가 도시에서 여생을 보내고 자식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기도 했다. 한편, 오늘날 독일에서 기술 분야가 특화된 것은 그들의 옛 법률이 균분 상속을 기본으로 하고, 땅이 있는 자에게만 선거권과 참정권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흥미롭다. 형제 간 똑같이 재산을 나누는 균분 상속제는 몇 세대만 지나도 더는 나눌 땅이 없어 자손들은 생존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작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곳 사람들은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서남부 슈바벤이 그런 곳이었고 다국적기업인 메르세데스-벤츠와 보쉬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캐주얼한 역사서는 성경이나 초보 요리책만큼 꾸준히 팔린다. 시대 불문, 소속 불문. 사방으로 뻗어가는 통찰의 시간은 지겨울 수가 없을 테니까.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