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뭐지?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들지 않는 미술도 미술이라고 할 수 있나? 작가는 없고 공간만 기억에 남는 ‘서비스화’된 미술관의 미술 전시는? 북노마드의 윤동희, 전시 공간 시청각의 현시원은 그래서 오히려 지금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윤동희 __________________________ 현시원
윤동희 출판 스튜디오 북노마드 대표. <월간미술> 기자, 안그라픽스 편집장,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눈(Noon)>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세종대학교 회화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시원 전시 공간 시청각의 큐레이터 겸 공동 대표. 2006년부터 현 시청각의 공동 운영자인 안인용 큐레이터와 독립 매거진 <워킹매거진>을 펴냈고 독립 큐레이터이자 현대미술·이미지 연구자로 활동중이다.
세대교체의 교체
현시원(이하 현)/ 지난 몇 년 동안 ‘시청각’을 운영하며 사뭇 ‘관람객들’의 존재가 변한 걸 느꼈어요.
윤동희(이하 윤)/ 예를 들면요?
현/ 관람객 중 작품을 열심히 보는 젊은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윤/ 관람객의 ‘세대’가 바뀌었단 얘기죠? 저도 비슷한 걸 느꼈어요. 저는 오랫동안 제가 미술과 출판의 경계에 있다고 여겼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어요. 어느 순간 젊은 작가와 젊은 관람객, 학생들이 제게 어떻게 출판사를 하면서 미술 강의를 하고, 미술 저널을 만들며, 전시 공간을 운영하느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1990년대부터 해온 일이라 아무런 의식이 없었거든요. 어느 순간 관람객이라는 수용자의 세계가 확 바뀐 거예요. 그리고 이젠 그 수용자가 ‘활동하는 이들’의 성격까지 규정하죠. 변화가 시작된 걸 저만 모르고 있었어요.
현/ 뭔지 알겠어요.
윤/ 말하자면 지난 몇 년간 시청각이나 커먼센터, 일민미술관, 유어마인드 같은 곳은 그곳의 ‘내부인’보다 관람객에 의해 평판이 만들어진 경우죠. 미술 작가와 신생 공간이 세대교체를 한 게 아니에요. 여기에 또 문제가 있어요. 대략 2013년을 기점으로, 그러니까 당시 20대였던 관람객이 30대로 넘어가면서 그런 움직임이 사라졌다는 거죠. 지금의 20대는 이전의 20대와 달리 뭔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는 듯해요. 그냥 평가만 하죠. 인스타그램에 ‘여기 핫한 미술관이야’, ‘카페도 괜찮은데 커피 맛도 좋네’라고 올리면 끝인 거예요. 이전 세대 같으면 ‘나도 그런 공간을 해볼까?’ 하고, 그 이전 세대라면 적어도 ‘나도 그런 커피를 만들어보고 싶어’라고 했을 텐데 이들은 ‘올리는’ 걸로 끝이죠. 물론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싹둑 잘라버리는,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사회구조가 더 큰 문제겠지만요.
현/ 저도 그런 걸 느껴요. 지난봄 학교에서 글쓰기 관련 수업을 하는데, 한 학생이 전시 리뷰 리포트에 매번 ‘너무 불친절하다’고 반복적으로 써오는 거예요. 학생들과 글에 관한 토론도 했는데, 누군가는 그 글을 보고 지마켓의 ‘상품평’ 같다고 했죠. 그러니까 그 학생은 전시를 보는 게 돈 아까운 활동이라고 여긴 듯해요. 전 그때 전시를 ‘소비자’로서 평가할 때 어떤 글이 생산될지 생각해봤죠. 물론 20대가 전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이전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선택을 하며 학교를 옮겨온 젊은 작가를 만나기도 했는데, 오히려 몇몇은 너무 진지하고 열성적이라 조금 놀랐으니까요.
윤/ 그건 ‘고민의 흔적’이 있어서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대부분 수동적이죠. 전 지금도 지도 교수의 말만 듣고 그곳이 똥인지 오줌인지도 구분하지 못하고 전시를 여는 학생이 있는 걸 보고 놀라요. 물론 같은 젊은 작가라도 그걸 정확하게 포착하는 이 또한 있지만요.
현/ 최근에 관심 있게 보는 젊은 작가가 있나요?
윤/ 윤향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요. 작품은 물론 SNS에서도 사적 커뮤니케이션과 공적 커뮤니케이션을 표 나지 않게, 자기 얘길 안 하는 듯하면서 잘하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적절한 자기애를 지닌 동시에 주변과 세상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도 있죠. 그래야 작가의 ‘색’이 나오거든요. 그저 관람객으로 전시를 ‘구경’하러 다니는 데 그치는 여느 작가들과는 달라요. 저는 작가가 너무 많은 전시를 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건 ‘셀렉트’를 못한다는 거예요.
현/ 저도 시청각을 열 당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걸 왜 하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그러면서 2013년 말 < No Mountain High Enough >라는 개관전을 열었는데, 당시 Sasa[44] 작가가 ‘이게 뭐지?’라고 써서 전시장 한쪽 벽에 걸어둔 작품이 제게 큰 도움이 됐어요. 이후 늘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하며 전시를 기획한 거 같아요.
윤/ ‘이게 뭐지?’라는 반응을 거두어버린 전시나 공간은 지금, 거의 죽었어요. 기성 전시 공간은 더했죠. 근데 시청각은 ‘이게 뭐지?’ 하는 전시를 계속 이어왔다는 점에서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이전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곳이 기관으로서 정체성이 분명했지만, 앞으로는 특정 큐레이터 등 인물이 그 기관을 상징할 수 있다고 봐요.
현/ 맞아요, 정말. 개인이 어떤 공간과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그 가능성이 여전히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흥미롭죠.
윤/ 그런 점에서 ‘더북소사이어티’(이하 북소사)나 ‘유어마인드’ 등 기존 미술 공간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나가는 소규모 공간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현/ 저도 북소사나 유어마인드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특히 북소사의 경우, 저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기관’보다 오히려 나은 점이 많다고 봐요. 사실 전 국공립 미술관의 활동에선 과거나 미래에 대한 예상이 잘 안 됐거든요. 그냥 오늘을 사는 ‘관공서’ 같은 느낌이 컸죠. 거의 연구 기관 역할을 못하는. 지난여름 과천미술연구센터에 자주 가면서 연구는 물론 젊은 작가를 위한 작품 제작 환경 마련이 정말 시급하다고 강하게 느꼈어요.
윤/ 공감해요.
현/ 그런 기관은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방식도 너무 정형화되어 있어요. 가령 작가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작가에게 1년이 지나면 비평문 같은 걸 쓰게 하는데, 그것도 굉장히 상투적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북소사와 유어마인드는 작지만 ‘다른 방식’의 연구를 하는 공간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어요. 그곳에서 굉장히 두꺼운 연구 서적을 내는 건 아니지만요.
윤/ 저도 북소사의 연구 기능, 유어마인드의 새로운 세대를 위한 문화 마케팅 능력은 기존 플랫폼들이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한다고 봐요. 편집자로서, 이 서점에 ‘놓일’ 책을 만드는 것이 달라진 시대를 잘 버티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작업도 마찬가지죠. 작업을 둘러싼 영역, 작업으로 인정받는 지점이 확실히 넓어졌어요. 잘 만든 독립 출판물로 평가받는 도록, 편집자·디자이너·기관의 협업, 반(半)작가나 반(半)디자이너의 정체성을 갖춘 젊은 작가들에게서 ‘새로운 미술’을 발견하는 거죠. 말하자면 ‘디자인’과 ‘작업’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새로운 관계 맺음의 시점’이랄까요. 사실 동시대 현대미술은 지금 거의 ‘서비스업’이 됐잖아요. 서비스업에 충실한 대림미술관 같은 공간은 심지어 인기도 많죠. 지금은 작가건 큐레이터건 공간 운영자건 ‘서비스업에 충실하겠다’는 파와 그 반대파로 양극화된 상황이고요. 그 사이에서 작가들만 힘들어진 것 같아요. ‘도대체 나는 어디서 내 작품을 만들어 보여주지?’라는 고민을 하는 거죠. 문제는 서비스업이 된 공간에서 전시를 해도 결국 작가는 없고, 해당 공간과 운영자만 남는다는 사실이에요.

더 나은 삶과 재미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윤동희와 현시원
새로움에 대한 교체
윤/ 지금 북노마드 사무실에 놓여 있는 작은 작품들은 지난해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굿-즈 2015’에서 사온 거예요. 저는 작가 ‘세대교체’의 대표적 분기점으로 여기는 그 전시를 작가들 못지않게 재미있게 봤어요. 단, 어떤 이들은 그걸 ‘비평’의 관점에서 눈여겨보던데, 저는 그런 입장은 아니었어요. 그냥 재미있었어요.
현/ 전 사실 개별적으로 보면 ‘굿-즈’가 부족한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지난 ‘굿-즈’가 무엇이었는지는 앞으로도 생각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특별히 응원하거나 싫어한다는 식의 입장 표명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닌 듯하고요. 물론 ‘굿-즈’가 어떤 기준점도 대입해 평가할 수 없는 흥미로운 일을 한다고 여기긴 해요. 그건 그렇고 ‘굿-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전 나이 드신 분들이 이 전시에 불편함을 느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웃음) 아시죠? 잘 알려진 미술지에서 그 전시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윤/ 알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 저널이 미술의 세대교체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건 기존 미술 기관에 반응하지 않는 젊은 작가, 관람객에 대한 ‘질투’에 지나지 않아요. 그냥 그런 미술 저널은 우리가 폄하하면 되는 것 같아요.
현/ 거기엔 심지어 지금의 젊은 작가도 언젠가 더 젊은 작가들이 등장하면 늙은이들이 될 거라는 뉘앙스의 글도 있었죠. 근데 이런 말, 젊은이들에게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웃음) 제가 볼 땐 ‘굿-즈’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은 그들의 주장처럼 ‘세력화’를 이뤘다고 보기엔 사실 너무 힘이 없는데 말이죠. 전 ‘굿-즈’가 스스로 약간의 흥분과 성취감, 재미 정도를 얻었다고 보는 수준이었거든요.
윤/ ‘그들’이 더 이상 미술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지도, 평하지도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질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물론 그렇다고 젊은 세대가 전적으로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낸다는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지금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패러다임을 기준으로 낡은 미술과 새로운 미술을 나누는 시대도 아니고요. 임근준 평론가가 한 미술 저널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은 이른바 ‘무시간성’의 시대죠.
현/ 저도 그 말에 공감해요.
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역사화’할 수 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미술 가운데서 얼마든지 새로운 걸 찾을 수 있어요. ‘역사화’와 ‘새로운 미술’의 개념이 거의 ‘동시화’되어 있어요. 개인이 대안 공간에서 전시를 해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안규철 작가가 회고전을 해도 둘 다 새로운 미술이 될 수 있어요. 젊음과 늙음, 새로움과 낡음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무 소용 없는 시대죠. 그래서 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결국 작가에게 있다고 봐요. 달라진 미술 구조와 환경을 열고 마무리 짓는 것도 결국 작가라는 거죠. 그래서 작가가 달라져야 하고, 강해져야 하고, 현재를 잘 견뎌야 해요. 현재를 견딘다는 게 현재에 충실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물질에 복속하는 현실, SNS로 상징되는 ‘강한 연결’을 당연하게 여길 때, 작가는 ‘약한 연결’을 고민해야 해요. ‘약한 연결’은 일본의 사회학자 아즈마 히로키의 저서 제목이에요. 그는 모든 걸 구글에서 얻을 수 있는 시대에 구글이 예측할 수 없는 ‘말’을 손에 넣는 것, 검색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걸 가능케 하는 방법은 살면서 활동하는 개인의 ‘장소’를 바꾸는 것밖에 없다고, 개인의 ‘신체’를 이동하는 것뿐이라고 했어요. 작가가 활동하기 위해 흐름을 타는 것도 중요하고 구조를 독해하는 것도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의 일, 예술은 본질적으로 ‘낭만적’이기 때문에 개인, 즉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어선 안 돼요.
일단 우리부터 교체
현/ 지난 몇 달간 저는 <쇼미더머니>를 열심히 챙겨 봤어요. 지난 5월 강남역 살인 사건이라든지, 요새 젊은 남자들에 대해 제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면서 봤죠. 전 사실 살면서 남자친구와 가족 빼곤 젊은 남자를 유심히 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근데 <쇼미더머니>엔 어떤 ‘유형’이 나오더라고요. ‘유학 갔다가 적응 못한 문제아’, ‘일베인’, ‘게임 폐인’ 등등. 나름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막판이 되니까 다들 ‘효도랩’하고 ‘패턴화’되더라고요. 그래서 실망했다는 얘기예요.(웃음)
윤/ 대중을 의식하고 서비스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예요. 강남역 살인 사건이나 근래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면, 점점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게임’과 닮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건 아즈마 히로키가 약한 연결 이전에 주장한 ‘게임적 리얼리즘’의 세계관으로도 풀이할 수 있죠.
현/ 그 작가를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웃음)
윤/ 그냥 몇몇 개념으로 볼 때 재미있으니까요.(웃음) 어쨌든 그의 게임적 리얼리즘에선 ‘태어남’과 ‘죽음’이 무의미해요. 자연적 리얼리즘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리얼리즘 속 주인공은 결국 죽거든요. 하지만 언제든지 ‘리셋’이 가능한 게임의 주인공은 죽지 않아요. 다시 말해 숱한 게임을 통해 언제든 리셋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온, 지금의 젊은 남자들은 여성을 혐오해도 자신은 리셋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건지 몰라요. 게임에서만 존재하던 일이 슬슬 오프라인까지 점령하는 거죠. 과거 ‘학문’이었던 페미니즘도 ‘현실’이 되고 있고요.
현/ 제가 여대를 나왔거든요. 대략 2001년쯤인가? 학교에서 페미니즘 미술사 수업을 들으면서 친구들이 ‘페미니즘 그거 다 완성된 거 아니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윤/ 학문적으론 분명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으니까요.
현/ 맞아요. 미국에서 이미 1970년대에 진행한 걸 그냥 배워온 거였으니까요. 제가 그걸 배울 당시엔 저나 친구들이 다 진보적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학교에서도 늘 ‘너흰 뭐든 할 수 있어’ 같은 교육을 했고요.
윤/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당시의 페미니즘처럼 애니메이션으로 본 것, 게임으로 해온 것이 모두 현실화되고 있어요. ‘포켓몬 GO’가 대표적이죠. 그럼 이런 고민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가상이 현실이 된 이 시대에 과연 뭘 해야 할까?
현/ 그런 고민이 새로운 예술이 될 수 있겠죠. 저도 사실 ‘포켓몬 GO’를 보며 떠올린 게 있어요. 너무 단순한 얘기지만, ‘진짜’와 ‘가짜’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됐어요. 방금 전의 ‘공간’ 얘길 다시 하자면, 근래에 생긴 수많은 공간 중 상당수는 운영자 스스로도 그곳이 ‘가짜’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런 공간이 늘 열려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윤/ 맞아요. ‘페이크’죠.
현/ 근데 그 페이크라는 게 본인은 아는 장치이기 때문에, 완성도를 비롯한 여러 기준에서 문제가 심각해지거나하는 건 또 아닌 것 같아요. 다만 미약한 상태로서, 또 자신이 살아남는 방법으로서 가짜라는 걸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공간 운영이 아니라, 작가로서 누가 그 공간에 들어갈 땐 그곳이 ‘진짜’가 되어야 하겠지만요.
윤/ 페이크한 신생 공간이 스스로 디자인하고, 로고를 만들고, 그 공간을 ‘하는 것처럼’ 운영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죠. 그래서 최근 1~2년간 미술계가 재미있었고요. 그런데 다들 느꼈을 거예요. 아, 페이크에도 한계가 있구나. 결국 현실이구나. 매일 출근해서 공간의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문을 닫고, 월세를 내야 하는 거구나, 하는 걸요.
현/ 그런 걸 보면 저 역시 시청각이란 공간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정육점 아저씨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나는 그냥 사람인데, 어떤 공간을 운영하는 순간부터 주변에서 높은 기대치가 생긴다는 거죠.
윤/ 결국 ‘현실’이에요. 현실은 가상현실처럼 상상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현실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뭘 하지?’라고 스스로 묻는 이는 살아남고, 자기가 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는 살아남기 힘들어요. 이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였네요. 우리의 대화도 재미있어야 할 텐데요.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박용빈